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현재의 약 2배인 3700㎞로 확충하면 지체현상은 해소되지만…막대한 부족 재원 충당을 위해서는…." 1998년 11월
한국도로공사 국정감사장. 정숭렬 사장이 고충을 호소했다. 보고서엔 '6조1000억원'이란 채무 액수가 적혀 있다. 정부 지원이 없다면 매년 1조원 정도씩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옆에 붙어 있다. 정 사장은 '정부의 도움'만을 되풀이했다.
2008년 10월 10일 바로 그 감사장. "지속적인 고속도로망 확충과 정보통신 기술 활용을 통해 교통 지·정체를 해소하고…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보완하며…."
류철호 사장의 인사말과 답변이다.
10년간 뭐가 달라졌을까. 국회의원이 15대에서 18대로 바뀌었고, 상임위 개명으로 '건교위'가 '국토해양위'가 되고, 도공 사장이 교체된 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도공이 떠안고 있는 어마어마한 빚이다. 올해 6월 말 현재 18조1482억원. 10년 사이 3배가 됐다. 2년 뒤엔 20조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도공의 부채 문제는 10년간 한 번도 국감에서 빠진 적이 없다. 국회의원들은 감사를 끝내면 시정(是正)의견이란 걸 낸다. 감사를 해보니 이런 것이 문제이므로 고쳐달라는 주문서다. 여길 봐도 '과도한 부채 대책' '재무안정화'로 표현만 조금씩 바뀔 뿐이다.
도공에 대한 다른 감사 내용은 어떨까. 5년을 보니 단골 메뉴는 정해져 있다. 통행료 미납, 고속도로 유지·보수, 하이 패스, 휴게소 위생관리, 공사 설계변경, 터널 화재 등 6가지는 한 번도 식탁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5년간 4번은 야생동물 이동 공간 확보, 잦은 교통사고 지역 대책이고, 상습 지·정체, 영업소 민간 위탁 문제도 3번 거론됐다. 지방 어느 도로가 어떻고 하는 민원(民願) 몇 가지를 별개로 하면 국정감사용 주문서는 그대로 복사해도 될 판이다.
필자가 현장 기자로서 기억이 생생했던 도공만의 문제일까. 통합 논란이 있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도 다르지 않다. 작년 말 기준으로 토공은 27조, 주공은 39조원의 빚을 안고 있다. 다른 공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공기업 임직원들의 복지 수준은 온갖 구실을 달아 계속 높아만 가고 있다. 연봉이 몇 십% 오르고, 성과가 있든 없든 성과급 타고, 법인 카드로 골프장·유흥업소에서 결제하고, 청렴도는 최하위 수준이고…. '신도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이란 소리를 하는 것조차 이제 진부할 정도다.
국정감사란 것이, 굳이 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왜 도입했고 그 결과 어떻게 돼야 한다는 것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19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부활된 후 몇 년간은 달랐다. 오랜 군사정권의 적폐를 걷어내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순기능은 줄어들었다. 상임위에서 다뤘던 내용을 재탕·삼탕하고, 대선이 있는 해에는 상대 후보 흠집을 표적으로 '비방' 경쟁에 나섰다. 개선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의원들은 '보좌 인력이 부족하다' '증인이 출석 안 한다'고 비명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보좌진도 늘려주고, 법률도 보완하고, 국회 입법조사처·예산정책처도 만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감사 현장의 다선(多選) 의원들은 매일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20일간 400개가 넘는 기관을 돌아가며 호통치는 제도를 그대로 둬야 하는지 이제는 결론을 낼 때가 됐다. 상임위 활동과 합쳐 연중감사 체제를 만들든지, 대상을 크게 줄여 집중감사 시스템으로 바꾸든지 대안은 10년간 수도 없이 나왔다. 선택 기준은 감사의 폭이 아니라 깊이다.
첫댓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것,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