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완벽주의☆
완벽주의자 하면 우리는 얼핏 매사에 빈틈없고
용의주도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역시 병이 된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사실은 반쯤은 공포에서
그리고 반쯤은 환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포는
내가 정말 이 일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말한다.
두려움이 클수록 완벽주의에 집착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환상 역시 완벽하고 멋지게
일을 끝내고 싶다는 자기의 기대치이지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순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지나친 완벽주의는
지나친 열등감의 한 반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자기의 못난 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완벽주의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틀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못할게 구는 것이다.
정미연씨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비 없이 자란 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해가며
딸을 키웠다.
학용품이든 옷이든 최고급 브랜드로 치장시키고
피아노에 첼로 레슨은 물론 딸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 다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 정미연시는 늘
부잣집 딸로 통했다. 아무도 그녀가 사채놀이를 하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간다는 것을 몰랐다.
어머니가 사채놀이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가장 치명적인 열등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빌려준 돈을 갚지 않는다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온갖 욕설을 해가며
악다구니 쓰는 어머니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는 그런 어머니의
딸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밖에 나가
늘 완벽하게 얌전하고 예의바르게 처신했다.
그 누구로부터 흠을 잡히지 않도록 아주 사소한
약속이라도 정확하게 지켰으며 무슨 일이든 완벽하고
매끄럽게 처리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때때로 들려오는
“넌 진짜 네가 아니야, 지금 네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허상이고 가짜란 말야.”하는 속삭임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모습을
다 던져버리고 멋대로 살고 싶다는
거의 광포한 욕망에 시달렸다.
그녀의 예에서 보듯이 지나친 완벽주의는
일종의 자기 기만이자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완벽주의자는 없다.
아마도 한 사람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완벽주의의 허상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완벽주의를 위해 계속 나를 희생해도 좋은지,
대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기나 한지,
내게 너무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해보도록 한다. 그런 다음 단계적으로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곧 진짜 내가 되어 자유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완벽주의의 허상에 대해 프리츠 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대여,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아라.
그것은 저주이자 긴장이다. 그대는 과녁의 한가운데를
맞히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지금 그대로 내버려두면 완전할 것이다.>
[출처]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 / 양창순 -
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