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새벽 1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6시 30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도불교협회(IBC) 대표 담마삐야 스님이 정토회를 찾아와서 조찬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공동체 행자들이 발우공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발우공양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심경에 나오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평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겨 차담을 나누며 정토회와 JTS, 평화재단, 에코붓다, 좋은벗들의 활동도 소개했습니다. 담마삐아 스님은 ‘제가 하고자 하는 사회 활동을 모두 하고 계신다’며 ‘스님은 저의 스승’이라며 기뻐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흘렀습니다.
“제가 8시부터 영어 사용자를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합니다.”
“오늘 몸의 양식뿐만 아니라 좋은 마음의 양식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시 50분에 담마삐아 스님을 배웅하고 바로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영어 사용자를 위한 즉문즉설
오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외국인 6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런 좋은 봄날 날씨처럼 우리 마음에도 담마 토크를 통해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한 명씩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직장동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를 존중하지 않는 직장동료가 불편해요
“My question is about one of the employees. We have to work together, but she refuses to talk. If I do the exercise a little bit late and have another schedule, so her work gets 5-10 minutes delayed then she sends another employee to tell me to finish quickly, and I feel no respect. When I make artwork, such as painting, I display it in the artwork room. However, I find that 3-4 days later, she has trashed my artwork and displayed hers done with the residents. When this happens over and over again, I feel very disrespected. I am the only Asian fully employed there, and all others are Native Americans, but I do not want to think that way; taking it that far but I feel isolated.
When we have a baking class, she doesn't clean the kitchen area and leaves everything and the trash. I am the one taking out the trash, cleaning, and dishwashing. There are many little things in the job description that she doesn't do, so I am the only one cleaning. However, I don't want to complain all the time. I have talked to my boss and had meetings three times about this issue, but it still hasn't been fixed. She is doing the same., So my question is, without her respecting me, how can I be peaceful and keep my mind peaceful?”
(제 질문은 직장 동료 중 한 명에 관한 것입니다.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제게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운동을 조금 늦게 시작하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어 그녀의 일정이 5-10분 지연되면, 그녀는 다른 직원을 시켜 빨리 끝내라고 전달하는데 그럴 때는 제가 존중받지 못한 기분이 듭니다. 또 그림 등 작품을 만들어 예술작품실에 전시해 두면 , 3-4일 후에 그녀가 제 작품은 버리고, 자신이 거주민들과 함께 만든 것을 전시해 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유일한 아시아계 정직원이고, 다른 직원들은 모두 미국본토인 이어서일까요?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고립되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베이킹(빵, 과자 굽기) 수업을 할 때 그녀는 주방 청소도 하지 않고 온갖 쓰레기를 남겨둡니다. 저 혼자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자기가 맡은 많은 소소한 일들을 하지 않아 저 혼자 청소를 떠맡습니다. 늘 불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상사에게 얘기도 하고 세 번이나 회의를 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녀가 저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제가 평화로울 수 있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 그 직장을 그만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거죠?”
“I don't want to quit. I like doing my job.”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일이 좋습니다.)
“둘째, 상사에게 얘기해서 개선하도록 요청했는데도 개선이 안 된다는 거죠?”
“That's correct. They didn’t.” (맞습니다. 안 바꿔줬습니다.)
“그러면 그 동료가 스스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좋은데 그렇게 안 하고 있지 않습니까?”
“That’s right. She doesn’t.” (맞습니다. 안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상사에게 얘기해도 안 고쳐지고, 본인한테 얘기해도 안 고쳐지고, 그런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죠. 괴로워하면서 직장에 다닐 것인지,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직장에 다닐 것인지, 남은 길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괴로워하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직장을 다닐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괴로움을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 나는 더 이상 괴로움을 없앨 방법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나는 괴로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예로 든 것을 갖고 말한다면, 5분 정도 지난 뒤에 ‘끝내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하는 만큼 하면 됩니다. 그걸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간 됐다는 종소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가 나에게 시간이 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일을 끝낼 수 있으면 지금 끝내고, 일이 조금 더 남았으면 조금 더 있다가 끝내면 됩니다. ‘왜 제시간에 안 끝냈냐?’ 하고 물으면 ’죄송합니다. 그 사람하고 얘기하다 보니 조금 늦게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시간을 잘 맞춰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다음에 또 늦으면 ‘죄송해요, 잘 안 되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할 수만 있으면 이 문제는 아무 문제도 안 돼요. ‘왜 네가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둘째, 그가 내 그림을 걸어놨는데 떼버리면, 나도 내 그림을 찾아서 다시 걸고, 그가 걸어둔 그림은 떼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아무 얘기도 안 하면 돼요. ‘여기 내 그림을 걸어놓았는데 어디 갔지?’ 이러면서 다시 내 그림을 걸어놓으면 됩니다. 또 다른 걸 갖다 걸어 놓으면, 나도 또다시 내 그림을 걸어 놓으면 돼요. 그러니 그것도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가 부엌을 좀 어질러 놓으면 내가 치우면 돼요. 청소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잖아요. 그 사람이 청소를 하면 좋지만 그 사람이 안 하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바빠서 그랬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안 그러면 ‘습관이 저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내가 좀 늦게 입사를 했으니까 한 1년은 내가 설거지를 해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끔 차 마실 때 웃으면서 ‘요즘 제가 혼자 설거지하는 것이 좀 힘든데 당신이 도와줄 수 있나요?’ 이렇게 물어보면 돼요.
