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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유(文承宥)의 궁녀 간통 사건이 불거진 날이 세종 26년(1444년) 10월 10일이었다. 전회에 설명했듯이 문승유는 세종의 할머니인 신의왕후(神懿王后)의 핏줄이었기에 세종은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4일이 지났다. 문승유 사건이 궁궐을 뒤집어 놓았던 세종 26년 10월 14일 또 하나의 사건이 터져 나오게 된다.
"저…전하! 크…큰일 났습니다."
"이것들은 틈만 나면 큰일이래…"
"이번엔 진짜 큰일입니다. 숙근옹주(淑謹翁主 : 태종의 서12녀)가…숙근옹주가…"
"숙근이가 왜? 오늘 수강궁에 간다고 하지 않았냐?"
"예! 숙근옹주가 오늘 수강궁(壽康宮)에 들었사온데…"
"아 색희 말 참 띄엄띄엄 하네…한꺼번에 말 안 해? 지금 라디오 드라마 찍어? 효과음 넣게?"
"아, 예 옹주마마가 몸종인 고미(古未)를 데리고 수강궁에 들었사온데, 이 몸종이 뭐에 홀렸는지 들어오자마자 수강궁을 담을 뛰어넘어 사라졌답니다."
"그러니까…몸종이 생뚱맞게 담치기를 해서 사라졌다고?"
"예"
"숙근옹주 몸종인 고미란 애가…궁녀 맞지?"
"…예"
"이것들이 날 아주 피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만? 문승유 그놈 시키는 궁녀를 남장시켜서 자빠뜨리더니만, 이제는 멀쩡한 궁녀가 담치기를 해? 지금 당장 5대기 풀고, 수강궁 근처에다 특전사 파견해! 무조건 잡아! 못 잡으면…네들 공무원 생활 끝나는 줄 알아."
세종의 분노폭발! 문승유 사건이 터진 게 불과 나흘 전 일인데, 이제는 궁녀가 담치기를 하다니…멀쩡한 궁녀가 미쳤다고 담치기를 했겠는가? 분명 곡절이 있을 것이고, 그 곡절은 십중팔구 남자 문제일 것이다. 생각에 여기에 미치자 세종은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을 풀어 담치기 한 궁녀의 생포 작업에 나섰다. 아울러 수강궁의 시녀와 방자(房子) 등 85명을 의금부로 잡아넣었다.
"얘네들 중에 분명 연루된 놈이나, 정보를 아는 놈들이 있을 거야! 무조건 족쳐!"
"저기…이렇게 무작정 잡아넣는 것 보다는…"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죄 없어도 일단 잡아넣어! 애들 입에서 말 새어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취조도 취조지만, 일단 입부터 틀어막으라고 그래!"
문승유 사건으로 가뜩이나 분위기가 흉흉한데, 또다시 궁녀의 사통 사건이 터진다면 세종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세종으로서는 이 사건을 조용히 덮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만약 이 담치기한 궁녀가 정말 남자 문제로 담치기를 했다면, 세종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문승유를 살리기로 한 세종으로서는 이 '담치기 커플'을 처리하는 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야, 수색대에서는 무슨 소식 없냐?"
"옙, 지금 수강궁 반경 30리에 경계선을 치고 개별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아울러 담치기 한 궁녀와 연계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을 수색해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오케이, 분명 남자가 개입되어 있을 거야. 최대한 신속하게 신병을 확보해라."
당시 이 담치기 한 궁녀를 잡기 위해 세종은 서울뿐만 아니라, 서울외곽지역으로까지 수색범위를 확대하는 등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전방위적인 수색에 의해 고미는 붙잡히게 된다.
"이년을 당장 옥에 가둬! 대충 짐작은 가는데, 왜 담치기를 했는지 취조해라."
이때 연루된 자만, 100여명이 넘었다. 당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당시 사안의 중차대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말해야겠는데, 바로 이들을 취조했던 수사관들이다.
"어이 도승지! 당장 진양대군이랑(수양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데려와."
"예? 갑자기 아드님들은 왜…"
"야, 제발 좀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가면 안 되냐? 꼭 그렇게 토를 달아야겠냐?"
갑자기 아들들을 부른 세종. 그는 왜 아들을 불렀던 것일까?
"아부지, 뭔 일 있어요?"
"그러게요, 저희들을 다 불러 모으시고…오다 보니까, 의금부도 분위기 쌀쌀하게 돌아가던데, 누가 역모라도 일으켰어요?"
"내가 네들 보기 쪽팔려서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생판 모르는 남들한테 쪽 당하느니 그래도 같은 피붙이한테 당하는 게 낫겠다 싶어 네들 불렀다."
"왜 그러세요. 안 잡던 분위기를 잡으시고…"
"궁녀 하나가 아무래도 남자랑 눈이 맞은 것 같다."
"문승유요? 걔는 벌써 잡았잖아요?"
"문승유 말고! 오늘 또 한 애가 사고를 친 거 같다고!"
"……"
"그래서 지금 애들을 취조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네들이 나서야겠다. 딴 애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
"에이, 이미 팔린 얼굴인데, 계속 가시죠? 원래 정치가의 덕목 중 제일 중요한 게 일관성이라잖아요?"
"그래서, 이 애비가 계속 쪽 당하라고? 이것들이 지네 일 아니라고 막 하는데, 이건 마 우리 이씨 왕조의 위기야 위기! 지금 문승유 하나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딴 애까지 태클 들어와 봐. 이건 자폭이야 자폭!"
"……"
"휴…내가 웬만하면 이러겠냐? 담치기 한 저 궁녀…십중팔구 종친들 중 하나가 꼬셨을 거란 말야. 우리 이제 고만 좀 쪽 당하자 응? 취조한다고 여기저기 쑤셔보면, 그게 다 우리 가문 똥칠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네들이 나서서 비밀리에 취조를 하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세종의 간절한 부탁 앞에서 왕자들은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는데…과연 왕자들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초특급 대하 울트라 히스토리 '금단의 열매, 궁녀를 지켜라!'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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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종은 아들들을 시켜 궁녀를 문초 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