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지경학적 기회요인과 지정학적 위험요인
김양희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Ⅰ. 서론
Ⅱ. RCEP의 개요와 주요 내용
Ⅲ. RCEP의 지경학
Ⅳ. RCEP의 지정학
Ⅴ. 결론과 전망 및 과제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의 구조적 특징은 지경학적 기회요인과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위태롭게 공존하는 독특한 경제통합체라는 점으로 집약된다. RCEP의 지경학적 기회요인은 세계경제의 생산 거점이자 성장 엔진인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지역가치사슬에 기반해 출범하는 FTA(Free Trade Agreement)라는 점이다. 지정학적 위험요인은 회원국 간의 발전 격차와 차이가 큰 FTA이자, 경제통합사에 전례가 없는 ‘전략적 경쟁국 간의 경제통합’이라는 점이다. 이런 기회요인과 위험요인이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된 특성이 ‘중국주도경제권 블록(China-led bloc)’의 ‘ASEAN주도(ASEAN-led) FTA’를 탄생시켰다. 그 현실적인 타협점이 포용적 FTA다.
RCEP의 최대 성과는 통일 원산지규정으로, 장기적으로 ‘Made in RCEP’의 효율성 증진이 기대되는바 곧 지경학적 기회요인의 발현이다. 문제는, RCEP-RVC의 ‘중국주도성’으로 인해 그것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우려다. 미국이 중국을 GVC(Global Value Chain)에서 떼어내려는 디커플링 전략은 이 흐름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RCEP의 지경학적 기회요인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위험요인으로 인해 RCEP의 발효 전망은 불투명하다. 다만 그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메가 FTA 추진 시계도 빨라질 전망이다. 지정학적 위험요인은 기회요인도 될 수 있다. 회원국 간 발전 격차는 상호 보완적인 산업간 무역과 투자를 촉진할 수 있고, 개도국의 높은 성장욕구는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가히 ‘mini WTO’라 할만한 RCEP은 WTO에서 어떤 메가 FTA보다도 수용성이 높은 규범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지닌다.
RCEP이 표방한 ‘현대적·포괄적 양질의 호혜적 경제동반자 틀 수립’을 실현하기 위한 발전 과제는 지경학적 기회요인 최대화와 지정학적 위험요인 최소화로 응축된다.
기회요인 최대화는 첫째, RVC의 효율화와 동시에 중국 주도성 완화를 위한 ‘공정한 경쟁여건(level playing field) 마련’이다. 이는 호혜적 FTA 추진과도 맥을 함께 한다. 이에 특히 한중일 FTA를 통한 RCEP의 선제적 고도화를 제안한다. 둘째, RVC와 GVC의 연계성을 고려한 ‘열린 지역주의 추구’다. 이에 유연한 ROO 유지, FTA를 매개로 하는 역외국과의 공조, 미국의 RCEP 참여를 제안한다.
위험요인 최소화는 첫째, 회원국 간 격차 완화를 위한 ‘호혜적·포용적 FTA 추구’다. 특히 역내 개도국의 이행 역량 강화 및 인프라 구축이 긴요하다. 둘째, 전략적 경쟁국 간 경제통합의 불안정성 완화를 위한 ‘규칙 기반 거버넌스 구축’이다. 이를 위해 RCEP 사무국의 기능 강화, 장기적으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의 예방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 ‘mini WTO’라 할만한 RCEP의 모범적인 거버넌스 구축은 WTO의 다자주의 복원에도 기여한다.
경제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국제 협력과 연대의 정신이 사라지고 각자도생이 난무하는 오늘날, 무수한 진통 속에 출범하는 RCEP이 평화와 공동 번영의 지역질서 구축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도 전범이 되기를 기원한다. 바야흐로 지역의 집단지성과 외교역량이 실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