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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쟁·여성
1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2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으며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4람은 암미나답을,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으며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7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아비야는 아삽을, 8아삽은 여호사밧을, 여호사밧은 요람을, 요람은 우찌야를, 9우찌야는 요담을, 요담은 아하즈를,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10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므나쎄는 아모스를, 아모스는 요시야를 낳았고, 11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동생들을 낳았다. 12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벨을, 13즈루빠벨은 아비훗을,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엘리아킴은 아졸을, 14아졸은 사독을, 사독은 아힘을, 아힘은 엘리훗을, 15엘리훗은 엘르아잘을, 엘르아잘은 마딴을, 마딴은 야곱을 낳았으며,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17그러므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사 대이다. (마 1:1-17)
선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1988년 7월 3일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항공모함 빈센느호가 실수로 이란의 민간 여객기를 격추해서 290명의 민간인을 살상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1세는 기자들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고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이 한 일에 대해 나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실이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겠지만 이 말은 하나의 국가로서 미국이 지니는 특성을 아주 잘 드러냅니다. 미국, 다시 말해 제국이 하는 일은 곧 정의고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최근 이란이 실수로 우크라이나 민간항공기를 격추한 사건과 기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란은 실수를 인정했고 사과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중 어느 쪽이 더 문명에 가깝고, 어느 쪽이 더 야만에 가까울까요? 새해 벽두에 미국이 이란의 2인자 솔레이마니를 암살한 사건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나름 영악한 계산에서 한 행동이겠고,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마치 화약고 앞에서 미치광이가 폭죽을 터뜨리는 광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매끈하게 혀를 놀리지만, 저들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살인 명령을 내립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제어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이 집중될 때 필연적으로 잔혹해집니다. 권력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 조건인데 이 세상에 ‘선한 권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지나치게 커지려 하고, 또 커졌을 때는 필연적으로 자해적으로 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자기 밖의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을 희생시키고 짓밟을 때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민주주의와 도덕 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옛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제국의 종말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나 ‘국익’이라는 명분이 걸렸을 때 흔히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도덕 감정, 정의감과 배치되는 행동이 쉽게 용인됩니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국가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라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전쟁은 ‘국가’가 하는 일이고, 전쟁은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명분을 앞세우든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어 하고 죽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 본성일 텐데, 거기 거슬러서 남을 죽일 뿐 아니라 자기 죽음까지도 무릅쓰게 만드는 마법을 ‘국가’는 행사합니다.
국가와 전쟁
국가의 발생에는 언제나 폭력, 전쟁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대부분 건국신화가 신화적인 살해행위에 대해 언급했을 것입니다. 고대 바빌론 건국신화인 에누마 엘리시에서 마르둑 신은 어머니 티아마트를 죽입니다. 『일본 서기』에 등장하는 야마토 타케루, 로마의 창건자 로물루스 등 건국신화의 영웅들은 형제살해자들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무엇인지를 국민의 의식 속에 심어줍니다. 국가는 필연적인 인간의 조직형태이며, 본질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고, 또 국민은 그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건국신화가 전하는 모친살해, 형제살해는 국가란 보통 사람의 판단 영역 위에 있으며, 국가의 관리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국가는 우정, 사랑, 혈연 같은 인간적 유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이름으로 행동할 때는 친구, 아버지, 형제, 심지어 아들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국가가 내장하고 있는 폭력성을 가장 집약적이고 집중적인 형태로 보여줍니다. 흔히 전쟁은 적국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국내적 권력 관계가 일차적 요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쟁은 내전의 성격을 지닙니다. 이것은 전쟁을 통해 누가 죽느냐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전쟁법은 될 수 있으면 적의 전투원만 죽이고 비무장 일반 시민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병사보다 일반 시민이 더 많이 살해됩니다. 20세기에 국가에 의해 살해된 외국인의 수는 6,845만 2천 명이었지만, 국가에 의해 살해된 자국민의 수는 1억 3475만 6천 명, 즉 두 배에 달합니다. 또한, 군대는 국제법과 군법상 허용되는 일만 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전쟁과 강간, 성폭력은 늘 같이 갑니다. 그런 경향은 군대의 전통과 문화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잠정적인 위협이었다가 전시에 현실화합니다.
