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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of Achievement
참나는 누구인가
"I have worked hard and I now consider myself a very successful man.
I would be a hypocrite if I did not admit that I have a considerable amount of satisfaction and, yes, a certain amount of pride too in my achievement. Would that be wrong?"
방문자: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지금은 나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성공에 매우 만족하며, 내가 성취한 것에 강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One evening a foreign visitor addressed Sri Nisargadatta Maharaj with these words. He was in his mid forties— smug, self-confident and a bit aggressive.
Conversation then proceeded along the following lines:
어느 날 저녁 외국에서 온 한 방문자가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의 강의를 듣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40대 중반의 이 남자는 아주 자신에 차 있었으며
약간 공격적이었다.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Maharaj: Before we consider what is 'right' and what is 'wrong ', please tell me who is asking this question.
마하라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기에 앞서
누가 이 질문을 하는지 말해보십시오.
Visitor: (A bit startled) Why, 'me', of course.
방문자: (약간 당황하며) 뭐라고요? 물론 나입니다.
M: And who is that?
마: 그게 누굽니까?
V: Me. This 'me', who is sitting in front of you.
방: 나입니다. 선생님 앞에 있는 바로 나입니다.
M: And you think that that is you?
마: 그것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군요.
V: You see me. I see myself. Where is the doubt?
방: 선생님도 나를 보고 있고 나도 나 자신을 봅니다.
여기에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
M: You mean this object that is before me?
What is your earliest recollect ion of this object that you think you are. Think as far back as you can.
마: 내 앞에 있는 그 몸뚱이를 말합니까?
그것은 한낱 대상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 몸뚱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입니까?
가능한 가장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V: (After a minute or two) The earliest recollection would perhaps be of being caressed and cuddled by my mother.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어머니가 쓰다듬어주고 귀여워해주던 존재일 겁니다.
M: You mean, as a tiny infant.
Would you say that the successful man of today is the same helpless infant,
or is it someone else?
마: 아주 어린 아기를 말하는군요.
오늘은 성공한 어른이 바로 그 연약한 아기와 같다고 말한 겁니까?
V: It is undoubtedly the same
방: 의심할 여지없이 같습니다.
M: Good. Now, if you think further back, would you agree that this infant, which you can recollect, is the same baby that was born to your mother, that was once too helpless even to realize what was happening when its little body was going through its natural physical functions, and could only cry when it was hungry or in pain?
마: 좋아요. 이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그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너무나 연약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배고프거나 고통스러우면 그저 울기나 했던 바로 그 아기입니까?
V: Yes, I was that baby.
방: 네, 내가 그 아이였습니다.
M: And before the baby acquired its bod y and was delivered what were you?
마: 그럼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V: I don't understand.
방: 모르겠습니다.
M: You do understand.
Think. What happened in your mother's womb?
What was developing into a body with bones, blood, marrow, muscles etc., over a period of nine months?
Was it not a male sperm cell that combined with ovumin the female womb thus beginning a new life and, in the process, going through numerous hazards?
Who guarded this new life during this period of hazards?
Is it not that very infinitesimally tiny sper mcell which is now so proud of his achievements?
And who asked particularly for you?
Your mother? Your father?
Did they particularly want you for a son? Did you have anything to do with being born to these particular parents?
마: 당신을 알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무엇이 9개월이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뼈와 피와 골수와 근육 등을 갖춘 몸으로 자라게 했나요?
그것은 여성의 자궁에서 난자와 결합하여 새 생명을 시작하고,
또한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는 남성의 정자가 아니었나요?
누가 이 위험한 기간 동안 새 생명을 보호해 주었나요?
이 아주 극미하게 작은 정자 세포가 지금 자기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는 바로 그것 아닌가요?
누가 특별히 당신을 원했나요?
어머니? 아버지? 그들이 특별히 당신을 아들로 원했나요?
이 특정한 부모에게 태어나는 데 당신이 어떤 관여를 했나요?
V: I am afraid, I really haven't thought along these lines.
방: 아마도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M: Exactly. Do think along these lines.
Then perhaps you will have some idea of your true identity. Thereafter, consider if you could possibly be proud of what you have 'achieved'.
마: 맞습니다. 이제 그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아마도 당신의 진정한 실체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당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V: I think, I begin to understand what you are driving at.
방: 선생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M: If you go deeper into the matter, you will realize that the source of the body—the male sperm and the female ovum—is in itself the essence of food consumed by the parents; that the physical form is made of, and fed by, the five elements constituting the food; and also that quite often the bod y of one creature does become the food for another creature
마: 좀더 깊이 들어가면, 육체의 근원인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는 그 자체가 부모에 의해 섭취된 음식의 정수(精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의 몸은 음식을 구성하는 5대 요소로 이루어지고, 음식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한 한 생명의 몸은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V: But, surely, I, as such, must be something other than this food-body.
방: 그렇지만 분명히 나는 먹이가 되는 육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일 겁니다.
M: Indeed you are, but not some 'thing'.
Find out what it is that gives sentience to a sentient being, that without which you would not even know that you exist, let alone the world outside.
