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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규격방 스크랩 비제 (Georges Bizet)의 오페라 `칼멘` Carmen
무어 추천 0 조회 0 17.02.20 22: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비제 Georges Bizet


 

본명은 Alexandre Cesar-Leopold Bizet.
1838. 10. 25 프랑스 파리~1875. 6. 3 파리 근처 부지발.

프랑스의 작곡가.


오페라 〈카르멘 Carmen〉(1875)으로 잘 알려졌다.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19세기말 베리스모 오페라에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성악 선생이었고, 어머니는 재능있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다. 이들은 비제의 재능을 어려서부터 정확하게 파악하여 10세가 되기도 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시켰다. 뛰어난 작곡가였던 샤를 구노와 프로망탈 알레비 등에게 배웠고, 어린 나이부터 상을 타기 시작하여 1857년 마침내 〈클로비스와 클로틸드 Clovis et Clotilde〉로 로마 대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정부로부터 5년간 장학금을 받았고, 프랑스 아카데미가 보내주는 2년간의 유학길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보인 그의 재능은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첫 극음악 작품인 1막짜리 오페레타 〈기적 박사 Le Docteur miracle〉(1857, 파리 초연)는 당대의 오페레타 어법에 통달한 세련된 작품이다. 1855년에 작곡된 교향곡 C장조는 곧 분실되어 1935년이 되어서야 초연되었다. 그가 17세에 쓴 이 작품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이 같은 나이에 쓴 작품들과 쉽게 비견될 만하다. 이 작품은 흔히 흐르는 듯 재치가 넘치는 대위법과 관현악 기법, 빈의 고전주의 양식과 프랑스적 선율의 절묘한 결합 등이 특징인데, 비제의 작품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자신의 재능뿐 아니라 자칫 빠지기 쉬운 허점까지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로마에서 "나는 세련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곡을 쓰기 전에 아이디어를 갖고 싶지만 파리에서의 작품들은 그렇지가 못했다"라고 썼다. 로마에서 그는 로베르트 슈만, 카를 마리아 폰 베버, 펠릭스 멘델스존, 샤를 구노 등에게 배웠으며, 당시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의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의 찬양자들은 그를 독일적인 작곡가로 생각했다. 독일에서 3년을 보내기로 했으나 그는 대신 로마에 계속 머무르기로 작정했다. 로마에서 받은 인상들을 가지고 그는 결국 교향곡 2번 C장조 〈로마 Roma〉를 작곡했다(1869 초연). 당시에 쓴 이탈리아어 가사에 의한 오페라 〈돈 프로코피오 Don Procopio〉에서는 도니체티 양식의 영향을 보여주었고, 〈바스코 드 가마 Vasco de Gama〉는 주로 구노와 마이어베어의 작품 양식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1860년 가을 친구 에르네스트 기로(The Pearl Fishers(비제가 죽은 뒤 그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음)와 함께 파리로 돌아왔다. 비제 자신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인생관이 성숙되지 않은 면이 있었고(특히 여성에 대한 태도에 젊은이다운 냉소적인 구석이 있었음), 자신이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 아닌 외면적 달콤함을 좋아한다는 데 대한 예술가적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또한 동시대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를 찬미하고 이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으며, 통찰력과 신념을 갖춘 진정한 낭만주의 작곡가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찼다(그는 결국 이러한 열망을 완전히 성취하지는 못했음). 1866년 10월 친구이자 제자였던 에드몽 갈라베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떻게든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고 썼다.

 

사실 그는 당시 지배적 사조였던 실증주의 철학의 회의적·물질적 태도로 줄곧 고통받았다. 그가 자신의 지성과 감정을 서로 화해시키지 못하고 계획한 많은 오페라 작품들을 결국 완성하지 못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인물됨은 당시 프랑스 오페라 청중들의 요구대로 극(劇)을 쓰기에는 종종 부적합한 경우가 많았다. 파리로 돌아와 완성한 첫 오페라 2편이 허점있는 작품으로 그친 것은 청중의 취미를 너무 많이 의식한 탓이라기보다는 극에 대한 관심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진주잡이 The Pearl Fishers〉(1863 초연), 〈아름다운 퍼드의 아가씨 La Jolie Fille de Perth〉(1867)의 대본들은 한결같이 비제가 장차 드러내게 될 음악적·극적인 잠재력을 유도하기에 부족했다. 〈진주잡이〉의 주된 매력은 동양이라는 이국적 배경과 합창 서법에서 찾을 수 있으나 구노의 오랜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며, 따라서 비제 특유의 서정적 음악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퍼드의 아가씨〉는 월터 스콧 경의 소설에서 형식적 틀만 빌려온 것이지만, 인물의 성격 구현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났고(집시 맵과 '보헤미안의 춤'에서 이미 〈카르멘〉의 특징이 나타남), 야간순찰이나 합창에 의한 음주 장면, 무도회 장면, 여주인공의 광란 등과 같이 이전 오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습적 특징들 조차도 신선하고 우아한 어법으로 구사되어 있어서 당시 프랑스 오페라의 전반적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당시 그는 베를리오즈, 구노, 생 상스, 리스트에 의해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여전히 팔기 위해 작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프랑스에서는 소수의 아주 인기있는 작곡가들만이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음). 감상적이고 쉽사리 싸움에 말려드는 성향에 대한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청년기의 내적 불안과 냉소, 쉽사리 마음이 상하는 성향으로 인해 아직 인생에 대한 성숙한 정서적 태도를 갖추지 못했는데, 그의 이러한 성향은 1869년 6월 3일 오페라 〈유대 여인 La Juive〉(1835)으로 유명한 작곡가 플로망탈 알레비의 딸 주느비예브와 결혼한 뒤 차츰 극복하게 되었다. 약혼한 뒤 결혼하기 전인 1867년 그는 스스로 "나는 나 자신을 정화시키고 있으며, 무언가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으며, '예술가로서나 인간으로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퍼드의 아가씨〉에 대한 악평에 자극받은 그는 '장식음과 거짓으로 일관된 하찮은 무리'들과 결별하고, 대신 그의 음악의 가장 커다란 강점인 2가지 특징, 즉 이국적 분위기의 창조와 극적 진실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이중 첫번째 특징은 1막 오페라 〈자밀레 Djamileh〉(1872)에서, 이 작품은 "기괴함과 기묘함이 리하르트 바그너 음악을 넘어섰다"라고 평가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독창적이었고, 2번째 특징은 알퐁스 도데의 희곡을 가지고 만든 부수음악 〈아를의 여인 L'Arlesienne〉(1872)에서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아를의 여인〉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이전의 그의 음악에는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특징이었다. 같은 해 7월 아들이 태어나 결혼의 행복은 정점에 달했고, 이와 더불어 그는 당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깊이 자극받았으며, 파리 함락 기간 동안에는 국토 방위군으로 복무했다.

