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의자가 하나 있어. 아직은 텅 빈 의자. 네가 와서 앉아 줄 수 있다면." 고교 때 친구 부탁으로 종종 연애 편지를 썼다. 지금 보면 오글거려 얼굴을 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여드름 뚫고 나오던 때였다. 다들 손편지와 엽서를 썼고, 올림픽 기념 호돌이 우표 한 장 붙여 빨간 우체통으로 달려갔다. 편지 한 통 80원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500원이다. 우정사업본부가 5년간 동결했던 요금을 7월 1일부터 70원 인상했다
그런데 요즘 빨간 우체통 찾는 사람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강원도 오지에서 우체국장하는 친구가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이메일과 맞서 싸웠고, 2010년부터는 카카오톡과 대결중이라고 농담하는 친구다. 그나마 근처에 군부대가 있어 장병들의 예금과 보험 수수료 등으로 버틴다고 했다. 병사들에게 휴대폰을 허용한 이후에는 위문 편지도 손에 꼽는다. 이메일 등장 이전인 90년대 초중반, 연간 우편 물량은 약 40억 통이었다. 작년에는 24억 통으로 줄었다. 그나마 99% 이상이 국가 기관과 은행-카드사의 안내문:고지서다. 모바일 명세서가 늘면서 이마저도 줄었다. 손으로 쓴 진짜 편지는 이제 말 그대로 '멸종 위기종' 이다. 인터넷이 차단된 교도소와 구치소, 그리고 손 편지를 낭만으로 여기는 애인과 부모님의 군대 위문 편지가 힘들게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해 우편 사업은 3000억원 적자였지만, 우체국 예금과 보험 사업으로 1조 넘게 벌어 전체로는 흑자라고 한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 광화문 등 서울 곳곳에 새로 설치한 빨간 우체통을 봤을 것이다. 지난해 연말 이후 90곳에 시범 설치한 '에코 우체통'이다. 과거엔 종이편지만 들어갈 수 있도록 틈이 좁았지만, 새 우체통은 작은 소포도 들어가도록 입구를 획기적으로 키웠다. 우체통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우체국 앱으로 접수하면, 우체국 창구에 갈 필요도 없다. 폐의약품과 다 쓴 커피 캡슐을 별도 입구로 넣을 수 있는 환경보호 수거함 역할도 한다. 무료인 카카오톡이나 소설미디어DM(Direct Message)에 비하면 500 원은 괜한 낭비로 보일지 모른다. 이들은 글자 수 제한도 없고 사진.동영상도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요즘 손편지는 '희소성과 진심'이다. 다들 카톡으로 대화하는 시대, 펜으로 꾹국 놀러 쓴 편지에 우표 붙여 빨간 우체통 찾는다는 자체가 애정과 열정의 증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