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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겔35)
찬송 : 큰 길을 만드시는 분(Way maker)
성경 : 겔16:1-14절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오늘은 ‘큰 길을 만드시는 분’이란 찬양으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자막으로 보이는 글씨를 따라가며 부르는 찬양임에도 은혜가 된다. 제목 그대로 어떤 곳에서도 길을 만드시며 찾아오시고 우리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능력을 찬양한다. 이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에는 두 번이나 반복된 아주 강력한 하나님의 외침이 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긴 에스겔 16장에 전반부에 나오는 이 외침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본문은 예루살렘의 과거의 삶과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신 신부가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먼저 예루살렘의 과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3절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예루살렘의 근본과 난 땅이 가나안이라고 한다. 이 말에 대해 학자들에게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전체 본문의 내용을 통해 보면 이 말은 원래 예루살렘 성읍이 가나안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읍이 이방인에게 속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다윗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게 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은 이스라엘의 처음의 모습을 7가지로 기록하고 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전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4-5절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아무도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선택된 이스라엘의 원래 모습을 7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않았고, 소금을 뿌리지 않았고, 강보에 싸지 않았다. 거기에 불쌍히 여기는 자가 없고, 천하게 여겨졌으며, 들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으로 출생한 아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이란 말이다.
탯줄도 끊어지지 않았고, 물로 피투성이가 된 몸을 씻어주는 사람도 없고, 팔레스타인의 관습인 소금을 뿌리지도 않고 강보에 싸서 보호받지도 못했으며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천하게 여겨 버려진 존재였던 이스라엘
한 마디로 은혜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리라. 이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다고 6-14절에 걸쳐 길게 말씀하신다. 그 중에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나온다. 6-7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피투성이가 되어 발버둥치는 것을 보시고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하시면서 살려 주시고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셨다고 한다. 마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처럼 예루살렘으로 살아 있으라 하시니 그 힘을 입어서 살게 되었고 더 나아가 들의 풀같이 성장하고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레루야!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고 버려져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아 죽어야 당연한 존재였는데 하나님은 그런 예루살렘을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명하여 주심으로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빛이 있으라를 두 번이나 하지 않아도 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두 번이나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매우 큰 울림으로 들려지는 아침이다.
6절의 말씀을 쉬운성경으로 다시 한 번 묵상해 본다.
‘그 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버둥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너는 살아야 돼! 반드시 살아나야 해!’라고 소리질렀다.‘
그렇게 모두가 외면한 피투성이고, 누구도 씻어주지 않았고 보호해 주지도 않았던,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완전한 버림속에 있는 그에게 하나님은 그 곁을 지나가시며 보시고 두 번이나 반복하며 너는 살아야 한다고 그 위대한 능력으로 외쳐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그리고 더 놀랍게도 하나님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신 후에 당신의 옷을 입혀 당신과 언약을 맺어 신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라는 말은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달라고 한 것이 청혼이듯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아내로 택하셨다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버려져 죽어야 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당신의 소중한 신부로 맞아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부를 신부답게 단장해 주시는 장면이 나오고 놀랍게도 예루살렘의 신분을 왕후의 지위에 올려주셨다고 한다. 9-13절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이스라엘이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이전에는 민족이라고 할 만한 숫자도 구성하고 있지 못했고, 국가를 구성할 만한 땅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그 초기에 그 어떤 이방 나라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하고 힘이 없고 연약했다. 모든 민족중에 가장 작았으며, 노예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죽어야 마땅한 백성을 살아 있으라 명하셔서 힘을 주시고 이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셔서 왕후의 지위까지 얻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7가지로 버려진 이스라엘을 12가지로 회복시키는 과정이 너무도 감동스럽다. 첫 번째,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둘째로 기름을 바르고, 셋째로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넷째로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다섯째로 가는 베로 두르고, 여섯 번째 모시로 덧입히고, 일곱 번째 패물을 채우고, 여덟 번째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아홉 번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열 번째 코고리를 코에 달고, 열한 번째 귀고리를 귀에 달고, 열두 번째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
7가지로 버려진 이들을 치료하고 회복하시기 위해 무려 12가지의 회복코스를 만들어 그를 완전한 왕후로 회복시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내게 감동으로 전해진다. 어떤 상황에도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적의 하나님,
이런 전능하신 능력과 은혜를 힘입은 결과를 이렇게 말씀한다. 14절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할렐루야!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그들의 명성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온 세상에 떨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영원한 반려자로 삼으심으로 천지의 대주재 되신 하나님의 왕비가 되게 하셨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주변에 명성을 떨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물론 본문의 말씀은 이후에 변질된 이스라엘의 현실과 그 심판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크신 능력으로 우리 삶을 회복시키시는지를 묵상하게 된다.
주일을 준비하는 날, 주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버려진 한 인생의 삶을 회복시키심을 보게 하신다. 바로 내 인생을 그렇게 하나님은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도저히 회복불능의 삶이었지만, 피투성이처럼 버려진 나를 하나님은 그래도 살아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오늘 이 복된 사명을 가지고 작은교회를 향해 나를 살리신 이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두 번이나 반복하시며 들려주시는 이 음성이 나를 통해 작은교회와 사역자들에게 또 오늘 이 땅에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 절망하고 힘겨운 세대 모두에게 들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울러 지금도 병상에서 암과 다양한 질고들로 고통하는 이들에게 이 음성을 들려주라고 하신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주님, 감사드립니다.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Way Maker) 찬양합니다. 오늘도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버려진 작은교회들과 사역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버려진 저를 살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종이 이 자리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는 이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 살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불가능한 길을 만드시며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이 길을 담대히 걸어가겠습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