 

대작 〈카르멘〉은 전쟁에 참여해 경험한 인간적 성숙과 더불어 젊은 열정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작곡되었다. 〈카르멘〉은 동시대 프랑스 작가 메리메의 소설을 기초로 만든 작품으로, 사실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1875년 초연 당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면서 오페라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오페라는 현란한 지역적 색채와 진솔한 감정이 기술적 화려함, 풍부한 선율과 한데 섞임으로써, 전문 음악가와 일반 청중에게 모두 인기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작품을 바그너의 독일적 음향에 대해 해독제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지중해적' 음향이라 평했다. 그러나 〈카르멘〉이 일으킨 물의는 비제가 급작스럽게 죽고 나서 비로소 열정적인 찬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 '오페라 코미크'의 개념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처럼 낭만주의 시대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두가지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기술적인 차이점은 오페라 코미크가 레시타티브 대신에 대화를 사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와는 달리 원칙적인 차이는 규모와 주제에 관한 것들이다. '오페라 코미크'는 그랜드 오페라만큼 화려하지 않으며, 가수와 악기 주자의 수도 적다. 그리고 쓰여진 음악 어법도 한층 더 단순하다. 줄거리는 그랜드 오페라처럼 거대한 규모의 역사적인 장면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희극이나 약간 무게가 있는 극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세기 초기의 오페라 코미크는 낭만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의 두 종류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작품이 이 두가지 형태의 특징들을 모두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별을 너무 엄격하게 강조할 수는 없다. 주로 줄거리가 낭만적이며, 선율미가 흘러 넘치고, 우아하며, 음악이 감상적인 것은 1825년 파리에서 초연되어 널리 알려진 프랑수와 아드리앵 보엘디외의 <백의의 여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오페라 코미크는 페르디낭 애롤의 <짐파>와 <성직자의 목장>이었다.
더욱 신랄한 파리풍의 양식은 다니엘 프랑수와 에스프리 오베르의 작품에서 명확히 볼 수 있다. 그는 <프라디아볼로>와 다른 많은 오페라 코미크에서 선율이 매우 독창적이며 격조 높은 음악으로 낭만적인 요소와 해학적인 요소를 혼합시켰다. 오페라 코미크가 지니는 재치있고 기지가 충만하고 해학적인 요소들을 강조한 새로운 장르인 '오페라 부프(opera boufe: 18세기의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 opera buffa'와 별개임)'가 1860년대에 파리에서 나타났다. 그 창시자는 자크 오펜바흐였다. 그의 <지옥의 오르페우스(1858)>와 <아름다운 엘레느(1864)>는 이 분야에서의 전형적인 작품들이다. 오펜바흐의 작품은 다른 지역에서 오페라 코미크가 발전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이를테면 영국의 길버트와 설리반의 오페레타 <미카도(1885)>, 그리고 빈 악파의 오페레타에 영향을 끼쳤다. 빈 악파에서 '오페라 부프'를 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작곡가는 요한 슈트라우스였다.
19세기의 오페라 코미크는 특히 선율과 리듬의 자연발생적인 요소들을 통하여 영구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음조직과 화성, 전통적인 형식, 또 믿을 수 없을 만큼 천진난만한 기분 등으로 인해 이런 종류의 음악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낭만주의 시대에 오페라 코미크가 없었다면 그 음악적 풍경은 비참할 만큼 해학성이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오페라 코미크는 이러한 풍경을 비치는 태양의 찬란함 같은 것이다.

 

2. <카르멘>에 관한 이야기 

1. 원작은 프랑스의 작가 메리메의 소설

이 오페라의 원작자인 메리메(1803 - 1870)는 문학 뿐 아니라 신학, 점술, 사학, 고고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서 <카르멘>과 <콜롱바>가 대표작이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담담한 문체로 쓰여진 중편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가이자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메리메가 답사여행기처럼 쓴 것이고 또 소설 중에 상당히 흥미로운 고고학적 고증도 나온다.
메리메의 원작이 출판된 것은 비제가 오페라에 착수하기 보다 26년 전이었고 메리메 자신은 <카르멘>이 초연되기 5년전인 187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자기 작품이 미래에 이렇에 유명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카르멘>의 리브레토를 쓴 앙리 메이약과 뤼도 빅 알레비는 마치 오랫동안 푸치니의 오페라 리브레토를 공동집필한 일리카와 자코사처럼 20년 이상이나 함께 일해온 팀이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대본 집필가였으며 주로 오펜바흐를 위해 대본을 썼었다. 이중 알레비는 비제의 처삼촌이 되고 비제의 스승이었던 프로망탈 알레비의 조카가 되었던 관계로 비제를 도와 오페라가 이루어지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메이약이 주로 담당했던 부분은 대화와 희극적 터치였고 알레비는 노래 부분의 가사를 맡았다.

