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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시학과 저항성
-김용권의 시세계
권대근(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로그인
후썰은 <현대를 위기의 시대>라 진단합니다. 현대인은 현재 더 이상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유지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진단의 핵심입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은 김용권 시인의 사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후썰에 의하면, 현대는 인간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정체가 올바로 해명되어야만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김용권 시 정신은 후썰의 방법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김용권 시집 <무척>에서 보여지는 시적 특성을 전통적 시성시라는 관점에서 비껴나 <저항성을 통한 새로운 세상의 인간관 모색하기>라는 관점으로 조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시집 뒤에 달린 해설과 다른 관점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문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용권 시의 문학적 성취는 네 가지 층위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예술 차원에서의 비가시성의 가시화인가, 문학 차원에서는 인식과 형상의 복합체인가, 시학적 차원으로 볼 때는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인가, 작가정신의 차원에서 주변부 타자의 담론인가, 이 네 가지 점에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무척>은 문학적 성취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불진의 입상진의’라는 동양시학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시인임이 분명합니다. 김연필 시인은 김용건 시인의 시집을 해설하면서, “그의 시편은 대부분 이러한 전통적 서정시의 미덕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어 간결한 언어로 읽는 이에게 충분한 울림을 준다”고 설파했습니다. 내가 보는 관점과는 좀 다른지만 어떻든 정말 엉터리 시인이 많은 시인공화국에서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시가 예술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풍부한 문학성과 저항성을 함유한 시 텍스트를 생성해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문학적 의미는 미적 진보라는 텍스트의 구조로부터 나오고, 그 구조는 문학적 감동을 생성하는 문학적 의미와 미적 울림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김용권 시인이 구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같은 화소라도 작가에 따라 각기 다른 텍스트가 창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세상읽기의 장을 열어주는 김용권 시의 미적 구조가 가진 그 가공할 만한 힘 때문에 독자들은 한 페이지에 이르는, 진실을 생명으로 하는 이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할 것입니다. 이제 아도르노의 시학을 통하여 시 구조 안에 내재된 저항성을 유기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김용권 시의 시적 진실에 제대로 다가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II. 클릭
‘시는 차이를 가치화하는 저항적 담론이어야 한다’는 들뢰즈의 시론과 아도르노의 미적진보론에 입각하여, 김용권 시인의 시를 분석함으로써 김용권 시인의 시적 역량을 새롭게 인식하고, 정서적 그리고 지적인 자극을 받아 삶의 변화를 일으킬 단초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시는 태곳적부터 오늘날까지 세상과 삶을 노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절가조로서 시조와 함께 인간을 돌아보고, 세상을 비판하는 역할에 있어서 시는 언제나 선두에 있었습니다. 그런 점은 첨예하게 세상을 사유하는, 세상을 비틀고 쓰다듬는 김용권의 시정신과 무척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피어난 꽃이자 열매가 바로 <무척>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던간에 ‘무척’이라는 시집 제목은 ‘무척’ 그 자체로서 재미있는 부사적 사고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무척>에 담긴 시들은 우리를 미적 사유와 미적 인식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흔들리고 싶었나
품은 자리가 벼랑이라니
한 발 내면 끝장인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나? 무척
깎는 대로, 깎이는 대로
잔돌로 쓸려나간 돌무지
침묵을 풀고 간 몸이었거나,
두쪽으로 갈라진 절망
내던지고 있었나
억겹으로 키운 바위심장 누가
껴안아 보았나?
