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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은 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리를 날머리로 하는 "상리 마을회관(버스 종점) → 남연군묘 → 갈림길 → 암봉 → 석문봉 → 옥양봉 → 수정봉 → 마애삼존불상 → 운산면"의 코스를 다녀올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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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伽倻山]
높이: 678m, 석문봉(653m), 일락산(521.4m)
위치: 충남 예산군, 서산시, 당진시
가야산은 예산군과 서산시, 당진시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주봉인 가야봉(677.6m)을 중심으로 원효봉(677m), 옥양봉(621.4m), 일락산(521.4m), 수정봉(453m), 상왕산(307.2m) 등의 봉우리가 연결되는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노약자와 여성, 어린이도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정상에서는 서해가 아련하게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하다.
주변에 백제 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 등 백제 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개심사 쪽에서 서산목장을 거쳐 마애삼존불과 보원사-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원하게 뚫려 가야산을 한 바퀴 돌면서 가야산의 참모습을 구석구석 볼 수 있게 됐다.
개심사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는 작은 절이지만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충남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이 돋보이는 절이다.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 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은 주위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찰 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만발해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선경에 와 있는 듯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남연군묘
지금도 절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북으로 펼쳐진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풍수가의 말을 믿고 사찰에 불을 지르고 탑을 부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을 옮긴 것이다. - 한국의 산하
옥양봉
높이: 593m
위치: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옥양봉과 석문봉은 가야산의 북쪽에 있는 해발 600여미터의 나지막한 산이다. 가야산 정상에는 중계탑이 가득하게 들어서 있어 산행의 맛을 반감시키지만, 북쪽으로 이어지는 석문봉과 옥양봉은 그러한 반감을 상쇄시킬 만큼 훌륭한 바위산이다. 석문봉은 정상부가 바위 지대로 되어있고 전망이 훌륭하며, 옥양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럽고 완만하여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하다. 옥양봉도 정상부가 바위 지대로 되어있고 아기자기한 맛이 좋으며, 특히나 정상부 바위 지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상가리 전망이 시원하다. - 한국의 산하
이번 토요산행은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중 99번째로 충남 예산의 가야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2018년 12월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고 싶어 당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애불이 있는 용현리로 하산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날머리인 용현리에서 대중교통으로 귀경하는 게 쉽지 않아, 일단 산행을 미뤄두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21년 말 산행을 정리하며 살펴보니 거의 비슷한 이유로 인기 명산 100중 창녕 화왕산과 홍성 덕숭산, 서산 가야산, 금산 서대산 넷만(어쩌다 보니 넷 중 셋이 충남 지역이다?!) 아직 오르지 않아 2022년 봄이 가기 전에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워, 먼저 홍성 덕숭산을 3월 14일 다녀왔고[산행기], 이어 4월 20일 평일 수요일 창녕 화왕산을 다녀왔다[산행기]. 그리고 이번에 가야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지막인 서대산은 인증꾼에게 인기 있는 까만 소 인증 장소가 아니라, 좋으나 싫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라, 6월 중에 다녀오기로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산 마애삼존불이 보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당일 산행이 힘든 상황이라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안내 산악회를 이용해 다녀오기로 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현재 시행 중인 천고지, 인기 명산 100,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끝난 후 진행하기로 한 마애불 탐방 때 알현하기로 했다. 너절하게 목표만 널어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라도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다. 대신 애초 계획에는 없던 개심사가 벚꽃으로 유명하다니, 마애불 대신 벚꽃잎 비를 맞는 걸 목표로 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날 서산 가야산, 개심사 코스로 수도권 안내산악회에서만 10여 대의 버스가 출발하고, 그 외 여행사와 지방까지 포함하면 상춘 인파로 미어터질 확률이 높다는 거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산행 준비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다. 다만, 개심사 주차장에 하산주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이 있기는 하나, 지도에서 확인되는 건 두 개에 불과해 그 많은 상춘 인파를 다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 혼술로 막걸리 한잔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어쨌든 그 인파를 뚫고 하산주에 도전하겠지만,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 그에 대비해 점심 등도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해 간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하산주는 백두대간 산행에서 늘 그랬듯이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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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정신없이 화왕산을 다녀오고[산행기], 곰곰이 생각해보니 상춘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룰 개심사로 하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라는 판단에 마애삼존불 방향으로 하산하기 위해 다시 대중교통편을 꼼꼼히 확인한 결과, '서령버스'에서 서산과 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계곡까지 하루 4차례 버스가 다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아주 적당한 시각인 3시 20분에 고란사(입구)에서 버스가 출발하고, 그걸 놓치면 5시 10분 차를 타고 운산이나, 서산으로 나가 시외버스를 타고 귀경할 수 있었다. 해서 일단 Plan A로 석문봉에서 일락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애삼존불 방향으로 틀기로 했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Plan B는 산악회 코스대로 개심사로 하산. 최정 결정은 현지 상황을 보고서 하기로!
