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루니통신 8/190509]버킷리스트 1, 2호
직장을 그만 두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이 새벽 광역버스를 탄 후 아무 곳에서도 내리지 않고 탔던 곳에서 다시 내리는 일이었다. 얼마나 소박한 버킷 리스트(bucket list)였던가. 회사에 나가지 않은 지 두 달이 다 되었지만, 여지껏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하다, 어제 드디어 여느 날처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혼자 밥을 먹은 후 5시 반 판교도서관 정류장에서 9003번을 탔다. 종로2가역까지 대개 25분쯤 걸린다. 그 잠깐 사이에 자는 잠, 그처럼 ‘꿀잠’을 나는 자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시나브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저절로 눈이 감긴다. 종로 2가가 다가오면 거의 정확히 눈이 떠진다. 그때마다 ‘아, 이 대도시의 샐러리맨들은 이렇게 길들여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껏 그 역을 지나친 적은 50번에 한두 번. 워낙 맛이 있는지라 내려야 하는 줄 알면서도 눈을 뜨기가 싫지만, 운동도 하고 출근도 해야 하므로 내릴 수밖에. 그게 참 많이 싫었다. 하여, 퇴직을 하면 맨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
그런데, 곧바로 들어야 하는 잠이, 정작 오늘은 무엇을 하나? 아니, 앞으로 무엇을 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엉켜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이제 그 맛좋은 꿀잠을 다시는 잘 수 없단 말인가. 거의 말똥말똥하다 1시간여만에 탔던 곳에서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아내는 남편이 새벽에 어디를 다녀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불쑥 孤獨해지고만다. 허어, 이것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 벌써부터 이렇게 외로우면, 앞으로 새털처럼 많은 숱한 나날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 슬그머니 한숨을 쉬다 텔레비전 7시 뉴스를 본다. 우리는 언제나 그야말로 신선한(fresh)한 뉴스(news)를 볼 수 있을까? 정말 國會라는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저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善良들일까? 참으로 한심지경이다. 거대야당은 좌파독재라며 거리투쟁, 전국대장정을 나선다고 한다. ‘大長征’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인플레된다고 해도 저런 일에 쓰이면 안되는 ‘고귀한’ 용어가 아닌가, 씁쓸해 하며 TV를 끈다. 자, 쓸데없는 고독타령은 접고, 이제 버킷리스트 2호를 생각하자.
두 번째 하고 싶은 일은, 全國을 대상으로 했으면 좋겠지만, 우선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에 散在돼 있는 ‘무슨무슨 문학관’을 싸그리 巡禮하는 일이었다. 1주일이면 될까?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부지런히 다닌다고 해도 열흘도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벼뤄온 일이므로, 나는 할 것이다. 날짜를 잡자. 혼자할 것인가? 아무리 취미가 있다해도 이 일 역시 혼자는 좀 고독한 일이다. 莫逆之友와 함께 가자고 할까? 그 친구는 문학에 별 관심이 없으므로 크게 내키지 않겠지만 自由人이 된 마당에 혹시 따라나서지 않을까?
일단 일정을 짜자. 제2의 내 고향, 全州에서부터 시작하자. 교동 한옥마을 속에 ‘혼불 기념관’을 들르자. 실제로 작가 최명희가 이 집에서 살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건지산에 있다는 최명희 묘소도 들르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최명희문학관’은 남원 사매면에 근사하게 세워져 있다. 덕진연못 근처에 ‘전라북도문학관’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다음에 益山으로 가자. 시조문학의 거장 가람 이병기문학관이 있다. 고교 시절 은사 구름재 박병순 선생의 스승으로 우뚝선 문인이다. 群山의 ‘채만식문학관’도 필수코스. 군산하니까 쓴웃음이 나온다. 군산시에선가 시인 고은의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다 엄청난 불상사가 곪아터져 나왔다. 이른바 ‘미투(me too)로 인한 고은 시인의 성추행, 성희롱사건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 1933년생이다. 차라리 진작에 죽었더라면 어쨌을까?