아무리 정당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도 전쟁은 그 자체로 끔찍한 폭력입니다. 아무리 고매한 철학자, 신학자들이 전쟁에 윤리를 덧씌워도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할 수 없습니다. 침략전쟁은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지만, 침략전쟁이야말로 로마제국을 비롯한 과거와 현재 제국들의 존재근거이고, 단지 그것을 변방 야만인들을 교화한다거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수립한다고 포장할 뿐입니다. 전쟁을 벌이는 자의 수사가 진화했을지언정, 전쟁의 실상은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통제야욕, 비전투원의 무차별 살인, 성폭력의 횡행일 뿐입니다. 정당한 전쟁은 없습니다. 그냥 전쟁, 끔찍한 살육극이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가 성립 배경
구약성서 사무엘상·하는 이스라엘이 부족 시대인 12지파동맹 시대로부터 왕국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 즉 이스라엘의 국가성립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지속적인 침략과 그 과정에서 공훈을 세운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12지파 부족동맹이 성립된 뒤에도 200년에서 300년 동안 국가를 수립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 야훼가 ‘노예의 집으로부터 해방하는’ 신이고(출 20:2), 야훼 종교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본질에서 반왕권적 성격을 지닌 종교였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삿 8:22-23, 9:7-15) 결국에는 이스라엘도 국가를 수립하는 길로 가게 되지만, 그 길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성서 사사기, 사무엘 상하에는 왕정제가 순조롭게 이스라엘에 정착하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 부족동맹은 안팎으로 국가 수립을 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내적으로는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기존의 토지가 공급하는 농업과 목축의 산물이 인구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직접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교역이나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시장이 성립되었으며, 교역의 안전과 질서를 확보할 필요성도 생겨났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변화는 당연히 더 크고 복잡한 정치사회 시스템으로 변화할 것을 요구했고, 비교적 평화롭게 거주했던 산악지대로부터 평야 지대로 진출하게 했습니다. 또 밖으로부터는 해안평야 지역에 블레셋인들이 정착하면서 지속적이면서도 강력한 군사적 위협이 되었습니다. 철제무기와 전차군단, 궁병(弓兵)을 보유하고 있던 블레셋인들에 비해 이스라엘은 단연 열세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블레셋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계속해서 패배했고, 율법을 모셔둔 ‘계약궤’조차 전리품으로 빼앗겼으며(삼상 4:1-11), 당시 이스라엘의 성소이자 주요 거점이었던 실로도 파괴당했습니다.(렘 7:12-14 참조) 문자 그대로 존망의 갈림길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인의 침략은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상대했던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농민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그때 “보습을 쳐서 칼로” 만들어 싸우다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들어 농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농민 민병대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화 된 군대를 가진 침략자 블레셋을 막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자신도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부족들 간의 평등하고 자발적인 결합을 기반으로 했던 부족동맹으로부터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로, 강력한 군대를 가진 왕정제 국가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전쟁에 전념할 전사계급과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과 부역을 통해 농민을 합법적으로 수탈할 수 있는 사회체제로 이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왕정제 도입에 대한 저항—아비멜렉 이야기
간단히 말해 국가체제로 이행해야 할 이유는 넘쳐났습니다. 국가체제로 이행하면 본래 자급 자족적이었던 이스라엘 부족사회와 촌락공동체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고, 계급분화 역시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당장의 난국을 타개할 강력한 사회 지도력의 출현을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부터 왕을 요구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더욱 큰 권력, 더욱 제도화된 지배구조를 지닌 국가의 출현은 모두가 원하는 바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와 같은 정치·경제적, 사회적 상식에 반해서 왕정제의 도입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작동했습니다. 사사기 9장에 묘사된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에 있습니다.
사사 기드온은 왕이 되어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물리쳤지만, 그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는 데서 더 나아가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70명에 이르는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세겜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심산 꼭대기에서 요담이 일어나 저 유명한 ‘요담의 우화’를 말합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등 온갖 아름다운 나무들에 차례로 왕이 되어달라고 청하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 청을 했고, 가시나무는 나무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에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버릴 것이다.’(삿 9:8-15)
이 비유를 말한 요담은 도망해야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3년을 다스렸으나 부족동맹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에 익숙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들을 진압하고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성루 옥상에 피신한 사람들에게 불을 지르기 위에 성루 문 앞에 있다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졌습니다. 여자한테 죽게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그는 자신의 무기 당번에게 칼로 죽여달라고 했고, 그는 그렇게 무기 당번에게 찔려 죽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제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사사 체제, 부족동맹 체제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부족동맹 시대에서 왕정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화입니다. 근육질의 남성 폭군이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무튼, 아비멜렉은 꺾였습니다.
