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의 어원
사기로 만든 국그릇이나 밥그릇을 '사발'이라고 부릅니다. 중세 국어 시기에도 '사발'은 지금과 형태가 똑같았습니다. 예컨대 1489년에 간행한 의학서인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에는 "ㅎㆍㄴ 사바ㄹㆍㄹ 머그라(한 사발을 먹어라)"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이어적기로 표기한 '사발'이 보입니다. '사발'은 중세 국어부터 현대 국어까지 형태 변화를 겪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어진 단어입니다.
'사발'은 한자로 '沙鉢'로 적습니다. 그래서 '사발'을 언뜻 한자어로 여길 수 있지만, 정작 중국어에서 '沙鉢'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이기문 선생은 '沙鉢'이 국내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이거나 고유어 '사발'을 한자로 표기한 게 '沙鉢'이리라고 봤습니다. 마치 고유어 '광대'를 '廣大'로 적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기문 선생은 그릇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 어 단어 'saba'와 '사발'이 어떤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는데, '사발'과 'saba'가 차용 관계라면, 우리말에서 몽골 어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강길운 선생도 이기문 선생과 마찬가지로 '사발'이 몽골 어 단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강길운 선생은 명사 'saba'보다 동사 'sabala-(그릇에 두다)'가 '사발'과 직접 대응한다고 봤습니다 한편 고대 일본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이근우 교수도 '사발'의 어원을 추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일본의 보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신라의 놋그릇을 주목했습니다.
"이 놋그릇을 일본에서는 사파리(佐波理)라고 하였다. 현재 우리가 '사발'이라고 하는 말의 어원으로 짐작된다. 아마도 신라인들이 놋그릇을 '사발' 또는 '사팔'이라고 하였고, 이를 일본인들이 듣고 '사파리'라는 한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발'의 어원은 놋그릇에 대한 신라어였다. 어쩌면 '사발'은 '새벌(鷄林, 始林)' 즉 경주를 가리키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도자기를 china라고 하고 칠기를 japan이라고 하는 것처럼, 놋그릇이 신라를 상징하는 그릇이었으므로 그릇 이름에 그대로 '새벌'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닐까." - 이근우의 『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에서
'사발'이 신라를 가리키는 '새벌'에서 비롯한 단어라는 이근우 교수의 주장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고대 일본인이 신라의 놋그릇을 '사파리'로 부른 것에 착안해 '사발'의 어원을 따져 봤지만, 우리말에서 놋쇠로 만든 밥그릇을 가리키는 말은 '사발'이 아니라 '주발'입니다. 고대인들이 재질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든 그릇을 '사발'로 불렀거나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인들의 말을 잘못 듣고 놋그릇에 엉뚱한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있겠으나, 그것을 밝히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과연 '사발'은 신라에서 갈라진 말이었을까요? 궁금증만 늘어납니다.
첨언 하나.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길운(2010),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 한국문화사 이근우(2006), 『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인물과사상사 이기문(1991), 「차용어 연구의 방법」, 『국어 어휘사 연구』, 동아출판사
첨언 둘. 일부 옛 한글은 풀어쓰기로 표기했습니다
출처:한민족역사정책문화연구소 https://cafe.daum.net/kphpi21/WMwx/2748 승희야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