당시의 프랑스 오페라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고 <카르멘>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페라'로 불리던 파리의 대 오페라하우스와 '오페라 코미크'라고 불리던 오페라하우스는 서로 공연하는 작품의 형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알레비는 비제의 작품을 오페라 코믹에서 공연하기로 예정하고 우선 작곡가가 제시한 소재에서 대중의 반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들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두 리브레티스트들은 '오페라 코미크'에 이상적일 법한 후렴과 운을 맞춘 2행연구들을 제안했고, 비제는 무섭게 화를 내며 거절했기에 끊임없는 수정이 가해졌다. 음악 역시 통상 리허설 동안 상당히 수정하는 습관이 있었던 비제는 <카르멘> 작곡에 있어서 특별히 까다롭게 되어 대폭 손질을 해서 1막과 3막 및 4막의 각 피날레는 여러 번 다시 썼으며, 여러 독창곡들도 수정하거나 다시 쓰는 등 수없는 개정 작업을 했다.
<카르멘>이 초연될 오페라 코미크의 극장장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일을 피하려고 할 것이기에 아래와 같이 타협했다.
첫째, 카르멘의 성격을 부드럽게 만들고 둘째, 순전히 오페라 코미크 형식에 맞는 순결하고 순진한 소녀를 대비시키겠다는 것, 셋째, 집시들과 밀수꾼들을 다소 희극적으로 만들겠다는 것, 마지막으로 죽는 장면은 맨 마지막에야 나올 것이며 '휴일의 태양 아래 환한 곳'에서 전개되리라는 것, 이상이었다. 따라서 원작에는 없는 미카엘라란 호세의 약혼녀와 투우사 에스카미요를 창조했고, 원작에 등장하는 카르멘의 애꾸눈 남편 가르시아가 완전히 삭제되었다. 그 때까지 오페라 코미크의 무대에서 그와같이 난폭한 죽음으로 오페라를 끝맺는 경우가 없었기에 극장장은 주인공이 죽는 것에는 완강히 반대했지만 6개월간의 설득 끝에 허락을 했다고 한다.

 

2. 만족스럽지 못했던 초연

잦은 연기 끝에 1875년 3월 3일,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카르멘>의 지휘는 들로프르가 맡았는데, 초연 날의 관객 가운데는 들리브, 구노를 비롯해서 오펜바흐, 마스네, 알퐁스 도데 알렉상드르 뒤마(피스) 같은 대가들 뿐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음악계와 문단의 저명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리차드 터커가 주연한 <카르멘>)
당시 기록에 의하면 초연 때 제1막은 확실히 굉장한 열광으로 받아들여졌다. 제2막은 미지근한 갈채였고 3막에선 한층 더 적은 박수를 받았으며, 마지막 4막이 끝났을 땐 침묵이었다. 사실상 이 때쯤엔 대다수 관객들이 이미 극장을 떠나고 없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주인공의 타입이 준 충격일 수 있다. 오늘날 이탈리아 베리즈모 오페라에 직접 영향을 준 작품이 <카르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만큼 당시로서는 너무 적나라한 주인공의 모습이 충격을 주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관객의 수가 적었으나 4, 5월에 이르는 동안 조금씩 늘어났으며, 초연 후 석달 만인 6월 쯤이 되었을 때는 37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그리고 새 시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고, 이후 7년간 오페라 코미크의 무대에서는 사라졌지만 대신에 전 유럽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자 1883년 무렵에는 프랑스에서도 다시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작곡가 비제는 초연날 밤 의기소침해서 극장을 떠났는데, 초연일로부터 정확히 3개월 후인 6월 3일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지만 오페라의 실패가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으며 그는 수년 간 너무 과도하게 일해서 건강이 쇠약해져 있었고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와 인후의 농양으로 인한 전색증이 겹친 것이었다.

3. < 병사와 집시 >   
                         - 존 히긴스 - (아바도 지휘의 카르멘 전곡녹음에 있는 해설)

