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을은 코스모스 핀 들녘에서 시작된다.
코스모스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니면 우리가 이 코스모스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늘 우리네와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가을에 코스모스가 보이지 않으면 가을이 가을 같지 않다.
아니 가을이 아니다.
되돌아보면, 코스모스와 얽힌 우리네 삶의 인연은 가을 들판의 코스모스만큼이나 많다.
1950~60년대 이전에 우리들은 그 얼마나 숱한 사연을
길가와 들녘에 핀 코스모스와 나누었던가?
10리를 걸어 소학교를 다녔던 등굣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스모스와 나누었던 숱한 배고픔과 가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여상(女商)을 가야만 했던
누님과 여동생들의 여고시절 교복 뒤에 숨은 애닮은 코스모스의 긴 목의 노래들.
시간이 흘러 아들녀석의 사진 속 코스모스처럼 호리호리한 여자친구와 함께한
함박웃음에도 배경엔 분홍빛 코스모스가 있다.
그러고 보면, 코스모스는 우리에게 영화의 배경음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희로애락을 실은 삶의 배경음악 말이다.
비록 연약한 줄기, 나풀나풀하는 조각난 8장의 잎일지라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삶처럼 코스모스는 우리를 닮았는지 모른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사는 것이라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생각이 모든 삶의 가치 기준이라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생각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그러셨다.
코스모스가 죄다 모여 가을 맞는 들판 모습에 그 말씀이 새삼 가슴을 파고 든다.
세상풍파 다 겪으신 부모님 말씀이 맞다는 듯이 저들은 저렇게 모여 가을 맞는다.
나는 저 들녘으로 나간다. 아니 튀어 나간다.
가을 하늘과 벗하여 모여 사는 코스모스와 가을을 보내러 가을 문을 연다.
일년 만에 여는 문이라 소리가 난다.
내 마음에서도 오랜만에 가을 하늘과 구름을 맞는 버거움이 들린다.
그러나 잠시 후면 소풍 나온 꼬마의 손에서 저 하늘로 멀어져 가는 풍선처럼
내가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를 나는 안다.
그동안 그랬음을 나는 안다.
청명한 하늘을 향해 목소리 높여 나는 안다고 소리친다.
우리는 또다시 이 들녘에서 가을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부르는 노래지만 지겹지 않은 나의 애창곡처럼
올해도 가을 노래를 코스모스 옆에서 부른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부른다.
상황의 변화로 옆으로 돌린 나의 시야를
오늘은 코스모스에 맞추며 인생의 추를 자연의 섭리에 걸어 본다.
째깍거리는 시간의 등을 타고 흘러가는 인생의 시계소리가
아름답게 공명되어 귀에서 가슴으로 들린다.
코스모스 잎에서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간다.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감기기운처럼 옷소매에 스며드는 이 가을이 오면,
수십 년 전 ‘코스모스 마른 줄기에 바람이 스쳐간다’며 <그리움>을 노래했던
이원수씨의 시가 아련히 그리움으로 가슴에 떠오른다.
만상이 무르익는 이 계절에 들녘이나 가까운 천변에 나가보면,
곳곳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수줍은 소녀처럼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다.
코스모스의 순 우리말이 ‘살사리’임을 아는가?
아마도 가을바람에 살랑대며 곱게 피어있는 모습을 연상하여 지어진 이름인가 보다.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로써, 18C 후반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퍼졌다.
그리고 노일전쟁 직후 일본으로 번지더니 1920년경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코스모스는 비옥한 땅보다 거친 땅에 키우는 것이 줄기가 튼튼하고 꽃도 잘 핀다고
한다. 대부분 코스모스를 봄에 파종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6~7월에
파종하는 편이 키가 덜 자라서 쓰러지지 않고 꽃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며
온도만 맞으면 3개월 안에 개화하는 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스모스의 어원은 희랍어 ‘코스모스(kosm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질서’, ‘조화’를 의미한다.
우주도 ‘cosmos’라고 하는데 그래서 코스모스의 반대말은 '카오스', 곧 '혼돈'이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코스모스는
‘아름답다’는 의미와 ‘장식’, 혹은 ‘광명’, ‘명예’ 등을 뜻하기도 한다.
영어의 화장품 ‘cosmetic’도 코스모스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 화장이란 하늘이 지어주신 질서에 따라 얼굴을 잘 정리하는 일인데,
요즈음 특히 여성들은 화장이라기 보다는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는 변장들을 하고 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보기에 아름답다’고 말했다.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질서 있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겸손과 조화를 이루는 성숙의 계절에, 시인 오세영의 시 <9월>을 음미한다.
“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피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코스모스의 어원은 ‘질서’, ‘조화’를 의미한다 했는데
오늘날, 우리의 삶 특히 우리사회는 '질서와 조화'와는 거리가 멀고 '불안과 갈등'이 고조되니
참으로 걱정되어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 코스모스 외양만 바라 본 시야를 돌려
청명한 가을에, 들녘과 길가 그리고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우리는 아름다운 가을 꽃으로만 감상할 뿐만 아니라,
그 꽃이 가르쳐주는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눈과 가슴에 익혀,
내가 사랑하는 국가와 사회, 속한 공동체, 가정 등에 꽃피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