평소와 다름없이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와 양재역에 도착해서 보니 예상대로 상춘인파와 등산객으로 양재역은 일대 혼란이다. 와중에 틈새 상품으로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과 떡을 파는 청과물 가게는 호황이고. 당연히 12번 출구의 마을버스 정류장부터 국립외교원 앞까지도 인파로 붐벼 뚫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6시 54분 도락산행을 시작으로 각지로 떠나는 버스가 속속 도착했으나, 서산 가야산행은 출발 시각인 7시 정각에 도착했다. 만원 버스라 필요한 물건만 들고 배낭은 짐칸에 넣고 차에 탔다. 평소라면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다 버스에 두고 산행하는 물건은 귀경 때 산악회 버스를 타지 않을 확률이 높아 애당초 가져오지도 않았다.
예정보다 5분 늦은 7시 5분에 출발한 버스는 평소보다 많은 인파와 버스로 일대 혼란인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승객을 간신히 찾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달리는 버스에서 책을 보다가 잠이 들어 깨어 창밖을 보니, 평소에 못 보던 지역이라, 지도를 확인했다. 서해대교가 멀지 않다. 그럼 서해안 고속도로라는 건데, 하긴 서산이 서해와 멀지 않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지도에 녹색으로 표현된 곳은 산악지대일 확률이 높아 서산에 있는 녹색 부분을 확대해 보니, 지난 3월 다녀온 용봉산과 덕숭산이 있는 덕산 도립공원이다[산행기]. 당시에는 이 길로 온 거 같지 않았는데. 어쨌든 가야산이 어디 있는지 서산 부근에서 찾아봤으나, 찾을 수가 없어, 산이 작아 지도에 표시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찾기를 포기했다. 물론 덕산 도립공원 내에서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인 얘기나, 가야산도 덕산 도립공원 내에 있다는 걸 들머리인 가야산 주차장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아랫배가 묵직한 게 볼일을 봐야 할 거 같은데, 버스는 휴게소에 들릴 생각도 없이 달리다가, 목적지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상춘인파가 몰려 개심사 주차장까지 버스가 못 올라갈 수 있으니, 주차장에 버스가 없으면 버스를 찾아 도로를 따라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가기 위해 휴게소도 안 들렸다고. 버스를 찾아 내려와야 하는 사태에 대비해 애초 산행에 책정한 시각이 5시간 30분이나, 30분을 추가해 6시간을 줘, 산행 마감 시각을 15시 20분으로 변경했다. 추가로 빨간 산악회 버스가 4대가 있을 텐데, 각기 출발지가 다른 버스라, 빨간색에 버스 옆에 쓰여 있는 산악회명이 같다고 아무 차나 타면 안 뇌니, 차 번호를 꼭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 설명을 듣는 순간, Plan B의 개심사 방향을 완전히 버렸다. 이젠 죽으나 사나 마애삼존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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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 대장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등산화를 신고 끈을 조이는 거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조금 지난 9시 20분에 버스는 가야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는 이미 3대의 관광버스가 등산객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중에 빨간 버스가 안 보이는 거로 봐서, 나머지 3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짊어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깜짝 놀랐다. 가야산이 덕산 도립공원의 일부분이다. 용봉산, 덕숭산뿐만 아니라 가야산도 포함이다. 그럼 지난 덕숭산행 때 반대편으로 내려왔으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폰과 스마트 워치의 등산 앱을 기동하는 동안에도 등산객을 내려놓은 버스는 날머리를 향해 출발했고, 막 도착한 빨간 버스는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등 정신이 없었다.
