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하느님을 향해 마음 열기
하늘나라는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는 것일 거 같다. 어디를 가느냐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누구와 함께 가느냐이다. 마음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하는 여행은 지옥이 따로 없다. 급기야 여행 중간에 돌아오게 되는 일까지 생긴다. 좋은 사람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 유익한 대화를 나누고 배우고 닮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지내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늘나라 젓가락은 무척 길어서 남에게 먹여줄 수만 있다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것에 더해 서로 먹여주는 사람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거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꼭 하늘나라는 아니다. 헤로데와 빌라도처럼 서로 원수 사이였지만 예수님을 없애려고 서로 친구가 된 이들도 있었으니 말이다(루카 23,12). 그래서 성당 안에서 서로 의기투합하여 복음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한다. 그렇다, 하늘나라는 예수님을 찾는 이들,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려는 이들이 사는 곳이다. 하늘나라 시민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진리를 찾고 선하고 의로운 일에 헌신하는 이들과도 함께 살 수 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그분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 하늘나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삶이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활은 없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부활을 상상한다고 해도 이 세상 삶의 연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활은 죽은 이가 되살아나는 깜짝쇼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음과 뜻이 맞는 친구들과 가는 여행, 예수님에게 자기 마음을 맞추려는 이들 모임, 하느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개방하려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하늘나라이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부부, 부모 자식 관계는 여기서나 있는 거다. 하늘나라에서는 시집 장가 가는 일도 없고 모두 천사들과 같아져서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고 있다. 이 땅에서는 하느님만 바라본다는 게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좋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좋은 영화를 보는 시간,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 서있는 시간, 자신을 보고 웃는 아기와 눈을 맞추는 엄마의 마음 등 이미 우리는 그런 시간을 맛보고 있다. 하느님은 죽은 이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고, 죽어야 비로소 만나는 분이 아니라 여기서 살면서부터 함께 지내는 분이다.
모세, 엘리야, 예수님은 대표적인 하느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 뜻을 따르느라고 수고를 참 많이 했다. 특히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임까지 당하셔야 했다. 하느님과 마음을 맞추려는 사람은 예수님 인생처럼 된다. 반갑지 않지만 이게 진실이고, 다른 길은 없다. 여기서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은 못 가고 안 간 그 길을 죽은 후에 결국 마저 다 가게 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고생하고 벌을 받고 죽어가는 거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부활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는다(지혜 3,1-4). 마음 맞는 사람과 하는 여행이라면 수고도 놀이가 되고 고생도 추억이 되고, 그러는 중에 친구들이 나를 위해 봉사하고 챙겨주는 멋진 모습이 내 안에 깊이 새겨지는 것과 같은 거다. 친구 예수님도 이렇게 사셨고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예수님, 저희는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의기투합해서 주님을 몰아내느니 차라리 분열이 더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주님 뜻을 찾는 이들 무리에 속하고 싶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음을 열어드리니 제 안에 머물러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들을 아드님께로 인도해 주시고 저도 늘 그 안에 있게 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