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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잖아! 한국동시문학회 우수동시선집
김천정 그림/한국동시문학회 편 | 아동문예사 | 2024년 02월 01일
글(시) 한국동시문학회 회원
2002년 5월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널리 읽히고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도 동심을 찾아주기 위해서 만든 우리나라 유일의 동시문학 단체다. 그동안 한국동시문학회는 동시 세미나를 개최하고, 해마다 회원들의 우수한 동시를 모아 작품집을 펴내고 있으며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작가들의 단체로 400여 명의 동시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으 한국동시문학회 카페(cafe. daum.net/dongsimunhak)가 있다.
그림 김천정
광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이스티투토 유러페오 디 디자인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서울과 캐나다에서 세 번의 개인전과 시화전을 열었고, 1978년 조일광고상 본상과 1988년 한국어린이도서상(일러스트부문)을 수상했습니다. 간결하고 개성 있는 그림으로 단행본, 잡지, 교과서 등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꽃을 피워 준 둥둥이』, 『봉봉이의 꽃잎 수첩』, 『사람아 네가 무엇이냐』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출판미술가협회와 무지개일러스트 회원이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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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단추
김선일
하나는 똑
하나는 딱
둘은 짝이 됐지
똑은 딱을 안아주고
딱은 똑을 메워줬어
똑과 딱이
꼭 붙어 있는 한
흘러내리는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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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힘
김순란
한눈팔지 않았는데
길바닥에 넘어져요
돌부리에 걸려
구덩이에 빠져
때론 제 발에 걸려
다시 가던 길 가려면
손바닥으로 땅바닥 짚고 일어나야 해요
바닥과 바닥이 맞닿으면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힘
불쑥 생기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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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철새
김영
따뜻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바람 결 따라 이동하기
무리지어 날아가기
앞장선 바람막이 너도 나도 동참하기
쉬어 갈 때도 다 같이
배부르지 않기
화내지 않기
적당한 거리 두기
충동하지 않기
하늘에 그림 그리며
즐겁게 훨훨~ 날아가며~
지친 친구 위로하기
느린 친구 속도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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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잖아!
김영기
그 누가 너를 보고
외로운 섬이랬니?
갈매기가 노래하고
메꽃조차 벗하는데
남해의
따뜻한 숨결
너를 찾아가는데,
내 가슴 속 가득한 너
멀리 있다 잊어지나?
언제나 내 벗인 걸
외롭다고 하지 마.
물길로 이 백리라지만
내 눈 속에 맺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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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약 치는 날
김이삭
우주 빌라 소독약 치는 날
여행 중인 202호 집만 건너뛰었다
(급 알립니다. 오늘 반상회는 202호에서 합니다.
- 바퀴벌레 반장 올림)
다다다닥
다다다닥
빌라의 바퀴벌레들
202호로 다 모였다
졸지에 202호
바퀴벌레 반상회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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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소방차
김진숙
한 판 했다
오늘도.
오빠가 베개로
내 머리를 쳤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베개를 던졌다
우당탕!
우당탕!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엄마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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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노원호
오늘 하루는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별
그래서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
반짝반짝 빛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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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문삼석
아무리 바빠도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갑니다.
아무리 멀어도
가야할 덴 반드시 찾아갑니다.
가야할 때, 가야할 데
꼭 찾아간 햇빛은
맑고, 환하고, 따뜻한 마음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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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런 날
문성란
높이 있는 게
즐겁지 않은 날 있지
하늘을 나는 게
신나지 않은 날 있지
그런 날은
산으로 내려가
산안개가 되지
나뭇가지에 걸터앉고
바위에 누워보고
물소리도 듣지
높은 데로 다니지만
낮은 데도 가 보는
나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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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예쁜 것
박두순
세계에서 일곱 번째 경치 좋다는
아프리카 테이블마운틴 산에
오른 어린이
- 뭐가 제일 예뻐, 물음에
- 음, 음, 음
숨을 고르고 생각을 가다듬더니
- 나비요!
빼어난 경치도
기묘한 바위도
아찔한 절벽도 아닌
나비를 마음 속에서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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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심부름
박미림
꼬마 직박구리
버찌 하나 물고 가요.
꼴깍 침 삼키며 날아가요
"산 너머 뽀예할매 마당가에 심어드리렴."
쬽쬽쬽 엄마 말 새기며 날아가요.
앞산 너머, 양지마을
파란 지붕 찾아서
어쩌나?
물고 온 버찌 어디로 갔나?
