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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장
한환 234년 봄
22살에 맞은 정비[正妃] 민영비[愍儜妃]가 혼인 6년 후인 한환 233년 의진증으로 승하했다.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다. 민영비는 워낙 몸이 허약했던 이라 자식을 한명도 낳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황제가 그녀를 지극히 사랑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할 만큼 그녀는 황제의 눈길을 끄는
이도 아니었고, 황제 역시 혼란해진 나라를 안정적으로 하며 정사[政事]를 돌보는 일 외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후 그래도 첫 비였기에 장례는 국가적으로 치러 주었다.
또한 그녀의 부친이었던 이천의 일가사화[溢呵史禍]로 인해 그녀를 더 더욱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서 부원군 이천의의 일가사화[溢呵史禍]로 가문이 몰락하는 것을 보아야했던 황후의 비명[妃名]은
민영비[愍獰妃]로서 ‘모짐을 근심한 비’라고 짓게 되었다. 부원군이란 지위를 잘못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담서국 황실의 명예를 더럽힌 아비의 모짐을 근심했던 비란 뜻 이였다.
황제는 그 후 새로운 정비를 맞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담서국은 일부일처[一夫一妻]제고,
황제가 30살이란 늦은 나이에도 자식이 하나 없다는 것은 담서의 역사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비[妃]를 맞아야 했는데…….
“황제폐하. 새로운 비[妃]마마를 얻으셔야 하옵니다. 소신들이 이리 간곡히 바라옵니다.
제발 적통 황자를 보셔야 합니다.”
우위직[右位職] 김신중이 아뢰자, 잇따라 유위직[裕位職] 이승한이 아뢰었다.
“민영비[愍儜妃]께서 돌아가신지 벌써 1년이옵니다. 나라의 국모가 없는데, 어찌 저희 중신들이
백성이 편안함을 논할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새로운 비[妃]마마를 얻으소서.”
“얻어야겠지. 그래 그럼 대신들의 생각은 무엇이오? 그대들이 나에게 비[妃]를 맞으라 하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혹여, 내 비[妃]자리를 그대들이 정치세력을 늘리는 데 쓸 생각인 것이오?”
차가운 말투로 되받아 치며 말하는 이는 윤, 아니 황제였다. 스승인 민영호 대감에게는 늘 배움이 부족한 제자였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한 나라의 황제, 담서국의 지존인 황제 윤이었다.
남들보다 키도 커서 용포[龍袍]가 유난히도 잘 어울렸고, 몸집이 거하게 크지도 않지만 적당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가의 신궁[神弓]이라 할 정도로 무예도 빼놓지 않고 좋아했다.
그러나 워낙 폐퇴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스스로의 벽을 만들고 그 벽 뒤로 진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황제의 오만과 당당함, 그리고 무치[蕪恥 : 부끄러움이 없다. 황제는 무치의 존재라 했다.]의 모습이었으니,
반평생을 정치에 몸 담근 정치인들도 자신의 나이에 반도 못 되는 젊은 황제를 함부로 하지 못한 이유가 그 것 이였다.
갓 이립[而立, 30세]이 되었지만 훤칠한 키와 굳건한 성격이 보이는 얼굴 제 45대 선위황제를 닮은 콧대와
선위황제의 황후이자 지금에는 황태후가 된 소원태후[昭媛太后]의 맑은 눈을 닮아 훤칠한 미장부로 이름이 높았는데,
미색[美色]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런 그이기에 더 오만하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대감들은 그저, 담서국의 대[代]를 잇지 못하실까 하는 걱정에
드리는 말씀이오니, 오해하지 마시옵소서. 폐하.”
“진윤직[溱尹職]은 왜 그대는 내가 비를 맞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는 것인가?”
“그것이야, 물론 다음 대를 이으실 황자 전하를 보시기 위함이 아니옵니까?”
“내가 보기엔 다르오. 그대들이 종척들처럼 권리를 잃기 위한 것이든지, 민영비의 부친인 전
부원군 이천의 일을 반복하기 위함으로 보이오.”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소신이 모든 대신들을 대표하여 그 일은 절대 반복되지 않음을 믿고,
그리 행할 것이옵니다. 종척이 약속한대로 권리 중 반 이상을 잃게 된 것은 그들이 황실을 우롱했기 때문이옵니다.
허나 저희 대신들은 폐하와 황실을 위해 한 평생을 몸 바칠 자들이니 믿어 주소서.
허고, 폐하께옵서는 여기의 대신들의 여식을 비로 맞지 않을 것이란 것 소신을 비롯한 다른 대신 모두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민영비께서 돌아가신 후 45대 선위황제폐하[지금 황제의 아버지]에 밀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그래? 영위직[領位職]에 있는 그대라면 믿을 만 한 소식을 전할 거라 믿소만”
황제의 음성에서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차갑기 그지없는 황제의 말에 영위직 해중명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선위황제폐하께옵서는 황자 시절에 이미 폐하의 혼처를 정해 두었으나, 정혼녀였던 아기씨가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 혼사는 이루어 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예관[限詣官]이던 이천의 장녀 이씨처자를 황자비로 맞아드렸던 것이옵니다.”
“무어라? 그 말이 참이오.”
놀랍다는 듯 되물어오는 유위직[裕位職]이 물어오자, 해중명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소. 그 정혼한 이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의 여식이요. 유위직[裕位職] 역시 아는 이요.”
“그자가 누구인가?”
“선위황제 시정 폐하를 비롯한 황자마마들의 스승이셨던 전 영위직[領位職] 민영호[慜影護]대감의 장녀인 민씨 처자요.”
대인전[代因殿]에 모인 많은 대신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영위직을 바라보았다.