다윗 왕조의 시작
이때는 막간극으로 끝났지만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사무엘상 8장에 의하면 백성들은 당시 부족동맹의 지도자로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에게 나아가 왕을 세우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백성들의 요구는 “악으로 보였고”, 이스라엘 본래의 왕인 야훼를 배척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에게 야훼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의 남종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먹고 양떼에게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 그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삼상 8:6-18)
국가의 본질을 이보다 쉽게 말하는 본문이 또 있을까요? 결국, 사무엘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가운데 가장 약한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을 왕으로 세워 은연중에 왕권을 제한하지만 결국은 그와 충돌하고 그를 폐위시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다시 다윗을 자기 손으로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에게서 시작된 왕조가 포로기까지 이어집니다.
예수 족보의 특이성
신약성서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의 족보가 나옵니다. 물론 마태나 누가가 전하는 예수의 족보를 실제 예수의 족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족보를 복음서 첫머리에 실은 저자들의 의중은 읽힙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세부사항에서 틀리는 부분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다윗왕가의 족보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위대한 왕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이 묘합니다. 16절은 이렇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마태의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하는 정형화 된 문구로 이어지고, 그 문구대로라면 16절에서도 “야곱은 요셉을 낳았고,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라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16절에서는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다윗 자손으로 예수를 그리는 것이 본래 족보의 의도였다면, 분명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로 서술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으로 기술됩니다. 앞서 15절까지 다윗 가문인 예수의 부계혈통이 서술되었는데, 마지막 절정인 16절에서는—지금까지 왕들의 이름을 열거했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리면서—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서술됩니다. 학자들의 설명은 다양하지만, 간단히 말해 16절에서는 예수 탄생에 관한 두 전승, 즉 다윗 자손 전승과 동정녀 탄생 전승이 충돌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16절의 전환도 특이하지만, 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도한 남성 왕들의 계보 중간에 문득문득 등장하는 여성들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그리고 마리아가 바로 그들입니다. 마태가 이 네 여인을 선택한 것은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의 자랑스러운 여인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 네 여자는 다윗 가문의 명예를 특정한 방식으로 훼손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여기서 예수를 다윗 자손으로 그리는 것이 본래 의도였다면 마태는 이들을 등장시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명문가의 아름답고 총명한 며느리도 아니었고, 권세가의 현숙한 아내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특히 성적인 측면에서 ‘오점’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고, 거기서 아들을 낳는 다말, 늙은 보아즈의 품속에 들어가 그와 한 몸이 되어 생존하는 과부 룻, 가난한 하삐루들이 여리고로 밀려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탐꾼들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기생 라합,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의 아내가 되어 그의 가계를 이어주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이 네 명의 여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성적인 측면에서 무언가 특이점, 내지는 ‘하자’가 있는 여자들이면서 동시에 놀라운 적극성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입니다. 왕들의 족보에 들어와 그 도도한 흐름을 끊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왕들로 대표되는 국가에 의해,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성적으로 수치를 당한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족보는 가부장제 사회,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왕으로 대변되는 국가에 의해 성적으로 상처받고 수치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여성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가부장제에 의해, 가부장적 국가에 의해 수치를 당하고 상처받은 여성들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이 여자들도 수치를 당했지만 일어섰습니다. 국가에 의한 여성의 희생에는 거의 항상 성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의 의미
또한 이 네 여자는 마리아로 연결됩니다. 예수는 이 네 여자의 후배인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국가와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당한 여자들의 후손을 구원자로 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놀랍고도 특이한 성격이 동정녀 탄생이라는 표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출생에서 굳이 남성의 역할을 배제하는 동정녀로부터의 탄생 표상은 예수라는 인물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국가 역사의 실패와 잘못을 밝히 드러내고 그 역사를 심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마태의 족보에서 그 역사의 잘못됨, 비뚤어짐은 앞에 등장했던 네 여인의 왜곡되고 유린당한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들은 비뚤어진 역사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그런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역사를 지탱해온 생명의 원천입니다. 국가라는 형태로 인간공동체를 조직해온 인류의 오랜 역사,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폭력, 그리고 그 끔찍한 폭력을 가장 극악한 형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여성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그 자체로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묻게 하며, 근원적 평화에의 갈구를 온몸으로 증거합니다.
