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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싸웠지만 진실은 어디에 |
■ 지난해 청와대 앞 분신자살 기도 김기종 씨 "우리마당 습격사건 실체 꼭 밝힐것" |
include "/home/jnilbo/public_html/banner_include.php3"; ?>"20년을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 많던 인권 변호사님들,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재야 민족문화단체인 '우리마당'을 이끌어 온 김기종(48ㆍ사진)씨. 그가 지난 해 10월19일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 기도 후 고향인 광주로 내려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11일 광주 북구 삼성병원에서 힘겹게 투병중인 김씨를 만나 왜 분신을 해야만 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진실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1988년 '우리마당'은 서울 올림픽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통일문화큰잔치(위원장 고 문익환 목사)'를 기획했었죠. 하지만 통일잔치를 며칠 앞둔 그해 8월17일 새벽에 4명의 정체불명 사내로부터 피습을 당했습니다. 이때 두 명의 남직원이 각목으로 집단구타를 당하고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른바 '우리마당 습격사건'이다.
사건 당시 평민당 등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국가가 개입된 조직적 범죄'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수사기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 현재까지 사건 전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기무사(옛 보안사)가 명칭을 바꾼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당시 보안사가 정보사와 함께 각종 정치테러를 일삼으면서 '우리마당 습격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겁니다. 표면으로 드러나면 문제가 커지니까 아예 덮어버릴 목적으로요."
이후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그는 또 하나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당시 변호사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료 변론을 자청, 인연을 맺었다. 80년대 말 '우리마당'이 주최한 법률교실의 강사로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초청되면서 안면을 텄고 그 인연으로 무료변론을 맡게 된 것.
그러나 이후에도 피습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김씨는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해 8월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김씨는 급기야 분신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시너를 들고 청와대로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 속옷을 휘발유에 적셔 입고 겉옷을 두른 채 그 자리에서 불을 붙였습니다. 근처에 있던 의경이 급히 달려와 소화기로 불을 꺼 목숨은 건졌는데 마음은 편칠 않았습니다. 제 죽음이 진실 규명의 촉매제가 되길 바랐는데…."
이후 김씨는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올 2월께 광주로 내려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이유는 고향의 부모님 때문. "부모님이 북구 삼각동에 사시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로 문병오시는 게 죄스러웠어요. 나름대로 사회 정의를 올바로 세우는 데 청춘을 다 바쳤다고 자부하지만, 장가도 못간 자식이라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혔죠. 이젠 부모님 가까이서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피습사건에 대한 실체를 밝혀내겠다는 그의 각오는 여전했다.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질 그 날까지 전 싸울겁니다." 김씨는 다시한번 의지를 밝혔다.
오해준 기자 hcoh@jnilbo.com
'우리마당' = 1982년 서울 신촌에서 시작된 민족민중문화단체로 수많은 시국 사건과 시위가 이곳에서 준비됐다. 유홍준, 임진택씨 등의 강의와 판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고 이한열군의 장례식을 준비하기도 했던 이곳은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의 산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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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서울구치소에 계신 김기종동문을 서강석민동회장님과 면회를 다녀 왔습니다. 만나자마자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을 부탁하네요... 8월3일 국회에서 하기로 한 행사 등등... 사무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아봐서 도와드리겠다고 하였지요. 독도수호 단체나 네티즌들이 일부 면회를 오셨다고도 합니다. 투석사건은 우발적인 것이라고 하시고, 그날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상징하는 의미로 콘크리트 덩이를 오른쪽과 왼쪽주머니에 넣어가셨다가 질문을 가로막자 던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
아직도 분신의 휴유증이 있어 혼거방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독방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변호사와 상의하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도 하였습니다. 현재 박찬종변호사와 황상현변호사(83법학)가 변호업무를 보고 있어서 오후에 황상현변호사가 접견을 가도록 연락을 하였는데,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민동에서 영치금 10만원을 넣어드리고 왔습니다. 면회를 가실려면, 우선 1544-1155번으로 전화하셔서 가능 여부를 알아보시고 예약을 하신 뒤 가시면 훨씬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김기종동문 수번은 2227번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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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박연차씨 변호인 나서 화제
2010072100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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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당 김기종 선배가 일본대사에게 돌을 던졌다. 그저 몇 차례 면식이나 있고 인사 정도만 나누던 사람에게 선배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것은 어찌됐든 문화운동판의 선배라는 생각이 있어서다.
이 분은 예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토론회 등을 열면 어느 주제든 간에 꼬박꼬박 출석해 과도한 질의로 참가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일부 수긍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곤 할 수 없었지만, 대개는 과도한 민족주의와 세월을 인내한 고집이 뒤엉킨 이해하기 어려운 장광설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어 자연스레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신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마당 피습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몸에 불을 그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다.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절박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주는 아득한 거리감. 그건 모종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저 사람을 전혀 모르는 것과 같았다는 씁쓸함. 목숨과 맞바꾸더라도 진상을 밝혀야겠다는 그 간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절함이 절절하게 와닿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이 토해내게 만드는 한숨. 일부 문화예술단체에서 모금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왠지 선뜻 나서 함께 할 맘이 생기지 않았다.(다시 생각해 보면 반성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우리마당 메일링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상당히 위중했던 지경까지 갔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회복이 빨랐던 모양이다. 그러다, 어제 신문기사에 다시 그의 이름이 나왔다. 독도지킴이 대장 김기종으로. 시게이에 도시노리 일본대사가 강연을 하는 도중, 독도와 관련된 편지를 전달하겠다고 나서 돌을 던졌단다.