등산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따라 이동해야 해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앞선 등산객을 따라갔다. 주차장을 떠난 지 12분 후 가야봉 갈림길을 지나, 공사 중인 남연군 묘에 도착했다. 묘는 도로를 벗어난 곳에 있는데, 관심을 주는 등산객은 나를 포함 두 명에 불과했다. 애초 남연군이 누군지 몰랐으나, 여기저기서 거론하는 거로 봐서 꽤 중요한 인물일 거라 생각해 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또 누군지도 궁금해 올라갔다. 그런데 막상 묘에는 어떠한 소개문도 없어 누군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아래 도로변 건물 옆에 있는 ‘남은들 상여(남은들 喪輿)’ 소개문에 대원군의 아버지라는 언급이 있었다. 고로 고종의 할아버지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그때 사용한 상여를 보관 중이라고 해서 내부를 들여다보니 상여가 있었다. 물론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묘와 그 뒤로 보이는 봉우리(석문봉으로 생각되는)를 구경하는 동안 많은 등산객이 가야봉을 향해 올라갔다. 애초 가야산의 정상인 가야봉에서 인증 찍을 기회가 없을 거 같아 방해 없이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인증이 목표라면 등산객 주력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정상에 도착해 재빨리 인증을 남겨야 하는데, 우리에 앞선 등산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이 안 되는 마당에 괜히 체력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코스를 변경한 마애불까지의 거리가 들머리 기준 대략 12km가 조금 넘는다는 것만 알았지, 등산로 상태를 모르는 만큼 마냥 여유를 부릴 수도 없어 등산로 상태가 좋은 곳에서 시간을 절약하기로 해 평소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렇게 9시 41분에 석문봉 갈림길에서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수지를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을 구경했는데, 가고 있는 방향으로 봐서는 한 무리의 철탑이 있는 봉우리가 정상인 거 같았다. 그럼 정상은 철탑이 차지하고 있고, 정상석은 정상이 아닌 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민간용이든 군사용이든 건물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이 한둘이 아니니, 새로울 건 없었다. 그리고 통신이 불량해 버스 시간을 확인할 수 없을 것에 대비해 미리 파악했던 버스 시간을 캡처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저수지 댐을 가로지른 후 저수지를 구경하며 계속 가자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봐선 폭포다. 그럼 저수지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는 건데? 해서 주의 깊게 저수지를 살피며 가다 보니, 사람이 다니지 않아 희미해진 길 아래에 안내문이 있는 게 보여 그리로 내려갔다. 남연군 묘에서 내려와 저수지 방향으로 올라갈 때 본 이정표의 와룡담(臥龍潭)이다. 용이 엎드린 연못이다. 과거에 이보다 큰 폭포가 있었는데, 연못을 저수지로 확장하면서 폭포가 작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폭포가 있었다. 가뭄으로 창녕의 화왕산 계곡은 바짝 말랐는데, 가야산 계곡은 물이 넘친다. 동과 서의 차이인가? 당연히 폭포는 동영상으로 찍은 후 길을 만들며 저수지에서 다시 임도 등산로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 폭포에 관심을 가진 인간도 나를 포함 두 명에 불과했다. 다들 인증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저수지를 지나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임도가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었다. 등산로에 접어들어 10분가량 올라가자 헬기장 삼거리다. 이정표와 그 아래에 있는 지도에 의하면 헬기장을 거쳐 가야봉에 오르는 건 1.8km, 직접 오르는 건 1.1km다. 고로 헬기장으로 돌아가는 게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라, 비록 거리는 멀지만, 산행은 쉽다. 어느 산이든 최단 거리가 가장 힘든 코스다. 그런데 그 헬기장으로 가는 길목에 산불 통제로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달려있었다. 물론 그 경고문을 무시하고 들어가는 등산객이 한 명 있었으나, 비록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삼존불까지 앞일을 예측할 수 없어 그냥 직진하는 걸 택했다. 헬기장 삼거리에서 2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역시 예상대로 경사가 급해지고, 지금까지의 흙산이 사라지고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와중에 빠른 등산객은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너덜의 급경사가 최단 코스임은 틀림없으나, 최악의 등산로라는 걸 증명하듯이 올라갈수록 곳곳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이 즐비하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많은 등산객을 추월할 수 있어 기대하지도 않았던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 수 있었다. 어쨌든 너덜의 급경사 등산로는 10시 34분 헬기장에서 오는 등산로와 만나자 끝났다. 정상도 120m만 더 가면 된다. 힘겹게 너덜 급경사를 올라온 등산객이 쉴 수 있도록 정상 50m 아래에 쉼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전국 가지에서 온 등산객으로 빈틈이 없었다. 빈틈이 있다고 해도 쉴 내가 아니지만. 쉬고 있는 등산객을 뒤로 하고 데크 계단을 올라가자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전망대에 두 개의 정상석이 있었다. 예상대로 정상은 통신 철탑이 차지하고 있었고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고 거기에 정상석을 세웠다. 그런데 두 개인 이유는 접경 지역 유명 봉우리들의 숙명인 하나는 예산, 다른 하나는 서산이다.
내가 정상석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인증을 찍고 있는 사람이 두 명에 불과해 뒤로 가서 줄을 섰다. 그리고 바로 내 뒤에 선 사람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사이에 아래서 쉬고 있던 팀이 도착해 그 인증 대열에 합류한 거다. 물론 줄을 서서 인증을 남기면 문제될 게 없는데, 90도 각도로 서 있는 다른 정상석이 비어 있는 걸 보고 그걸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기 시작해 일찍 와서 사진을 찍는 등산객을 방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쉽게 인증을 남겼는데, 내가 찍어줄 순서가 되었을 때 다른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어주던 찍사가 촬영을 방해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그전에 다른 찍사가 방해해 큰 소리로 나무랐음에도. 해서 그 찍사를 노려보고 '순서 좀 지킵시다!'라고 큰소리로 뭐라 한 후에야 간신히 인증을 찍어줄 수 있었다. 정성석이 두 개라 발생한 촌극이다. 어쨌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인증을 찍고, 비좁은 전망대에 갈수록 많아지는 등산객을 피해 재빨리 다음 목표인 석문봉을 향해 떠났다.
