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허웅(許雄, 1918-2004) |
| 국가 |
한국 |
| 분야 |
언어학 |
| 해설자 |
권재일(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
≪언어학 개론≫은 허웅 선생이 1960년대 초, 분명하고 독창적인 체계로 세운 언어학 이론을 우리 학계에 소개한 책이다(1963년 4월 15일 초판, 정음사 발행: 국판 391쪽).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언어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지은이의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틀을 짜서 세운, 우리나라 처음의 언어학 개론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언어학을 연구하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오랫동안 주요한 지침서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언어학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 책이 당대 국어학계와 언어학계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컸다.
이 책을 절판하였을 때, 이 책을 계속 발간하기를 학계에서 간청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 학계에 끼친 영향은 컸다. 지은이는 그 후 이 책의 이론과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언어학−그 대상과 방법≫(1981, 샘문화사: 신국판 497쪽)을 발간하였으며, 그 책을 다시 간략하게 다듬어 ≪고친판 언어학 개론≫(1983, 샘문화사: 신국판 334쪽)을 이어 발간했다.
지은이 스스로가 책 맨 마지막 단락에서 규정한 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체계는, 소쉬르 언어학의 랑그 빠롤의 분리와, 통시 공시의 원리를 지키면서, 그 구조주의적 관점을 취해서 언어 구조를 파악하려는 데 주안을 두었다. 그러나 랑그의 파악은−특히 외국어의 경우에는−그 빠롤로서의 실현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의 구체적인 자료상−특히 구체적 음상−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나타난 연구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선 연구를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점이다. 학문은 앞선 연구의 방법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되, 비판적인 관점에 서서 이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학문 연구의 성과란 아무런 바탕 없이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앞선 연구의 전통이 바탕이 되어 이를 계승하고, 수정ㆍ보완해서 완성되어 발전해 간다. 그래서 지은이는 앞사람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이어받아, 새로운 이론을 독창적으로 세워나가는 연구 방법을 이 책에서 펼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지은이는 언어학 이론을 전개하면서 나라 안팎의 여러 이론과 사상을 받아들였다. 가까이는 주시경 선생과 최현배 선생, 그리고 우리 선인들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나라 밖으로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 이론에 바탕을 두면서, 유럽의 기능−구조주의 언어 이론, 미국의 기술−구조주의 언어 이론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 한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이를 녹여 지은이의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였다.
허웅 선생은 평소 이와 같은 연구 방법과 관련하여 ≪논어≫ 위정편의 다음 말을 자주 인용하였다. “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남의 이론만을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의 독창적인 연구를 하지 않으면 학문이 어두워지고, 반대로 남의 이론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독단적 이론만 펼치면 학문이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두 가지 일, 즉 앞선 연구의 성과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의 독창적 이론을 세워가는 것이 학문 연구의 바른 길이라고 하였다.
이 책은 개별어로서 국어 연구와 일반언어학의 관계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언어를 연구하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새로운 이론 수용에 치우친 나머지 구체적 언어 사실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이 책이 발간될 무렵이나 오늘날이나 우리나라 언어학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구체적 언어 사실에 대한 연구는 언어 이론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며, 따라서 새로운 이론의 개발은 언어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쌓일 때 가능한 것이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반언어학과 개별언어학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반언어학과 개별언어학인 국어학의 관계를 이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구의 언어학이 수입되기는 해방 전부터라고 볼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 시기에 있어서는, 오로지 일본 학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종래 언어학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갑오경장 이후에, 우리의 선인들은 국어학의 연구에 힘을 기울이는 경향이 현저히 나타났는데, 국어학이 언어학의 한 가닥인 바에야, 이러한 국어학 연구는 곧 언어학의 연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언어학과 국어학은 다른 학문인 것처럼, 착각되어 왔다. 언어학이란 곧 서양 여러 나라말에 관한 학문이며, 그 소재나 술어는 모두 서양말로 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온 것이다. 언어학이 서구에서 고도로 발달되었고, 그리고 우리들은 그것을 배워왔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큰 잘못이다. 언어학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학문이 아니다. 언어학은 언어 즉 말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우리말을 연구하는 국어학은 곧 언어학인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국어학의 굳건한 토대 위에, 일반언어학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마땅하며, 그렇게 해야만 우리나라 언어학의 든든한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아니, 저자 자신이 국어학을 전공한 사람이므로 그 당연한 귀결로서−이 책의 설명의 소재는 대부분 우리말에서 취해졌다. 여기에서는 서구 언어학자들의 이론의 토대와 국어학자들의 지금까지의 국어학의 성과를 종합해 보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언어학 서적의 출간은,−번역을 제외하면−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그 처음이다. 저자의 이번 시도는,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만용에 속하는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은 누가 하든지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다.
언어학ㆍ국어학을 전공하는 여러 선배ㆍ동료ㆍ후배들은,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거리낌 없는 비판을 가해줌으로써,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닌, 우리말에 토대를 둔 언어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협력 있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언어 속에 작용하고 있는 일반 원리 혹은 보편 원리를 찾아내는 일이 언어학의 근본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개별 언어들에 대한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개별 언어의 깊은 연구 없이는 일반언어학은 가공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개별언어학과 일반언어학은 관심의 핵을 달리 가지면서 공존해야 한다. 이 책에는 언어학의 바로 이러한 이치가 담겨 있다.
구조주의에 바탕을 둔 이 책은 언어 체계를 특히 강조하였다. 지은이는 평소 학문의 체계를 세우는 것을 하나의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집을 지을 때에는 그 집에서 살 가족의 구성과 집에 들어갈 세간에 맞도록 설계를 하고 지어야 하며, 설계를 하되 집 짓는 근본 원리는 알고 있어야 하며, 이 근본 원리에 어긋나면 집은 무너지고 만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지은이는 이 책에서 구조주의에 초점을 모았다. 구조주의는 체계를 이루는 요소와 이들 사이의 관계를 찾는다. 따라서 체계를 이루는 언어 요소인 음운, 어휘, 문법의 각각 항목을 확정하고, 이 항목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법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이 책은 언어의 공시태와 통시태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을 함께 존중하는 언어 연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