또 다시, 비슷한 막막함. 속절없는 안타까움이 엄습한다. 아마도 그가 지금 인터넷 댓글에서 떠도는 것처럼 초딩들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얄팍한 맘에서 이번 일을 벌인 것은 아니리라. 최소한 그런 종류의 소영웅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닐거라 생각해 본다. 역시 그 나름의 절박감이 그런 방식으로 드러난 것일텐데. 어쩔 것인가. 도무지 와닿지 않는 그의 외롭고 아귀가 맞지 않는 싸움을.
독도 지킴이 김기종은 왜 독도를 던지게 되었는가?
지난 7월8일 프레스 센타에서 일본대사 면전에 돌맹를 던저 구속 수감중인 독도 지킴이 김기종님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 무더운 날씨에 감옥살이가 고통스러울 터인데도 껄껄 웃으며 피서왔다고 말하는 김기종님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게된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며 자신의 의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부탁 하였습니다.
김기종님은 국치 백년을 맞아 독도 문제등 여러가지 사안을 수 차레 서면으로 일본 대사에게 질의 하였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7월8일 프레스 센타에서 시게이 일본대사의 강연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일본의 독도 침탈에 항의하는 의미로 오른쪽 주머니에 동도, 왼쪽 주머니에 서도를 상징하는 작은 돌맹이 두개를 소지하고 강연에 참석하여 강연을 듣던 중 시게이 일본대사의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일이 공동으로 대응 하자는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질의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에 첫번째 질의자로 선정된 김기종님은 "일본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무었을 했느냐" "북한을 제외한 한일 공동대응으로 동북아 평화가 이뤄질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중 주최측이 강제로 마이크를 빼앗자 "독도 가저가라" 소리치며 독도를 상징하는 동도와 서도를 단상에 던지는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김기종님의 말씀은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으며, 일본의 독도 자국영토 표기로 시작된 독도 침탈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독도를 상징하는 동도와 서도 돌맹이를 던젔다고 합니다.
김기종님이 일본대사를 향해 던진 작은 돌맹이는 그냥 돌맹이가 아니고, 독도지킴이가 가지고 있는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한 가슴속의 분노였습니다.
무더운 삼복 더위를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김기종님께 힘찬 응원 바랍니다
[반민특위 엎어님의 글을 추가 합니다.]
독도지킴이! 애국자 김기종님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셨습니다. 면회와 서신으로 응원바랍니다. 애국자 김기종을 석방하라!
안티MB 초심님과 일본대사관 망할넘에게 시멘트 부스러기 던졌다고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김기종님 면회다녀왔습니다.~
찾아오는 분이 없으신것 같고, 단절된 공간에 갑지기 가두어지셔서인지 조금 안정감을 갖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애국자 ! 독도지킴이! 애국자 김기종님께 면회와 서신으로 많은이들이 응원하고 있음을 전해졌으면 합니다.
동북아평화하자던 일본대사의 발언 속내.... 남,북 관계의 이간질을 통한 남한에서의 일본장악력을 높히기 위한 왜놈들의 간계가 더욱 분노스러웠던 것...
뉴스에도 나왔듯이 독도관련 항의와 질의를 왜놈대사관넘에게 수십번을 하였으나 , 말한마디 답변 하나 없는 일대사관의 행정적 불성실과 무시하는 태도에 대한 항의도 있었으려니와..
또한가지 알려지지않은 것은 삼성이 주최한 동북아 평화를 주제로 한 학자중심이던 세미나에 일본대시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발언하였고,
발언 내용도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주도하자는 내용, 그 이면의 팩트는 북을 배재한 일본과 한국의 관계의질을 높히는것.
결국 남힌에 대한 일본의 장악력을 더욱 높히고, 북을 고립시키며 남북공조를 배제한 채 남한을 일본화한 정치경제권력으로 동북아에 데뷔시키겠다는 속내가 보이는 발언으로...
일본대사가 공분을 샀고, 김기종씨는 이 발언에 대한 항의 질문을 하던중 발언 중간에 저지를 당하였으며,
이에 그간의 울분과 분노로 평소 주머닝 가지고 다니던, 동도, 서도를 상징하는 독도 시멘트 모형을 우발적으로 집어던졌다고 당시 정황을 알려주셨습니다.
단순히 독도문제만이 아니라, 남,북 관계의 이간질을 통한 남한에서의 일본장악력을 높히기 위한 왜놈들의 간계가 더욱 분노스러웠던 것이지요.
(잘알려진바와 같이 97년 IMF이후 사채시장 , 금융자본 일본자금 싹쓸이한 상황과 아키히로 정권이 남한을 잡은 이후 정치, 군사, 문화적 잠식이 보여주듯 ... -담담당당님의 글을 참조)
찾으시는 분이 거의 없으십니다. 애국자 ! 독도지킴이! 애국자 김기종님께 면회와 서신으로 많은이들이 응원하고 있음을 전해졌으면 합니다.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2227번 : 김기종
예약 전화번호 : 031-423-6100 연결후 0번 또는 9번 교통편 : 전철 4호선 인덕원역 3번출구로 나와서 5번,6번 버스타고 3정거장 서울구치소앞
뻘소리 강연하던 日대사에 시멘트 뭉치 던져... 독도 지킴이 김기종을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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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와 통일을 사칭하며, 당국의 음모에 타협과 협잡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십시요" - 김기종 대표의 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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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외로운길을 가지만 뜻깊은 의인인지라 영웅이라 봅니다~~몸은 던져 그뜻을 펼치심에 깊은 존경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