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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7일 성령강림절 후 26번째 주일, 추수감사예배
성경: 요15:12-17절(신174)
제목: 말씀과 기도와 열매
성도 여러분, 오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만유의 머리(왕)가 되신 주님이 그의 몸 된 우리를 통하여 오순절의 성령으로 맺으시는 그의 열매를 확인하는 성령강림절 후 스물여섯 번째 주일이며, 특히 오늘은 그 열매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통하여 주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물론 추수감사절에 노아의 언약에 따라 오곡백과의 풍성한 추수를 주신 하나님께 당연히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복음과 그 열매를 위하여 ‘일용할 양식’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우리의 열매를 확신하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15:12-17)은 예수님이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설교’(13장-16장)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요13-16장’을 그의 ‘고별설교’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와의 그들의 ‘영원한 연합(결혼) 생활의 설교(지침서)’입니다. 이는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그들을 잠깐 떠나서 그의 아버지 집에 그들의 거처를 예비하면(14:2-3),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14:16)로 세상에 있는 그들에게 다시 오셔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그들 안에서 영원히 거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23). 여기서 ‘아버지 집’(14:2)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 들어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들이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처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베드로와 같이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는 우리의 굳은 의지나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량, 즉 그의 피로 우리의 죄 사함으로 인한 것입니다(12:32, 15:3-4). 12: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포도나무였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는 다른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라 하시며,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3-4)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과 약속, 그리고 그 근거를 주십니다. 또한, 그는 직설법으로 말씀하십니다(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이것은 불신자에게가 아니라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안에 거하라’라는 명령대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그의 복음을 믿음(이신칭의)으로 입니다(13:8, 15:3, 7, 15). 요일2:24절입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죄 사함의 복음)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하나님의 창조 말씀에 따라 자연적으로 포도나무에 의하여 포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포도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재창조 말씀(복음)에 의하여 주님과의 연합을 통하여 그의 부활(영생)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5b).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처럼 주님과 연합된 우리도 그 연합을 통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포도나무는 자연적으로 가지를 통하여 열매를 맺지만, 우리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복음)이신 주님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 필요합니다. 이는 일체 삼위의 하나님이 인격적이며,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도 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와 연합하신 주님에 대한 우리 믿음과 자발적 순종에 의한 사랑과 기도(14:13-14, 15:7, 16, 16:23-24, 26-27)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 본문의 이해를 통하여 우리의 풍성한 열매로 인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치시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에서의 열매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는 주님과의 연합을 통한 그의 제자들의 열매(영생), 즉 주님과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부분(1-11)과 주님을 증거하는 그들을 미워하는 세상에 대한 말씀(18-27)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의 열매는 주님과의 연합에 근거하여 ‘서로 사랑하라’라는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열매, 즉 그들의 사랑을 통한 선교적 사명에 관련된 열매일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연합한 우리는 어떻게 선교적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주님과의 우리 연합은 그의 사랑 안에서 연합이기에(9-10) 그 연합의 증거(열매)인 ‘서로 사랑하라’라는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또한, 17절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13)은 그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며, 9-10절을 가리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여기서 ‘아버지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이며, 이것은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영생입니다(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이는 아버지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님과 연합된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과 연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복음을 통한 연합으로 ‘그의 사랑 안에서 거하는 열매’ 즉 그의 사랑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는 열매가 없다면, 그의 복음으로 회개하여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강제적으로 하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복음으로 인하여 그의 친구로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라는 계명입니다(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왜냐하면)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당시에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도 주인의 명령에 강제적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종은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는 그의 친구를 알고 자발적으로 사랑하며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통하여 그의 아버지의 말씀(복음)을 알면, 그들이 종이 아니라 친구처럼 그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순종(참여)할 것이기에 주님은 그들을 그의 친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를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20).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을 알고 믿는 우리도 주님과 연합한 친구로서 자발적으로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과 우리의 연합은 그의 은혜 복음으로 인한 것이기에 그 연합의 증거(열매)는 복음 증거의 확실한 열매입니다(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먼저 주님은 자신이 그들을 택하여 세웠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16a).