안방에 앉아서도 흔들리는 나는
버리지 못한 돌 몇 개 남았으므로
흔들리면 세우는 일
너를 밀면 무척산이 흔들린다
김용권의 <무척> 전문 -
무척 무척 무척 ~부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동안 머리 속을 떠도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로 ‘무척’은 정서적 환기성, 또는 중독성이 강한 어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뇌과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우리의 인지시스템은 문장보다 단어에 더 주목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가 제1시집 <수지도>에 이어 제2시집 <무척>까지 시집의 제목을 단어형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시인은 세상을 ‘수지도’와 같이 명사적으로 보다가 이제는 ‘무척’ 같이 부사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명사가 움직이지 않는 이름이고, 자리고 위계로서 수식을 받는 품사라면, 부사는 수식을 주로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날개 꺾인 어린 용사들이 앙코르와트 사원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무기로 다스린다면 이제 저들의
무기는 나무속을 파낸 악기이다 진격 능선에 주저앉아
진혼의 목관을 불고 있다 킬링필드 영혼들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팔다리 하나씩 날려 보낸, 그들의 연주하는 아리랑은 밀림을
흔들며 날아다녔지만 공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총성도 악기도 죽음 위에 뿌려진 노래였다 나무 구멍은 점점 커지고 사람들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
김용권의 <관> 전문 -
나찌 독일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어떻게 한 편의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라고 하면서, <문학은 미적 진보여야 한다>고 언명한 바 있습니다. 김용권 시인의 서정시 역시 아도르노의 고민 속에서 생선된 ‘추창조성’을 통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서정시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데서 ‘좋은’ 또는 ‘훌륭한’이란 에피쎄트를 이 시나 시인 앞에 수식어로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한 편 한 편의 시가 문학적 원리에 의해 직조되었다는 것입니다. P.18<관>이란 시를 보면, ‘인간의 욕망을 무기로 다스린다면 이제 저들의 무기는 나무 속을 파낸 악기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아리랑은 밀림을 흔들며 날아다녔지만 공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무구멍은 점점 커지고 사람들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욕망을 ‘무기’로 치환하고, 다시 ‘악기’로 환치하여, ‘이것’을 ‘저것’으로 환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나무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으로’,의미화하고, 욕망의 존재들, 권력자들은 무기에 의해 죽어간다는 의미를 ‘사람들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인과적 특성을 보이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날개 꺾인 어린 용사들이 앙코르와트 사원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라는 묘사적 언술양상을 전제함으로써 이 시는 폭압정치의 그늘이란 선명한 이미지를 획득하게 됩니다. 김지하는 시는 어불성설이라 했듯이, 시는 우회적, 내면적, 비유적, 간접적, 으로 왜곡되어 제시됩니다. 김용권 시를 읽으며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김용권 시인은 진술 역시도 매개체를 통해 우회적 양상으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묘사가 이미지라는 기표를 통해 그 안에 내재한 기의를 제시하는 것처럼, 진술 역시 시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 시적 정황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데서 시발의 우수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가 이와 같은 우회적 진술어법에 의하여 감각화된 묘사적 특성을 전제함으로써 시적 진술이 전달하는 사유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겠습니다.
그의 시는 고통과 좌절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 도피나 침묵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김용권의 <무척>에는 자신과 대화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즉 사회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회의 목소리, 우리 삶의 원인이자 결과인 역사의 목소리에 천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조화로운 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아우슈비츠처럼 관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요. 아도르노와 김용권은 예술이 사회와 비동일성을 주장하며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예술은 스스로 추해져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아름다운 가상으로서 보충한다면 그것은 기만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세계는 지금 '동일성의 폭력'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예술은 사회의 타자로 남기 위해 계속 새로워져야 합니다. 