And finally, go deeper yet and examine if this beingness, this consciousness itself is not time-bound.
마: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아닙니다.
지각력이 있는 존재에게 지각을 주고, 그것 없이는 외부 세계는
물론이고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그것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 이 존재,
이 의식 자체가 시간의 영역에 속한 것인지 알아보세요.
V: I shall certainly go into the various questions you have raised, although I must confess that I have never explored these areas before, and I feel almost giddy in my ignorance of the new spheres you have opened up before me. I will come and see you again, sir.
방: 지금까지 내가 이런 영역에 대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선생님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현기증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여러 의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선생님.
M: You are always welcome.
마: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Consciousness, the Only 'Capital'
의식, 오직 하나의 자산
Maharaj often comes out with the statement that consciousness is the only 'capital' that a sentient being is born with.
This, he says, is the apparent position. The real situation, however, is that what is born is consciousness, which needs an organism to manifest itself in, and that organism is the physical body.
마하라지는 지각력이 있는 존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자산은 의식이라고 종종 말한다
태어난 것이 육체 같지만 그것은 외관상 그렇고 실제에 있어서는, 태어나는 것은 의식이며
의식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유기체를 필요로 하는데
그 유기체가 바로 육체라고 한다.
What is it that gives sentience— capacity to feel sensations, to respond to stimuli—to a sentient being? What is it that distinguishes a person who is alive from the one who is dead? It is, of course, the sense of being, the knowledge of being present, consciousness, the activizing spirit which animates the physical construct of the body.
지각력이 있는 존재에게 감각을 느끼고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별 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존재 의식( sense of being)이요,
물리적 구조체인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역동하는 정신이다
It is consciousness indeed that manifests itself in individual forms and gives them apparent existence.
In human beings through such manifestation arises the concept of a separate ‘I’. In each individual the Absolute gets reflected as awareness, and thus pure Awareness becomes self-awareness, or consciousness.
스스로를 개별적 형태로 현시(顯示) 하고
그 형태들에게 명백한 존재를 부여하는 것은 실제로 의식이다.
그러한 현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독립된 '나' 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각 개인에게 있어서 절대(Absolute)는 자각으로 반영되고 순수자각은 자기 인식이나 자기 의식으로 되는 것이다.
The objective universe is in continuous flux, constantly projecting and dissolving innumerable forms.
Whenever a form is created and is infused with life (Prana), consciousness (Chetana) appears, simultaneously and automatically, by the reflection of the Absolute Awareness in matter.
물질 우주는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수많은 형태를 투영하고 용해시킨다.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져 거기에 생명력(Prnana) 이 주입될 때마다
절대자각(Absolute Awareness) 의 사물에의 반영에 의해
의식(Chetaa)이 동시에 그리고 저절로 나타난다.
Consciousness, it must be clearly understood, is a reflection of the Absolute against the surface of matter, bringing about a sense of duality.
As different from it, pure Awareness, the Absolute state, is without beginning and end, without the need of any support other than itself.
Awareness becomes consciousness only when it has an object to reflect against.
Between pure Awareness and awareness reflected as consciousness, says Maharaj, there is a gap which the mind cannot cross.
Reflection of the sun in a drop of dew is not the sun!
의식이란 사물의 표면에 비치는 절대의 반영이며 그것으로 하여 이중적 분리감이 초래된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과 달리 순수의식인 절대 상태는 시작과 끝이 없고 스스로
존재하기에 그 무엇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순수의식은 부딪쳐서 반영될 대상이 있을 때만 개체의식이 된다. 순수 존재의식과 개체성으로 덧씌워진 개체적 존재의식 사이에는 마음이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마하라지는 말한다.
한 방울의 이슬에 비친 태양은 진정한 태양이 아닌 것이다!
Manifested consciousness is time-bound inasmuch as it disappears as soon as the physical construct it inhabits comes to an end. Nevertheless, according to Maharaj, it is the only 'capital' a sentient being is born with.
And manifested consciousness being his only connection with the Absolute, it becomes the only instrument by which the sentient being can hope to get an illusory liberation from the 'individual' he believes himself to be. By being one with his consciousness and treating it as his Atma, his God, he can hope to attain what he thinks as the unattainable.
현시된 의식이란 그것이 깃들어 있던 물질적 구조(육체)가 소멸됨과 동시에 사라지는 한시적인 것으로서 당연히 시간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나 마하라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지각 있는 존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자산' 이라고
한다.
또한 현시된 의식은 그와 절대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며,
지각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개체로부터 본래 있지도 않은 해방을 염원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자신의 의식과 하나가 되어 그것을 자신의 생명의 근원으로 여김으로써, 전혀 길이 없다고 여기던 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What is the actual substance of this animating consciousness? Obviously, it must be physical material because in absence of the physical form it cannot survive.
Manifested consciousness can exist only as long as its abode, the body, is kept in a sound and habitable condition.
Although consciousness is a reflection of the Absolute, it is time-bound and can be sustained only by the food material, comprising the five elements, that the physical body is.
