그토록 무서웠던가?
(송현 로마노 신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헝가리 왕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보다 못한 그의 동생이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왜 그렇게 힘들어하십니까?
아우여. 나는 큰 죄인이네.
장차 심판 때 하느님 앞에 설 생각만 해도 두렵다네!
아우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을 쓰십니다!
그날 밤 왕은 사형 집행관을 아우 관저로 보내어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당시 헝가리 관례상 사형 집행관이 나팔을 불면 집주인은 즉각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아우는 왕에게 울부짖으며 자기 죄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왕은 여전히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우여. 그대는 내게 죄를 범한 적이 없네!
그런데도 내가 보낸 사형 집행관을 보니 그토록 무서웠던가?
그렇다면 크나큰 죄를 범한 내가 하느님의 심판대를 걱정하는 것이 어찌 하찮은 일이겠는가?
아우는 그제야 왕의 근심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세상 번민에 사로잡혀 시간과 열정을 헛되이 낭비합니다.
경제적 사정이 가장 우선이고 집을 꾸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자녀의 진로때문에 고민이고 가족들의 건강도 걱정입니다.
공동체의 일도 근심거리이고 세계 곳곳의 재해와 테러도 걱정스럽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시름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심각하게 고뇌한 적이 있습니까
자기 영혼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애태운 적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헝가리 왕이 지녔던 마음이 필요합니다.
찰나적인 삶과 영원한 삶을 맞바꾸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자기 영혼을 팔아치우지 말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고뇌하며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왜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왜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왜 주일마다 미사 참례를 하며 신앙생활을 합니까.
그것은 내 영혼과 육신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성공이나 뭇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야 맙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일로 고민하며 괴로워합니까.
우리가 진정 걱정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몸은 성당에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일로 번잡스럽다면
어떻게 자기 영혼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 말고
영혼과 육신을 함께 멸망시킬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내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