끝없는 탈주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은 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게 되는데, 새로운 예술의 창작은 내용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그 누구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형식은 침전된 내용이기에 진리는 재료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에 있는 것입니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미적 진보’에 참여하지 않고 과거의 형식 언어를 고집하는 예술가는 미적으로만 퇴행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반동적이라고 한 대목에 유의해서 김용권의 시를 다시 보면, 그의 시는 ‘독거’ ‘백미러’‘분리수거’‘세렝게티’‘비는 칼국수 집으로 내리다’ ‘언플러그’ ‘복사뼈’ ‘공원묘지’‘짚북재를 넘다’ ‘복요리 전문점’‘합창제’‘엇박자에 눈을 팔다’‘한림정역’ 등 거의 전부가 공동주체로서 타자되기, 우리-되기를 지향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적 진보가 녹아 있는 김용권의 시는 모두 불완전한 사회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시각을 유지해서 시가 더 나은 생활,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어서 감동을 줍니다. 김용권의 시는 현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판독할 수 있는 시대적 좌표를 제시한다는 데서 크다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 오늘날 문학의 위치와 작가의 임무, 나아가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인이 단순히 이상의 세계를 그리는 창작에만 몰두하기에는 오늘의 현대문명은 급속한 가속과 중압감을 느끼겠끔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역사적 바탕으로 기반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자신과 겨레와 인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정체성, 주체성, 위치성은 우리 매우 바람직한 작가정신의 표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족滿足
충분하고 넉넉함이
고작, 발목이 찰 정도라니
발을 담가보았다
시
발
이제 시가
발목쯤에 걸렸다
김용권의 <시인의 말> 전문 -
시집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봐야하는 곳이 P.5<시인의 말>입니다. 산문에서는 머리말이라 합니다. 시집을 펼치며, ‘시인의 말’을 읽는 순간 프로이트의 ‘예술은 심적 불만의 승화다’라는 언명이 생각났습니다. ‘만족’이란 한자를 풀어내어, 자신의 시적 위치가 고지에 오르지 않았음을 암시한 것은 일종의 겸손이라 하겠습니다. ‘시발’을 다의적으로 음미할 수 있게 낯설게 해서, 풍자적이면서 자괴적인 분위기를 준다는 거지요. 결말에 가서 자기 시의 위치성을 ‘발목쯤에 걸렸다’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시적 형상화는 촌철살인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65편의 시는 객관적 상관물법, 중층묘사법, 그리고 자동기술법 등 세 가지 대표적 기법이 연계되거나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제목이 거의 전부가 명사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소재가 아니라 제재, 즉 주제의 재료로서 지배적 심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집의 첫 시로 <귀얄문>을 배치한 것은 우리 정서에 대한 환원, 회귀를 꿈꾸는 시인이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귀얄이나 귀얄문 등의 용어는 도예인들의 전문 용어임으로, 아마도 <무척>이란 시집을 집어든 독자나 시인은 ‘귀얄’이란 단어의 등장에 적이 놀랬을 겁니다. ‘뭐지, 이게, 이게 뭐야’,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사전을 찾아보도록 하면서, 동시에 통섭적인 자세, 즉 인접학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도공이 쓰다듬은 붓질
하얀 무심으로 박혀 있다
휘둘러 친다는 것
뜨거운 가슴에
금 한 번 긋는다는 것이데
몸속에서
빗장 풀린 회오리가 일고
함부로 쓸고 간 화인처럼,
한 번 쓱 그러져
평생을 가는 것이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휘둘리고 싶다
김용권의 <귀얄문> 전문 -
시적 성취 수준을 ‘만족’이란 한자로 풀어내어, 순질이화하고, 다시 한글로 돌아와서 귀얄문을 가지고 이질순화하는 등, 김용권 시인은 언어를 이리저리 변주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귀얄문의, ‘한 번 쓱 그어져 평생을 가는 것이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휘둘리고 싶다’는 결말부 언술은 문학예술의 본질과 속성인 항구성에 대한 선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예술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용권 시인은 글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 시어의 채취와 배치, 그리고 문학적 장치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P.13<귀얄문>이란 시에서 ‘쓰다듬는 붓질, 하얀 무심으로 박혀 있다’ 는 어구는 장인의 정신과 예술품의 가치를 환기하는 미적 인식을 제시하며 시적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그는 예술에 천착하는 도공의 정신을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미의식 안으로 잠입하게 합니다.
