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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영취산 진달래야
사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어느 산에 가도 골고루 분포되어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나무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그 존재조차 거의 잊다시피 한다. 특이하게 생기거나 재목으로 쓰일 만큼 거목도 아니다. 그렇다고 방풍림이나 울타리용이라든지 특별한 용도에 이용될 만큼 재질이 뛰어나지도 않은 어찌 보면 그저 평범한 나무에 지나지 않지 싶다. 여기에 영험하고 신통한 열매가 맺혀서 눈길 사로잡고 끌어들이지도 못한다. 그런 하찮다싶은 나무들이 일 년에 한 번쯤 집단으로 서식을 하면서 봄이 오는 길목에 꽃을 피우며 각광을 받고 있다. 진달래꽃은 모나지 않은 순수함에서 봄을 맞이하는 향연에 빼놓을 수 없는 진객으로 등장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집단이 만들어내는 꽃불은 겨우내 웅크리고 조바심에 떨었던 마음을 툭툭 털어내고 봄 속에 들어섰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친밀감과 정서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특히나 여수 영취산 진달래는 남쪽 바다에 접하고 있어 봄맞이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남녘땅을 휘돌아보며 바다 냄새까지 곁들이는 좋은 계기의 짧은 여행에 긴 여운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꽃소식은 경향각지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바다와 합작품이라도 과언이 아닐 만큼 봄의 전령으로 그 몫을 톡톡히 해내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꽃이 예년보다 일찍 필 것처럼 예상하였으나 오히려 늦게 피는 날씨로 뒤바뀔 만큼 뒷걸음질 치며 금년 3월의 날씨는 걷잡을 수 없게 변덕스러웠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은 자연도 어쩔 수 없는지 막바지에 다다라 한꺼번에 꽃을 토해놓는 듯싶다. 섬진강을 타고 내려갈 무렵부터 노오란 개나리 산수유 하이얀 매화 목련에 새빨간 동백 연분홍 진달래에 벚꽃까지 가세를 하니 완전히 꽃시장을 방불하며 어지럽다.
강가에 버드나무는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이미 모양새를 갖춘 머릿결을 다독이고 있다. 봄볕은 바위틈이나 나무 밑에까지 빠뜨리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은 듯 봄이라고 아우성치며 일어서고 있다. 마늘밭이 제법 쨍쨍한 대궁을 세우고 보리밭이 시퍼렇게 올라오며 곧 청보리 배동을 서게 되었다. 여기에 빈 논에 쑥이며 독새풀까지도 수북하게 올라오며 시퍼렇게 채우고 찔레나무 오리나무가 푸름으로 뒤덮어 간다. 들머리 여수석유산업단지 앞에서 바라보는 영취산 자락은 갓 끝난 축제의 현장을 보존이라도 한 듯 마치 꽃잔디로 곱게 단장을 하고 있지 싶다. 시멘트포장 비탈길을 오를수록 사방에서 진달래가 일어서며 분홍빛 꽃불을 놓아 얼굴이 화끈화끈 상기되는 기분이다. 잠시 뒤돌아보는 바다에는 공단의 근엄함을 넘어 크고 작은 섬들이 떠있고 그곳서 일어서는 바람이 봄을 싣고 올라와 산자락에 향연을 풀어놓고 있지 싶다.
그간 꾸물거렸던 날씨나 개발의 붐을 타고 많이 허물어졌든 자연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올해도 봄볕을 실어 나른다. 진달래꽃과 함께 번갈아 바라보는 바다는 가히 장관을 이룬다. 크고 작은 섬까지 띄워놓은 바다와 진달래꽃으로 가득 채운 산은 하모니를 이루며 그야말로 정감이 넘쳐흐른다. 서로 의지하고 산은 꿈을 키우고 바다는 거칠게 출렁거리는 성급한 설정을 누그러뜨려 가다듬는가 보다. 오늘도 만만치 않게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차갑다기보다 부드러운 기운에 시원함이 묻어나고 한 구석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 편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묻어나기도 하지 싶다. 이런 바람이 겨우 내내 괴롭히지 싶어도 초목을 단련시키며 봄이 오고 있다고 동네방네 잠에서 깨우고 소식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억센 손아귀였다가 부드러운 손길이었다가 다독거리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기도 한 것이다.
바다를 보아라. 봄이 저 바다를 넘어 아니 바다를 타고 밀려오고 있다. 그 신호탄처럼 산자락에 진달래 꽃불을 지피고 세상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아니 이미 왔음을 드러내고 한바탕 꽃잔치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이 섬진강을 타고 오르고 있다. 섬진강 유역을 다독거리며 봄을 일구고 있다. 끝내는 백운산을 넘고 지리산 천왕봉도 거뜬하게 넘어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질주해 갈 것이다. 이 강산에 봄이 온다. 일부 해안이 자연스러운 풍경보다는 인위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어 아쉬움이 남기기도 하는데 시루봉 왼쪽은 아직도 구획정리가 되지 않은 논밭이 있어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는 다랑이가 오히려 아늑하니 정겨운 친밀감으로 다가서는 것은 왜일까. 습관처럼 빨리빨리 재촉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것 같은 세상에 좀 느긋하니 휘어져서 쉬엄쉬엄 갈 수 있다는 안정감이나 편안함이 앞서 있기 때문은 아닌지 되묻고도 싶다.
어찌 진달래가 영변 약산에만 있다더냐. 여수 영취산 진달래야 오늘 이 시간에도 떠나야할 이 있다면 가시는 발걸음 아름 따다 뿌리는 것도 좋다만 떠나기 전에 함께 와 거닐어 보아라. 그래도 훗날 못 잊어 생각나거든 슬그머니 혼자라도 찾아와 아니라고 푸념이라도 맘껏 늘어놓으렴. - 영취산 진달래야
수없이 냉기를 토하며 밀고 밀리던 바다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산자락에 꽃불을 놓고 지조를 지키며 겨울을 나던 대나무가 꼿꼿이 일어서게 하며 소나무가 더 짙푸르게 한다. 계곡물이 낭랑한 소리를 내지르며 맑게 흐르게 하고 새들이 신바람 나게 노래를 재잘거리며 수목 사이를 넘나든다. 텅 비었던 들녘에 잡초들도 머리 쳐들고 푸른 하늘을 넘볼 듯 기세당당하게 일어서며 한가하던 농심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두견새 밤새워 슬피 울고 문득 그리운 이 있어 잠 못 이루고 뒤척일 때 있거들랑 슬그머니 두견주 한 잔 따라놓고 마음의 임과 혹은 친우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고 잠기는데 번들거리는 까마귀가 넘나들어 모두 덥고 서둘러 흥국사 계곡으로 내려오다가 잠시 물에 발 담그니 봄기운이 혈관을 타고 마디마디를 넘으며 시원하다 못해 으스러지게 차가워 얼른 발을 뽑아냈다. - 2010. 04. 06. 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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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읽어도 맘에 와닿는 글입니다요.감사하고유. ^^
감사합니다. 좋은 산행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즐거운 나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