정성석이 있는 전망대가 암봉에 있어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도 데크 계단으로 되어있었다. 그 계단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능선 전경이 절경이다. 앞에서부터 암봉, 석문봉, 옥양봉 순인 거 같았다. 그리고 능선 곳곳에 보이는 바위는 나름 괜찮은 산행의 즐거움을 선사할 거 같은 기대도 생겼다.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지금은 저수지로 바뀐 와룡담과 왼쪽의 잘 보이지는 않으나 서해를 사진으로 남기고, 시속 3km/h를 유지하며 능선을 따라 본격적인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 알현을 위한 산행을 시작했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는 철쭉 터널을 통과해 능선을 따라가자 주차장 갈림길이 나타났다.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우고 이번 산행에서도 이 길로 올라와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암봉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2분가량 가자, 암봉이다. 당연히 우회로가 있음에도 무시하고 암봉으로 올라가자, 또 다른 전망대다. 암봉에서 뒤로 돌아 가야봉과 지나온 능선 그리고 그 옆의 안개 낀 산을 사진으로 남겼다. 암봉을 넘어 계속 전진하자 앞에 안내문이 서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북바위란다. 해서 찾아보니, 목을 쑥 내민 거북이가 있었다. 그나마 이 동네는 모양과 이름이 부합한다. 그다음은 소원바위다. 소원바위? 어떤 모습일까? 화왕산과 비슷한 모양일까? 화왕산과 같이 바위 근처에는 작은 돌의 씨가 말라, 등산로를 따라 10여 미터 뒤로 가서 간신히 돌 하나를 주워 들고 와서 안내문에 있는 대로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암릉에는 당연히 우회로가 있었으나 무시하고 암릉을 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석문봉 500m 전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왔다. 이 길이 저수지 직전의 석문봉 삼거리에서 직진해서 올라온 길이다. 산의 규모에 비해 가야산에는 등산로가 많은 게 주변에 크고 작은 도시가 많이 있기 때문일 거다.
삼거리를 지나 바위 능선에 올라서자 어슬렁거리며 호랑이가 나타났다. 해서 "야옹"하고 불러주니 그놈도 같이 야옹거리며 쿨하게 지나갔다. 암릉에 서서 뒤로 돌아 가야봉 방향을 보니, 구름 사이로 봉우리가 튀어나온 게 보인다. 가야봉이 해발 678m에 불과한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봉이니, 그 봉우리는 그보다 낮을 텐데 구름 위에 있다. 그럼 구름이 얼마나 낮게 깔렸다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은 후 계속 전진하자 이번에는 사자바위다! 해서 주변의 바위에서 사자를 찾으며 전진했으나, 안 보인다. 이번에는 내가 속았나? 생각하며 사자바위는 잊어버린 채 다시 암릉에 올라서서 앞을 보니 거대한 사자머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머리 뒤가 석문봉으로 가야봉 못지않게 붐비고 있었다. 석문봉도 붐빌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암릉에서 내려와 먼저 사자바위로 가 올라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혼자는 힘들고 누군가 도와준다면 오를 수 있는 바위였다. 고로 혼자는 위험하다는 얘기라. 중간 정도 올라갔다가 포기하고 내려와 우회로로 들어서자, 석문봉으로 오르는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가야봉, 석문봉 모두 암봉이라,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서 그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자, 계단 정상 바로 아래 틈에 호랑이 한 마리가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놈을 사진 찍은 후 계단 정상에 올라서자 두 개의 정상석이 있었다. 이번에는 예산 산악회에서 세웠다.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팀이 자연석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고, 그 주변에는 삼십여 명의 등산객이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거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인증을 찍느라 주인공이 바뀌는 틈을 이용해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증을 남기는 건 포기하고 다음 봉우리로 향하려 했는데, 다음 인증 대상이 다른 일 때문에 바로 사진을 찍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주던 여대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길 수 있었다.