활기를 불어넣는 이 의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의식은 물질적인 형태를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것 역시 물질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현현된 의식은 그 거처인 육체가 건강하여 거기에 머물 만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의식은 절대의 반영이긴 하지만 시간의 제약을 받고,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음식물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Consciousness resides in a healthy body and abandons it when it is decayed and moribund.
Reflection of the sun can be seen only in a clear dew drop, not in a muddy one.
의식은 오직 건강한 육체에만 함께 할 수 있고 육체가 쇠하여 소멸될 때 함께 사라진다. 태양의 반영은 깨끗한 이슬 방물에서만 볼 수 있을 뿐 흐린 이슬방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Maharaj often says that we can observe the nature and function of consciousness in our daily routine of sleeping, dreaming and waking states.
마하라지는 의식의 성질과 기능을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깊은 수면상태, 꿈꾸는 상태 그리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자주 말한다.
In deep sleep consciousness retires into a state of repose, as it were.
When consciousness is absent, there is no sense of one's existence or presence, let alone the existence of the world and its inhabitants, or of any ideas of bondage and liberation.
This is so because the very concept of 'I' is absent.
깊은 잠 속에서 의식은, 말하자면 휴식상태로 물러난다.
의식이 없으면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 구속이나 해방에 대한 생각은 물론 자신의 존재나 현존에 대한 느낌 조차 없다.
그 때는 '나' 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In the dream state a speck of consciousness begins to stir—one is not yet fully awake— and then in a split-second, in that speck of consciousness is created an entire world of mountains and valleys, rivers and lakes, cities and villages with buildings and people of various ages, including the dreamer himself.
And, what is more import ant, the dreamer has no control over what the dreamed figures are doing!
약간의 의식이 작용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꿈의 상태에서는,
순식간에 의식안에서 산과 계곡, 강과 호수,
꿈꾸는 사람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도시와 마을의 온전한 세계가 창조된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점은 꿈에 나타난 형상들의 움직임에 대해
아무런 통제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In other words, a new living world is created in a split-second, fabricated out of memory and imagination merely by a single movement in that speck of consciousness.
Imagine, therefore, says Maharaj, the extraordinary power of this consciousness, a mere speck of which can contain and project an entire universe.
When the dreamer wakes up, the dream-world and the dreamed figures disappear.
그 단순한 약간의 의식작용에 의해 기억과 상상으로 만들
어지는 새로운 살아 있는 세계가 일순간에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라지는 단지 미미한 작용만으로도 전 우주를 포괄하고 투영할 수 있는 의식의 비범한 힘을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꿈꾸는 의식이 깨어나면 꿈의 세계와
꿈속에 나타난 형상들은 사라진다.
What happens when the deep sleep as also the dream state are over and consciousness appears again?
The immediate sense then is that of existence and presence, not the presence of 'me' but presence as such.
Soon, however, the mind takes over and creates the 'I' – concept and awareness of the body.
깊은 잠과 꿈의 상태가 끝나고 의식이 다시 현상세계를 인식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때 나타나는 즉각적인 감각은 '나' 의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서의 존재에 대한 현존감이다.
"나" 의 존재가 아닌 존재감 그 자체다. 그러나 곧 정신이 들고
나라는 관념과 개체에 대한 동일시가 생겨난다.
Maharaj tells us repeatedly that we are so accustomed to thinking of ourselves as bodies having consciousness, that we find it very difficult to accept or even understand the real position.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의식을 가진 개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익숙하여 진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 것 마저 매우 어렵게 느끼고 있다고 마하라지는 되풀이해서 말한다.
Actually it is consciousness which manifests itself in innumerable bodies.
It is, therefore, essential to apperceive that birth and death are nothing but the beginning and the ending of a stream of movements in consciousness, interpreted as events in space-time. If we can realize this, we shall also realize that we are pure being-awareness-bliss in our original pristine state, and when in touch with consciousness, we are only the witnessing of (and totally apart from) the various movements in consciousness.
This is an indisputable fact, because obviously, we cannot be what we perceive; the perceiver must be different from what he perceives.
실제로 스스로를 수많은 육체 속에 현현시키는 것은 의식이다.
따라서 태어남과 죽음은 시공 속의 하나의 사건과 같은, 찰나에 일어난 의식의 움직임의 시작과 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본래의 근원 상태에서는 존재 그 자체로서 지복(至福)이며, 의식과 접촉할 때는 의식의 다양한 활동을 목격하고 있을 뿐 그 활동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분명히 인식자는 자기가 인식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인식하는 자는 그가 인식하는 대상과 별개여야만 한다.
마하라지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가 영원한 절대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았자
그것은 관념적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우리의 본래 모습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뿐입니다.
“여기”에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지금”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말하고 듣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즉각 깨닫는 것입니다.
Whatever we may think or say about the Intemporal Absolute, concluded Maharaj, could only be conceptual, merely an indication, a pointer, which could never possibly reveal to us what intemporality is, because that is what we are. All we can say is: I am here and now 'here' being in the absence of space and 'now' being in the absence of time.
Even saying this is perhaps saying too much.
It is not the saying nor the hearing that matters.
What matters is the instant apperception of the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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