메리메의 소설은 이야기 중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스페인을 여행하던 중, 자명시계를 돈 호세에게 도난당한 박식한 프랑스 고고학자이다. 그는 도둑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요구받자 신사답게 거절했으나, 그 악당, 돈 호세가 다른 범죄들 때문에 교수형을 당하리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스페인인의 성격연구를 위해 그를 만나러 간다. 고고학자가 좋은 여송연을 듬뿍들고 가자, 이에 감복한 호세는 그가 감금되어 내일 사형당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 주었다.
호세의 이야기는 간결했으나 - 40여페이지가 조금넘는 - 솔직하고 담담한 것이었다. 그건 갑자기 여자에게 반해서, 지위, 생계, 그리고 결국은 그 자신의 생명까지 모든 것을 잃는 한 병사의 이야기다. 호세는 아무런 동정도 구하지 않았고 단지 고고학자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팜플로나를 찾아가서 그 마을에 사는 한 착한 여인에게 작은 은메달을 전해줄 것과, 호세가 죽었다는 말만 전하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말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앙리 메이약과 알레비가 비제의 오페라를 위해 대본을 만들 때, 미카엘라의 개성은 바로 이 두 문장을 근거로 창조하였다.
메리메가 젊었을 때인 1830년에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카르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 방문의 표면상의 이유는 몇 개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가 파리에서 주로 간통사건들로 인해 계속 곤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머리를 식히라고 피레네 산맥 너머로 멀리 보낸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후에 백작부인이 된, 몬티호 부인과 만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비록 메리메가 항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계는 순전히 플라토닉한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가 그에게 짚시와 사랑에 빠져 불행해진 젊은 병사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메리메는 이 이야기를 영국의 언어학자이며 작가인 조지 보로우로 인해 스페인에 대한 흥미를 다시 갖게 될 때까지  15년간 간직하고 있었다.
1845년 메리메는 몬티호 백작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르멘을 쓰느라고 8일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보로우에 대해 언급했다. "이 보로우는 '스페인의 성경'이라고 불리우는 매우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장이이고 과격한 신교도인 사실이 애석하군요. "
메리메는 고고학자를 이끌어 들이기 위하여 카르멘에 좀 시들한 서문을 썼고, 2년 후에는 짚시 생활에 대한 사이비 학문적 후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진가와 박진감의 원인은 - 이것은 메리메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 호세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사용한데 있다. 문장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한 프랑스의 비평가는 이 작품을 정확하게도 "문학적 기념비"라고 평했다. 줄거리 또한 강렬하고 생생하다.
비제의 작품이 아닌 메리메의 작품 속에서 호세는 사람 셋을 죽이고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그의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투는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메리메와 동시대인 샤르르 쌩뜨-뵈브는 예리하게도 카르멘을 "스페인 풍으로 다루어진 더 고혹적인 마농 레스꼬"라고 기술했었다.
아베 프레보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이 모두 오페라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이 - 비제만이 카르멘의 오페라화 가능성을 인식한 사람은 아니었다. - 두 사람 작품의 공통점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정열로 인해 파멸하는 남성을 묘사하고 있으며, 둘 다 남성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보면서도 문제의 여성을 작품제목으로 삼고 있다.
제목은 가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마농과 카르멘만이 각각의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데 그리외와 돈 호세는 더하면 더했지 더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비제가 오페라 코믹으로부터 작품 청탁을 받았을 때, 대본작가로 선택된 앙리 메리약과 루도빅 알레비에게 카르멘을 제안했다. 그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의 하나에게 그런 야비한 소설을 - 쌩뜨 뵈브의 표현을 빌면 - 추천하였을 때는 틀림없이 그 결과는 예측했을 것이다.
오페라 코믹의 지배인, 까미유 뒤 로클은 무대위나 무대밖 어디에서도 불쾌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 가족용 극장을 운영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페라 시작 전 또는 진행되는 동안, 훌륭한 집안의 젊은이들이 같은 계층의 젊은 숙녀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그날 저녁 상연되는 오페라는 이들의 기분을 손상시켜서는 안 되었다.
오페라 코믹에서는 여주인공들은 순결했고 남주인공들은 믿음직했다. 그럼에도 비제는 주인공은 단순한 병사에 불과하고 추후 살인자로 변하며, 여주인공은 - 만약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불릴 수 있다면 -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일터에서 동료들과 싸우며, 세빌리아 광장에서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그런 소설을 제안한 것이다.
메이약과 알레비는 수년동안 메리메의 소설로부터 정수를 발췌하느라고 고심하였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극장의 명성과 그 명성을 착실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안이 없었다. 그들은 카르멘 리허설의 가치를 손상시킨 계속적인 소동과 논쟁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했다. 두 사람 다 비제를 위해 일하기로 예정되었을 때, 까다로운 오펜바흐에게 대본을 제공한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고 있던 바쁘고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첫번째 카르멘 역인 가리 - 마르에에 대해 오만하게 "그녀는 메리메의 카르멘을 연기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것을 연기한 것은 아니야"라고 평했었다. (오페라 코믹이 비제의 사후 카르멘을 재공연했을 때, 가리 - 마르에는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나 주역을 맡으러 가지 않았는데, 이는 '메이와 알'의 비평이 주된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이 있었으나, 그들이 비제에게 제공한 대본은 전 프랑스 오페라 중에서 아마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메리메의 작품 중 미미한 단서로부터 미카엘라가 창조된 경위는 이미 언급했었다. 비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는 오페라 코믹의 관중이 보기를 원하는 청순하고 순결한 여인이므로 비제의 보기 괴로운 오페라에 감칠맛을 내기 위해 창조된 인물이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적인 사람이라면 메조와 남성 목소리에 편중되었을 오페라를 소프라노가 중화하고 있다고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카르멘의 변덕스러움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이 인물을 창조해낸 메이약과 알레비의 예리함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카르멘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이다. 그녀는 짚시로 태어났고, 짚시로 죽을 것이다."
메리메의 작품 속에서 카르멘이 호세의 칼에 찔리기 직전, 거의 마지막으로 한말을 메이약과 알레비가 채택하여 제1막의 하바네라에 삽입하였다. 그리고 그 말들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호세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미카엘라의 간청과 나란히 배열됨으로써 더욱 큰 호소력을 갖고 있다.
미카엘라는 호세에게 그가 뿌리와 배경과 사랑하는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카르멘은 이것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윈튼 딘이 비제에 대한 연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카엘라는 "메리메의 작품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으며... 협력자이다." 메이약과 알레비는 한 주요한 인물을 생략함으로써 그들이 창조한 인물이 살아나게 했다. 카르멘의 남편인 애꾸눈 가르시아를, 호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그의 주된 적이 특별히 동정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잘 봐준다고 할지라도 가르시아는 장점이란 하나도 없는 극악 무도한 악당이고, 정말로 진부한 인물이다.
호세는 대본작가들이 제3막의 에스카미요와의 싸움 장면에서 사용한 칼싸움으로 결국 그를 죽여 버린다. 이 구절은 이 오페라 중에서 비제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 오직 한 부분이다. 이 음악은 진부하여 공연시 자주 삭제되지 않으면 적어도 단축된다. 메이약과 알레비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없어도 괜찮고, 미카엘라는 큰 도움이 된다.