‘왜 내가 남의 일을 하느냐?’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왕에 하는 일인데 불평하면서 할 건지, 불평하지 않으면서 할 건지,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질문자는 미국에 살면서 너무 네 일, 내 일 이렇게 이기적으로 따지니까 이 문제가 큰 괴로움이 될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환자들이 어질러 놓으면 아무 불평하지 않고 도울 것 아니에요? 환자들이 어지러 놓은 것을 치우나, 동료가 어지러 놓은 것을 치우나, 똑같이 치우는 일이잖아요. 그냥 어질러 놓은 것이 보이면 그걸 누가 어질러 놓았든 내가 치우면 되죠. 그렇게 하기 싫으면 직장을 그만두면 돼요.
안 그러면 상사한테 가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든지요. 안 그러면 그 여자한테 문제를 세게 제기하든지요. 그래서 언쟁을 하고 싸워도 돼요. 다만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언쟁을 하고 싸우는 것이 더 낫겠는지, 싸우는 것보다는 내가 청소를 하는 게 덜 피곤한지, 그건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녀가 나보고 시간을 지키라고 한다, 그녀가 내 그림을 몰래 떼어 버린다, 그녀가 설거지를 좀 안 한다, 이런 일들은 기후 위기 해결에 큰 장애도 안 되고, 세계 평화에도 큰 장애가 안 되고, 굶어 죽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도 큰 장애가 안 됩니다. 사실은 별 일이 아닌 일에 속해요. 조금 스트레스 받으면 직접 찾아가서 문제제기를 좀 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청소를 좀 해주기도 하고, 이러면서 직장을 다녀야지 직장일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만 다 될 수가 있겠어요?
그것이 법적으로 위법 행위라면 고소를 해서 강력하게 개선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위법 행위가 아니고 개인의 습관이나 문화적인 문제라고 할 때는 ‘그럴 수가 있겠구나’ 하고 수용하는 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을 크게 내보세요. 크게 마음을 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런 정도는 좀 봐주면 어때요? 그것 좀 봐준다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도 없어요.
“Sunim, I left the dishes under the sink for three days and they were still there, so eventually I cleaned them. There were also two bags of trash that I didn't take out, but I eventually did. I kind of know what you will say about this, but I still want to ask: how can I practice or pray when negative or upsetting thoughts are occupying my mind?” (스님, 제가 싱크대 아래에 접시를 3일 동안 놔뒀는데 그대로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치웠고요. 제가 안 갖다 버린 쓰레기봉투 2개는 그대로 있어서 결국은 제가 버렸어요. 스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대략 짐작이 되지만, 여전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부정적이거나 힘든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행 과제까지 정해서 그렇게 복잡하게 문제를 풀려고 그래요? 설거지는 치우기 싫으면 그냥 놔두면 돼요. 3일 동안 안 치워진 모습을 보니 내가 답답해서 치운 것이지 그를 위해서 치운 게 아니잖아요. 내가 답답하면 내가 치우면 되고, 내가 치우기 싫으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요.
자꾸 그를 위해서 치웠다고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혼낼 때도 심리가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방을 안 치운다고 욕을 했다가, 또 가서 청소해 주고, 또 욕을 했다가 청소해 주고 그러잖아요. 아예 내버려 두든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청소를 해주든지, 이렇게 해야 나도 괴로움이 없고 아이들에게도 좋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인 것처럼 질문자도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문제라고 봐야 됩니다.”
“thank you, Sunim. It’s my problem, not their problem.” (감사합니다, 스님.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였네요.)
