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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전비후(懲前毖後)
지난날을 징계하고 앞날을 삼가하다는 뜻으로, 이전에 저지른 잘못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말이다.
懲 : 징계할 징(心/15)
前 : 앞 전(刂/7)
毖 : 삼갈 비(比/5)
後 : 뒤 후(彳/6)
출전 : 시경(詩經)
이 성어는 시경(詩經)의 주송(周頌)편에 실려 있는 소비(小毖)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비(小毖) : 작은 아픔을
予其懲, 而毖後患。
내 앞서 아픔을 겪어 봤거니
뒤에 올 환난을 지레 삼가리.
莫予荓蜂, 自求辛螫。
꿀벌을 손에 놓고 어루만지다
아프게 쏘인 것 그 누구던가.
肇允彼桃蟲, 拚飛維鳥。
그리고 몰랐노니, 작은 뱁새가
하늘 높이 나는 큰 새 될 줄을.
未堪家多難, 予又集於蓼。
이제도 고액(苦厄)은 아니 가시어
사느니 여귀 풀 그 맛이어라.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소비(小毖)라는 것은 작은 것에 삼가한 것이니, 작은 것에 삼가한다면 대환(大患)이 말미암아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소비(小毖)라는 시는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말이다.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평정한 후 죽자 태자 송(誦)이 이어서 즉위하니, 이 사람이 성왕(成王)이다.
성왕의 나이가 어린 데다 주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한 직후였으므로 숙부인 주공(周公)이 제후들이 배반할까 두려워한 끝에 섭정하였다.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과 결탁하여 주공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어린 성왕이 차츰 그 말을 믿어 주공을 의심하게 되었으므로, 주공은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성왕의 곁을 떠났다. 주공이 사라지자 관숙과 채숙 등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반란을 꾀하였다.
성왕은 그때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급히 주공을 다시 불러들였다. 주공이 돌아와 반란을 진압하고 무경과 관숙을 쳐서 죽이고 채숙을 귀양 보냈다.
後而崩, 太子誦代立, 是為成王。 成王少, 周初定天下, 周公恐諸侯畔周, 公乃攝行政當國。管叔, 蔡叔群弟疑周公, 與武庚作亂, 畔周。周公奉成王命, 伐誅武庚, 管叔, 放蔡叔。
(史記/卷004 周本纪)
다시 섭정을 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물러났다. 나중에 성왕은 이 일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면서 여러 신하들 앞에서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가리라.”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징전비후는 지난날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조선시대에 유성룡(柳成龍)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후세에 그와 같은 전화(戰禍)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기 위하여 징비록(懲毖錄)을 지었는데, 이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 삼일절에 생각하는 징비(懲毖)
징비록(懲毖錄)이란 무엇인가? 임진란 후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그 가운데 전란 전의 일도 간혹 기록한 것은 그 발단을 밝히기 위해서다.
임진년의 재앙은 참혹했다. 수십일 동안 세 도읍이 함락되고, 온 나라가 무너졌다.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피란했다. 그러고도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 덕분이다(…).
서애 유성룡은 왜 징비록을 썼나? 징비(懲毖)였다. 징전비후(懲前毖後), 즉 “지난 잘못을 거울 삼아 후일을 조심한다”는 취지다. 시경(詩經)의 소비(小毖) 편에 나온 구절(予其懲而毖後患)에서 연유한 것이다.
징비록 본문의 시작 부분에는 보한재 신숙주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죽음을 앞둔 신숙주에게 임금 성종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소?”
신숙주가 대답했다. “원컨대 일본과의 화평을 잃지 마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성종은 일본에 화친을 위한 사신을 파견했다.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남겼는데, 바다 동쪽 여러 나라(日本國, 琉球國)에 관한 기록이었다.
서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저 이웃 나라와 외교관계를 갖고 풍속이 다른 나라 사람을 잘 접대하는 데는, 반드시 그 실정을 안 연후에야 예를 다할 수 있고, 그 예를 다한 연후에야 그 마음을 다할 수 있다.” 신숙주가 세종 때 일본에 다녀온 까닭이었다.
그는 일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들의 습성은 굳세고 사나우며, 창칼을 쓰는 데 뛰어나고 배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우리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으니, 도리에 따라 잘 달래면 예로써 통교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하게 된다.” 일본의 호전성을 경계하면서도, 그 해법은 화친책이었다.