인증을 찍은 후 예산 정상석 뒤로 보이는 돌탑의 정체가 궁금해 뒤로 넘어가서 자세히 살펴본바 백두대간 종주 기념 돌탑이다. 백두대간도 아닌 가야산 석문봉에 백두대간 종주 기념탑이라? 해미 산악회에서 세운 거다. 하긴 해미에서부터 백두대간까지 출퇴근하며 세울 수 있는 탑이 아니니,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세운 게 아닐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글을 쓰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석문봉이 해미면 내에 있고, 백두대간은 아니나, 9 정맥 중 하나인 한남금북정맥 상에 있는 봉우리 중 하나다. 그보다 높고 중요한 봉우리인 가야봉에는 돌탑을 세울만한 공간이 없고! 돌탑의 정체를 확인하고 석문봉에서 내려가자 일락산 갈림길이다. 금북정맥은 좌회전해 일락산으로 이어지고, 개심사도 그 방향이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리로 가려면 옥양봉으로 직진해야 한다. 인파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개심사 왕벚꽃이냐, 벼르고 별렀던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이냐를 결정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직진해 옥양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덕산 도립공원에서 세운 지도나 이정표를 보면 가야산은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을 환종주하는 게 주 코스로 여기는 거 같았다. 그 세 봉우리가 높이도 비슷하고. 해서 그 구간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일락산 방향은 개심사 왕벚꽃 철에나 붐비고, 그 외에는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대간꾼이나 가끔 찾는 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옥양봉으로 향하는데, 그 능선 위에서 주차장으로 하사하는 삼거리가 두 개나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오고, 계획대로라면 2시에 산행을 종료하고 하산주을 마실 예정이라, 점심을 아예 굶거나, 먹으려면 빨리 먹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앉아 밥을 먹을 만한 곳을 찾으며 가다가 옥양봉 직전에서 등산로로부터 조금 벗어난 곳이 좋아 보여 그리로 갔다. 그리고 먼저 시원한 물로 갈증을 해결하고 늘 가지고 다니는 간편식과 파김치로 약 5분에 걸쳐 점심을 먹었다.
사람이 있었다는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식당에서 나와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 조금 올라가자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옥양봉 또한 바위 봉우리다. 확실히 일락산 갈림길 이후 등산객이 많이 줄었다. 그나마 소수의 등산객도 분위기로 봐서 이 동네 주민이 대부분인 거 같았다. 와중에 추월해 가는 등산객의 배낭에 이번에 동행한 산악회의 명패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물어보지 않아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나와 같이 마애삼존불로 향하는 거 같지는 않고, 시간 여유가 있으니, 옥양봉을 왕복할 생각인 거 같았다. 마애삼존불을 목표로 추월했으면 계속 전진했을 텐데, 계단을 오르며 보니, 점심을 먹기 위해 옥양봉에서 내려와 계단 난간을 넘어 절벽 쪽으로 가고 있었다. 12시 7분에 옥양봉 정상에 도착하자, 정상석이 반겼다. 다만, 가야봉이나, 석문봉과 달리 하나만! 주변에 인증을 찍어줄 등산객이 없어, 한산한 봉우리에서 늘 그러듯이 앞에 있는 바위에 카메라를 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가야봉이 까만 소 인증 장소라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타이밍이 절묘해 가야산의 주요 봉우리 모두에서 인증을 남겼고,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는 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리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1차 목표는 마애불 직전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수정봉이다. 물론 날머리에 2시 전에 도착해야 한 시간 정도 하산주를 마시고 3시 20분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나갈 수 있다. 정상석을 떠나 수정봉 방향으로 10여 미터를 가자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고 간이 쉼터가 있었다. 당연히 그 삼거리 오른쪽은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직진은 수정봉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수정봉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없었다. 삼거리 이정표에 방향 지시는 지금까지 달려온 방향과 주차장 위치를 알려주는 두 개다. 해서 돌다리도 두들겨 가라고, 등산 앱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이정표가 알려주지 않는 직진하는 길로 들어섰다. 그때 쉼터에서 쉬고 있던 중년의 등산객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해서 삼존불이 있는 수정봉 방향으로 간다고 하자, 그럼 주차장으로 어떻게 오냐고 다시 물어, 주차장으로 다시 오지 않고, 거기서 서울로 올라간다고 얘기해 주고 바로 길을 떠났다.
왜 삼거리 이정표에 수정봉 방향의 지시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지자체의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산에 있는 모든 지도가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예산이다. 그 반대는 서산이고. 하긴 자기 담당이 아닌 지역에까지 이정표를 설치하는 건 월권이니,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가? 그럼 서산이 예산처럼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결론인가? 어쨌든 옥양봉을 지나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보를 알려주는 표지가 거의 없어 핸드폰의 등산 앱에 의지해야 했다. 있다면, 산꾼이 만들어서 나무에 매단 거 정도! 그런데, 수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 등산로도 의외로 좋았다. 해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옥양봉을 떠난 지 8분만인 12시 16분에 작은 봉우리에 도착했는데 어느 산꾼이 나무에 표지를 만들어 달아놓았는데, 표기가 거의 암호 수준이라 봉의 이름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고, 다만 고도가 617m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암호봉을 떠나 1km가량 가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왔다. 이 구간에서는 처음 보는 서산에서 만든 이정표다. 좌는 휴양림, 우는 퉁퉁고개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수정봉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다른 정보가 있나 하고 이정표를 돌아가자 지도가 있었다. 그 지도는 당연히 서산을 중심으로 그려진 거로 수정봉으로 가려면 퉁퉁고개로 가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해서 퉁퉁고개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등산로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19분가량 가자 저 앞으로 임도로 생각되는 도로가 보였다. 퉁퉁고개다! 수정봉까지의 거리는 1.9km, 현재 시각 12시 41분! 수정봉에서 마애불까지의 거리는 알 수 없으나, 목표한 2시까지 날머리 식당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문제는 고개에서부터 가장 높은 봉우리인 수정봉까지 얼마나 올라가야 하고, 몇 개의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느냐다. 해서 고개의 고도를 확인해 보니, 300m가 조금 넘는다. 그럼 수정봉까지 150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쉽지 않다.