메리메의 작품을 위하여 오페라와 오페라 코미크를 위하여 개작한 것이 오랫동안 비평가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첫날 밤 이후에 발견된 필사본은 비제가 보편적으로 메리메의 편에 섰었고 가능한 한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기를 원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설득력있는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항상 작곡자는 영웅으로, 대본작가는 기회주의자로 보아왔었다. 이와 같은 처사는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메이약과 알레비를 공격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비판 대상이 수시로 사용되어 왔다. 그들이 비제에게 세기딜랴 중 각운의 하나로 "튀김"이란 단어를 권했다고 천박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메리메의 작품 중에 있는 말이다. 카르멘이 호세에게 돌아서면서 말하기를, " - 당신이 튀긴 음식이 드시고 싶다면, 트리아나에 있는 릴리아스 파스티아 집으로 오세요." 이 글귀로부터 세기딜랴가 발생된 것이다.
거듭 말하건대, 대본작가들이 한 글귀나 조그만 단서까지도 찾아내어 말을 다듬음으로써 세계적인 유명한 아리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꽃노래가 또 다른 예이다. 호세가 감옥에 갇혀있는 긴 나날동안 어떻게 카르멘이 그에게 던져준 꽃을 보존하고 소중히 간직해 왔는가를 묘사하는 문장은 소설과 오페라가 거의 똑같다.
"난 지금은 말랐지만 아직도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그녀가 내게 던져준 꽃냄새를 맡았다."  - 메리메
"당신이 나에게 던져준 이 꽃... 아직도 달콤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네."  - 메이약과 알레비
메리메가 작품 속의 카르멘이 더욱 거짓말장이이고, 사기꾼일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소설이나 오페라에서 발산하는 매력은 동일히다. 돌연히 짚시여인과 사랑에 빠져 미쳐버렸던 사연을 노래하는 호세는, 지나가는 고고학자에게 왜 다음날 아침에 교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밀하는 사람과 동일한 - 또는 거의 동일한 - 사람이다.

 

3. 줄 거 리

 * 작곡: 비제 (G. Bizet, 1838 - 1875)
 * 대본: 메이약(H. Meilhac)과 알레비(L. Halevy)의 협작(프랑스어)
 * 등장인물: 카르멘 (Carmen  집시)  S, Ms, A
                  돈 호세  (Don Jose  드라곤의 하사관)  T
                  에스카미요  (Escamillo  그의 라이벌로 투우사)  Br
                  프라스키타  (Frasquita) S
                  메르세데스  (Mercedes) S
                  미카엘라  (Micaela  돈 호세를 사랑하는 시골처녀)  S
                  수니가  (Zuniga  드라곤의 대장)  B
                  그 밖의 여공, 마을 사람, 밀수업자, 집시 등
 * 때와 장소: 1820년경 스페인의 세빌라
 * 초연: 1875년 3. 3  파리

 

- 제 1 막 -
유명한
전주곡과 함께 막이 오르면 담배 공장 앞의 광장이 보인다. 한쪽에는 공장 입구가 있고 그 맞은 편에는 위병소가 있다. '광장에서 Sur la Place'라는 합창이 울리는 가운데 시골처녀 미카엘라가 약혼자인 돈 호세를 찾아온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군인들이 그녀에게 희롱을 걸지만 미카엘라는 정숙한 태도를 유지하며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직 호세가 광장에 나타나기만 기다리다가 한참 더 있어야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간다.
이윽고 나팔소리와 함께 교대하는 위병들의 행진이 보인다. 경비 기병대의 대장 수니가와 함께 호세가 등장하고 그는 모랄레스로부터 젊은 아가씨가 만나러 왔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마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공장의 여직공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그 중 입에 커다란 꽃을 문 매혹적인 집시 카르멘이 유혹적인 목소리로 '하바네라 Havanera'를 부르면서 호세에게 추파를 던진다. 이 노래는
'사랑은 자유로운 새 L'amour est oiseau rebelle'라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매우 독특한 음성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때 당신은 날 조심하세요'라고 끝을 맺는다. 그녀는 현혹적인 춤을 추면서 차츰차츰 호세에게 접근한다. 처음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던 그도 카르멘이 매력적인 눈길에 마음을 뺏긴다. 여직공들이 '사랑은 자유롭다'라는 합창을 하며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카르멘은 호세에게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던지고 간다. 그는 장미를 주워들고 그윽한 향기의 아름다운 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 때 미카엘라가 나타나고, 호세는 그 장미꽃을 가슴에 감춘다. 그리고 '어머니의 안부를 전해줘요'라며 오랜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가 보낸 애정어린 용돈과 편지를 전한다. 호세가 편지를 읽는 동안 그녀는 자리를 뜨는데, 편지 속엔 미카엘라와 결혼 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들어있다.
순간 담배공장에서 비명이 울려 나오고, 공장의 여직공들이 뛰어 나온다. 카르멘이 친구와 다투다가 상대의 얼굴을 칼로 상처냈기 때문이다. 수니가는 병사 둘을 딸려서 호세를 공장으로 파견한다. 붙들려 나온 카르멘은 수니가에게 묵비권을 행사하고 수니가는 그녀를 감옥으로 보내도록 명한다. 중위가 위병소에서 구속영장을 쓰는 동안 카르멘은 호세의 감시에 맡겨졌다. 그녀는 호세에게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설득시켜 자신을 도망가게 해달라고 유혹한다. 릴라스의 술집에서의 밀회를 약속하는
'세기딜랴 Seguidilla, Pres des remparts de seville (세빌리아의 성 가까이에서)'
라는 노래를 부르며 호세가 그녀의 포박을 풀어 주도록 간교하게 추파를 던진다.
그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 포승을 느슨하게 해주고, 손이 자유롭게 된 카르멘은 호세에게 감옥으로 호송될 때 그를 넘어뜨리고 도망갈 터이니 실수로 놓치는 척 해달라고 부탁한다. 수니가가 영장을 손에 쥐고 등장하자, 그녀는 호세를 밀어 버리고 깔깔대며 군중 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호세는 직무태만으로 두 달 동안 영창살이를 한다.