신숙주는 임금에게 말했다. “일찍이 신이 듣건대, 오랑캐를 대하는 방법은 외양(外攘)에 있지 않고 내수(內修)에 있으며, 변방 방어에 있지 않고 조정(朝廷)에 있으며, 병기에 있지 않고 기강(紀綱)에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는 것이다.
유성룡은 일본의 침략을 겪고 나서 백여년 전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징비록을 남겼다.
중국 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에 안주했던 조선. 변방의 오랑캐라 여겼던 일본에 침략당하고, 청나라에 항복했다.
나중에는 서양 제국의 하위 파트너였던 일본에 의해 왕조가 멸망했다. 새롭게 민국(民國)을 시작했던 삼일절을 보내며 다시 이 시대의 징비를 생각해 본다.
▶️ 懲(징계할 징)은 ❶형성문자로 惩(징)은 통자(通字), 惩(징)은 간자(簡字), 懲(징)은 동자(同字)이다. 心(심; 마음)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同時)에 때리다의 뜻을 갖는 徵(징)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懲자는 ‘징계하다’나 ‘응징하다’, ‘벌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懲자는 徵(부를 징)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徵자는 전쟁에 필요한 인력을 왕명으로 동원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만약 징집을 회피하고 왕명을 거스른다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징집하다’를 뜻하는 徵자에 心자가 더해진 懲자는 ‘징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懲(징)은 마음에 타격(打擊)을 받다, 또는 주다의 뜻으로 ①징계(懲戒)하다 ②응징(膺懲)하다 ③벌(罰)주다 ④혼내 주다 ⑤혼나다 ⑥그치다 ⑦그만두다 ⑧징계(懲戒) ⑨응징(膺懲)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경계할 계(戒)이다. 용례로는 자기 스스로 과거에 당한 일을 돌아보고 뉘우치고 경계함을 징계(懲戒), 죄인을 교도소 안에 구치하여 일정 기간 노역에 복무시키는 자유형의 한 가지로 무기와 유기가 있음을 징역(懲役),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하여 법적 제재를 가함을 징벌(懲罰), 돈이나 곡식 따위를 내놓으라고 요구함을 징구(懲求), 난적을 징계함을 징난(懲亂), 징계하여서 두려워하게 함을 징외(懲畏), 징계하여 제지함을 징즙(懲戢),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벌을 주거나 꾸짖어서 경계함을 징창(懲創), 탐욕스러운 사람을 징계함을 징탐(懲貪), 오늘날의 잘못을 징계하여 뒷날의 사람들을 경계함을 징후(懲後), 징계하여 잘못을 고치게 함을 징개(懲改), 잘못을 꾸짖고 징계함을 징과(懲過), 못된 버릇을 징계함을 징습(懲習), 못된 마음이나 행위를 징계함을 징악(懲惡), 징계하여 그치게 함을 징지(懲止), 징계하여 다스림을 징치(懲治), 도둑을 무찌르고 막음을 징어(懲禦),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함을 징권(懲勸), 잘못을 회개하도록 징계함을 응징(膺懲), 엄중하게 징벌함을 엄징(嚴懲), 형벌을 주어서 징계함을 형징(刑懲), 징계하는 뜻을 보임을 시징(示懲), 착한 일을 칭찬하고 나쁜 일을 징계함을 포징(襃懲), 한 사람을 징계하여 여러 사람을 경계함을 징일경백(懲一警百), 한 사람을 징계하여 여러 사람을 격려함을 징일여백(懲一勵百), 뜨거운 국에 데더니 냉채를 먹을 때도 분다는 뜻으로 한번의 실패로 모든 일을 지나치게 경계함을 비유한 말을 징갱취제(懲羹吹虀), 곤장을 몹시 쳐서 엄하게 징벌함을 맹곤엄징(猛棍嚴懲), 기한이 정해져 있는 징역을 유기징역(有期懲役), 기간을 정함이 없이 종신토록 교도소에 가두는 징역을 무기징역(無期懲役),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 정학이나 퇴학 따위의 벌을 내리는 일을 학사징계(學事懲戒), 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악한 행실을 징계함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선한 일은 모두에게 드러내어 찬양하고 악한 일은 징벌함을 창선징악(彰善懲惡), 벼슬자리를 물러나도록 하는 징계를 면관징계(免官懲戒) 등에 쓰인다.
