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악하고 게으른 종(마태 25,26)
예수님은 대단한 이야기꾼이셨고, 엄청난 이야깃거리를 남겨주셨다. 그것은 이 땅으로 내려온 하늘나라 이야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써 완성됐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순례를 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 나라가 드디어 만들어지는 줄 알았던 거 같다. 그 나라 영토는 이 작은 땅 한 구석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언어, 문화, 피부색 따위에 제약받지 않고 무한히 넓고 또 영원하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한 그대로다.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3).”
그 당시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강력한 임금을 바랐을 거다. 불의한 세력을 물리치기는커녕 그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게다가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는 그런 사람을 임금으로 맞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무늬만 신자라는 말이 생겨났을 거다. 세례를 통해서 그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마음에 심겼는데, 그것이 자라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한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악한 종처럼 말이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한 미나를 수건으로 싸서 잘 보관해 두었다. 한 미나는 약 천만 원 정도 될 거다. 한 탈렌트, 즉 약 6억 원보다는 작아도 그냥 집안에 감춰둘 만한 액수는 아니다. 은행 이자를 바라거나 펀드에 투자해 볼 만한 돈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냥 감춰뒀다. 그것으로 아무것도 안 했다. 신앙은 신앙, 삶은 삶이었나 보다. 하느님 말씀은 귀로만 듣고 마음은 여전히 자신이 바라는 대로다. 그러니 하늘나라가 자라지 않고 그 영토가 확장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작은 씨앗이나 그물 던지는 것에 비유하셨던 거처럼 하늘나라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거처럼 서로 사랑하는 거다. 사랑은 봉사고 희생이고 그 완성은 죽음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 실천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하느님의 죽음으로 보증된 것이니 아니면 어떻게 하나 의심하거나 잘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게다가 그 길을 따라나선 많은 성인과 순교자도 있다. 입소문보다 믿을만한 게 없는 거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보증은 없다. 그런데도 우물쭈물 주저주저하는 걸 보면 하늘나라에 마음이 없는 거다. 사람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늘나라는 이미 시작됐고 그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때로는 세상이 거꾸로 가는 거처럼 보여도 그 또한 하늘나라가 커가는 과정일 거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던 이들(1코린 9,22)’과 함께 있고 싶고, 그 집 문간에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선행이 습관이 되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되고, 나를 박해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당장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계속 노력하면 된다. 몰라서가 아니라 안 해서 안 되는 거다. 미움을 방치하지 말고, 싫음을 개인 취향이라고 자신을 속이지 말고, 작은 이들을 못 본 채 하지 말아야 한다. 잘 안돼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 그 강을 건너면 그나마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예수님, 저는 ‘악하고 게으른 종(마태 25,26)’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탈렌트를 그냥 숨겨 두는 게 악한 겁니다.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게 게으른 겁니다. 실패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가 잘 못하는 줄 아십니다. 쉬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게 제 인생 승리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빛나는 하늘나라를 발견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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