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푼즈 술탄국 영토
푼즈 술탄국의 문장. 원래 수단은 아랍인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기독교를 믿는 지역이었고, 그래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그려넣는 식으로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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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즈 술탄국은 현재 수단 북부를 다스렸던 나라로, 1504년에 등장하여 1821년 오스만 제국의 간접 통치 하에 있었던 이집트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17세기 후반에 푼즈 술탄국의 국력은 절정에 이르렀지만 쇠퇴하고 결국 18세기에 무너졌다. 1821년에 권력이 크게 약화된 푼즈 술탄국의 마지막 술탄은 싸우지도 않고 오스만 치하 이집트의 침공에 항복했다.
푼즈 술탄국의 중무장 기병인 슈크리Shukuri./
푼즈 술탄국의 군대는 봉건 제도를 따랐다. 각 귀족 가문들은 자신들이 거느린 기병들을 전쟁터로 즉시 내보낼 수 있었다. 귀족들에 복속된 평민과 노예들도 칼 같은 무기를 가졌지만, 아주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그들이 전쟁터로 내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푼즈 술탄국 군대에 소속된 일반 병사들의 대부분은 수단의 전통에서 살라티야(salatiya)라고 불리는 노예 습격에서 포로로 잡힌 노예 출신들이었다. 군대는 무카담 알-콰와위드(muqaddam al-qawawid)라고 불리는 보병과 무카담 알-칼이(muqaddam al-khayl)라고 불리는 기병 등 두 개의 병과로 나누어졌다.
푼즈 술탄국의 군주인 술탄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술탄은 거의 이끌지 않고 대신 캠페인 기간 동안 아민 자이쉬 알-술탄(amin jaysh al-sultan)이라고 불리는 사령관을 임명하여 전쟁을 지휘하도록 명령했다.
한편 푼즈 술탄국은 소와 낙타 같은 가축들을 키우며 사는 주변 지역의 유목민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아카이드(aqid) 또는 카이드(qa’id)라고 불리는 자신들의 지도자에게 지휘를 받았다.
푼즈 술탄국 병사들이 사용한 검./
푼즈 군인들의 무기는 찌르는 창, 던지는 칼과 창, 가죽 방패, 그리고 양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긴 칼을 가장 중요한 장비로 삼았다. 군인들이 몸에 걸치는 갑옷은 가죽 또는 퀼트와 사슬로 만들어졌으며, 손은 가죽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머리에는 낡은 철 또는 구리로 만들어진 투구를 썼다.
푼즈 기병들이 타는 말은 또한 두꺼운 퀼트, 구리로 만들어진 머리 보호대와 가슴 받이 등으로 구성된 갑옷을 입었다. 갑옷도 현지에서 제조되었지만 때때로 수입되기도 했다.
17세기 후반 푼즈 술탄국의 술탄 바디 3세(Badi III)는 총기류와 대포를 수입하여 군대를 현대화하려했지만 가격이 비싸고 화약 무기들에 대한 신뢰감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귀족 군인들이 화약 무기가 도입되면 자신들의 군사 권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디 3세의 죽음 이후 푼즈 술탄국의 군대에서 화약 무기는 순식간에 잊혀지고 사라졌다. 그래서 1770년대 초에 푼즈 술탄국을 방문했던 유럽인 제임스 브루스(James Bruce)는 푼즈 술탄국의 군대 전체에 머스킷 소총이 하나도 없다고 기록했다.
푼즈 술탄국은 1년에 한 번씩 남부와 남서부 지역을 대상으로 노예 공격을 실시했다.
또한 푼즈 술탄국은 쉴루크족(Shilluk)과 딩카족(Dinka)을 용병으로 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