꼬마 새 울상 되어 찾는데
똥주머니 속에서
"찌 이익, 톰방."
할머니 평상에 앉아
내년에 싹 돋겠다며
심부름 참 잘했다고
벙글벙글 손 흔들어 주네요.
꼬마 새
마당 한 바퀴 휘잉 돌고
꼬랑지 까딱까딱
저도 기특해서, 기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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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느 저녁
박예분
혼자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거예요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집에 있는 전등 모두 켜 놓고
텔레비전 소리 크게 켜 놓아도
가끔 무서워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너무 조용해도
괴물이 슬쩍
도둑이 슬쩍
훔쳐보는 것 같아 몸을 웅크리고
눈 딱 감을 때
"엄마야, 거의 다 왔어!"
이 소리 듣자마자
캄캄했던 내 마음에
수백 개의 전등이 켜지듯 환해져요
나는 얼른 텔레비전 소리 줄이고
쓸데없이 켜둔 전등도 다 꺼요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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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소리 / 박해경
똑
똑
똑
할아버지께서 걸어오시는 소리
똑
똑
똑
지팡이 소리
지나가도 될까요?
넘어지지 않을까요?
땅에 노크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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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휠체어
박행신
잠든 동생의 머리맡 스케치북에
구름 위에 휠체어가 놓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엄마도 나도
더 이상 휠체어를 밀지 않아도 되겠다
서울은 저 북쪽 하늘 아래 있다고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려야 한다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구름 위 휠체어라니
이제는 맘껏 날아다닐 수 있겠다
엄마 없이도
나 없이도
아주 아주 멀리까지
이제는 맘껏 날아다닐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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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박혜선
깡통의 택배가 시작되었다.
뻥!
누군가의 발끝에 있는 화를 멀리까지 배달하고
이젠 빗소리를 배달 중이다.
통통통
통통통
땅속 두더지에게
곧 비 스며든다고
통도로로롱
통도로로롱
스피커 달아 빗소리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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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운전하는 나
박희순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강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쉴 수 있지
놀 수도 있어.
언제든
멈춰 설 수도 있어
시간은
내가 운전하는 열차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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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자
방승희
나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옵니다.
종일 걸어
지쳤는지
허름한 벽에
기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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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책
백두현
서점에 갔다
잘 안 팔리는 책은
책꽂이에
한 권씩 서 있고
잘 팔리는 책은
진열대에
여러 권씩 누워 있다
서 있어도
좋은 책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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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신난희
대추가
달리면 달릴수록
몸이 무겁고
힘이 듭니다
"세게 흔들어 줄 테니
마구 떨구어 버려!"
바람이 말했지만
"난, 엄마인 걸"
대추나무는
대추들을
더 꼭 껴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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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나간 날
양윤덕
오늘 밤에
전기가 우리 집을 나갔다.
우리가 웃고
떠들 때도
불평불만 한 마디도 없이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혼자서
냉장고 3대
에어컨 두 대
세탁기 … ….
우리 가족이
싱싱한 걸 먹고
옷도 깨끗이 입고
땀 뻘뻘 나는 날에도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었나 봐!
전기야! 많이 힘들었지?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미안해!
우리 가족이 반성할 테니
빨리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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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발)
오영록
뒷발이 앞발을 마중하고 있다
조금만 늦어도
느려도 넘어지고 말, 걸음
앞발은 뒷발이 되고
뒷발은 다시 서둘러 앞발이 된다
혼자 떠받힌다는 것이
혼자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서둘러 마중한다
서 있을 때도 두 발은
어느 발이 앞이랄 것도 없이
나란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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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마디의 대답
우정임
지산동 44호 고분군
순장 무덤 속
여덟 살 딸 끌어안고
서른 살이었다던 아빠
누워있던 돌방
왜 따라가야 했을까
왜 데리고 가야만 했을까
아빠 뼈마디 몇 점
딸 뼈마디 몇 점
가지런히 누워
꼭 글어안고 있다
천 육백 년 전
말 없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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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온다!
유이지
파도가 뛰어놀던
바다가 사라졌어.
칠게와 짱뚱어의
운동장이 돼버렸어.
달님이
빌려갔던 바다,
바다가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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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난 기분
이성자
할머니 집에 갔는데
낯선 친구가 다가온다
- 안녕하세요?
저는 간병로봇 로사에요.
친절한 인사에
당황해서
멍하니 서있는데
- 할머니 약 드실 시각이에요.
물 갖다드릴까요?
