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호반 마라톤 대회 후기>
7시 30분에 화도휴게소에서 대장군님, 산성님, 약수님
알토님, 기관차님, 치타님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하늘거리는 경춘가도를 시원스레
달려 춘천에 도착하니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복장을 갈아
입고 주변을 가볍게 달려보았다.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가
않다.
작년 이 대회에서 3시간 2분에 골인을 하여 무척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은 그 기록을 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10시 정각에 출발 총소리와 함께 출발을 했다. 오늘 풀코
스에 참가한 러너는 채 200명이 되지 않는다. 가을 조선
대회의 2만 여명의 백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참가인원.
한편으론 단촐해서 좋지만 한편으론 동반 주 할 인원이
없어서 외롭게 달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길을 건넌 후부터 시작되는 2km 정도의 긴 오르막길. 초반
에 이 구간을 잘 달려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코스를 달려본 러너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되도록 천천히
달렸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그런대도 숨소리가 고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속도를 줄여 천천히 올라갔다. 그리고 고개를 넘어
시원스레 내리막길을 달려 5km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22분
40초다. 느리게 달린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기록이 늦어질 줄
은 몰랐다. 그렇다고 컨디션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보기로 하고 달리기를 이어갔다.
의암댐을 지나가기도 전에 하프 선두 그룹이 힘차게 달려가며
추월해 나간다. 그리고 이내 하프주자들과 풀코스 주자들이
뒤섞여 달리게 된다.
누가 하프인지 누가 풀코스인지 구별하기 힘들어 앞에 달리는
주자들의 페이스에 맞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내 몸에 맞는 적절한 페이스로 달리기로 한다.
9km 지점을 채 가기 전에 하프 주자들이 반환해 가니 내 앞의
주자도 내 뒤의 주자도 띄엄띄엄 한명씩 달리고 있다. 여전히
컨디션은 좋지가 않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땀이 줄줄 흐르고
호흡 역시 순조롭지가 못하다. 잠시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혼자말도 해 보고 미소도 지어보면서 기분을 밝게 해 본다.
그렇게 몇 키로 미터를 달려가니 몸이 조금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피로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미리 파워젤
을 섭취해야 된다는 생각에 15km 지점에서 준비해 간 세 개
중에서 한 개를 먹었다.
역시 영양 섭취를 하고 나니까 속도가 조금 빨라지는 듯한 느
낌이 들었다. 10미터 앞에 한 러너가 달리고 있었다. 키도 조금
큰 편이고 복장이나 자세를 보니 풀코스를 몇 번 밖에 완주하지
않은 초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보았다. 대구에서 올라왔으며 오늘
목표가 3시간 20분이라고 했다. 3시간 20분 페이스로는 조금
빠른 페이스니 내가 페이스를 맞출테니 나와 30km까지 함께
달리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풀코스 77회 완주 째며, 풀코스를 많이 달려
지구력에는 자신이 있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며 은
근히 자랑을 했다
그리고 다소 가벼운 말투로 오늘 몇 회째 달리느냐고 물어 보
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135회 완주를 했다고 했다. ㅜㅜ
깨갱 깽. 우리나라 풀코스 최고 완주횟수를 자랑하는 강철훈씨
하고 같이 다닌다나 어쩐다나.
그 뒤로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달리기를 이어갔다.
하프지점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1시간 34분이 넘어간다.
오늘 좋은 기록은 고사하고 10분 안에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0분 안에는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
히 달렸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4분 30초 페이스만 유지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3km부터
26km 이어지는 춘천댐의 긴 오르막길도, 또 27km의 오르막길
도, 또 29km 지점의 오르막길도 힘차게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나 날씨가 덥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인지 목표한 4분
30초는 유지가 되지가 않았고 겨우겨우 35초나 40초 정도
의 페이스가 유지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33km까지
였으며 그 뒤로 또 5초 정도가 더 느려져 4분 45초가 나왔
다. 달리기가 무척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35km 지점 급수 대에 멈춰 서서 마지막 1개 남은 파워젤을
먹고 물을 충분히 마신 뒤 마지막 7.2km는 아무것도 아니라
는 자신감을 갖고 다시 달리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3km를 채 달려가기도 전에 체력이 바닥이 났다는 느
낌이 들었고 정신력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 그래도 걷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을 내딛으며
40km 급수지점에 도달했다.
초코파이나 바나나는 아니더라도 이온음료라도 한 컵 마시면
다시 힘을 내서 달릴 수 있겠건만, 물밖에 없는 마지막 급수
지점에서 물이라도 먹고 달릴 수밖에.........
1km만 더 달려 41km 지점인 춘천경찰서 앞까지만 가면
운동장이 보이고 운동장이 보이면 힘이 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겨우 달려갔지만 막상 그 지점에 도달해 보니 마지막
1km가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재발 빨리 들어가서 허기를 채고 싶다는 생각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달린 시간이 얼마가 됐는
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이렇게 달려 골인을 하면 기록이 얼마일
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직 빨리 운동장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뿐. 그래도 달리다
보니 그렇게 원하던 운동장으로 들어가게 되고 막상 트랙을
밟으니 마지막 300미터는 최대한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에
자세를 곧추세우고 팔 치기를 빨리 해보지만 맘처럼 그렇게
빨라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코너를 도니 대회 아치가 보인다. 시계는 작아서 보
이지도 않고.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골인을 하고 정지된
내 시계를 보니 3시간 19분 42초네. 그 순간에 왜 갑자기
웃음이 나왔을까. 아마도 운이 좋아 20분을 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골인하고 나서 조금 쉬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장 잔디 위에
잠시 누워 있었다. 이렇게 편안한 걸. 근데 왜 배가 고프지.
칩 반납 처에서 기념품 봉지를 받아 우유와 감자 두 개를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마라톤이라는 게 참 많이 배우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만은 겸손을 배우게 하고 겸손은 또 기운을 얻게 하고
다가올 대회들~~특히 여름의 대회는 신중하고 겸손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혹독한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굳이 경
험하지 않고 알게 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마라톤이
너무 재미없는 것이 되는 것인가.
<기록 정리>
22/40, 21/54/ 22/20, 22/33, 22/39,
23/41, 24/33, 26/55, 12/17, 3시간 19분 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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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님 고생이 막심했습니다.ㅋㅋ
자만은 겸손을 배우게 하고 겸손은 또 기운을 얻게하고...너무 멋진말입니다.
자신의 몸상태..날씨..주변의 환경...훈련...그런것들로 그때그때 다른 완주의 느낌....아마도 매번 그런느낌들이 같다면 마라톤이 매력이 없을겁니다...77번째의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빨리 회복하시고 이번주 대회에서는 힘들지않게 완주하기를 바랍니다 천리마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