“그냥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행 과제를 정해 본다면 ‘별 일 아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겁니다. 상대가 5분 늦었다고 지적하면 종소리라고 생각하고, 내 그림을 걸고 싶으면 내 그림을 다시 걸면 되고, 그 사람이 걸어놓은 그림이 더 좋으면 그냥 놔두면 되고, 설거지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불평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Yes, it was really helpful. Every morning when I went there, the lady didn't say good morning. But when I go back to work on Monday, I will say good morning first with a big smile. I am not going to let it bother me. I am going to see the big picture. I appreciate having a great job that I really love. When I see the Alzheimer's residents, I see my elderhood life. Mayb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one day I will be there. That's why I love this job and will be more willing to do my work with a grateful mind. mind. I will not focus on small problems (let small problems distract me) but doing my best performance every day.” (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거기에 갔을 때, 그 여성분은 인사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월요일에 다시 일하러 가면 큰 미소로 제가 먼저 아침 인사를 하겠습니다. 그런 일들에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보면, 제 노년 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곳에 있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작은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매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나중에 올 고통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놀고, 자기만 합니다. 왜 나중에 후회하게 될 선택을 계속하게 될까요?
일자리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운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제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셨기 때문에 제 바람을 이룰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뒤이어 생방송이 예정되어 있어서 9시 30분에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식
오전 10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정토불교대학에서는 국내와 국외에서 2300여 명이 입학하여 온라인 불교대학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앞서 불교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의 축하 메시지와 축하 공연을 함께 본 후 정토회 대표님의 환영사를 듣고, 다 함께 스님에게 입학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불교대학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불교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가 아닙니다. 교리를 배우기는 하지만 그게 주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불교 신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학교도 아닙니다. 정토불교대학의 목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괴로움이 적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덜 괴로울까를 탐구합니다.
내가 가진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요? 괴로움이 줄어들면 당연히 행복감이 높아지겠지요. 즐거움을 늘려서 행복감을 높이는 게 아니라 괴로움을 줄여서 행복감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은 내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하지 부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부해 봅니다.
얼마나 괴로움이 더 줄어들었느냐
공부가 잘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불교 교리를 얼마나 잘 아는가나 이치를 얼마나 잘 아느냐가 아니라, 졸업할 때가 입학할 때보다 괴로움이 더 줄었다면 졸업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졸업할 때도 입학할 때와 다름없다면 그만둘 수도 있고 다시 한번 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입학할 때보다 졸업할 때 더 괴로워졌다고 하면 ‘이건 아니다, 나하고 맞지 않는다.’ 하고 그만두어도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저의 경험이나 주위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만들었습니다. 저의 경험만으로 하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포괄할 수 없고, 나의 경험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지식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해보고 되는 것을 남에게 권유해야지 나도 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말하는 것은 공허한 일입니다. 저는 지금 출가하고 5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경험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것은 다 빼고 검증된 것만으로 정토불교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한번 따라 해 보시고요. 평가는 해보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냥 듣고 경험해 보고 모르면 묻고, 이렇게 접근해 보고 자기 생활에서 체험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너무 지식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립니다.”
입학식이 끝나자 참가자 모두 조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첫인사 및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화엄반 법사교육 입재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화엄반 법사교육 입재식
행자님들은 발우를 불단에 올리고 1년 동안의 용맹 정진을 다짐하며 예불 의식을 했습니다. 법사단 단장인 선주 법사님의 축사를 들은 후 다 함께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에서 법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자세로 법사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의 수행 경험과 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이제 법을 전하는 사람, 법을 지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법사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법사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정토회에 들어온 지 많게는 30년, 적어도 20년이 넘은 사람들이고 나이도 적어야 40대고 대부분 50대나 60대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모난 부분이 많이 부서져서 심각한 갈등 같은 것은 없을 걸로 생각합니다. 특히 대중법사님들은 같이 생활하지 않고 각자 자기 생활을 유지하면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내면에 있는 습관은 밖으로 잘 노출되지 않아 부딪힐 일이 적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출신은 이미 법사가 되기 전에 부딪히고 부딪혀서 깎일 거는 다 깎였고, 깎이지 않아도 공동체 대중이 그 성질을 다 알아서 받아들이는 수준이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법사의 역할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으려면
그런데 이게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즉 적당하게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관점이 바로 잡히지 않고, 내면이 말끔하게 청소되지 않아서 늘 찌꺼기가 남아있습니다. 초심자라면 그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청소할 기회가 있는데, 오래되다 보니 능구렁이가 되어서 남을 속일 수가 있습니다. (웃음)
장판 때가 묻어서 쓸고 닦아도 벗겨지지 않는 단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법사가 되어도 중간에 그만둘 수 있지만, 법사가 된 후 정토회를 나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쾌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법사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밖에서는 참고 참다가 안 되면 나가면 되는데, 법사가 된 후에는 나가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법사라는 이름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고, 나를 위선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정토회에 들어왔지 괴롭게 살기 위해 들어오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살려고 들어왔지 남의 눈치를 보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무거운 옷과 이름이 나를 위축되게 하고 숨기게 되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습니다.
