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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갈 때마다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다. 약도 받고 간단한 설명도 들었는데 왜일까? 아마도 내가 먹을 약, 해당 질병, 건강관리 등에 대해 약사와 좀 더 깊이 대화하고 조언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터라 약국 이용자들의 아쉬움을 해소하고 약국 만족도를 더 높일 방안을 모색해 보면 좋겠다.
약사사회가 제안하는 약국의 미래를 위한 방향들 ― 환자 돌봄, 상담 서비스, 의사소통 강화 등 ― 과 연동해서 말이다. 기저에 흐르는 공통점은 조제와 판매를 넘어서는 약국의 역할을 고민하자는 것.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방향에 대한 구호만 외치기보다는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 방법을 논의하고 제시해서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단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복약상담하고 더 충실히 약물관리를 해서 환자를 안전하게 돌보자고 파이팅을 외치며 다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질 리는 없지 않는가? 실현 가능하게 할 여건 ―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 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약국의 하드웨어로서의 공간 문제를 말해 보려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세상 흐름도 국민 기대치도 참 많이 변했건만, 약국 공간은 ― 인테리어가 조금 깔끔하고 세련되어진 거 말고는 ―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작 바뀌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약국 내에 조제실과 상품 진열대만 둘 게 아니라 환자를 상담할 별도 공간을 두자고 제안한다. 우리 스스로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상담 공간은 바로 그 전문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상담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약사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약사의 가치가 흔들릴수록 기본부터 다시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약사의 가치는 국민의 신뢰만큼 인정된다고 본다. 약사 전문성이 국민의 신뢰로 귀결되는 과정의 중간에는 약사의 지식 기반 서비스 제공이라는 행위가 존재한다. 무형의 약사 서비스가 효율적으로 환자에게 전달되려면 그에 최적화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란 약사와 환자가 기밀 유지 조건에서 서로 편안히 대화할 수 있는 상담 공간을 말하며, 정확하고 안전한 복약을 위한 메시지를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양질의 맞춤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여 높은 환자 만족도를 담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물리적 조건이다. 국제적으로 1990년대 이후 약국 내 상담 공간의 필요성이 제안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 WHO와 FIP가 공동 발간한 Good Pharmacy Practice에서는 모든 약국에 고객과 비밀스러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약국 내 약사-환자간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인들 ― 대화에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 소음, 대화를 망설이게 하는 제3자의 눈과 귀, 대화하기 불편한 분위기 등 ― 을 최소화할 환경을 조성하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 약국에서는 개방된 카운터에서 복약지도를 하고 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다른 손님들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약사의 복약지도 내용을 대충 듣고 약사에게 뭔가를 묻기도 쉽지 않다. 심층적이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간 약국 공간에 대해 연구해 왔다. 첫 번째 연구(2020)에서는 현직 약사들 중 절반 이상이 약국 내 상담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향후 약국 내에 상담 공간을 마련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연구(2025)에서는, 약국 방문 환자를 대상으로 약국 내 칸막이로 분리한 공간(반폐쇄형 공간)에서 복약지도를 했을 때 일반카운터(개방형 공간)보다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조사했다. 후자의 연구는 별도 상담 공간에서 직접 환자 복약지도를 해야 하는 선 실험 연구였기 때문에 약국 내 카운터 한쪽 끝에 불투명 아크릴 재질의 수직형 간이 분리대를 세워 임시 상담 공간을 만들었다. 반폐쇄형 상담 공간에서 환자당 평균 약 3~5분간 복약지도를 하고 환자 특성에 따라 의약 및 건강 정보 등을 제공하고 상담했다.
연구에 참여한 총 133명의 환자 중 개방형 공간보다 반폐쇄형 공간에서의 복약지도가 전반적으로 좋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91.8%였다(훨씬 좋다 67.7%, 좋다 24.1%). 세부 항목별 긍정적 응답은 약사와의 대화 집중도(95.5%), 복약지도의 내용 전달(94.0%), 상담하기 편안한 분위기(95.5%), 이해 안 되거나 걱정되는 것의 질문(93.2%), 비밀스러운 대화(91.0%),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다는 점(85.7%)이었다.