나보다 먼저 할머니 챙긴다
할머니 도와드리러 왔는데
밀려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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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차이
이솔
착한 딸
기특한 딸
똑똑한 딸
우리 엄마가 날 부를 때 하는 말
잘 노는 딸
잘 먹는 딸
게임 잘하는 딸
내가 듣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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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밭
이옥근
지리산 밤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린 별들
감 따는 장대로
한 번만
휘둘러도
후드득후드득
왕창 떨어지겠다
골짜기가
금방
별들로 가득 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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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롭고 슬픈 밥
이창건
점심시간에 나는 집으로 오곤 했다
외할머니는 먹을 것도 없는데
뭐하러 오느냐며 하시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찬물 한 그릇을 떠다 주시곤 했다
나는 물을 국처럼 마시고 학교 뒷산으로 달려가 아카시꽃을 한 웅큼씩 따
밥처럼 먹었다
어린 날, 목이 메도록 먹고 또 먹은
향기롭고 슬픈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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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악보
장서후
덜 마른 시멘트 바닥에
쪼르르르르
자전거 지나간 자리
뒤따르던 강아지 발자국이
팅통퐁핑팡
음표를 그려놓았다
딱딱하게 굳은
시멘트 바닥에
경쾌한 음악 한 조각
꾸욱 저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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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속의 과자
장승련
가을날
숲 속을 걸어가면
바스락바스락
과자 먹는 소리
숲 속 나무들도
간식으로 과자를 먹나 보다
잎을 틔워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배고팠나 보다
잠시 쉬며 힘을 내어
겨울채비를 해야지
얼른 간식을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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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이와 메뚜기
장영복
장난꾸러기에게 시달려
다리 하나 잃은 메뚜기
분홍스웨터 입은 보경이 등으로
풀쩍 날아와 앉네
보경이가 으아아 소리 쳐도
메뚜기는 옷자락 더 꼬옥 쥐네
다리가 아픈 업어달라는 듯
등에 납작 엎드리네
보경이가 겁은 많아도
맘씨가 곱다는 걸
메뚜기는 알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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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화
전병호
파란 등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우르르 뛰어
횡단보도를 건넜다.
건너와 돌아보니
성진이가 아직
건너편 신호등 밑에 서 있다.
얼마 전에 다리 수술한 성진이
나는
신호가 다시 바뀌기를 기다렸다.
앞서가던 아이들도
나와 성진이를 기다렸다.
길가 화단에
금송화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금송화와 눈 맞추고
그렇게 오래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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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났을까
전자윤
어느 날 동물들은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끝났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밤에만 시력이 좋은 올빼미는
밤새도록 무섭게 쏟아지는 불똥을 보고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했다
낮에만 시력이 좋은 매는
한낮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개미를 보고
전쟁은 끝났다고 했다
몸에서 내뿜는 열을 보는 뱀은
따스한 온기가 전혀 없는 걸 보고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했다
색깔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개는
헷갈리는 눈 대신 정확한 코로 냄새를 맡고
전쟁은 끝났다고 했다
모르겠다고 한 동물은
개구리뿐이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만 보는 개구리는
입에 맞는 파리가 움직이길 기다릴 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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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사진
정경란
엄마와 한복을 입고 찍은
백일 사진을 봤다
상에는 꽃과 수수팥떡, 백설기,
실타래, 돈이 놓여 있다
"너는 만년필을 잡았어.
그래서 공부를 잘하나 봐."
라고 엄마가 말했다
사진이 아니면 몰랐을 순간들이다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 지
만년필을 든 손에
금반지를 끼고 내가 웃고 있다
내 기억에 없는 것까지
보여주는 사진은 참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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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봄맞이꽃
정광덕
봄맞이꽃
중에서
가장 예쁜 꽃이지요.
금강산
설악산에
촘촘 봄을 수놓으며
얼었던
마음을 녹여
남과 북 이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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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받고도
정나래
구석진 곳에
민들레 한 포기
친구들 꽃 피울 때에야
겨우 자리 잡더니
여름 끝자락에
꽃 매달았습니다
조그만 꽃 얻었습니다.
바람도 조금
햇빛도 조금
눈길 조금 받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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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많이 먹은 걸까?
정명숙
"밥 먹었니?"
코끼리가 묻자 다람쥐가 대답했어.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 그러는 넌?"
다람쥐가 되묻자
코끼리가 부럽다는 듯 다람쥐의 볼록해진 배를 바라보았어.
"좋겠다. 난 겨우 한 가마니 밖에 못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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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문
정은미
열면
너무 많은 것들이 보여.
