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슬라보예 지젝 지음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코로나19와 펜데믹
2019년 겨울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펜데믹은 두 해에 걸쳐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으로 이어졌고, 3년차인 올해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이 올 겨울철에는 코로나19뿐 아니라 감기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으로 예상되어 방역과 의료현장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고위험군을 우선으로 5차에 해당하는 동절기 코로나 2가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 자 나름의 경험과 소문, 지식과 정보에 근거하여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를 앓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앓아 보니 별거 아니라는 경험에 근거하여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이는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심하게 앓자, 다음부터는 차라리 병에 걸리고 말겠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기저 질환이 있고, 주변의 지인이 사망에 이르는 경험을 한 분들은 백신을 맞으려 한다.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으려고 백신을 맞는가 하면, 눈치껏 상황을 보고 판단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맞으면 맞고 안 맞으면 안 맞는다는 사람도 있고, 정부 정책이니 맞고, 그와 같은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펜데믹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끝날 것이다. 펜데믹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혹여 변하기는 할까?
펜데믹에 대한 3가지 대응
저자는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21년07월에 출간)에서 ‘초기 혼란을 거치고 난 후 약 1년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코로나19 펜데믹 현상에 대해’ 논하였다. 그는 전 세계의 펜데믹 대응은 트럼프식(시장의 자유와 자본의 이윤 확보)과 중국식(디지털화된 국가의 총체적 개인 통제)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트럼프식의 한계(목숨을 내걸고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와 중국식의 한계(자유롭지 못한 개인들의 공동체는 통치의 대상일 뿐)를 비판한다.
제 3의 대응은 ‘스크린뉴딜정책’이 있다. 구글,아마존등 거대 정보기업들이 주도하는 이 대응은 ‘공공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구적인 비접촉의 미래’를 상상하자고 주장한다. 일론 머스크는 20년 8월 28일에 ‘뉴럴링크neuralink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건강하고 행복한 돼지’에게 컴퓨터로 판독할 수 있는 뇌를 이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인간도 언어 없이 상호간에 마음으로 직접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 저자는 제 3의 대안이 매트릭스 세계를 전망한다는 것을 경계한다. 결국 그 인공지능의 세상도 ‘수천만 명의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 의해 지탱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거대 사적 정보업체에 주도권을 내줘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보다는 ‘펜데믹으로 노골화된 구조적 차별과 착취의 체제를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펜데믹이 야기한 문제들
펜데믹은 인류 위기의 시작일까? 그렇다. 지구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해빙되고 그 속에 얼어 있던 옛날의 바이러스들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인류에게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자연환경의 파괴로 박쥐등의 서식지 감소로 발병한 것이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가 아니던가. 신대륙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95%가 절명한 원인 중 하나가 감염병인 것을 보면 코로나19 펜데믹의 후속타는 연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번 펜데믹은 세계에 만연한 구조적 착취와 차별을 더 구조화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백신민족주의는 백신세계주의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사회적 불안도 커지고 있다. 대중을 현혹하는 포퓰리즘, 인종주의 확산, 난민 유입의 반대가 확산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빈살만의 재산이 2800조라는데.. 아는가! 사우디의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미국보다 더 높다는 것을. 국제적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고 미중갈등도 그렇고, 북미대립도 그렇다. 개인과 사회의 건강문제도 문제다. 펜데믹 시기 불안과 우울, 자살증가율이 높았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한국은 봉쇄를 가하지 않으면서 방역과 거리두기를 잘 해 K-방역이라는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좋지만은 않다. 빈부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K-방역의 성공을 위해 ‘단순한 생존 이상의 것을 위해 싸움을 벌인’ 이들에게 온당한 보상이 돌아갔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 책을 옮긴 강우성은 펜데믹이 앞으로 있을 더 큰 재앙의 총연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지젝의 ‘발칙한 사유’에서 지혜를 얻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교차로에 서 있다. 이 교차로에서 우리는 이런 문장을 보게 된다. “우리는 사회적 삶 전체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야 한다”
앞으로 공동체 정신은 계속 훼손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5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진보의 서사를 써 내려갔던 원동력은 바로 ‘관용과 포용의 공동체 정신’이었음을.
책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