이제 金堤로 향해야 한다. <아리랑문학관>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아리랑> 친필원고를 쌓아놓았는데 작가의 키를 훌쩍 넘어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대하소설 <아리랑> 12권을 기억하시리라. 나는 아직도 마지막 권, 작가의 마지막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일본인들의 일제강점기 36년의 만행은 잊지도 말고 결코 용서하지도 말아햐 한다>. 이런 ‘무서운’ 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는데, 일본은, 아니 아베는 발뺌, 나몰라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차를 몰라 扶安으로 향할 것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 이런 시구절 한번쯤 읊조려 보셨을 것이다. <신석정문학관>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관람을 아주 찬찬히 해야 할 곳이다. 중학교 시절, 그분은 나의 사타구니를 뒤에서 모르게 다가와 훑었던 적이 있었다. 헌칠한 키에 장발, 바바리를 입은 모습이 사뭇 멋있었다. 그분의 사위가 전북대 최승범 교수라던가. 아, 나는 그런 분들을 닮고 싶고, 되고 싶었는데.
이미 하루해가 다 저물었을 것같다. 전북이나 전남은 아무 식당이나 들러도 아무 걱정이 없다. 어쩌면 그렇게 나에, 우리에 반찬들이 입맛에 착착 감기는 걸까? 飮食에 관해선 별도로 이야기하자. 長水에 있다는 ‘김환태문학관’도 들러야 하는데 動線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걱정이다. 전북지역은 어쩌면 高敞의 ‘서정주문학관’을 섭렵하면 일별은 하지 않을까 싶다. 陸士보다 더 높다는 어느 女史는 서정주의 호인 ‘未堂’을 ‘末堂’이라고 읽었다고 하여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도 올랐지만, 미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친일파 시인인 셈이다. 그가 숱하고 길러낸 정말로 詩史에 남을 명작들을 차치하고, 문제의 인간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 문학관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할 것같다. 그 여사가 얼마 전 자기의 남편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희대의 코미디를 남겨 또한번 사람들을 웃겼다.
이제 눈을 붙여야 하리라. 내가 좋아하는 方外之士 변동해 선생이 거주하는 洗心院에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자. 전북은 2,3일이면 되리라. 임실 덕치 진뫼마을에 있다는 ‘김용택문학관’은 가지 않으리라. ‘섬진강’이란 연작시로 히트를 쳐 섬진강을 팔아먹고 산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거니와 인간성까지 형편없다고 하는데, 더구나 살아있는 작가의 기념관이나 문학관을 세울 때에는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나는 컨텐츠 확보차원에서 건립을 지원한 임실군의 오버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욕심이 작용했다고 하는데 쯧쯧이다). 하지만 ‘조정래문학관’은 예외로 치고 싶다(아리랑문학과, 태백산맥문학관, 가족문학관까지 3개나 있다).
5월 하순, 고향 뒷밭에 아버지가 심어놓으신(이제는 오랫동안 방치된) 육쪽마늘을 캐러 가야 한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지으신 꼴이 된 농산물이다. 좀 쉬었다가 전라남도 문학관 순례에 나서자. 나는 문학관을 왜 이리 더트고 다니려 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나의 정체성(identity)를 뒤늦게나마 찾고자 하는 속셈이다. 여지껏 ‘문학관 기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학평론가는 아니지만, 나만의 시각으로 쟁쟁한 문인들의 삶과 작품속에 비친 문학세계 등을 인상비평식으로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그게 더 뻗치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수도 있을 터이고. 우리 친구들의 마당인 블로그에 ‘문학관 기행’ 연재도 가능하지 않을까. 꼭 무슨 일을 ‘돈’이 안되면 하지 않아야 하는가.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할 일’은 쌔고 쌨다.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전라북도 내에 있는 문학관 순례는 대충 感도 잡았으니, 촘촘하게 일정을 짜야겠다. 그생각을 하면 무슨 고독타령인가?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