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엄마가 아침, 해념이에 열던 된장독 바글바글 맛이 익는다
된장, 간장 담그기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되다
삶은 시간의 숙성이다
해와 달과 별이 십자가를 지고 가고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울려 아름답게 살아간다
삶은 아름다운 시간의 숙성이다
소나무가 하늘을 이고 멀거니 서 있고,
노랗고 하얀 들국화가 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린다.
가을 하늘은 티끌 한 점 없이 맑게, 밝게 빛나는 無垢淨經이다.
다나니경 무구정경(無垢淨經)이다
꼭 당신들을 닮은 하늘이다
은빛 억새정원
천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다
장독대에 빨간 감나무 잎이 날아온다
어메 단풍들겠네
가을은 온갖 열매가 눈을 호감시키고
입을 달게 한다
단풍이 붉게 물들고
들에는 황금 물결이 춤을 추고
코스모스가 가날픈 허리를 한들한들 춤추고
방긋방긋 길손에게 인사 나눈다
온 산천은 한얀 들국화로 꽃 단장하고
노란 은행이 그리움과 추억을 만든다
설레는 마음 소풍길 떠나고 싶다
아! 가을 인가봐!
가을 햇살에 곱게 물든 핑크뮬리밭이 있다.
그곳을 거닐고 있노라면 잊고 있었던 추억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첨성대 주변을 둘러싼 핑크빛 물결은 마치 꿈결 같고,
저 멀리 보이는 첨성대는 유년 시절의 설렘을 되살려 놓는다.
어린 시절, 처음 첨성대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책 속에서만 보던 신라시대의 건축물을 바로 앞에서 보니,
경외감과 자랑스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우리 조상들의 천체 관측 기술과 지혜에 놀랐고 역사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일상에 지친 모든이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듬뿜 않아 보게후
시간을 내어 역사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역사 유적지를 탐방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선조들의 지식과 경험을 느낄 기회를 가져보자.
역사 현장에서 얻는 감동은 역사책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훨씬 크다
내 어린 시절, 나보다 몇십 배 큰 첨성대를 보고 느꼈던 경이로움.
과거의 그 아름답고 짜릿했던 추억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참바람이 가슴을 헤치는 계절 가을
배춧잎 된장국이 끓는다
된장독은 그 집의 맛을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된장, 간장독을 지극 정성으로 지킨다
가을바람 소리는 나그네가 먼저 듣는다 했지.
수백 년 전 시인이 했던 말은 구구절절 옳기도 하다.
나고 자란 곳에서보다 떠나온 곳에서 버틴 세월이 세 배쯤 된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서먹한 이 계절에는 말짱 도루묵.
삼시 세끼 먹던 밥이 얻어먹는 객짓밥 같아진다.
어느 집에서 햇간장을 달이는 모양이다.
간장 맛을 단속하느라 뜨겁게 끓이는 냄새가 틀림없다.
그 집 간장독에 하얀 곰팡이꽃이 피었을 테지.
조심조심 흰 꽃을 걷어 간장을 지켜 주는 사람은 누굴까.
딸네 집에 온 친정엄마일까.
활짝 창문을 열어 나도 맞불을 놓는다.
배춧잎 된장국을 진하게 끓인다.
서너 숟갈 된장을 풀어 바글바글 끓는 소리 요란하게.
사다 끓이는 된장은 얕기만 해서 발등도 잠기지 않는 맛이지만.
아침 볕에 할머니가 열고 해넘이에 엄마가 꼭꼭 여몄던 된장독.
때가 돼서 맛이 들고 때가 돼서 깊어지던 가을 된장은 보약 열 첩이 부럽지 않았지.
천년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독대
우리의 입 맛을 지키고
세계인의 새로운 맛을 선물하는 된장, 간장
된장, 간장 담그기 인류무형유산 등재되었다
시간이 효소이다
시간을 숙성 시킨다
천년의 맛은 우리를 마음을 담근다
된장국의 구수한 맛처럼
낮꿈을 꿔 볼까.
볕에 잘 구슬린 햇된장 배춧국에 식은밥 한 덩이를 말아도 속이 달래지던 그 가을날처럼. 밥상머리에 그냥 큰대자로 누워 낮잠 한숨 배가 부르게 자야겠다.
가을밤 밝은 달에
가을밤 밝은 달에
이세보(1832∼1895)
가을밤 밝은 달에 반만 핀 연꽃인 듯
동풍(東風) 세풍(細風)에 조으는 해당화인 듯
아마도 절대(絶代) 화용(花容)은 너뿐인가 하노라
-해동가요 주씨(周氏)본
한국은 시의 나라
얼마나 님의 얼굴이 아름다우면 가을밤 밝은 달에 반만 핀 연꽃에 비유했을까?
또는 잔잔한 동풍에 조는듯한 해당화에 비유했을까?
나의 님은 다른 이에 비길 수 없는 절대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인가?
이 시조는 현대적 감각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고시조를 창작한 조선 후기의 마지막 대가 중 한 사람인
이세보의 작품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문집 풍아(風雅)에는 시조 437수가 실려 있으니
작품 수로 보아도 현대시조 시인들에 비겨 뒤지지 않는다.
그에 이르러 노래로서의 고시조는 완성되고,
문학으로서의 현대시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하겠다.
풍요한 시의 보고(寶庫)를 지니고 있는 한국은 시의 나라다.
한국 문학의 가치를 노벨 재단이 인정했다는 사실이 반갑고 자랑스럽다.
한국의 문화는 인류 문화의 으뜸으로 세계가 인정한다
구수한 된장이 익어간다
된장 배춧국이 바글바글 끓고 있다
삶은 시간의 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