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집 6남매 가족의 가을 여행
개암 김동출
여행은 혼자 또는 부부끼리 떠나도 설렘과 낭만이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할 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형제자매가 함께하는 여행은 즐거움이 크고 서로 간의 유대감을 깊게 해준다. 이번 여행은 각자의 사정을 고려해 몇 차례 일정을 조율한 끝에, 가을 단풍이 거의 끝나가는 일정이 정해졌다. 우리 6남매와 그 배우자를 포함한 총 10명이 함양군 마천면의 D 식당을 찾아 보양식인 염소 불고기를 즐긴 후 그 이튿날에는 대봉산 천왕봉에 오르기로 하였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시간을 보낸 경험은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1981년 이후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필자는 마산에서, 나머지 형제들은 거제시에서 각각 2대의 승용차로 출발하여 진주시 이반성면에 소재한 “경상남도수목원” 입구에서 오전 10시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쾌청하고 하늘은 맑았지만, 수목원의 단풍은 그 빛을 잃고 스산한 낯빛으로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가을 정취가 물씬거리는 수목원에서 만나니 모두 싱글벙글 만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실 우리 6남매 첫 번째 가족여행은 2017년 3월, 베트남 중부 해안 도시 다낭(DA Nang)과 ‘영원한 봄의 도시’로 알려진 달 낫(Da Lat)을 다녀온 것이다. 꽃과 호수, 프랑스풍 건축물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달 낫’에서의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가족여행을 다녔지만, 여행 때마다 우리의 좌장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단합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힘든 일을 앞장섰던 매형은 안타깝게 작년 3월에 형제들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만 남겨두고 귀천하셨다.
필자에게 ‘경남수목원’은 교직에 있을 때는 아이들과 체험학습으로, 은퇴 후에는 신앙 안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여러 차례 함께 다녀온 친숙한 장소였다. 꽃이 만발하는 봄이나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가을에 찾으면 휴양지로서 더없이 좋다. 이곳에는 어른들마저 아이처럼 즐겁게 만드는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한창때의 단풍철에 다소 늦게 방문한 우리 일행은 입구에서 표를 구매한 뒤 곧장 산림박물관으로 향해 전시된 다양한 산림 자료를 관람했다. 관람을 마친 후에는 수목원 입구에서 전기 셔틀 차에 올라 넓은 둘레길을 편안하게 돌아보며 수목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다음 코스는 산청읍에 있는 “수선사”. 앞서 다녀온 경남수목원에서 계획한 시간을 초과하여 먼저 점심부터 먹기로 하였다. 산청군청 인근의 한식당에서 흑돼지와 소고기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모두 아침을 굶고 온 터라 허겁지겁 배를 채우다 보니 모두가 과식한 상태가 되어서 다음 코스의 목적지를 찾게 되었다.
우리들의 2번째 여행코스는 산청읍에 있는 “수선사”. 수선사는 아름다운 연못과 정원으로 유명한 힐링 장소로 널리 알려진 사찰. 늦가을의 수선사에는 이미 만원사례.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사찰의 경내는 봄철과 또 다른 정취를 안겨주었다. 형제들은 삼삼오오 경내를 관람하였다. 불교에 진심인 동생 부부는 일행에 앞서 총총히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께 경배하고 나서 경내의 포토 존을 찾아다니며 사찰의 정취를 카메라에 가득 담아내었다. 필자는 두 매제와 함께 뒤따라 오르며 물레방아 언덕을 배경으로 DSLR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사찰 경내로 발길을 옮긴 시간대가 햇살이 강한 역광이라 사진 촬영이 불편하여 카메라 사진 촬영을 접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누님과 여동생들을 뒤 따라다니며 기념 촬영을 하였다.
세 번째 코스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염소 불고기 전문 황토집 D 식당이었다. 일행은 식당 2층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필자는 피곤하여 뜨끈뜨끈한 방에서 휴식하고 누님을 비롯한 네 자매와 제수씨는 주변을 산책하며 저녁 밥때를 기다리며, 염소 불고기의 진수를 맛볼 생각에 마음은 이미 들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산청읍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흑돼지와 소고기 불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탓에, 정작 염소 불고기는 눈앞에 있어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불고기 파티는 즐겁지만, 위장은 이미 파업 중…"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위안이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도 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이튿날 아침, 필자는 일찍 숙소를 나와 식당 근처 추성리 마을을 산책했다. 해발 400~600m의 중산간 마을답게 공기는 맑고, 남쪽으로는 천왕봉을 비롯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고도 차이가 큰 산악형 마을이라 걸음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숙소 앞 너른 주차장을 지나 주위 풍경과 어울리게 만든 다리를 건너 “서백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서백 소나무 숲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맑은 공기와 솔향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수백 년을 버텨온 금강송들이 하늘을 찌르듯 곧게 뻗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고요한 성전의 기둥처럼 장엄하였다. 개울 건너 산자락에는 빨간 홍시가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품어내고 있었다. 이 숲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품 숲’ 중 하나로, 심봉산 금강소나무 숲과 이어져 있다. 아쉽게도 힐링할 여유가 없어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는 마을 안길을 오르기로 했다. 누님과 동생 부부와 함께 햇살이 드리운 비탈진 마을 길을 쉬엄쉬엄 오르니 집집이 곶감 말리기가 한창이었다. 늦가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헛간에 줄줄이 매달린 주황빛 곶감이 낯선 길손의 입맛을 유혹하였다. 그곳에 뿌리내린 작은 교회의 십자가도 반갑게 맞이하였다. 50여 년 전의 내 고향도 산골짜기 마을이라 그런지 순간,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편안한 기분에 휩싸였다. 조금만 더 오르면