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여기서 ‘세웠나니’는 13절의 ‘자기 목숨을 버리면’에서 ‘버리면’과 같은 동사의 부정과거로서 어떤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위해 임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가 그들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첫째,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16b)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그의 주권적 은혜로 선택과 세움을 받은 그의 복음과 성령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된 너희’입니다. 그리고 ‘가서’와 ‘맺게’와 ‘있게’는 그의 선택과 세움의 목적절(히나)의 가정법 현재로서 계속적 동작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특히 여기서 ‘가서’ 열매를 맺을 것이 그의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특히 이를 위하여 자격이 없는 우리는 그의 주권적 은혜로 선택을 받고 세움을 받은 그의 선교사입니다(롬1:5, 딤전1:12). 고후4:1절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긍휼하심으로 직분을 받았기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아직 우리에게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의 전도 사명에 계속 충성하시면 그 약속대로 반드시 전도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16c).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성도 여러분, 여기서는 기도 응답이 주님과 우리 연합의 열매에 속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 기도가 그의 고별설교에서 주님과의 연합의 열매를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과의 우리 연합의 열매를 위한 기도입니다. 14:12-1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여기서 “그를 믿는 자는 그가 하는 일을 할 것이며, 그보다 큰일도 할 것이라”(12)는 믿는 모든 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가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그가 약속의 성령(또 다른 보혜사)을 보내주실 것(14:16-17)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과 ‘그보다 큰 일’은 믿는 자들이 그의 완성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계승하여 그보다 더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에 ‘그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14:13-14).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반복하시며, 그 기도에 ‘내가 행하리라’라는 것을 아주 강조하십니다. 여기서 ‘행하리라’는 14:10절에서 “내가 ...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들을 하시는 것이다”에서 ‘하신다’와 같은 동사이며, 14:12절에서 ‘하는’ ‘할 것이요’ ‘하리라’와도 같은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의 이름으로 하는 우리의 기도를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리라, 즉 중보하리라’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에 대하여 그가 이렇게 하시는 목적이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무엇(13)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12절의 그가 하시는 일이며, 더 큰 일, 즉 그의 복음과 그 복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도는 하나님 약속(언약)에 근거하며(삼하7:18-29, 렘29;10-14, 겔36;37-38),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고 그 안에서 성취되고 있고,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 약속의 종말론적 성취인 천국 복음에 근거하여 ‘주기도문’(마6:9-13)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는 ‘내 이름으로’ 대신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에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에서 우리 믿음의 상태, 즉 많고 적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기도에서 ‘그의 이름’이 우리 믿음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우선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어떤 사람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종말론적으로 성취하신 그의 인격과 사역, 즉 그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에 따라서(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기도, 즉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드리는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될 것입니다. 이는 천지가 흔들려도 복음의 새 언약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십니다(14:13-14, 롬8:34).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롬8:26-27). 그러므로 그의 이름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주님과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니, 우리의 불완전한 기도라도 완전하게 되어 하나님이 기쁘게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그의 이름으로 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의 기도이므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11:41-42)라고 기도하신 예수님같이 믿음으로, 즉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확신이 없을 때 우리 믿음의 내용인 ‘그의 이름’을 깊이 생각하시고 또 생각하시면서 우리의 불완전한 기도로 완전하게 만들어 아버지께 중보하시는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와의 연합의 열매로서 기도의 응답입니다. 16c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에는 ‘너희에게’ 아버지께서 구한 것을 주신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또한, 16:23-24절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기서도 우리말 성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에는 ‘너희에게’ 기도의 응답으로 아버지께서 ‘그의 이름으로’ 주실 것을 강조하였고, 기도 응답이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여져 있기 위한 것(15:11)이라고 하여 기도의 응답을 주님과의 연합의 열매임을 시사합니다.
이번 주에 충남 보령에 있는 의평 교회에서 목회하는 신성아 목사님과 통화하면서 그의 기도 응답에 대하여 듣고 아주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작년 4월 초에 뇌졸중으로 수술하였지만, 언어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을 설교하지 못하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수술했던 주일에 의사의 외출 허락을 간신히 받아 교회에 와서 강단에 섰는데, 언어가 아주 조금 회복되어 설교하셨고, 계속 회복되어 한주도 빠지지 않고 설교하고 계십니다.
최근에 설교 준비를 위해 항상 책상에 앉아계시기에 항문에서 많은 피가 흘러 나와서 사모님과 같이 병원에 가기로 예약하였고,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피가 멈추게 되어서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을 간절히 전하기를 원하는 신목사님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하사 그의 기쁨이 넘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일용할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주님의 말씀 성취입니다(마6:33).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에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은혜의 복음으로 주님과 연합된 우리에게 나타나는 서로 사랑의 열매와 이를 통한 우리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주님 은혜의 선택과 임명과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선 하나님의 구원 은혜에 감사하시며, 그의 주권적 은혜의 선택과 세움으로 받은 선교적 사명에 감사하시며, 이를 위한 그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특권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그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기도하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