그 중에서
어떤 것은 봐야 하고
어떤 것은 보지 말아야 할까.
때때로
생각이 필요해 지지.
그럴 때마다 나는
가만히 문 닫고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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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정지윤
어릴 적 나는
보는 것마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물어봤는데
요즈음 할머니가
내가 하는 것마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물어보신다
어른들은 뭐든지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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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정진아
갑자기 찾아오면 어떡해?
아직 들어오지 마.
난
키도 작고 어리잖아.
아이들은 많이 웃고
신나게 뛰어놀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는 거
알고 있지?
단단한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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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의 하품
조기호
좀
심하지 않나요
한낮
5교시
야외 수업시간에
수학익힘책 54쪽을 펴라니요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만수를 보세요,
아닌 것을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저 불쌍한 입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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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뱀
조명숙
물이 가득 차 빵빵해진
기다란 몸
물이 오른 고개 바짝 쳐들고
상추 양배추 고추 심은 밭으로
쓱쓱 쓱쓱 날름날름 혀 내밀며 기어가
오뉴월 땡볕에 축 늘어진
채소들 머리 위에
쏴 쏴 쏴
세찬 물줄기를 뿜어낸다.
수도꼭지에 매달려 얻은
생명줄 기꺼이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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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진복희
해돋이 수평선과
눈 맞추며 자란 아빠,
해넘이 지평선을
보고 자란 엄마라서
걸을 때,
아빠는 올려다보고
엄마는 내려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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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생각
차영미
베란다 구석
무 한 개
뾰조록이
돋은
생각
단단한 중심에서
위를 향해
초록빛
.
.
.
행진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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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채들
악사의 피리 소리에 잠자던 봉황이 눈을 떴다. 비파 소리에 용 호랑이 사슴 토끼가 일어나고,
덩달아 시냇물 폭포도 깨어나 흐르고 쏟아져 내렸다.
구름속인가
꿈속인가
활짝 핀 연꽃 한 송이가
떠받치고 있는 세상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여의주를 턱에 괴고 자던 봉황이 천년의 문을 열고 나왔다.
둥둥둥 북소리에
잠들어있던 백제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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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동이가 달린다
천선옥
할머니와 사는 은동이
밥 먹을 때도
느릿느릿
학교 갈 때도
느릿느릿
선생님이 부를 때도
느릿느릿
이런-
이런-
하지만,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리 듣고
은동이가 달린다.
타조보다 빠르게
타타타타 집으로 달린다.
눈물콧물 훔치며
타타타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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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레이더망
최규순
배추밭에 간 할머니
화나셨다.
배추에 똥 싼 놈 누구야?
놀란 메뚜기 폴짝 도망가고
배춧잎에 납작 엎드린 배추벌레
눈 밝은 할머니한테 걸렸다.
배추에 구멍 낸 놈 누구야?
할머니 두 눈 부릅뜨셨다.
배추 속 파먹던 달팽이
할머니 레이더망에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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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0점
최영인
- 할머니, 배차가 뭐예요?
- 짐치 담아 묵는 배차 모리나?
- 짐치가 아니고 김치!
- 배차 아니고 배추
훈이는 왕할머니 보물1호 가계부를 보며
국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글만 배웠다는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말인 줄 압니다
- 개기 시바리?
아하, 고기 세 마리
조타가 아니고 좋다
훈이 선생님은 왕할머니 가계부 속
틀린 글자 찾기에 신이 났습니다
- 할머니 오늘은 50점!
국어선생님 훈이는 왕할머니 연습장에
동그라미 다섯 개를 그려줍니다
하하하~
왕할머니 웃음소리가
거실 창문 너머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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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한상순
모과나무는
올해도 자식을 여럿 두었다
꽃 뗀 자리에 올망올망 달린 모과
아기 때부터 제 맘 대로다
다소곳 고개를 숙인 놈
대들 듯 머리를 쳐든 놈
홱, 고개를 돌린 놈
핼끔, 옆을 보는 놈.......
그렇게 제 맘대로 여도
모과나무는 잔소리 한 번 안한다
모과나무는 모과가 다 익어
짱구머리여도
고개가 비뚤어졌어도
얼굴이 울퉁불퉁 하거나말거나
그저 예쁘다
누가 뭐래도 모과나무는
제 새끼가 젤 예쁘다
첫댓글 이것 저것, 식탁에 많이 차려진 동시,
골고루 먹고나니 배가 부르네요.ㅎㅎㅎ
즐겁게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