- 제 2 막 -

세빌리아 근처의 릴라스 파스티아 술집이다. 호세가 카르멘을 놓쳐버린 때로부터 3개월 후의 어느 날 밤이다.  수니가와 일단의 젊은 장교들이 술을 마시며 즐기는데, 카르멘과 그녀의 친구 프라스키타와 메르메데스를 포함한 집시댄서들이 그들을 위해 춤을 춘다. 대장 수니가가 호세를 감옥에 집어넣고 카르멘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애쓰나, 그녀는 곧 호세가 석방되리나는 사실을 알고서 냉담하게 대한다. 또한 미남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을 유혹하지만 오직 그녀는 '나의 사랑은 돈 호ㅔ세'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이 놀란다. 에스카미요가 '당신의 축배를 내가 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로 시작해서 '투우사를 조심하세요 Couplets du Toreador'라는 후렴구를 갖는 '투우사의 노래'를 부른다.그는 케스터네츠를 딱딱거리며 춤을 추는 카르멘의 야성적인 아름다움에 반하여 후일을 기약한다. 투우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나서 그가 나가자 집시족이며 밀수업자인 레멘다토와 단카이로가 나타난다. 세관원을 유혹하기 위해 카르멘을 끌어들이려 하다가 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호세의 목소리에 놀라서  놀라서 일동은 그늘에 숨는다. 카르멘은 그를 맞으며 무척 기뻐하면서 그를 위해 매혹적인 노래와 춤을 춘다. 호세는 현혹되어 넋이 빠진 모습인데, 그 때 나팔소리가 울린다. 귀대를 명령하는 소리고, 마지못해 그가 일어서자 카르멘이 욕설을 퍼부으며 앙탈을 부린다. 그러자 호세는 예전에 광장에서 그녀가 던져주었던 장미꽃을 꺼내 보이면서 그 유명한 '꽃노래: 그대가 던진 이 꽃은 La fleur que vous m'avez jetee'를 부르며 감옥살이 동안 이 꽃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를 들려준다. 감동한 카르멘이  그에게 밀수업자들의 산악생활이 주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수니가가 카르멘을 찾으러 와서 빨리 귀대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호세가  쉽사리 복종을 하지 않자, 그는 말다툼 끝에 급기야 칼을 뽑아 든다. 카르멘의 고함소리에 밀매업자인 집시들이 달려오고 수니가는 불리함을 느껴 달아난다. 호세는 상관에게 대들었으니 귀대할 수도 없게 되어 밀매업자들과 산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 제 3 막 -
산 속의 한적한 장소로, 밀매업자들이 활기찬 합창을 부르면서 한 사람씩 등장한다. 호세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지만 결코 즐겁지는 않으며 카르멘은 그에게 싫증이 나 있고 그의 심한 질투는 카르멘과 동료들의 화를 돋운다. 후라스키타와 메르세데스가 카드놀이 점을 치기 시작한다. 카르멘도 거기에 끼어 드는데 죽을 점만 나온다. 그녀는 죽음을 예고하는 스페이드 에이스를 젖히며 '도망쳐 봐야 아무 소용없지 En vain pour eviter'라는 아리아로 자기의 종말을 독백조로 노래한다. 이어서 그들의 트럼프와 3중창을 부른다. 그리고 호세에게 망을 보게 한 후, 다른 사람들과 밀매품을 운반하러 출발한다.
안내자의 인도를 받으며 미카엘라가 찾아와 황량한 둘레의 풍경에 몸을 떨면서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데 이 때의 아리아가
'이젠 두렵지 않아 Je dis que rien ne m'epouvante'이다. 호세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갑자기 그에게서 총소리가 나자 그녀는 몸을 숨긴다.  그 총성은 정체불명의 낯선 침입자를 향해 쏜 것인데 그 침입자는 에스카미요였다. 호세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자 질투 때문에 단도를 가지고 그에게 덤빈다. 호세가 그를 죽이기 직전에 밀수업자들이 도착해서 둘을 떼어 놓는다.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에게 구혼하자 그녀는 심히 우쭐해한다. 에스카미요는 사람들을 세빌리아에서 개최될 예정인 투우전에 초대하고는 그곳을 떠난다.
이 때 미카엘라가 레멘다도에게 끌여 나오고, 눈물로 호세에게 호소한다. 그녀는 호세의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죽어간다고 전한다. 카르멘이 경멸 섞인 소리로 고향으로 가라고 하자, 호세는 화를 벌컥 낸다. 멀리서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카르멘이 그 쪽을 향해 달려가려 하자, 호세가 나서며 '지금은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겠다'고 소리친다. 그는 미카엘라와 함께 산을 내려온다.

