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
로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왼쪽)가
2001년 8월13일 오후 야스쿠니 신사에
서 참배를 마친 뒤 제관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001년 8월 13일 야스쿠니(靖
國)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
리는 당초의 방침이었던 `8월 15일 참
배`를 이틀 앞당겨, 이날 오후 4시43분
쯤 태평양전쟁 주모자인 A급 전범 14명
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 참배를
마쳤다.
이날 야스쿠니 신사엔 수백명의 일반 참
배객이 모여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성을
보냈고, "만세"를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이날 참배와 동시에 고이즈미 총리는 과
거 침략을 반성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
표했으나, 그동안 한국과 중국 등 국제사
회가 참배를 강력히 반발하거나 비난해
왔다는 점에서 공허한 변명으로 비춰
졌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1996년
7월 자기 생일에 참배한 하시모토 류타
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 이후 5년 만
의 일이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각각 성
명을 발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2015년 UN 본부 윤리국장에
한인 1.5세 발탁
▶2009년 북한,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 석방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1998년 러시아 소유즈 우주왕복선,
카자흐공화국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에서 발사
▶1996년 정석해 전 연세대 교수 별세
▶1991년 원로 한학자 김종무씨 별세
▶ 1989년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제42회 로카르
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 수상
https://youtu.be/p9bhbpnhCV4
▶1988년 건설부, 1992년까지 16조
3천억원을 투입, 택지 5천7백만평을 마
련해 주택 2백만호를 건설한다고 발표
▶1986년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
준비위원회 구성
▶1980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정계은퇴 발표
▶1979년 중국, 산아제한정책 발표
▶1978년 이란 반정폭동 격화
▶1978년 베이루트 PLO본부 폭파
▶1977년 영국 런던서 전후최대의
인종폭동
▶1977년 북괴, 리비아탁구팀 코치
김창제씨 납북기도
▶1969년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
에서 중국 국경경비대와 소련군 기갑
부대 격렬한 무력충돌
▶1965년 1개사단 전투병력 월남파병
동의안 국회통과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
장벽설치 1961년 / 장벽철거 1990년
▶1960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로부터 독립
▶1959년 일본 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
사, 인도 캘커타에서 재일교포북송협정
체결
▶1956년 제2대 지방의회
의원 선거 실시
제2대 지방의회 의원 선거 유세 장면
▶1955년 국내 최초로 성전환 수술
▶1953년 소련 수소폭탄 실험
▶1952년 근로기준법 국회 제출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
김윤근소장 등 사형 집행
▶1949년 지방체신관서설치법
(법률 47호) 공포
▶1948년 한국-대만, 국교수립
▶1946년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 사망
▶1943년 광복군,
버마전선에 사관1대 파견
▶1926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출생
▶1913년 독립의군부 사건
선고공판 열림
▶1912년 조선삼림미간지 및
산림산물특별처분령 공포 시행
▶1910년 나이팅게일 사망
ㆍ간호사를 ‘천사’로 부르는 이유
“간호란 질병을 간호하는 것이 아니고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 감정이 일체를 이루는 간호를 주장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정신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된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간호사이자 작가이며 통계학자였다. 플로렌스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피렌체의 영어 지명인데, 피렌체를 여행 중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붙여졌다. 나이팅게일은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에게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지리학 등을 배웠다. 그는 1849년 이집트 여행 도중 알렉산드리아 병원을 참관하고 낡은 간호체계의 실상을 목격한 뒤 간호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인도주의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가난한 이웃에 관심이 많던 나이팅게일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군 의료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당시만 해도 간호사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부모는 집안의 명예가 떨어진다며 딸이 간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독일 카이저벨트의 프로테스탄트 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1853년 런던여성병원의 간호부장이 되었다.
이듬해 크림전쟁이 발발했다.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영국·프랑스·프로이센·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와 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으로 1856년 8월 러시아가 연합군에 패해 퇴각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 나이팅게일은 성공회 수녀 38명과 함께 스쿠타리 야전병원에서 초인적 활약을 펼쳤다.
1860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현 킹스칼리지런던의 일부)를 세우는 등 많은 병원과 간호시설을 설립하고 간호전문서적도 집필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07년 국왕 에드워드 7세로부터 여성 최초로 공로훈장을 받았다. 국제 적십자사에서는 ‘나이팅게일 상’을 제정해 매년 세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를 표창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은 1910년 8월13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묘비에는 ‘1820년에서 1910년까지 생존’이라는 글귀만 적혔다.
▶1909년 조선고서간행회 조직
▶1907년 청, 자정원 설립
▶1899년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생
히치콕 [Hitchcock, Alfred, 1899.8.13~1980.4.29]
히치콕은 '스릴러' 영화를 다수 발표해 명성을 얻은 영국 태생의 미국 영화감독이다. 세인트 이그나티우스 칼리지와 런던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1925년 첫 작품인 <쾌락의 정원 The Pleasure Garden>을 감독했고, 1926년 <하숙생 The Lodger>을 감독하면서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29년에는 영국 최초로 성공을 거둔 발성영화 <공갈 Blackmail>을 만들었다. 이후 서스펜스 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해 인기를 얻었다. 1939년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만든 첫 작품 <레베카 Rebecca>(1940)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30년 동안 1년에 1편 정도의 작품을 감독했으며 1948년부터는 제작도 겸했다. 그는 살인사건과 스파이 활동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위협·공포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능했다. 여기에 카메라의 구도와 움직임, 정교한 편집, 효과적인 사운드트랙 등 기술적인 효과를 사용함으로써 서스펜스 영화의 재미를 더했다. 1979년 미국영화협회(American Film Institute)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만약 내가 신데렐라를 찍는다면 관객들은 곧바로
신데렐라의 마차 안에 시체가 있으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 - 앨프레드 히치콕
▶1898년 미국군, 마닐라 점령
▶1888년 세계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에
성공한 베어드 출생
▶1868년 페루 아리카(Arika 현재 칠
레) 진도 9.0지진·쓰나미로 2만5674명
사망
▶1826년 프랑스 의사 라엔네크 사망
▶1396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 사망
▶232년 중국 삼국시대 촉한 시대의
전략가 제갈량(제갈공명) 사망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