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격려하고 용기를 줍니다.
"너는 할 수 있어! 잘 할 수 있어! 그 일을 이룰 수 있어"
잘 했어!, 참 만족해!"
"참 멋있어!, 참 좋아!"
희망과 격려의 말을 합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서, 그것이 잘하든, 조금 못미치더라도 미래이 희망과 길을 위해서 격려하고용기를 북돋습니다. 이것은 적절하고 정당한 격려와 용기입니다. 그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하는 일이 잘 됩니다.
여러분은 낮추어 말하고 깎아내립니까? 없는 것도 보태서 말합니다. 아니면 더해주고 높여주고 더 낫게 말합니까? 사실 그것은 나의 믿음과 희망에 관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희망과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것으로 기쁨과 평화의 일이 됩니다. 낮추거나 깎아내리는 나는, 낮은 사람이며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를 진심으로 높이고, 높여주는 이는 그의 자존이 높으며 심지가 깊은 사람입니다. 나는 선한 사람이며 좋은 사람입니다.
격려하고 용기 주고 일으키고 세워주고 찬미합니까? 아니면 그럭저럭입니까? 아니면 낮추고 깎아내리고 자존을 낮추고 모른체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눈을 찔끗 감고, 입을 비죽거리고 마음에서 불편한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까?
상대의 존재와 존재 양식을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의와 악과 부정이 아니라면, 그것이 생각과 이상, 내 가치와 그 양식과 다르더라고, 그를 보아주고, 견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보아줌에서 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갈 수 있고, 서로 배우고 나눌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마주 본다고 하고 함께 나눈다는 것이고,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이는 일으키고 세우고 대화하고 함께 걸어갑니다. 일으키지도 세우지도 대화하지고 더구나 함께 걸어가지 않으면서 공감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의 형편이 내 마음에 안들면 어떠할까요? 내 말을 듣지 않고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의 뜻과 말과 행위와 다른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나 한편 그가 나의 말을 들을까요? 생각을 받아줄까요? 바로 따를까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딴청을 부려도 우리의 공감의 길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곧 실개울이 개울이 되고, 시내와 강이 되고 결국은 바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거리와 시간을 또 세월을 기다리는 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공감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기를 주시고 공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 그러나 시몬은 토를 달았습니다.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다른 배의 동료들이 와서 도와 주었습니다. 두 배 가득히 채워 배가 가라 앉을 정도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또 예수님께 토를 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이랬습니다."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10절 참조).
예수님께서 예리코의 눈먼 이를 고쳐 주실 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왔을 때, 그분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고, 그가 "다시 볼수 있게 해 달라." 하자, 그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마르 10,47-52 참조).
예수님은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언제 어디서 그을 일으키시고 세우시고 걸어가게 하시며 그를 축복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그런 용기와 공감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모두에게 용기와 격려와 일으킴과 축복을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형제에게 용기를 주는 일, 격려하는 일, 그리고 일으키고 축복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꾼이고 제자입니다.
주님, 오늘도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사는 제자 되게 하소서. 격려와 용기와 공감과 축복을 전하는 제자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첫댓글 주님! 저와 너무도 다른 사람도 주님의 제자로 여기고 이끌어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힘이 듭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접어두고 주님의 뜻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건데,, 내면의 힘을 뺀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당신이 저를 있는그대로 받아주셨듯이,, 저도 그렇게 다른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공감해주고 축복해주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