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로 오르는 길은 오랜만에 호젓하다.
옛매표소 문을 나오는 젊은 두 여성이 뒤돌아 합장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차들도 드나들지 않고 공사판의 기계와 사람들도 안 보인다.
그래도 안쪽으로 들어가니 차는 보인다.
영광루 앞의 산수유는 아직이다.
대웅전 안에서 불경소리가 남성합창단의 소리같기도 하고???
소리가 끊기고 문이 열려 스님들이 줄지어 나온다.
맨 앞에 목을 앞으로 내민 노스님이 걷고 맨 나중 계단을 내려선 청년스님은
왼쪽 어깨 위에 향로를 들고 있다.
본 듯한 교직 후배를 보고 아느 채를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그 중에서 한 사나이가 걸어나와 나한테 인사를 한다.
고흥 과장을 한 1년 후배 정병도다.
이경규는 처의 작은집이 마륜이라는 걸 환기시켜준다.
신일우씨라고 하는데 백년사편찬하며 자랑스런 동문의 한분으로 기억하지만
한마을이라는데도 난 정작 그 분을 알지 못해 미안하다.
머리가 많이 하애진 박종식 교장도 얼굴이 익다.
페북에서 나의 산행을 정과장이 들먹이는데 난 머쓱해진다.
보리밥집에 가 점심을 먹겠다고 하자 자기들은 불일암 산책하겠다고 한다.
셋 모두 작은 매낭을 매었다.
불일암에서 나와 산길을 조금 걸어 광원암 감로암으로 오는 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헤어진다.
설준비하는지 일하는 이들이 다 자기집으로 설 쇠러 갔는지
대밭 안의 목수간도 조용하다.
다리를 건너 산길로 접어드니 날이 포근하다.
쉬지 않고 잘 올라간다. 11시 반이 지나 시작한 산걸음이 10여분 지나
나무다리에서 더워 옷을 벗게 한다.
12시 25분쯤 굴목재에 닿는다.
최남선의 심춘순례는 책으로 나와 있는가?
그가 걸었을 때 이 고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처럼 돌을 깔아 둔
내 걸음처럼 편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20분이 걸리지 않아 보리밥집에 도착한다.
너무 조용해 불안하다.
마당에 2월에 찾아뵙겠다는 종이가 붙어 있다.
아렛집으로 내려가 보리밥 하나에 막걸리 반되를 시키니 학생인 듯한 아가씨가
15,000원이란다.
문짝의 계좌번호에 이체하고 나무 아래 와상에 앉아 겉옷을 입는다.
아래 비닐하우스에서는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수녀복을 입은 여성 몇과 젊은 청년들이 줄지어 밥을 먹고 있다.
선암사에도 아직 꽃이 없을테니 장군봉에나 가 보자.
큰굴목재로 올라 능선을 타고 장군봉으로 걷는다.
나무들이 존경스럽다.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선암에 올라 조망을 얻기로 한다.
골짜기와 산줄기들이 눈을 살짝 안고 잇다.
서쪽에서 오는 호남정맥의 산줄기를 가늠한다.
멀리 제암산이 조그맣다.
장군봉엔 아무도 없다. 눈 녹은 땅은 고실하게 마른 곳도 있고 질척이는 곳도 있다.
하나마나한 인증을 하고 접치쪽으로 내려간다.
연산봉사거리 가는 길은 가까운 듯 먼 듯하다.
비슷한 오르내림을 하다 장박골 지나 방향이 바뀌어 남으로 가는 길도 오르막이 있다.
연산사거리엔 4시가 넘어 도착한다.
보리밥집 후 먹은 게 없는데 배 고프지도 않다.
배낭에 순천막걸리가 있는데 참고 계곡을 내려간다.
토다리까지 내려오는데 40분이 걸린다.
송광사를 지나며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현판만 찍고 아스팔트를 터덕이며
내려온다.
너른 주차장엔 내 차 한대만 나무 아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