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집짓기
집은 주인을 닮아 있었습니다.
뒷산 녹음을 배경으로 마을과 같은 눈높이에서 까치발을 하고 있는 듯 단아한 품새의 집이었습니다.
한옥 격자창으로는 벌써 초여름의 녹음이 비쳐들어 액자 하나가 걸립니다.
샘물 흐르는 소리가 바람결 폭포가 되는 대청마루에서 술잔을 앞에놓고 나누는 집주인 부부와 집을 지은 시공업체와의 한담을 잠깐 들어보았습니다.
양평 성덕리에 또 하나의 집을 만들었습니다.
시공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집이 완성된 후 건축주와 허물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하고 보람 있고 또한 아름다운 일입니다.
집을 짓고 난 후 지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건축주와의 관계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먼저 성덕리 황토주택의 건축주가 어떤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집은 무엇인지?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여름에 시원하며 겨울엔 따뜻하고, 병나면 고쳐주기 쉽고, 쉽게 병 안 나는 집. 찾아온 손님이나 맞는 주인이나 행여 집 다치게 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집. 너무 크지 않아 관리비 많지 않고 너무 높지 않아 고장난 전구 갈아 끼우기 쉬운 안온한 집. 몇 일씩 비워 두어도 나쁜 눈길 끌만큼 사치스럽지 않은 집. 그런 집을 지으리라.'
이 글 속에는 건축주가 원하는 집에 대한 생각 모두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소개한 것입니다.
또한 좋은 집을 짓기 위한 좋은 건축주의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전원주택을 지을 때 특별한 꿈을 꿉니다.
그것이 소박한 집이 되든, 조금 여유로운 집이든 관계없이 어떤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뚜렷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건축은 건축주의 일방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업자'를 잘 만나 고생을 덜 했다느니, '업자' 때문에 머리가 다 쉬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집을 짓기 위한 건축주의 마음이고, 그 마음에 맞는 시공업체를 선택하는 것 또한 건축주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덕리 건축주 부부를 만난 후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칭찬하고 고마워해 마음은 편안
집을 짓다보면 크게 두 가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상담에서 계약까지의 과정이 순탄하고, 건축주의 믿음이 강하면 그 집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공정이 순조롭고 편안하게 마감이 이루어집니다.
상담과 계약의 과정에서부터 신경전이 있고, 시공업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사사건건 간섭하게 되고 의심하게 됩니다.
공정별로 건축주의 요구가 많고, 세세한 일정까지 관여하면 시공업체는 긴장하고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지만, 그러다 보면 회사의 전체 일정과 다르게 무리한 공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건축주의 요구에 맞추려다 보면 오히려 일이 꼬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건축주 분들은 집의 형체가 드러나고 윤곽이 나타날 때부터 건축주들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의 형체를 갖추어 가니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떻게 하고, 저기는 이렇게 바꾸고, 자재는 이것으로 쓰고…"
이런 요구들이 터져 나오면 시공업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덕리 건축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건축 기간 내내 신뢰와 감사의 마음은 시공업체로 하여금 편안하고도 자신감 있는 시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설계상의 문제이거나 시공상의 문제로 집을 짓다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사전에 사려 깊게 검토하지 못한 일들이 마감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때 건축주와 시공사가 대안을 찾고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 과정의 지혜입니다.
성덕리 건축주는 시공업체에게 "이건 이렇게 해 주시고 저건 저렇게 하세요!" 하며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작업자들을 칭찬하고 고마워하며 시공업체가 기분 좋게 일 할 수 있도록 하여 자신의 원하는 것을 모두 관철(?)시켰습니다.
시공업체는 건축주의 한결같은 이러한 믿음이 고맙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고마워, 구석구석 좀더 세밀한 마음을 쓰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집을 짓고 이윤이 많이 남았는가 적게 남았는가의 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살아가는 '인정'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혼합형 구조, 한옥 느낌의 황토집
성덕리 집은 새로운 공법, 새로운 디자인의 혼합형 흙집입니다.
혼합형 흙집이란 목구조 흙집의 나무 기둥과 흙벽의 틈새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은 목재가 아닌 시멘벽돌 조적 기둥으로 하고 인조석으로 마감하는 조적조 기둥방식입니다.
물론 처마도리와 지붕은 목재로 구성합니다.
기존의 '시멘트 벽돌 조적 기둥에 인조석 치장'을 발전시켜 처음부터 치장벽돌 조적 기둥을 세우고 지붕은 목재 처마 도리와 보로 구성한 것이 성덕리 주택의 특징입니다.
평면 설계는 건축주가 직접 했습니다.
거실 대청마루는 현관과 뒷뜰을 관통하고, 남서향을 바라보는 부지 전면에 응접실이 배치되었습니다.
