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공부 시간 / 최춘해
<간지스토마는
빈혈이 심하고
얼굴색이 누렇고
온 몸이 붓고…>
맨 앞에 앉은
얼굴이 누른
결석을 잘하는
종복이가 눈알이 동글 동글
귀 기울여 듣는다.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종복이를 보고 난 선생님.
<그러나 요사이는
의학이 발달해서…>
뭣을 열심히 적는 종복이.
<포딘 스티브날
포딘 스티브날>
시간이 끝난 뒤에도
약 이름을 자꾸 되뇌인다.
-『시계가 셈을 세면』, 한글문학사, 1967.(브로콜리숲, 2017)
* 이원수 선생은 책머리에 추천의 글을 쓰면서 아이들이 이 시들을 읽으면 “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쳐 아름다운 생활로 찾아들게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이 시를 읽고 관련 검색을 하다가 아름다운 생활에 더해 아름다운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최춘해 시인은 초등학교 선생으로 정년을 한 뒤, 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무료로 장소를 내준 이가 경북아동문학회로 인연이 있던 도서출판 그루의 발행인 이은재 시인이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최춘해 시인은 매주 두 번씩아동문학에 대해서 일 년 과정의 무료 강연을 이어갔고, 그간 300명의 수료자를 냈다고 한다. 이들 아동문학교실 출신자 모임이 혜암아동문학회이고 이중에 김성민 시인은 일인출판사 브로콜리숲을 낸 뒤에 최춘해 시인의 절판 시집을 옛 모습 그대로 복간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50년 만에 빛을 본 동시집이 『시계가 셈을 세면』이다.
시인은 책 끝에, “내 딴은 어린이들이 가난한 속에서도 비굴하지 말고, 권세에 눈치 살피지 말며, 좀 모자라더라도 내것을 아끼고 가꾸어 싱싱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긴 했습니다만, 이 54편 가운데 한 편이라도 어린이 여러분 마음의 영양이 될 수 있다면 이걸 선물한 보람이 있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그중에 「자연 공부 시간」도 ‘종복이’를 포함해서 이 시를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큰 선물이 되었을 성싶다.
강가 아이들이 많이 걸리던 병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꼭, 그 증상을 보이는 제자 얼굴을 보게 된 선생은 슬며시 말을 돌린다. 아이의 걱정을 덜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주려는 선생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는 약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적고 외우기를 반복한다. 아이는 다음날 또 결석하거나 집 안팎의 일을 거들다가 약 이름조차도 까먹을 수 있겠지만 선생의 따스한 마음을 처방받은 건 오래 간직할 것이다. 제목은 자연 공부 시간이지만 인생 공부가 따로 없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