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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호
골뱅이 사고 덤으로 얻은 초고추장
집에 와서 보니 유통기한이 1년이 지났어요
하는 수 없이 먹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오빠의 믿음엔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해요
직사광선 피해서 시원시원한 마음 구석에 오빠를 보관할게요
약간 변할 기색이면 방부제를 쓸 용의도 있어요
골뱅이를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골뱅이를 제일 많이 잡는 영국 사람들은 안개 같아요
하긴, 생선 못 먹는 언니가 끓인 매운탕이 끝내주니깐
골뱅이 통조림 따다 손 베인 적 있죠
호오, 반창고 든 오빠의 호흡이 45cm 반경에 들어오면
다친 손가락보다 마음의 상처가 먼저 지혈되곤 해서는
지그시 눈 감고, 골뱅이 같은 오빠의 입술을 쫀득쫀득 맛보고 싶어지죠
아유, 생각만 해도 볼이 슬쩍 붉어지지만
가끔 골뱅이 돼서 들어오는 오빠가 밉기도 해요
뜬금없이 한밤에 라면을 끓이고 했던 얘기 또 하고
옷 입은 채 벌러덩 소파에 누워 드르렁 코까지 골면
속에 난 천불은 119도 못 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어쩌겠어요,
와이셔츠 단추 구멍을 한 칸씩 잘못 끼운 채
늦었다, 부리나케 현관을 튀어 나가는 뒤통수 보면
딱딱했던 기분도 반창고 뗀 살갗처럼 몰캉해져서는
골뱅이 같은 일상에 살짝 쉼표, 하나 찍어주고 싶기도 하네요
오빠가 좋아하는 소면 곁들인 골뱅이무침 해놓을까 해요
간만에 쫌, 뜨거워져 봐요
오늘은 일찍 와요
손준호
1971년 경북 영천 출생,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21년 <시산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