- 제 4 막 -
세빌리아의 투우장 밖으로 화려한 옷차림의 카르멘이 에스카미요의 팔짱을 낀 채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다. 에스카미요는 그녀의 행복을 비는 키스를 하면서 '카르멘, 그대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Si tu m'aimes, Carmen' 하고 사랑의 노래를 감미롭게 부르고는 성큼성큼 투우장으로 입장한다. 홀로 남은 카르멘에게 후라스키타와 메르메데스가 다가와 호세가 여기에 와 있으니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오래 머무르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러나 카르멘은 코웃음을 치며 대담하게도 군중들의 틈에 끼어 투우를 관람한다. 극도로 흥분한 호세가 그 때 등장한다. 그리고 카르멘에게 저 놈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매정하게 그녀가 죽도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퉁명스런 어조로 이제 당신과의 관계는 끝장이라고 소리치며 호세가 자기에게 주었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어 호세의 발 밑에 던진다.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된 호세는 달아나려는 그녀를 붙잡아 단도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는 카르멘의 시체 곁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쏟아져 나오는 투우장의 군중들 앞에서 쓰러진 카르멘의 주검을 끌어안고 '그대를 죽인 것은 바로 나다, 오 나의 카르멘, 사랑하는 카르멘...'하고 절규한다. 그녀 시신 앞에서 호세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4. My Review 

<카르멘>의 유명한 전주곡은 TV프로그램, 특히 스포츠 프로그램에 많이 쓰여왔다. 특히 92년에 개최되었던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개막식 음악축제에도 사용되었다. 이 전주곡을 시작으로 스페인의 유명한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하이메(자코모) 아라갈, 몽세라 카바예, 테레사 베르간자, 후안 퐁스 등이 교대로 등장하여 오페라 아리아 메들리를 들려 주었다. <카르멘>의 무대가 스페인이어서인지 <카르멘>에 나오는 곡들이 많이 연주되었는데, 호세 카레라스가 '꽃노래'를, 테레사 베르간자가 '하바네라'를, 후안 퐁스가 '투우사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이 올림픽 개막식의 음악 감독은 바르셀로나의 영웅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맡았다. 그가 기획했다는 음악축제를 보며 '참, 자존심도 없는 양반이군'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프랑스 오페라인 비제의 <카르멘>서곡을 시작으로 이태리 오페라인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토스카>, <라 보엠>, <팔리아치>, 프랑스 오페라인 <카르멘>, <호프만의 이야기> 등에 나오는 아리아로 장식을 하고 싶었을까? 올림픽의 개막식은 그 개최도시나 국가의 문화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88서울 올림픽의 개막식만 상기해 봐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도시이긴 하지만 수도인 마드리드와 대립되는 성향을 지닌 바르셀로나의 문화적 특징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이태리의 문화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의 아리아들을 한껏 전세계에 선전하는 꼴만 되고 말았다. 이태리, 프랑스 사람들은 개막식 축제를 TV를 통해 보며 얼마나 흐뭇해 했을까? '우리 오페라가 참 좋긴 좋아가봐'하면서....
카레라스는 같은 스페인 출신의 선배 테너인 알프레도 크라우스 측과 마찰을 빚어 그를 개막식 축제에 제외시켜 버리기도 했다. 오히려 인상에 남았던 것은 만년의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가 첼로 반주에 맞추어 고운 목소리로 조용히 부르는 노래였다.
개막식 축제의 아리아 메들리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성악가는 '하바네라'를 불렀던 테레사 베르간자였다. 당시 50대 후반의 많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황색 드레스에 곱게 땋은 머리로 우아한 연기까지 하며 멋있게 '하바네라'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하이메 아라갈은 도밍고의 힘겨운 고음에 대조되는 맑고 시원한 고음과 훌륭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그 베르간자의 모습에 반해 제일먼저 샀던 <카르멘> 전곡녹음은 베르간자가 타이틀 롤을 맡은 아바도 지휘의 전곡이었다. 하지만 전곡녹음에서의 베르간자의 목소리는 개막식 무대에서와 달랐다. 전곡CD해설에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겠다.

<카르멘>에 관한 자료를 찾으면서 의문이 갔던 점은 돈 호세의 계급에 관한 것이다. 자료마다 각각 달랐는데, 상병이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었고 하사관이나 상사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영어로 번역된 해설서를 몇 군데 보니 호세의 계급을 'corporal' 이라고 된 곳이 있었고 또 'brigadier'이라고 된 곳이 있었다.
corporal은 우리나라 군대의 '상병'을 뜻하지만 '하사관'이라는 뜻도 있다. 영어해설서의 'corporal'은 하사관을 뜻하나 우리나라 번역자의 실수로 '상병'이라고 한 것 같다. 그리고 'brigadier'은 준장(원스타), 여단장을 뜻하지만 나폴레옹 1세 때 프랑스의 하사관 계급을 뜻하기도 한다고 한다. brigadier이 준장이라는 것은 군대에서 알았던 사실이지만 하사관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카르멘>은 유명한 오페라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한번도 실제 공연을 본 적이 없다. EBS에서 공연이 방영되기는 했지만 일류 가수진은 아닌 듯 해서 보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카르멘>공연을 보지 못한 관계로 <카르멘>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끝내게 되어 버렸다.