수정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임도를 따라 100여 미터를 가다가 서산에서 만든 지도가 있는 곳에서 들어가면 된다. 앞에서 서산에서는 일을 안 한다고 언급했는데, 아니었다. 갈림길이나 주요 길목마다 '내포문화숲길'이라는 나무로 만든 지도가 서 있었다. 결과적인 얘기이나, 절대 그 지도를 믿어야 한다. 12시 43분에 퉁퉁고개를 떠나 능선에 들어선 이후 8분가량 헉헉대고 올라가자 '용현봉'이다. 서산에서 명패만 만들어 나무에 달았을 뿐 어떠한 정보다 없다. 용현봉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과 그 마을 규모에 비해 큰 몇 동의 건물은 폰의 등산 앱에서 무슨 선교회라고 본 거 같은데 그거 같다. 학교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건물이 선교회라, 선교회도 학교인가?
작은 언덕 몇 개를 오르내리며 헉헉대고 수정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데, 8부 능선쯤에 생각지도 못한 차단 시설이 있다. 멀리서 보기에도 사람은 다닐 수 있으나 우마는 갈 수 없는 시설이다. 제주도나 목장이 있는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이다. 그럼 주변에 목장이 있나? 지도에서 목장은 본 기억이 없는데! 그 차단 시설에 가까이 가서 보니 떨어지기 직전의 안내문이 매달려 있었는데, 우마를 비롯한 네 발의 짐승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 두 바퀴에 엔진 달린 짐승을 막기 위한 거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길로 올라오면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닌데, 길 상태가 좋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는데, 이해되는 순간이다. 차단 시설을 통과해 올라가자 예상대로 수정봉은 아니나, 전망대로는 괜찮은 장소였다. 물론 수정봉도 멀지 않고. 해서 거기서 뒤로 돌아 달려온 능선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왼편 계곡을 보니, 계곡을 따라 난 도로가 보였다. 저 도로가 서산으로 나갈 버스가 다는 길이다.
전망대를 떠나 수정봉으로 향하는 길은 쉬운 경사의 나무 터널 사이로 나 있었다. 물론 그 끝은 약간의 깔딱이 있었지만. 통신 철탑이 차지하고 있는 수정봉 정상에 도착해 보니, 평상이 있고 그 위에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등산객이 고구마와 곰취 절임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성 등산객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오늘 처음 만난 등산객이라고 하더니, 어디에서 오는 거냐고 물었다.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남편에게 부탁해 철탑 기단에 설치된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그런데, 여기도 정상석이 두 개다. 이번 산행 코스에서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는 옥양봉을 제외하고 다 두 개의 정상석을 가졌다. 다른 봉우리는 지자체 간의 접경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수정봉은 둘 다 서산에서 세운 거라 토호의 장난질이 아닐까 생각됐다. 인증을 찍은 시각이 1시 18분이고, 마애불까지의 거리를 알 수 없어, 부부에게 인사하고 수정봉에서 떠나려는데 남편이 비닐팩에 든 음료를 건네며 마시라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걸 들고 백제의 미소를 향해 출발했다.
능선 위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며 왼쪽 아래를 보니, 그 도로 역시 능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고, 중간중간 마을이 보였다. 거기서 일대 혼란이 닥쳤다. 마애불의 위치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 등산로를 따라 계속 가면 안 되고 중간에서 내려가야 한다(결과적으로 기억에 오류가 있었다). 여기는 등산객도 잘 다니지 않는 오지로, 통신 불량지역이라 등산 앱도 무의미하다. 해서 혹시나 갈림길이 나타날까 좌우를 유심히 살피며 가는데, 앞에 갈림길이 나타나고 지도가 서 있었다. 오른쪽 길은 지도에 없어, 고민 없이 왼쪽 길로 갔다. 그 갈림길에서 6분가량 내려가자 다시 지도가 서 있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지도에도 왼쪽으로 떨어지는 길은 없다. 그런데 위치로 봐서는 왼쪽으로 내려가야 할 거 같다. 그런데도 지도를 믿고 직진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아,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왼쪽으로 내려갔다. 이번 산행 최고의 실수가 벌어지는 순간이다.