법사교육 기간 동안 자기를 점검하는 기준
그래서 교육받는 1년의 행자 기간에는,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기 스스로 점검기준을 정하는데 있어서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잘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마음에 불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마음의 불편이 있다 하더라도 알아차렸는지, 마음의 불편이 일어난 후 오래 간 적이 있었는지, 마음의 불편이 틀어졌다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 마음에 찌꺼기가 쌓이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표정이 밝아지고 말이 더 흔쾌해지고 있는지, 잘못해도 위축되지 않고 바로 자각하고 자인하고 사과하고 탁 털어버릴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뿌리가 깊어서 바뀌기 힘듭니다. 그래도 남을 시비하고 분별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만 연습하면 어느 정도 극복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 마음에 걸림이 있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어 얼굴이 어두워지고 위축되고 물러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선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행자 교육 기간에 이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법사가 된 뒤에는 개선하기 어렵고 개선이 느립니다. 법사라는 이름과 지위 때문에 눈치 보며 살다 보면 자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명이 길어져서 앞으로 여러분은 법사라는 이름으로 20년, 또는 30~40년 이상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찍 죽으면 다행이지만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따라서 법사 교육을 받는 동안에 자기 마음에 걸림이 있는 것, 흔적을 남기는 것, 꽁하는 것, 위축되는 것은 말끔하게 털어내야 합니다. 이걸 털어내야 앞으로 무엇을 하든 가볍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사 교육 기간에는 정토회는 걱정하지 말고, 집안일이나 세상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평화 행진을 하자고 하면 평화 행진을 할 수도 있고, 누가 농사를 짓자고 하면 농사일을 할 수도 있지만 애써 머리를 쓰면서 그 일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1년 동안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항상 나를 돌이켜서 자유로워지고, 상대가 욕을 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밥을 굶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수행의 제1과제로 둬야 합니다. 그래서 대도는 못 이루더라도 불쌍한 수준은 벗어나야 합니다. 남이 볼 때 거지는 불쌍하잖아요? 그런데 수행자는 남이 볼 때 불쌍해 보이면 안 됩니다. 왜 불쌍하게 느껴질까요? 껄떡거리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느니, 학벌이 부족하다느니, 뭐를 할 줄 모른다느니 하는 소리가 싹 없어집니다. 순간 집착해서 분별이 일어나도 금방 돌이켜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마음에 꽁하는 상처는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공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법사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경계에 종속되거나 팔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禪)에서는 세상에 굴림을 당하지 않고 내가 세상을 굴린다고 표현합니다. 법사라면 이런 종지를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초기 불교의 관점, 대승불교의 관점, 그리고 선불교의 관점, 이것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계승해 왔고 하나만 아니라 세 가지 관점을 모두 계승하여 더욱더 풍요로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의 기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 하고 합니다
여러분이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지금은 뭐든지 ‘예’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복종과 굴종의 ‘예’가 아니라 나의 집착을 내려놓는 ‘예’가 필요합니다. 의견은 내놓되, 고집하지 않고 뭐든지 마음을 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 하는 것을 잘못 받아들이면 비굴과 복종의 교육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집착을 내려놓는 관점에서 ‘예’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되어야 사람이 흔쾌해지고 가벼워지고 걸림이 없어집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공부를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입재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의 안내에 따라 법사 교육 행자가 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총 세 번에 걸쳐 삼배를 했습니다.
오늘부터 출가 수행자와 같은 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삼배를 하고, 현실에서는 가르침을 받아할 대상인 정토회 법사단에 삼배를 하고,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도록 많은 은혜를 입은 국가, 가족, 부모에게 삼배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가족에 매이지 않고 만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수행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행자님들은 화엄반 5기로서 몸과 마음을 다해 법사 교육에 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1부 행사를 마쳤습니다. 2부에서는 행자님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정토회와의 인연과 활동, 입재 법문을 들은 소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인이 느낀 수행과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임법사님과 팀별 담당법사님의 인사말을 듣고 화엄반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행자님들이 2부 행사를 하는 동안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 회의실로 이동하여 4월과 5월에 해외 답사 일정을 어떻게 가질지 실무자들과 회의하고 준비사항을 점검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 30분에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55번째 진행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지난주 방송을 마치고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곧바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에 임했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맑히는 명상으로 한 주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들을 읽어준 후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주간반 전법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