지리산에서 가장 깊고 웅장한 계곡의 ‘지리산의 비경’으로 널리 알려진 “칠선계곡”이 나올 테지만, 약속한 아침 식사 08시 30분에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되돌렸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추성리의 늦가을은 마음에 오래 남을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산호초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지리산 마른 꽃송이버섯을 넣어 끓인 된장국은 주인장의 손맛과 어울려 그야말로 일품 중의 일품이었다. 진한 국물은 구수하고, 버섯 향은 숲속의 맑은 기운을 그대로 담아낸 듯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함양의 청정미로 지은 쌀밥 한 그릇은 마치 파란 빛을 뿜어내는 보석 같았다. 된장을 숟갈째 퍼 넣어 비벼 먹으니,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며 입안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점심·저녁까지 해결하고 싶은 정도였다. 지리산의 된장국과 쌀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여행길에 만난 가장 큰 선물이자 마음마저 든든하게 채워주는 보양식이었다.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염소 불고기가 함께 나왔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이미 된장국과 쌀밥이었다. 염소 불고기는 그저 곁에 놓인 조연일 뿐,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기대가 컸던 대봉산 천왕봉(1,254m)이었다. 모노레일에 오르기 위해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대봉산 자연휴양림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천면 추성리에서 “오도재”를 넘어 병곡면 광평리로 가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오도재”에 올라 최종목적지 대봉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반대 길을 구불구불 합참 달려 드디어 대 봉 스카이랜드에 도착하였다. 여행에서 남는 것을 사진이라며 그곳 휴게실에서 1시간 넘게 대기하며 야무지게 기념 촬영을 한 후 상부승강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봉산 천왕봉 꼭대기로 오르는 길은 7인승 모노레일이 이끌었다. 기계는 묵묵히 대봉산 능선을 타고 올랐지만, 타고 있는 사람 마음도 기계처럼 힘들었다. 만약 기계의 힘이 아니었다면, 저 급경사와 비탈진 능선을 오르는 일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모노레일 타고 30분 만에 정상에 닿았다. 발아래 펼쳐진 산줄기와 하늘빛은 숨이 멎을 만큼 장엄했다. 그동안 지인들이 인정 사진보낸 그곳에 드디어 나도 서 있다는 생각에 작은 감동이 차올랐다.
대봉산의 정상에 오르자, 눈앞에 겹겹이 펼쳐진 능선 한가운데 솟아오른 지리산 천왕봉의 위용은 장엄했다. 그날 날씨는 봄날같이 푸근하여 방한복 패딩으로 중무장한 것이 겸연쩍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천왕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이후 개인별, 또는 부부의 기념사진을 번갈아 찍으며 또 다른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였다. 여형제들은 또 다른 포토 존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번갈아 품어보고, 다시 하행선 모노레일을 타고 맞은편 능선으로 내려왔다. 오를 때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긴장되고 힘들었다.
이날의 점심은 산청읍에서 ‘어탕’을 먹기로 했으나 점심시간을 훨씬 넘겨 식당에 도착하여 어탕 대신 주인장이 권하는 식단을 주문하여 먹었다. 일행은 그곳을 나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D 식당에서 산 ‘지리산 특산 버섯 선물 세트’를 싣고 사는 곳을 향해 헤어졌다. 필자 부부는 마산으로, 형제 일행은 왔던 대로 동생이 운전하는 1호차에는 동생 부부와 누님, 그리고 막내 여동생, 큰 매제가 운전하는 2호차는 큰 매제 부부와 둘째 매제 부부가 통영 대전 간 고속도로를 타고 거제로 내려갔다. 심심풀이 화투 놀이를 좋아하는 아내는 형제자매들과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는 형제 남매들에게서 혈육의 정을 담뿍 받았다. 남매들 모두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또 직장에서 은퇴한지라 젊은 시절과는 달리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특히 누님을 위시한 네 자매들은 우리 부모님의 좋은 점만 빼닮아 표정이 밝았다. 또 서로 배려하며 힘든 일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막내는 경남수목원에서 허리 수술로 보행이 불편한 필자의 아내를 위해 휠체어를 빌려 태우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힘든 일을 자청하였다.
거제 1호차를 운전한 동생은 금융업에서 은퇴한 과묵한 성품으로 여행 정보에 눈이 밝아, 여행 내내 일행을 선도하며 여행하는 곳곳의 정보를 알려주고 기념될 만한 장소에서는 여제들의 사진도 예쁘게 찍어주었다. 두 매제도 한몫하였다. 최근 엘리베이터회사 이사에서 은퇴한 큰 매제는 일행의 안전을 책임지고 거제 2호차를 운전하였고, 2호차에 함께 탄 한화오션 창업 맴버인 작은 매제 부부는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며 큰 몫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는 형제 자매들에게서 정성이 담뿍 담긴 선물을 받았다. 자기들이 손수 키운 늙은 호박 네 둥이다. 그것은 내게는 단순한 농산물 호박이 아니라 정성을 담은 축복이었다. 내년에는 꽃피는 새봄의 4~5월에 동해안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우리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함께 여행 다니기로 결의하였다. 우리 6남매 가족의 앞날에 건강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두 손 모은다. 2025-12-10
첫댓글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보내세요
단편소설급이네요.
형제자매들간의 여행은 정말 뜻 깊은 모임이지요.
필자는 6남3녀의 다가족이지만 이미 과반이 넘는 다섯명이 짝을 잃어서 아쉬움이 크지요.
그래도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두달에 한번씩 모여앉아 입맛을 나누고 있어 다행입니다.
귀중하신 덕담에 감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