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의 영부인이자, 가수이다. 인민해방군 소장이다. 14살 때 산둥예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중국음악학원에 입학한 뒤 성악을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0년대 인기가수로 활동하던 중에 1986년 시진핑과 만나 다음해 결혼. 딸 시밍저를 두고 있다.
2013년 4월 <타임(TIME)>‘세계 100대 인물’에 선정. 2013년 5월 <포브스(Forbes)> ‘세계적 영향력 있는 여성’에 뽑혔다. 활동[편집]2009년 중국금연협회, 청소년범죄예방협회 홍보대사. 2011년-세계보건기구 에이즈, 결핵 예방 친선대사.
펑리위안은 현역 장성이자 가수로 한국인들도 잘 아는 글로벌 배우 궁리(鞏悧)와 동급 대우를 받을 만큼 유명한 스타다. 음악 명문인 중국음악학원 성악과에 입학해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인재로 지성미까지 갖춘 매력적인 여성으로 알려졌다. 18살에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소속 가무단 단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훗날 그가 부른 '희망의 들판에서(在希望的田野上)'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스타로 부상했다.
1986년 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펑리위안은 친구의 소개로 시진핑을 처음 만났다. 펑리위안은 9살 연상에 촌스러운 그의 모습에 실망했지만 대화에 배어나오는 순박함과 사상에 매력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진핑은 최고인기가수인 그에게 "가수라고 하는데 어떤 노래를 불렀냐"고 물어 펑리위안을 당황케했다. 당시 시진핑은 이혼남이었지만 펑리위안은 시진핑이 시중쉰(習仲勳)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의 아들임에도 많은 일을 겪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두사람은 6개월 연애 후 1987년 9월 1일 결혼사진을 찍고 시 간부들을 집으로 초대해 단촐한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됐다.
펑리위안은 결혼 후에도 가수활동을 계속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스타성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중국 대중들에게 어필되면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심지어 시진핑에 대한 지지도를 끌어올리는데 그가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인기가수이면서 전국 문화예술계 연합회 부주석, 중국 인민해방군 가무단장,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결핵 예방 친선대사 등을 맡고 있다.
중국의 퍼스트 레이디는 지금껏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남편의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내조해왔다.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이 마오쩌둥 사후 문화대혁명의 주범‘4인방'으로 체포되면서 중국 지도자의 부인이 대외활동에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인 대다수가 중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완벽한 남편의 '그림자' 였다.
그러나 꾸준히 가수생활을 하며 대중과 호흡했던 펑리위안 인만큼 그녀는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첫댓글 동영상매우정교합니다감동적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