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단상 최 건 차
코로나 팬데믹으로 출입이 뜸했던 문인들을 만나 청와대로 향했다. 4월이라 꽃이 한창인데 어제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대고 있어 꽃샘바람이 다시 찾아든 것 같아 을씨년스럽다. 모두의 연륜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인데 청와대라는 특별한 곳이라서 이런저런 절차를 밟아가며 마치 유치원생들처럼 인솔자를 따라 들어갔다. 날씨도 안 좋은 주 중인데도 엄청나게 모여들고 있어 안으로 입장을 안내하는 분들이 분주하다.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단체로 떠들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간간이 나 홀로의 유럽인들은 천천히 줄을 서서 따르고 있다.
우리 일행은 역사문화 전문해설가인 동인께서 입장이며 해설을 맡아주어 수월했다. 그저 그간의 말로만 듣고 일방적으로 생각해 왔던 청와대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와 편견을 반추해서 추슬러 보려는 생각이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파란 많은 정치의 역사가 발생하고 새겨진 청와대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재임 시의 경무대 시절인 1959년 나는 효자동과 궁정동 일대에 장기영 사장의 한국일보를 배달하느라 매일 경무대 입구 경호실에도 신문을 직접 넣고 있었다.
1950년대 효자동과 그 인근에는 당시 실세의 유력한 분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곽영주 경무대 경찰서장을 비롯하여 후일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 아시아 국장의 공관과 4‧19로 내각 수반을 지낸 허정씨 집에도 신문을 넣고 있었다. 어느 날은 경무대로 달려가 경호실에 신문을 주려다 마침 하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를 먼발치로 뵈었던 게 애잔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려진다. 그리고 1975년 4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을 알현했던 일도 못내 잊을 수가 없다.
오늘은 일행과 함께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청와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다. 1959년에 밖에서 봤던 경무대와 1975년 직접 들어가 봤던 청와대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4‧19와 5·16를 겪고 나서 많이 변해버린 청와대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주변 건물에 조화를 이룬 수목이 아름답다. 우리나라 국격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가 곁들어져 웅장하게 세워진 본관에 들어섰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는 ‘나 이런 곳에 왔어요’라는 인증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해설사를 따라 분주하게 이동을 하면서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접견실은 주로 외국사절을 만나는 곳도 있지만, 특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대접견실 앞에서 그때를 떠올리며 기념사진 찍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곳이지만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을 알현했던 곳이 대접견실이었다. 나는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귀국하고 나서 3년을 더 복무하다가 전역했다. 예비역 대위를 반갑게 받아 준 곳은 당시 수출로 호황을 누리던 부산 수영에 있는 태창목재였다. 예비군이 국가적인 잇슈가 되던 시기라 예비군 중대장으로 보직을 받아 최선의 노력으로 회사와 국가에 기여한 결과 나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부산시 직장예비군 대통령 표창자로 선발된 것이다.
회사와 부산의 명예를 안고 상경하여 서종철 국방부장관께 신고를 했다. 뜻밖에도 서 장관의 비서실장이 미8군시절 나를 아껴주던 상관 이상민 중령이었다. 그는 나를 반기며 네가 오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다며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오찬을 하도록 자리 배정이 되었으니 잘하라며 격려해 주었다. 키가 대단히 큰 서종철 국방장관, 서 장관 다음가는 체구의 노재현 합참의장과 나와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체구가 큰 이세호 육군참모총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나오십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있자 밝은 조명이 켜졌다. 잠시 후 기다리고 있는 분들보다 작아 보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셨다. 비록 체구는 작았지만 무언가로 압도시킬 듯한 강열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분 앞으로 다가가 내민 손을 잡았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손이 잡히는 순간 내 전신에 짜릿함을 느꼈다. 이어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휘장을 왼편 가슴에 달고, 갓 나온 만 원권 지폐 5장이 든 봉투와 대통령의 휘장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놓여 있는 다과를 먹으며 홍차를 마시는데 담배를 피우라며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성냥갑을 열어 켜주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해 사양을 하고 차를 마시는데 질문을 했다. ‘임자, 월남전에 참전했지’라는 말에 ‘예’하고 대답하자. ‘거 말이야 M16이라는 것 있잖아, 예, 우리 군이 당장 필요하다면 얼마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예, 제 생각에는 2개 사단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서 장관 지금 들었지’라고 했다. ‘그리고 말이야 방송에 나가 이야기 좀 잘하라고 해’라며 자리를 떴다.
나는 청와대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남산 KBS로 갔다. 준비한 대로 20분간 생방송으로 안보와 반공에 대하여 우리가 확고히 해야 할 자세를 나의 소견으로 말해 전국을 강타하게 되었다. 방송이 끝난 후 중앙청으로 가 김종필 총리를 만났다. 그분도 홍차를 내놔 같이 마시며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하며 다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그 사람들은 다들 멀리 떠나버렸다. 이제는 기구한 역사의 명소로 남게 된 청와대, 나도 문인들과 함께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결에 회상이 흩날리려 한다.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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