전 영위직[領位職] 민영호대감이 누구이던가? 선위황제가 황태자 시절에 같은 스승아래 배움을 나눈 동기이자
정사를 함께 논했던 지기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였던 선위황제의 황자들과 두 명의 황녀를 맡아 배움을 주었던
스승이었으니 그가 즉 현황제의 스승이었다. 영위직에 올라섰어도 한 번 부끄러운 짓 한 적이 없었고, 늘 청렴한
관리로서의 모범이 되어 많은 관리의 표상이 되는 이니, 민영호대감의 딸이 황후 후보라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까?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으나 곧 본래의 차분함을 되찾은 말투였다.
“그 처자 역시 지금쯤이면, 시집을 갔을 나이가 아닌가? 내가 황자일 때가 벌써 10년이 넘어간 지난 이야기란
것을 모르오?”
“폐하보다 많이 어리고,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요.”
“하지만 그대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황자였을 때 황자비로 올랐다면, 적어도 내 또래 같은데 아무리 어려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성인식을 치르지 못하였단 말이오?”
“처자의 나이가 올 이레로 방년[芳年] 성후[19살, 담서 고유의 말]라 하옵니다. 처음 정혼 이야기가 나올 때,
당시 민씨 처자의 나이가 11살이라 하옵니다.”
“선위황제폐하께서 과욕을 부리신 것이겠지, 그 정도면 지금쯤 정혼한 이가 있을 것인데?
어찌 정혼자가 있는 여인을 황제인 짐이 뺏을 수 있는가? 게다가 짐과 10살 넘게 차이가 나는 이를….”
“정혼한 이가 없다하옵니다.”
“무엇 때문이오? 분명 전 영위직이던 대감께서 퇴임한지가 8년이지만, 그의 학식 높고, 또한 임금의 스승을
사돈으로 얻는 것인데”
유위직이 조심스레 입을 열고 해중명에게 물었다. 허니, 해중명이 말을 이었다.
“정혼 잡으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하옵니다. 벌써 3년 전 일이지요.”
“스승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방금 들은 것이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민영호대감께서는 3년 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스승의 부재를 몰랐다? 내가 패악을 저지른 것과 무엇이 다르오. 어찌 대감들은 내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인가? 그럼 그 식솔들은 어찌 되었는가?”
“저희들도 모르는 일이었사옵니다. 전 영위직[領位職]께오서 퇴임하신 뒤 고향으로 낙향하시어 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는 소식만을 듣고 있었사옵니다. 허고, 민씨 처자는 민대감께오서 돌아가신 뒤 민대감의
고향에서 장례를 하고, 올해로 3년 째 삼년시묘를 하고 있다하옵니다.”
“사내도 아닌데 어찌? 분명 아들이 있다 아는데 어찌 된 것이오?”
진윤직이 입을 열고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해중명은 답을 곧 내었다.
“민영호 대감의 장남은 5년 전 의진증[㿄疢症]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하였다 하네. 차남은 아직 어리고,
그러니 아녀자의 몸이기는 허나, 자식 된 도리로서 삼년시묘[三年侍墓]를 한다하는 것이지,
게다가 민대감 부인은 자녀분들 어릴 적에 사별하였고, 워낙에 청렴했던 분이시는 모아둔 재산도 없으니
명예하나만 가지고서 정혼할 이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럼 그 처자가 내 비가 되어야 한다 보오?”
한참을 대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우선적인 권리는 그 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게다가 그 처자는 주위에 인척 하나 없는 처지이오니,
또 다시 일가사화[溢呵史禍]와 같은 일이 번복될 일도 없다 생각하옵니다.”
“권력 없는 처자라? 그래 좋은 일이기는 하지. 허나 그대들 생각이 궁금하구려. 내가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말없이 수군거리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황제는 한쪽 눈을 찌푸렸다. 늘 자신의 사적인 문제에 참견하는 대신들을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마음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늘 개인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일들을 진행하였으니,
갑자기 역습당한 것 같은 느낌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하니, 결국 다음 날로 이야기를 미루자는 말을 건네었다.
“이만 주조자[晝朝諮]를 마치고 내일 다시 모여 얘기하는 것으로 하오.”
황제의 곁에 있던 유내관이 모든 대신들 앞에 서서 입을 열며
“주조자[晝朝諮]를 파[罷 : 그만하다.]하신다 하시옵니다. 모두 대인전[代因殿] 밖으로 나서시지요.”
“예. 폐하, 소신들은 이만 나가보겠나이다.”
대신들이 하나 둘 물러나가자 황제가 편궁[便宮]인 태원전[泰遠殿]에 당도하여 궁 안의 좌석에 앉아 고심을 하며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가 목소리를 내었다.
“환아 나오너라.”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소리 없이 하얀 비단 복식을 입고 장검을 가진 무사하나가 황제의 곁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예, 비검휘인[秘劍揮人] 정환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네가 찾아볼 이가 있다.”
“누구이옵니까?”
“혹여, 내 두 번째 정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찾겠나이다. 찾으면 어떻게 하면 되옵니까?”
“내게 알려라. 우선적으로 그 처자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정도만 알아오면 되느니라.”
“예.”
무사가 소리 없이 물러가자 황제는 피곤한 듯 눈을 살포시 감고 이런저런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이것이…. 휴우-”
첫댓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 흥미진진하네요..
댓글 감사해요
잘봤어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댓글 감사해요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다음편을 기대할께요.^^
댓글 감사해요
의진증이 뭐에요??다음편 기대할게요^^
댓글 감사해요
의진증은 지금의 폐암정도의 병을 제 방식으로 바꾼 불치병의 한류 입니다
정비가 아니라 계비인데요
그렇긴 하지만, 음.. 황제와 민영비 사이에 아이도 없구. 또 제가 생각하는 정비는 소령이니까요
윤직이가 누구에요?
왠 한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