시인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묘사 자체가 의미가 될 수도 있도록 합니다. ‘붓질’과 ‘무심’이라는 대상은 각각 ‘쓰다듬는’과 ‘하얀’이라는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시적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회적 표현을 사용, 언술에 사유를 내재할 수 있도록 했다는 면에서 김용권 시인은 정말 탁월한 시인인 거죠. 저는 이렇게 시를 잘 쓰는 멋진 시인이 제 곁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도공의 내면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도공을 둘러싼 삶의 느낌을 색깔과 문양으로 적확하게 표현하여 표달시켰다는 점에서 첫 시로써 손색이 없으며, 특히 묘사 중심의 시에 진술을 개입시켜 시적 사유를 확장시키고, 진술이 감각적 이미지를 갖게 하는 김용권의 시적 기교는 시적 사유를 깊게 하는 김용권 시의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절문이근사, 즉 절절하게 원하면, 가까운 곳에서 귀인이나 귀품이 나타난다는 것은 김용권과 김용권 시인의 시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시는 씨알의 소리여야 한다’고 언명해왔습니다. 시는 보이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감추어진 것, 숨어있는 비의까지 드러내어야 할 것입니다. 형상화를 넘어서서 창조적 발상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보는 것으로 발상의 차원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김용건 시인의 시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개인을 확장한 공동체적 물음에 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몰의 허기를 짚고
섬은 돌아 눕는다
선창가 포장집에서
그물에 걸린 초승달을 건져
소금에 찍어 먹는다
태어날 때 모습이 저러했던가
구름을 뿌린 불판에서
어미 뱃속에 웅크린 내가 보이고
핏덩이를 집어 올리는 아비 모습이 보인다
어쩌면 모두 등 굽은 새우 같은
한잎 베어 물면 물컹 씹히는
붉고 푸른 바다의 곡옥 같다는 생각,
섬이 기울어 달이 기운다
홀쭉해진 파도에
생살이 차오르면 묶인 바다를 풀어
줄배를 밀고 가야 한다
서산에 달이 들면 간월도는
무지 큰, 울음 독 같은
방조제에 갇혀 운다
김용권의 <간월도> 전문 -
P.48<간월도>는 절창입니다. 현대시의 기법 중 하나인 중층 묘사가 잘 구사된 시입니다. 묘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시입니다. 특히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묘사 자체가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일몰의 허기’‘그물에 걸린 초승달’ ‘구름에 뿌린 불판’ ‘붉고 푸른 바다의 곡옥’ ‘홀쭉해진 파도’‘묶인 바다’ ‘울음 독 같은 방조제’ 등의 어구는 대상어인 명사는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시적 의미를 부여받는 것입니다. 이런 형상화 기법은 대상을 인격화하는 것으로 사물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시를 시답게 하는 의인화 수법이기도 합니다. 자아와 세계의 새로운 합일된 통일체를 추구하는 것이 시적 한 지향이라고 보면, 시인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 방조제에 갇혀 척박하게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아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시의 쾌미는 결구, ‘서산에 달이 들면 간월도는 무지 큰, 울음 독 같은 방조제에 갇혀 운다’라는 구절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의인화입니다. 간월도는 사물입니다. 정서나 정각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인공구조물에 갇혀 섬이 된 섬의 슬픈 운명이 울음으로 전이되어 나타납니다. 간월도는 ‘울음’이 ‘독’으로 전이되고, 이것은 또한 변이되어 ‘사람’ 자체로, 그리고 ‘방조제’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지배적 심상으로 환치, 마지막을 화룡점정의 시학으로 완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섬이 기울어 달이 기운다’는 역설의 의미도 기가 찹니다. 표현 자체의 모순을 통해 나아가 그 모순 상황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넘어서 보다 높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진술은 시인의 인간적 진실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태어날 때부터 저러했던가’라는 탄식도 짓궂은 운명에 대한 항거라 하겠습니다. 두 구절 모두 기술문명이 빚은 아이러니로 현대적 특성인 단절과 소외가 갖는 상실의 아픔을 노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물을 사람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얻는 시적 효과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전체적인 이미지에 녹아있는 저항정신입니다. 