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이다(고전11:12). 우선적 관심이 우리가 아니라 그가 되는 것이다. 선교사는 각각의 문화 속에서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다.
-자신에 대한 엄격한 성찰 반성이 자기 훈련을 부르고 건강한 지체로서 전체 몸의 연합 조화에 기여하게 한다(고전11:31). 남에게는 높은 잣대를, 나에게는 관대함이 모두를 무너뜨린다. 선교사는 평생 훈련생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고백)은 자연적 의지나 경험적 지식의 발로로 불가능한 신적 은혜의 선물이다(고전12:3). 신적 개입(성령)이 없이는 신앙고백도 없다. 선교사는 성령으로 일하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자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동등한 가치로 연결되어 있는 원리를 체득함이 교회생활의 기본이다(고전12:12). 세상을 연합과 평화로 유지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선교사역은 묻혀있는 은사를 발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사랑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부터 나오고 거기를 지향한다. 주님의 사랑이 있어 세상이 유지되고 내가 있다. 선교의 근원은 주님의 영원하신 사랑이다(고전13:8 Love never fails).
-나의 은사(특기)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때 빛난다(고전14:12). 교회가 공동의 유익을 위한 역량을 길러내지 못할 때 이기적 집단으로 전락한다. 선교사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희생하도록 부름 받은 자다.
-영적 성숙의 지표는 전체의 조화를 위해 나를 양보하고 희생하는 힘이다. 그럴 때만 평화와 조화가 있는 공동체가 가능하고 주님을 보여줄 수 있다(고전14:40). 선교사가 가진 힘은 자기절제 자기희생이다.
-교회가 성경을 읽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함 없이 그의 정신으로 무장하려는 노력이다(고전15:3).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읽기는 종교적 멋을 부리는 허황함이다. 선교사의 양식은 복음에 대한 매일의 되새김이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의 모든 사역이 참됨을 인정하는 증거다(고전15:15). 주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이요 사랑과 정의가 결국 승리함을 보이는 위대한 사건이다. 선교사는 부활의 길을 따라 걷는 불굴의 용사다.
-자신을 매일 죽이는 사람이 부활 신앙인이다(고전15:31). 자기반성 절제 희생의 실천은 자연적이 아니라 부활 소망의 초월적 가치가 맺는 열매다. 선교사는 매일 죽으므로 사는 자다.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신다(고전15:45).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다. 지상의 삶은 미완성인 채 진행되나 죽음 이 후 부활이 내 생명의 완성이다. 선교사의 용맹은 자신의 부활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헛된 땅위의 수고에서 주님을 위한 일만이 헛되지 않다(고전15:58). 내 수고가 주의 일인지 내 이익의 일인지 구분하는 정직함이 관건이다. 선교사의 생명은 정직한 수고다.
-주 안의 형제들에 대한 일체감과 섬김의 구체적 실천이 내가 주 안에 있음과 주의 사랑받음에 대한 증거다(고전16:3). 우리의 소속은 우주적 주님의 나라에 있다. 선교의 일차사명은 전 우주적 교회의 연대감의 확증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 목적 실천을 아우르는 전 존재의 행위를 사랑으로 진행시키는 운동력이다.(고전16:14). 주님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다. 은혜 사랑이 선교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가지 사상이다.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을 기뻐하며 주의 의와 사랑 안에서 성숙해 가는 이다(시1:2). 그는 묵상 실천의 두 바퀴로 산다. 선교사는 주님이 그를 알아 주시므로 환경을 초월한 성공자로 산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