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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홍해 바다, 뒤에는 애굽의 군병들이 뒤쫓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를 갈라서 라도 그 백성들을 구하시고, 더 나아가 사나운 대적들도 순식간에 진멸케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참 믿기 힘들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소설과 같아 보이는 일인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 정도의 수준인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며, 진정 우리 인생들이 못하고 온 세상이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의 그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필요하면 능히 행하시고, 순식간에 실행하시기도 하며, 심지어 완전히 역전까지 시켜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그와 똑같은 상황들은 아닐지라도 크고 작은 진퇴양란과 같은 상황들이 있을 수 있고, 지금 이 시간도 실제로 누군가는 그러한 일 한가운데 있는 이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인데..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뜻하시고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홍해 바다와 같이 막힌 상황들도 순식간에 가르시고, 애굽 군병들과 같이 위험한 대적들, 절망스러운 위기들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완벽히 해결하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진정 도무지 세상적인 방법이 없어 보이고 인간적으로 완전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도우시고 구하실 수 있고, 응답하시고 순식간에 역전까지도 시키시는 분인 것이며, 필요하면 그 이상도 능히 행하실 수 있는 분인 것이고, 심지어는 우리들에게 있어 단 하나의 방법이 안 보이는 때에서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상상도 못할 수백, 수만의 방법들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크고 작은 모든 죄악들, 머리털보다도 많은 죄악들, 억만 죄악들에서도 능히 구하시고, 여러 모양의 광풍들에서도 구하시며, 악한 영과 세력들, 온갖 대적과 절망들에서도 구하시고, 사망과 영벌과 심판들에서도 구하시며, 모든 것을 순식간에 뒤바꾸시고 오늘도 필요하면 그 이상의 기적들까지도 행하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혹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타이밍과는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의 방법과 진행이 우리의 예상과는 다를 수가 있으며, 때로는 원치 않게 힘든 시련의 시간들에도 일정 기간 거할 수 있고, 게다가 이 세상에서 사는 한 한계나 절망들을 느낄 때도 없을 수야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모든 일과 상황들보다 더욱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더 크시고 실제로 행하시며,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고 실수하지 않으시며, 실질적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며, 뒤바꾸시고 예비하신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에 있어 짐작도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생생히 누리고 경험하며 예비될 수 있게 하심과 함께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인 것이며..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의 구원의 일들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에서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영원한 하늘나라도, 영원한 생명도 누리게 하시면서 모든 구원의 일들을 실제가 되게 하시고 경험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러한 모든 구원의 역사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실제로 준비하시고 진행하시어 하나님의 시간에 정말 성자 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님의 온 세상과 온 우주보다,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큰 목숨값으로 대속, 대신하게 하시고, 나음과 평화를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시게 하셨으며, 그와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상상도 다 못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서, 심지어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구원을 다 이루셨고,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실제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다양한 모양의 구원의 일들을 값없이 누리고 맛보며 거하고 참예케 하신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모든 구원의 일들을 우리들이 이 세상과 세상 끝 날, 더 나아가 영원토록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참으로 세상이 줄 수 없고 짐작도 못할 하늘의 신령한 힘과 실제로 오늘 이 순간까지도 바로 그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역사하시고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나타내시며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본질적으로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 전부이자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원초적이면서 근본적인 한 가지 핵심이 있다면 오직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참으로 그러한 모든 구원의 역사들, 무엇보다 직접적이고 경험적인 면에서의 성령님의 일하심과 실제와 경험들은 죄악들이나 세속들이나 정욕들 등과 벗하고 반복하는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가운데에서 생생하고 강렬하게 나타나고 경험케 되며 가능하고 합당케 되는 일들일 수가 없는 것인데..
그 이유는 결코 복잡을 수 없는 것으로 진정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 자체부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을 친히 보이시고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특히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진정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직접적,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들,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실제가 되게 하시고 하나하나 모두 다 경험케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인 것이며, 사실은 애초에 창세전부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준비하시며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주관하시는 분인 것이고, 실상은 근원적으로 그러한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분일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원론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역사의 처음이자 중심이며 근본부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면서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현실적, 실질적으로 이미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때까지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생각보다는 자주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지며, 죄와 세속과 탐욕들 등과 벗하고 반복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인데..
그러나 그와 같이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들이나 그로 인한 모든 상황들 속에서도 직접적, 현실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똑같이 기뻐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탄식하시고 근심하시는 것이며, 특히 선악 간 심판주이시자 생사화복의 주인이시고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잘못되고 세속화되며 위험하고 뒤틀어진 신앙에 빠진 그 백성된 자들에 있어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온전한 믿음에 설 수 있게 되도록 일정 기간 동안 하늘의 힘과 복과 응답들 등은 막으시곤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 막대기나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사랑의 매와 징계들을 하나님의 시간까지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입니다..
반면 순간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함으로 인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오직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그 말씀으로 살고 결단하며 몸부림치고 하나라도 더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생생하고 충만하게 일하시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면서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생각 이상으로, 진정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는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게도 하시는 것이며, 그와 함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서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이 실제로 더욱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고, 사실 아래 본문과 같은 사건은 그러한 역사들 중 지극히 일부인 것입니다..
실상 아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대적들을 진멸하시며 놀라운 구원 역사를 보이신 일들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이시자 직접적으로는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고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으로서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신령하고 강렬한 하늘의 힘과 실제와 경험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잘 살피고 따지고 보면 비록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며 두려움들도 넘쳤지만 그래도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중에 있고 약속의 땅으로의 말씀 여정 한가운데에 여전히 거하고 있는 상황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푸라기만큼이라도, 겨자씨만큼이라도 아직은 말씀에 거하고 있고 따르고 있는 상황인 것이고, 다른 말로 진정 생각보다는 힘겹고 버거울 수 있는 모든 상황과 형편들의 실제 속에서도 그래도 아직 말씀의 길을 아예 벗어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만일 그렇지 않고 완전히 돌이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면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이적은 전혀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특히 다른 그 누구보다도 그 당시에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믿음의 선배 모세의 경우는 가장 앞서서 말씀대로 행하며 깊이 순종한 자였던 것이고, 그 누구보다 뜨거운 말씀의 신앙, 진정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을 여러 모양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아래의 본문과 전후에서와 같이 현실적으로 참 믿기 힘들고 어떤 면에서는 황당할 수 있는 말씀임에도, 더 나아가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말씀 그대로 믿고 행하기까지 했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임을 잘 확인하고 통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에 있어서의 10가지 이적들이나 여호수아 때의 요단강물이 멈춰지며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리는 등의 사건들에 있어서도 모든 공통적인 관건 및 본질, 관통 및 통로는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인 모세를 위시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살아 역사하심과 함께 정말 믿기 힘든 역사들을 말씀대로 실제로 나타내시고 보이시며 누릴 수 있고 성취되어 지게 하신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와 경험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지 구주 예수님과 별개일 수는 없는 것이고 모세 당시에는 말 그대로 그렇게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면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었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진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의 일들을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바로 그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역사들에 있어서도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일들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나타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다름 아닌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직결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참으로 사람이 못하고 세상이 상상도 못할 신령한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의 원리와 이치들, 실제와 역사들, 응답과 이적들 등은 어떤 모양으로든 결코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작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14:13~16)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1일(화)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