전쟁과 폭력에 저항한 한국 근현대사
돌아보면 한국 근현대사는 온통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일제의 식민통치와 대동아전쟁, 남북분단과 6·25전쟁, 이승만의 반공독재와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국가주의 군사문화가 한국 사회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군대와 검찰뿐 아니라 대학생들까지도 1~2년 선배가 상관처럼 군림하는 가부장적 군사문화에 깊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에는 국가주의적 폭력과 가부장적 군사문화에 저항하는 민주와 평화의 전통도 강력하게 살아 있습니다. 억눌리고 짓밟힌 모든 인간과 생물 속에서 하늘을 보았던 동학의 민중혁명, 일제의 억압에 맞서 자유와 독립, 정의와 평화를 선언했던 3·1독립운동, 이승만 독재 권력의 총칼에 맞서 자유와 정의를 갈구했던 청년 학생들의 4·19혁명, 군사적 학살에 맞선 5·18민주화운동, 군사독재에 맞선 6월 시민항쟁, 부패한 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상생과 공존의 전통도 힘차게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국가주의적 폭력과 가부장적 군사문화에 맞서 정의와 평화, 상생과 공존을 실현하는 민주적 전통은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과 통합니다. 포악한 군사독재와 국가주의 폭력에 맞서 온 힘을 다해 3·1독립운동과 촛불혁명의 전통을 이어온 사람들의 삶과 정신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고 지극정성을 다해 가정과 이웃을 살리고 돌보는 여성들의 삶과 일치합니다.
도산 안창호의 민주·공화의 정신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 중에 도산 안창호가 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미국 유학을 하러 갔다가 길에서 싸우는 한인 동포들을 보고 유학을 포기하고 한인 동포들과 함께 노동하면서 민주·공화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신민회를 만들고 민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교육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일으켰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희생하면서 민주·공화의 세상을 열어가는 그의 교육운동은 3·1운동의 중요한 불씨 가운데 하나였고, 또 이 3·1운동의 불씨는 4·19혁명과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안창호가 활동하던 당시는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국가주의 폭력과 가부장적 군사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 일본은 그러한 폭력적 군사문화의 화신이었습니다. 강자나 약자나 모두 부국강병만이 살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창호는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것이 문명 부강의 뿌리와 씨”라고 했습니다. 이런 그의 말은 국가주의 폭력과 가부장적 군사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당시는 사회진화론이 팽배하여 식민주의 사상이나 이에 저항하는 반식민주의 사상이나 양육강식과 부국강병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안창호는 민의 힘을 신뢰하는 민주와 공화의 원리를 앞세웠습니다.
민주·공화의 정신을 가지고 안창호는 미국과 멕시코의 한인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 훈련하여, 공립협회, 흥사단을 만들고 이들의 돈으로 임시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통일된 임시정부를 낳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바쳤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자기 몸을 고치고 가정을 고치는 일이 인간이 날마다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고치고 가정을 고치는 일에 힘쓰지 못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속이는 일이고, 자기의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애기애타의 원리를 주장하고 실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떤 난관 속에서도 삶의 기쁨과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 신명을 바친 안창호의 삶은 생명을 낳아 기르고 돌보는 여성들의 삶과 닮았습니다.
메시아인 예수를 낳은 성서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국가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을 때 생명을 낳고 기르고 정성으로 돌봐온 여성들은 소외되고 무시당하며 도덕적 낙인까지 찍혔습니다. 그러나 새 시대를 열어줄 아기 예수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국가폭력과 가부장적 군사문화에 길들은 인간은 새 문명, 새 역사를 낳을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자신과 이웃의 삶에 헌신한 사람들만이 새 나라 새 시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살리는 여성들의 삶과 문화가 우리 사회의 중심과 주류가 될 때 우리는 새 나라 새 문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