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이보다 더 가까운 하느님
아파서 학교에 결석할 수는 있어도 주일미사에 빠지면 큰일 나는 걸로 알았다. 초등학생 시절 토요일 오후 주일미사 시간은 다가오는데 TV에서는 재밌는 만화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성당 가야지.’라고 하셔서 마음이 갈등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너, 성당 안 가?’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당에는 갔지만 화가 너무 나서 미사 참례하지 않고 성당 문밖에 있다가 파견 성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종의 내 시위였다. 내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일미사 궐한 날이 됐다. 요즘처럼 학원과 학업 때문에 주일미사 궐하는 게 허락되는 현실과 사뭇 다르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게 신앙이고 하느님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란다.
신앙에 대해 많이 배우고 수련하면서 내게 하느님은 무서운 분으로 각인돼 있음을 알게 됐다. 재밌는 만화도 못 보게 하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 분이 나를 위해 저런 끔찍한 십자가형을 받으셨다고 하니 그분은 내게 정말 두려운 분이고, 그런 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하느님이 그런 분이 아니란 걸 잘 알지만, 내 온몸에 새겨진 무서운 하느님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흉터처럼 그냥 지니고 산다. 우리 하느님은 엄마가 선반 높은 곳에 감춰둔 사탕을 함께 까먹자고 하시는 분이고, 오랜만에 미사 참례하는 교우를 고해소로 안내하는 분이 아니라 그동안 굶었으니 얼마나 배고프냐고 하시며 정성스럽게 성체를 내어주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거보다 내게 더 가깝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랑을 체험할 수 없으니 그저 믿을 뿐이다. 그러니 그걸 믿게 된 건 참으로 은총이고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엄마와 나 사이다. 육체적으로 완전히 하나였으니 그보다 더 가까울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모님을 인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을 거다. 우리가 성모님을 좋아하고 공경하고 사랑하는 건 예수님의 완벽한 계획이고 하느님의 뜻이다. 사실 하느님은 그보다 더 내게 가깝고 친밀하지만 그걸 느끼고 깨닫게 할 방법이 이 세상에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모님을 선택하신 건 그분이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정말 대책 없이 하느님 뜻을 따르신 분이다. 가정을 꾸리기도 전에 임신하고 그래서 돌로 맞아 죽을 수 있는 그 계획을 수용하셨다. 죽어도 좋다가 아니라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라고 믿으셨다.
성모님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 성인은 성모님이 세 살 때 성전에서 그를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예수님을 보면 성모님을, 성모님을 보면 그 부모를 그리고 하느님이 어떤 분일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느님을 지독하게 사랑하시고 완전하게 신뢰하셨다. 우리 하느님은 그럴 만한 분이고 우리가 그래야만 우리에게 좋은 분이시다. 하느님은 엄마보다 더 가깝고 좋은 분이시란 걸 성모님이 가르쳐주신다. 나이 들어 다 잊어버려도 참 좋으신 하느님은 잊지 말아야 한다. 법과 규칙은 어겨도 친밀과 사랑으로 맺은 약속은 어길 수 없다. 그 사랑이 깊다면 그 약속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여길 거다. 법 규정은 어겨도 어린 자녀와 맺은 약속은 많은 걸 희생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고 애쓰는 젊은 아빠들처럼 말이다.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이를 증언한다. 하느님이 이런 분이니 내 모든 걸 다 드려도 좋다. 그러면 하느님은 내 봉헌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되갚아 주신다.
예수님, 주님을 뵈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성품과 신앙이 그려집니다. 두 분 사이 그리고 주님과 두 분 사이 관계는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친밀입니다. 제가 하느님 자녀가 되고 주님의 형제와 친구가 됐다는 것도 그만큼 제가 하느님과 가까워졌다는 뜻으로 알아듣습니다. 실제로는 가족관계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를 영원히 도와주시고, 제게 영원한 어머니가 되신 게 다 하느님 뜻이니, 하느님은 도대체 제게 얼마나 가깝고 좋은 분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성모님을 공경하면 아드님과 가까워진다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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