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동 夜行 축제
美대사관, 처음엔 官邸 개방 반대… 리퍼트가 "OK"
'정동 夜行 축제'때 대사관저 개방하겠다는 美, 안된다는 英… 왜?
英대사관은 "내부 구조상 정원 등 일부만 개방하기 어렵다"며 사양
미국 대사관저는 개방하고, 바로 옆 영국 대사관·대사관저는 개방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오는 29일과 30일 밤 서울 중구 정동 일대 주요 역사·문화 시설물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정동야행(貞洞夜行)' 축제에 대한 미국과 영국 대사관 측 반응이 달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후 경호가 강화된 상황에서 미 대사관저가 처음 일반에 문을 열기로 해 시민들 호기심도 커지고 있다.
중구는 작년 말부터 정동 일대 역사·문화 시설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개방하는 '정동야행' 축제를 기획해왔다. 지난 3월 23일엔 정동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저와 영국대사관(대사관저 포함) 측에 행사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리퍼트 대사가 피습된 지 3주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중구 관계자는 "보안이 강화된 시기여서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실제 미 대사관도 처음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오는 29일과 30일 밤 열릴 서울 중구‘정동야행(貞洞夜行)’축제에서 일반 시민에게 개방될 미국 대사관저의 정원. 29일 오후 6시부터 8시, 30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공개된다(왼쪽). 미 대사관저 인근 주한 영국 대사관 정문 앞에 경찰이 서 있다. 영국 대사관·대사관저는 정원 등 일부만 일반에 공개하기 어려운 내부 구조 때문에 이번 축제 참여를 사양했다(오른쪽). /서울 중구 제공·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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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반전된 것은 그로부터 20일쯤 지난 후였다. 미 대사관 측에서 "리퍼트 대사가 행사 소식을 듣고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연락해온 것이다. 미 대사관 측은 "대사관저 특성상 행사 시간과 딱 맞춰 개방할 수 없는 점만 양해하면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협의 끝에 미 대사관저는 29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30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정원'만 공개하기로 했다. 정원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장소로, 실제 리퍼트 대사 가족이 거주하는 공관과 50m 이상 떨어져 있다. 정원엔 1883년 완공돼 2006년 한 차례 개축 공사를 마친 옛 미 공사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중구는 "미리 신청을 받거나 당일 신분증 등을 확인하는 절차는 없다"며 "그냥 문을 열어두면 누구나 둘러볼 수 있는 공원같이 운영될 예정으로 안쪽 건물로의 접근은 제지될 것"이라 했다.
반면 미 대사관저와 마주 보고 있는 영국 대사관 측은 행사 참여를 사양했다. 중구 관계자는 "영국 대사관저는 이미 한 차례 시민 개방 행사를 가진 적이 있어 조율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안 된다'고 해 의외였다"고 했다. 영국 대사관은 2012년 서울시가 진행한 '서울 문화의 밤' 행사에 참여해 시민들에게 정원과 대사관저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서울시는 행사 2주 전부터 참가자를 모집해 무작위 추첨을 통해 80명을 선발했다. 선발된 사람들은 미리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 등을 서울시에 제출하고 당일 주민등록증 확인 절차와 소지품 검색대를 거쳤다. 영국 대사관 관계자는 "당시엔 방문자 신원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행사인 만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영국 대사관 측이 밝히는 또 다른 이유는 대사관저 부지 내에 영국 외교관 가족들이 거주하는 건물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대사관·대사관저 구조상 정원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아 (미 대사관저처럼) 정원만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다. 닉 뒤비비에 영국 대사관 대변인은 "대사관저 내에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외교관 가족도 살고 있기 때문에 (저녁에 문을 여는) 행사에 매번 참여하기는 어렵다"며 "다른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서울시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대사관은 최근 대사관 관리구역에 편입돼 있는 덕수궁 돌담길 170m 구간을 시민에 개방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서울시와 체결하면서도 안전 문제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는 지난 3월 기자 간담회에서 덕수궁 돌담길 개방과 관련해 "우리의 중요한 우려 사항은 건물과 직원들 안전 문제다. 영국 외교관과 국민은 전 세계에서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었다.
[김효인 기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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