왼쪽 길은 급경사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 상태도 좋지 않다. 아래 보이는 마을로 내려가야 하니, 급경사야 당연한데, 마애불이 아래에 있는데, 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이 길 끝에 마애불이 없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무턱대고 내려갔다. 급경사의 상태가 좋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갈림길에서 18분가량 내려가자 요란한 물소리와 차 소리가 들리고 저 아래로 도로가 보였다. 숲을 벗어나자 계곡 가에 펜션과 식당이 늘어서 있었다. 해서 핸드폰의 지도로 마애불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여기서 1.1km를 더 내려가야 했다. 이런 낭패가! 위의 갈림길에서 내려가다 되돌아와 왼쪽 길로 내려온 게 실수다. 내려오는 중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애써 부정했었다. 능선을 따라 마애불에 가기를 원했는데, 1.1km에 불과하나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따라 마애불로 가야 한다.
2시까지 날머리 식당에 들어가 앉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용현계곡을 따라 난 도로로 내려가며 계곡 주변을 살펴보니, 곳곳에 펜션과 식당이 있는데, 손님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차량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도 커졌다. 그리고 마애불 입구가 보이는 지짐에 도착해서는 깜짝 놀랐다. 도떼기시장이다. 개심사는 당연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도 그 못지않아 보인다. 식당의 외부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고, 끊임없이 차량이 도착해 상춘인파를 쏟아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마애불을 찾는 걸 보자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 혼술이 가능할 것이냐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은 닥쳐서 하기로 하고 재빨리 마애불로 갔다. 그리고 알현한 마애불! 말이 필요 없고 직접 알현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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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알현을 끝내고 목표보다 10분 늦은 2시 10분경 그나마 점심시간이 지나 식당에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어죽 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손님이 왔음에도 누구도 아는 체를 안 해 주인을 부르려고 식당 쪽을 보니, 번호표를 받아 가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해서 식당으로 가 번호표를 받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발은 씻을 상황이 아니라, 땀과 먼지의 범벅인 얼굴만 깨끗이 씻고 자리로 와서 번호를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 앞에서 주인장이 손님과 내 번호를 언급하는 게 들려 재빨리 가보니,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번호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자 다음 번호의 손님 주문을 받고 있었다. 내 실수니 할 말이 없어, 선처만 바라고 있는데, 앞선 사람의 주문이 끝나자 내게 주문하란다. 해서 한 명이고, 어죽 국수와 묵무침,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장이 어죽 국수는 2인분부터라고 해서 먹기 싫었으나, 자릿값은 해야 할 거 같아 주문에 넣었던 어죽 국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포기하고 묵무침과 막걸리만 주문했다. 당연히 선결제!
주문한 묵무침과 막걸리가 나와 혼자서 술을 마시며 썰물이 지듯 손님이 빠져나가 한가한 식당에서 열심히 식탁을 치우는 알바로 보이는 젊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휴일이라 이렇게 손님이 많냐고 묻자, 휴일에 손님이 더 적다는 전혀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해서 개심사로 안 가고 왜 이리로 오냐고 다시 물었다가 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걸어서 개심사까지 1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물론 '애기 때 갔던 거라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다!'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깜짝 놀라 폰을 꺼내, 지도 앱의 ‘길찾기’로 현 위치에서 개심사까지 도보로 얼마의 거리인지 확인했다. 4.6km 시간으로는 1시간 6분이 걸린다는 지도 앱의 얘기다!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다. 사실 마애불에서 개심사로 돌아가 산악회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라 마애불에서부터 개심사까지 거리를 확인했었다. 아주 당연히 택시나 버스만! 걸어서 가는 건 아예 생각도 못 했다. 그때 마애불에서 개심사까지 택시비가 거의 2만원 수준이라 서산 가서 버스 타고 가는 게 가성비가 좋다는 결론을 내린 거였다.
처음 자리에 앉을 때부터 버스 정류장이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아 계속 버스가 오는지 정류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올라가는 버스도. 다만, 버스의 종류가 궁금해 알바하는 식당 주인장 아들내미에게 버스의 종류가 뭔지 물었다. 혹시 다른 지자체가 운영하듯이 소형 버스라면 놓칠 우려가 있어서다. 일반적인 시내버스지만, 시간은 모르겠다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 해서 안심하고 막걸리를 한 병 더 가져다가 마신 후 고란사에서 3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3시 16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10여 미터 위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 기다렸다. 기다리며 마애불에서 고란사까지의 거리를 확인해보니, 1.8km에 불과했다. 고로 버스는 1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라, 미리 버스 정류장에 와서 기다리기를 잘했다.