거실의 대청마루는 정통 방식의 오량구조(다섯 번의 각이 생김) 노출 서까래 경사 천정이고, 응접실은 사각 우물마루 형태의 경사 천정(처음 계획은 평천정이었으나 거실의 오량구조에 맞추어 새롭게 디자인되었음)으로 시공되었습니다.
사각 우물마루 경사천정은 거실 대청마루와 주방 천정(천정 루바 마감)과 어우러져 흙과 나무의 조화를 잘 살려냈습니다.
현관과 안방, 화장실이 마주치는 안방 출입구 쪽에 간이 처마 형태의 지붕을 한 드레스룸이 거실 쪽에서 보면 포인트 공간으로 살아납니다.
주방과 거실의 칸막이, 벽난로 주변을 치장벽돌로 구분해 기능성과 조형미를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창은 이중창으로서 외부창은 은색의 알루미늄 단열바로 구성된 복층유리로 시공되고 내부창은 전통 문살이 들어간 목창으로 마감했습니다.
안방은 구들을 놓고, 스테인레스 배관을 함으로써 구들과 일반 난방 모두가 가능토록 했으며, 서향이긴 하지만 텃밭으로 열려 있는 창을 낮게 배치했습니다.
아궁이를 ㄱ자로 꺾여진 현관 바로 옆에 배치해 현관에서 아궁이로 통하는 쪽문을 만들어 여름엔 통풍이 용이하도록 하고, 겨울엔 찬바람 피할 수 있는 짧은 동선 효과를 살렸습니다.
남쪽으로 난 응접실 분합 창 앞에는 쪽마루를 놓아 텃밭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 놓았고, 대청마루 뒤뜰 쪽 옹달샘을 마주하고는 지붕이 덮인 넓은 툇마루를 놓아 여유와 휴식의 공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저보다 남편이 더 좋아해요"
"저보다 남편이 더 좋아해요"라는 건축주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남편 분은 처음 대할 때보다 집을 짓고 난 후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듭니다.
지극히 도회적이기고 도도하며 어떻게 보면 거만해 보이기도 했던 분이 스스로 나무꾼을 청하고 나섰으니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모습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그 모습을 대하면서 집을 짓고 난 후 이들 부부에게는 새로운 '행복'이 생겼음을 느낍니다.
집을 다 짓고 난 다음 어느 날 오후 성덕리를 방문했을 때 산자락 아래 자연 옹달샘은 쉼 없이 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툇마루에선 정담과 함께 삼겹살이 구워 지고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라도 되는 양 툇마루에 이들 부부와 함께 앉아 술잔을 나눕니다.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풀이 자라는 과정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 겨울 지나서 싹이 쪼금 트더니 몇 일 지나 보니까 영 달라졌어. 또 몇 일 뒤에 보면 쑥 올라와 있고… 하루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도심 한가운데서 다른 것 곁눈질 할 사이 없이 내쳐온 삶들이기에 자연의 이치는 커다란 깨달음임에 틀림없습니다.
보통은 남편이 시골행에 부인들이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인이 졸라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무덤덤 하던 남편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나무를 다듬어 의자나 탁자를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시간만 되면 혼자서도 성큼성큼 성덕리로 향하는 분주함을 보면서 아내는 '전원의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덕리 주택은 좋은 건축주의 아름다운 마음과 시공사의 노력이 어우러진 그릇이며 그곳에는 건축주 부부의 전원에서 싹 트는 새로운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부부는 옹달샘의 물소리를 들으며 도심의 번잡함을 씻고, 텃밭의 상추와 쑥갓을 다듬어 툇마루에서 저녁상을 내며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저녁이면 거실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밤이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는 풀벌레 소리…
▲ 집 정리
· 본채 : 30평(방 2, 화장실 1, 대청마루, 응접실, 주방 및 세탁실)
· 부속사 : 심야전기 보일러실 및 창고, 툇마루
· 특징
1) 구조 : 치장벽돌 조적 기둥 + 목재 처마도리와 보, 서가래 및 목조 지붕
2) 지붕 : 아스팔트슁글
3) 벽체 : 흙벽돌 쌓기, 두께 30cm(대소형 흙벽돌 2장 쌓기)
4) 천장 : 대청마루 - 오량 노출 서까래 경사천장, 응접실 - 사각우물천장, 방 - 평천장
5) 내장 : 황토미장에 한지벽지 마감
거실 및 응접실, 주방 바닥 - 강화마루, 방 - 한지장판
6) 창호 : 외부 알루미늄 단열 샷시 + 내부 조선살 목창 = 이중창, 서쪽 전망창
목창은 여닫이 미닫이 창 혼합, 옛날 대문
8) 난방 : 심야전기보일러, 안방 구들난방 겸용
9) 기타 : 노출형 벽난로
<글쓴이 이동일 님은 흙집 전문 시공업체인 (주)행인흙건축의 대표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