연구를 통해 그동안 약사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약국 공간 측면의 불충족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됐고, 칸막이 분리만으로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향후에도 분리 공간에서 상담받고 싶다는 환자 비율도 높았다(매우 희망 59.4%, 희망 27.1%). 종합해 볼 때, 약국 내에 상담 공간을 두는 방향으로 나아갈 이유는 확보됐다.
그간 우리나라 환자들의 약사상담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고(34.0%), 그 이유로는 상담시간 부족이 가장 많지만(51.2%)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었다(11.1%).3) 별도 상담 공간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 상황도 비슷해서 일부 국가는 제도적으로 상담 공간을 두도록 요구하고 있고, 상담 공간 형태는 완전 폐쇄형도 있지만 사람 키높이 칸막이로 분리한 공간에서 복약지도를 하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상담 공간 설계 지침을 보면, 환자 프라이버시 보호와 접근성 및 안전성 보장을 위해 시각적 및 청각적으로 차단하고, 조제실과 인접한 별도 구역을 지정하고, 휠체어 이용자 등 다양한 환자 특성을 고려하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 보건복지부가 개발한 약국약제업무관리지침(안)에 다른 내방자의 방해를 받거나 상담 내용이 공개되지 않도록 분리 또는 구획된 상담 공간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지침이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상담 공간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의 동향과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들 ― 약국 내 서비스 제공 주체인 약사들이 상담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약국 내 서비스 수혜자인 환자들도 상담 공간에 크게 만족함 ― 을 근거로, 약국 내 상담 공간을 마련하자는 캠페인을 바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다.
더불어 우리 현실에 맞는 공간 디자인(배치, 크기, 설비 등)도 고민해야 하는데 단지 멋진 인테리어가 아니라 환자 눈높이에서 자신의 아픔을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되는 디자인이면 좋겠다. 그 공간, 즉 무형의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형의 상담 공간이 주는 이미지는 약국에서 환자가 받는 서비스의 전문성을 돋보이게 하고 동시에 환자가 많이 배려받는다고 느껴지는 것이면 좋겠다.
하다못해 시중은행만 가도 창구마다 개별 칸막이가 있고 편하게 앉을 의자가 비치되어 있거늘, 전문가인 약사가 상주하며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약국이 그냥 바코드 찍고 계산하는 24시간 편의점과 흡사해 보이는 공간 디자인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새로운 약국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약국을 단지 약을 조제하고 파는 장소 이상의 공간으로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을 현실 약국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경험하게 한다면 약국은 분명 다시 찾고 싶은 곳, 그곳의 약사는 분명 나의 주치 약사로 삼고 싶은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우리, 그렇게 만들어 보자.
참고문헌
1) 이해윤, 한혜성, 손현순. 지역약국 약사의 복약지도 현황 및 상담공간에 대한 인식. 약학회지 2020;64(4):299-306.
2) 전성률, 이은주, 손현순. 지역약국 내 칸막이로 분리된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환자만족도. 약학회지 2025;69(5):454-463.
3) Yang S, Kim D, Choi HJ, Chang MJ. A comparison of patients’ and pharmacists’ satisfaction with medication counseling provided by community pharmacies: a cross-sectional survey. BMC Health Serv Res 2016;16:131.
4) 약사공론. 환자 사생활 지키는 복약상담 칸막이. 2007.1.10. https://www.kpanews.co.kr/article/show.asp?category=B&idx=90434. (2026.2.15.)
5) Good pharmacy practice - Patient consultation areas. Irish Pharmacy Union. May 2023. https://ipu.ie/ipu-review-article/good-pharmacy-practice-patient-consultation-areas/. (2026.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