3시 20분이 지났으나,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3시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시간표에 있는 버스 회사로 전화했다. 물론 휴일이라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그런데 목소리로 봐서 중년의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해서 3시 20분 차가 어떻게 됐는지 물었는데, 버스 시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뭔가를 열심히 찾는 거 같더니, 이미 그 차는 떠났다고 얘기해 그럼 고란사로 안 들어오냐고 물었다. 그러자 휴일 교통 체증이 심할 때는 그냥 지나친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뭐 이런?! 그럼 다음 차는 들어오냐고 물었더니, 그 차도 지나칠 수 있으니, 고풍 저수지 앞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시간표에 있는 '고란사(입구) (승차)'라는 "고란사 입구"가 고풍저수지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거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봐야 의미가 없어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700여 미터 아래에 있는 고풍저수지까지 걸었다.
고풍 저수지에 거의 도착해 보니 오른쪽으로 수정봉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수정봉에서 정상적으로 내려왔다고 해도 마애불을 향해 700여 미터 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아쉬움은 많이 가셨다. 4시 정각에 고풍 저수지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두 쌍의 남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식당도 없고. 버스는 5시 10분에 도착하니, 1시간이 넘게 할 일이 없어 운산 택시로 전화했다. 그리고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닫은 컨테이너 건물 그늘에 폐타이어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낚시하는 걸 구경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승용차가 다가오더니 타란다. 택시에 전화했을 때 다른 차를 보내겠다는 얘기에 자기 택시 말고 다른 택시를 보내겠다는 의미로 들었는데 자가용이다! 과거 나라시라고 취해서 택시를 잡을 수 없을 때 많이 이용했던 불법 영업이다. 차량 공유 시대고 택시가 보낸 차라 불법이 아닌가?
그 차를 타고 운산으로 달려 4시 40분경 운산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 기사가 친절하게 버스표는 어디서 사면 되는지 알려줬다. 해서 혹시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술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버스 매표소인 슈퍼에서 2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상가를 가리키며 불 켜진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모든 게 끝나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7,000원이라는 말에 놀랐다. 버스에 문제 생겼을 때를 대비해 마애불에서 운산까지 택시비를 확인했는데, 8,000원 부근이었다. 고로 정직하게 택시비 수준을 받은 거다. 여러모로 고마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려 먼저 슈퍼로 가 온라인으로 구매한 버스표를 발권하고, 그 기사가 추천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강원도 외 지역에서 처음 보는 거 같은 예상치 못한 황태전문점이다. 당연히 황태구이를 주문하고 냉장고에서 지역 소주인 "우린" 한 병을 들고 와 자리를 잡았다. 2차 하산주의 시작이다.
황태구이 정확히는 황태구이 정식으로 우린 한 병과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우고, 5시 45분 운산발 남부터미널행 버스를 타기 위해 5시 25분경 식당에서 나왔다. 한 병 더 마셨다가 집에 못 갈 거 같아 2차는 간단히 우린 한 병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버스표 발권 때 슈퍼 주인장이 알려 준 승차장으로 가서 바닥에 주저앉아 주변의 오가는 사람과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후 예정보다 4분가량 늦은 5시 49분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잠이 들어 깨어 보니,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울이다. 그 시각이 8시 7분으로 예정보다 10여 분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3차를 하는 거로 이번 서산 가야산, 마애삼존불 연계산해을 마감했다.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과 산악회 계획을 혼합한 "가야산 주차장 → 남연군묘 → 와룡담 → 헬기장 삼거리 → 가야봉 삼거리 → 가야산 정상(가야봉) → 암봉 → 석문봉 → 옥양봉 → 수정봉 갈림길 → 헬기장 → 퉁퉁고개 → 용현봉 → 수정봉 → 갈림길 → 수정봉 등산로 입구 → 마애삼존불 → 용현집'의 14.37km(트랭글 기준), 5시간 3분이 걸린 산과 백제의 미소를 같이 즐긴 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56분, 휴식 7분!
이번 산행으로 서대산만 오르면 그동안 화장실에서 중간에 나온 것처럼 찝찝했던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 등산을 완료한다. 물론 까만 소 100은 이번 산행으로 달성했다. 고로 남은 천고지와 백두대간 연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창녕 화왕산과 이번 서산 가야산은 인기 명산이 어떤 산인지 알게 해주는 산이었다. 장거리 산행을 좋아하는 산꾼에게는 부족하나,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에게는 10km 내외의 거리에 탁월한 조망과 짧으나 산행의 재미를 주는 산세 등. 그리고 보니 100 산 대부분이 그랬다. 물론 국립공원 종주는 예외다.
서산 가야산 가야봉에서 시작해 마애삼존불이 있는 수정봉 아래 용현리까지 꼭 종주해 보기를 권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조망과 산세, 그리고 마애불이다!
첫댓글 산행기 잘 봤어. 막판 하산길에 알바를...
서대산은 나도 20년 전에 갔다와서 한번 가려 하는데, 시간 맞춰보자고요.
안 그래도 너는 어떻게 갔는지 궁금해 물어보려고 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