시인은 간척사업으로 어장을 잃어버린 어민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전하면서 공동주체로서 타자철학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과학문명의 발달, 실증주의에 의해 삶이 위기에 처한 현실을 시인은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 전체가 하나의 개인적 상징으로서 하나의 압축된 서사로서 간원도 주민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환기하면서 문명 비판과 실증주의를 정조준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러 정황, 기법적 차원에서, 작가정신의 측면에서, 김용건 시는 '정서'를 낯설게 만들고, 우리의 미적 '사유'를 새롭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좋은 시가 분명합니다. 새로운 실천, 새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김용권 시의 새로운 사유 그리고 정서와 맞부딪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간과되어온 김용건 시의 힘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분의 시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행동으로 밀고 나갈 '정서의 힘'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라도 차원이 다릅니다. 김연필 시인이 시평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용권 시는 전달차단성, 즉 시적 의미의 지연을 통해 시적 긴장을 끌어와서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좋은 시입니다. 다시 말해 사유를 지연시킨다는 점이 김용권의 시적 성취를 높여주는 강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김용권 시인의 시 모두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역설합니다. 그의 시집 <무척>을 읽어낸다는 것은, 그 숨겨진 의미를 우리 사회의 현실과 비교하며 차근차근 이해해나가는 것입니다. 시의 강을 큰 호흡으로 횡단하며 시인의 고뇌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은 시가 주는 촉촉한 감동에 젖어 들게 될 것입니다. 삶과 유리된 예술은 삶을 해칩니다.‘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은 결코 삶의 질을 높이지 않습니다. 인간행위의 모든 산물은 삶과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보편적인 미적 감각을 남다르게 받아들여 미학적 고려와 함께 일정한 구조에 담아내는 것입니다. 현실인식이나 체험에 따른 내용이 미학적 장치를 통해 그의 시에 반영되고 있어, 그의 시정신은 현실의 재현하려는 노력에 근거하고, 한 개인의 내면 속에 녹아 있어 타인과의 공유욕구를 불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하겠습니다.
III. 로그아웃
[예술이 진실하려면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화해적이고 적대적이며 분열된 파편들의 모습으로 드러내야 한다. 다른 한편 그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예술은 그렇게 갈가리 찢겨진 것들을 비폭력적인 구성으로 다시 종합함으로써 현실을 화해의 빛 속에 드러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예술은 비화해적인 것을 증언해야 하며 그것을 화해시키려는 경향을 가져야만 한다.] [예술은 현실의 단편을 받아들이고, 이 단편들을 별자리처럼 구성함으로써 거기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이로써 예술 속에선 ‘존재하는 것’에 대한 탄핵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가 서로 결합된다. 단편들의 별자리가 폭발할 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불꽃처럼 순간적, 찰나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김용권은 위에서 말한 아도르노의 시론을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런 시정신 위에서 그의 시는 단지 미적 가상에만 머물지 않고 상상적 가상으로 승화됩니다. ‘아직 있지 않은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비판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비판 기능은 미적 가상으로서의 예술이 상상적 가상으로 승화되는 지점에서 필수적입니다. 김용권 시인은 이 무서운 디스토피아를 극복할 실마리를 <무척>에서, 그리고 ‘부사적으로 세상보기’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의 시, 세상의 현상학이 말해주듯이 그는 늘 타자와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를 통해 말합니다. 근대의 오만한 인간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인간은 우주의 주인이며, 따라서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시적인 순간의 삶이 가장 섬세한 언어로, 그에 합당한 새로운 언어로 드러나고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언어예술로서의 시라고 하겠습니다.
▲권대근 약력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수필가
대한민국 수필학 대한명인(제15-436호)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편찬위원장
국제PEN클럽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장
한국바다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대상 수상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외 14권
헌)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