▶️ 前(앞 전/자를 전)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歬(전)으로 이루어졌다. 歬(전)은 舟(주; 배, 탈것)와 止(지; 발의 모양, 나아가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前자는 '앞'이나 '먼저', '앞서 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前자는 月(달 월)자와 刀(칼 도)자와 함께 상단에는 머리 모양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前자의 금문을 보면 舟(배 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歬(앞 전)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가)앞으로 가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갑골문과 금문, 소전에서는 歬자가 '앞'이나 '앞서 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舟자가 月자가 바뀌었고 止자는 ()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刀자까지 더해지면서 지금의 前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해서에서 刀자가 더해진 것은 '가위'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자르다'라는 뜻은 剪(자를 전)자로 따로 만들어지면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前(전)은 (1)이전(以前) (2)막연하게 과거를 이를 적에 쓰는 말. 그건 (3)어떤 직함이나 자격 등을 나타내는 명사(名詞) 앞에 붙여 전날의 경력을 나타내는 말 (4)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전기(前期)의 뜻을 나타냄 (5)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앞부분의 뜻을 나타냄 (6)연대(年代), 연호(年號) 앞에 붙어 기원전(紀元前)의 뜻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앞 ②먼저 ③미래(未來), 앞날 ④미리, 앞서서, 사전에 ⑤거무스름한 빛깔 ⑥가위 ⑦앞서다 ⑧나아가다 ⑨인도하다 ⑩뵙다, 찾아뵙다 ⑪소멸하다 ⑫자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 후(後)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을 의논할 때 먼저 내세우는 기본이 되는 것을 전제(前提), 앞과 뒤와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전에 가졌던 직업 또는 벼슬을 전직(前職), 지난해나 작년을 전년(前年),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이미 있었던 사례를 전례(前例), 앞쪽이나 일선을 전방(前方), 앞쪽에 친 진을 전진(前陣), 지나간 시대를 전대(前代), 앞서의 경력을 전력(前歷), 미리 나타나 보이는 조짐을 전조(前兆), 전번의 시기를 전기(前期), 직접 뛰어든 일정한 활동 분야를 전선(前線), 글이나 편지 전문을 생략함을 전략(前略), 전에 그 임무를 맡았던 사람을 전임(前任), 앞에서 이미 서술함을 전진(前陳), 앞의 부분을 전부(前部), 앞으로 갈 길을 전도(前途), 앞에 게재함 또는 지난해를 전재(前載),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자정으로부터 낮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전(午前),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실행하기 전을 사전(事前), 이전이나 이제까지를 종전(從前), 바로 앞이나 일이 생기기 바로 전을 진전(直前), 식을 거행하기 전을 식전(式前),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전거복철(前車覆轍), 앞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로 전인의 실패를 보고 후인은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전거가감(前車可鑑), 지난 시대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일을 이르는 말을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전 세상에는 듣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지금까지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임의 비유하는 말을 전고미문(前古未聞),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거나 발을 디딘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인미답(前人未踏),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려니까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뜻으로 재앙이 끊임 없이 닥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전호후랑(前虎後狼),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뜻으로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남은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요원(前途遙遠),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음 또는 장래가 유망함을 이르는 말을 전도유망(前途有望), 일에 부닥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앞뒤를 재며 머뭇거림을 이르는 말을 전첨후고(前瞻後顧),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무후무(前無後無), 처음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으로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전거후공(前倨後恭), 앞길이나 앞날이 크게 열리어 희망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양양(前途洋洋), 앞길이나 앞날에 어려움이나 재난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다난(前途多難),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범에게 고기 달라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어림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호전걸육(虎前乞肉) 등에 쓰인다.
▶️ 毖(삼갈 비)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견줄 비(比;견주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必(필, 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毖(비)는 ①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②근신(謹愼)하다 ③고달프다, 피로(疲勞)하다 ④멀다 ⑤통(通)하다, 소통하다 ⑥(샘물이)흐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삼갈 각(恪), 삼갈 신(愼), 원할 원(愿), 삼갈 근(謹), 삼갈 욱(頊)이다. 용례로는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년)에서 1598년까지 7년에 걸쳤던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저술을 징비록(懲毖錄), 지난날을 징계하고 앞날을 삼가하다는 뜻으로 이전에 저지른 잘못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말을 징전비후(懲前毖後) 등에 쓰인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후배 중의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을 후기지수(後起之秀),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을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을 이르는 말을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이나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