 

5. 소장 전곡 CD해설 

* 게다(T), 칼라스(S), 마사르(Br), 귀요(S) / 프레트르(EMI: 1964)
칼라스의 쇠퇴기운이 느껴지는 전곡녹음이나 이때까지만 해도 건재했던 것 같다. 이후에 나온 <토스카>보다는 컨디션이 좋다. 나는 무대에서 그 역을 부르지 않은 성악가 남긴 전곡녹음은 사지 않았는데 이 <카르멘>전곡으로 그 관례를 깼다. 칼라스는 무대에서는 결코 <카르멘>을 공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바네라와 세기딜랴 등을 관능적으로 잘 부르며 다소 어두운 음영이 깔린 음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게다는 맑고 힘찬 음성으로 훌륭한 돈 호세를 들려준다. 프랑스 딕션에 뛰어난 사람이기에 코렐리나 모나코보다는 이 오페라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코렐리(T), 프라이스(S), 메릴(Br), 프레니(S) / 카랴얀(RCA: 1964)
카르멘은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로 연주되는 것이 있고 오페라 코미크 스타일로 연주되는 것이 있는데, 이 전곡은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의 대표적인 레코딩이다. 따라서 가사가 아닌 노래로 진행된다. 나는 불어를 몰라서 분간을 못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주역배역진이 이태리, 미국인이다 보니 프랑스어 딕션이 엉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래듣는 즐거움'만은 다른 전곡녹음을 능가한다. 드물게 RCA에서 녹음된 카라얀 지휘의 전곡인데 생략된 부분이 많다지만 템포가 느려 CD 3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다. 코렐리의 중후한 '꽃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프레니의 미카엘라도 아주 아름답다. 주역가수 4명이 모두 탄탄한 소중한 전곡녹음이다.

 

* 델 모나코(T), 레즈닉(S), 크라우제(Br), 서덜랜드(S) / 쉬퍼스(DECCA:1963)
아마도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카르멘 녹음일 것이다. 발췌가 카세트 테잎과 LP판으로 나왔었기 때문에 예전의 오페라 애호가들이 가장 손쉽게 구해 들을 수 있는 녹음이었다. 칼라스와 프라이스의 노래는 아주 훌륭하지만 이 녹음에서의 레즈닉의 노래를 들으면 역시나 카르멘은 메조가 부르는 것이 제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조의 중음역에서 발산하는 매력과 카르멘의 선율이 잘 어울어지면 관능적이면서도 강렬한 카르멘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델 모나코의 목소리는 다른 전곡 녹음에서보다 더 강해서 약간의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델 모나코가 40년대 말 쯤엔가 부른 라이브 녹음의 '꽃노래'를 들어보면 약간 더 부드러운 음성으로 잘 소화해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전곡녹음에서는 에스카미요역의 크라우제가 훌륭하다. 호쾌한 음성으로 부르는 '투우사의 노래'는 여기에 소개된 4개의 전곡녹음 중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도밍고(T), 베르간자(S), 밀른즈(Br), 코르투바스(S) /아바도(DG:1977)

CD로 마련한 도밍고의 전곡녹음은 하나도 없으나 유일하게 카세트 테이프로라도 마련한 전곡녹음이다. 이 시리즈는 한 때 성음에서 나온 카세트 테잎 전곡시리즈 중의 하나이며, 테잎 3개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음악축제에서 베르간자가 멋있게 부르는 '하바네라'에 반해서 샀는데 아주 실망했다. 베르간자의 노래는 품위있고 고상한 면까지 있어서 내가 생각했던 카르멘의 이미지랑은 다소 거리가 있는 듯 했으며, 도밍고의 노래도 아리아집이나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로 이 테잎을 잘 듣지 않는데, 아마 전형적인 오페라 코미크 스타일의 연주여서 대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손이 잘 안가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아바도의 점잖은 지휘로 들려주는 이 전곡 보다는 카라얀이나 프레트르의 전곡이 내겐 훨씬 재미있게 들린다.

 박태영의 오페라 리뷰: http://beowulf.pe.kr

 

 

 

 

Carmen Suite No.1
Les Toreadors
Prelude
Les Dragon
Intermezzo
Aragonaise
Seguidilla

Carmen Suite No.2
Sextet and Choir
Habanera
Couplet
Children's Chorus
Gypsy Song

"Carmen"
Chour des Marais

Ouverture

"Carmen"
Women's Glee Club
, featuring Olga Perez, mezzo-soprano - George Bizet
Pres des remparts de Seville (Seguidilla)
Avec la garde montante
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 (Toreador Song)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Habanera)
Les voici! Voici la quadrille (March of the Toreadors)

"Carmen"
Acto IV

"Carmen"
Drew Slatton
La fleur que tu mavais jetee

"Carmen"
Bryan Verhoye (Horowitz piano transcription)
Variations on a theme from "Carmen"

"The Pearl Fishers"
Chour des Marais
Les pecheurs de perles
Choeur du 1er acte
Choeur du 4e acte

 

전주곡
  - Overtures & intermezzi for orchestra Prelude  
하바네즈 "사랑은 변덕스러운 새"

  - Havanaise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투우사의 노래 " 여러분의 건배에 보답하리라"
  - Toreador Song  "Votre toast...je peux vous le rendre"

 

집시의 노래 "신나는 트라이앵글 소리"
  - Gypsy Song  "Les tringle des sistres tintaient"

투우사의 입장 합창
  - Choeur et Sc?ne

Anne Sofie von Otter  mezzo-soprano
Bryn Terfel   bass baritone
Veronique Gens   soprano
Stella Doufexis   mezzo-soprano    
Claudio Abbado   conductor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 Chorus

 

Couplets Du Toreador (투우사의 노래)

 

 

Vladimir Andric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Habanera)'



Nana Mouskouri


Maria Callas / sop
Orchestre du Theatre National de l'Opera de Paris,
Georges Pretre

 

Angela Gheorghiu

 

El?na Gar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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