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도쿄의 한 대학 부속병원 30대 의사 3명이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복강경을 이용한 전립선 암 제거 수술을, “우리도 한 번 해 보자”며 하다가 60대 남성 환자를 숨지게 했지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와 일제가 자행한 생체실험을 떠올리게 했지요.
▽복강경(腹腔鏡) 수술
복강경 수술은 복부를 절개하지 않고, 관 끝에 내시경이 달린 복강경이란 의료기기를 배에 집어 넣어 수술하는 첨단 기법입니다. 배에 가스를 집어 넣어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직경 1센티 정도의 구멍 서너 개를 뚫고, 거기를 통해 복강경을 집어넣어 수술하는 것이지요. 도려낼 부분을 자르고, 피나 이물질을 흡입하고, 혈관을 묶고, 수술 부위를 꿰매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강경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복개를 하지 않기에 수술 시간이 짧고, 출혈량도 적고, 수술 후 절개 흔적도 거의 없어 최근 ‘복강경 수술’을 앞세워 환자를 끌어 모으려는 병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마취에 따른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데다 금새 퇴원이 가능해 개복 수술시 장기 입원에 따른 의료비도 절감할 수도 있어 의료재정 압박에 고민하는 미국 의료당국과, 의료기 제조사들의 상업적 생각이 맞아 떨어져 적극 개발에 나선 결과입니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자면 필자는 수년 전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세계적인 의료기 메이커의 관련 연구소를 찾아가 곁눈질을 조금 한 경험이 있습니다.
▽‘첨단 의료를 배우고 싶었다’
경찰에 체포된 30대 의사 3명은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술 경험도, 지식도 전혀 없던 이들은 의료기기 납품업자를 ‘선생’으로 모시고 매뉴얼 북을 보아가면서 수술을 실시했습니다. 3명의 의사들은 다음에 어떤 기계를 어떻게 쓰는 지 책을 보다 모르면 납품업자에게 물어가면서 수술을 한 것이지요. 숙련된 의사라면 4시간 정도면 할 수 있는 수술은 11시간이 지나도 끝내지 못했고 결국 개복수술로 13시간째 만에 수술을 마쳤지요.
복강경 수술 시도중 통상 20분이면 출혈이 멈춰야 하는데 2시간 이상 출혈이 계속되자 불안해진 한 의사가 개복 수술로 전환하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의사가 그대로 계속하자고 우기다 사고를 냈습니다. 출혈이 계속되자 초조해진 간호사가 “수혈이 더 필요할 것 같으면 말해달라. 혈액형이 맞는 피를 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의사들은 “괜찮다”고 태연해했습니다. 결국 뒤늦게 수혈을 했으나 이미 과다출혈상태여서 환자는 뇌사에 빠졌고 끝내 한달만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담낭 결석 제거 등 비교적 간단한 수술부터 시작된 복강경 수술은 점차 복잡한 암 수술까지 응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현 단계에서는 복강경을 이용한 전립선 암 제거 수술은 난이도가 높아 후생노동성은 숙련된 의사가 있는 9개 대학병원만 허가를 해주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긴 의과대학의 경우 5개 부속병원 중 3곳만 허가받은 상태였는데 문제의 의사들이 근무한 병원은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지요.
이들은 상급자인 비뇨기과 진료부장한테 “저희도 배우고 싶습니다. 허가해 주십시요”라고 요청했지요. 복강경을 이용한 전립선 수술을 한번도 안 해 본 상급자는 다른 병원에서 경험많은 의사를 데려와 동석시키자고 했으나 후배들이 독자 시도를 강조하자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의료인으로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환자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나 인권을 깜박 잊어버리고 신기술 습득과 실적을 올려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부리다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지요.
▽재량권과 의사의 책임
의사는 전문가로서 처치 방법에 관해 광범한 재량권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로서 오랜 학습과 경험을 존중해, 식견과 윤리성에 대해 사회가 믿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일에 완벽이 없고 의료사고도 불가피하게 발생합니다. 의사 자신만 알 수 있는 실수도 있는 법이요, 사실 무엇이 실수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고가 생긴 경우도 있을 것입이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당시 상황을 고려해볼 때 명백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만 의료사고로 문제가 됩니다.
처벌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한 사람의 의사를 키우는데 드는 오랜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의료 사고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시선이 엄해지면서 환자 본인 혹은 가족의 동의를 구해서 처치를 하도록 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요. 이에 대한 의료인들의 불만도 나오고 있지요.
이번 사건의 경우 환자나 가족은 복강경 수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 했고, 왜 사고가 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보도를 보고서야 일이 그렇게 된 줄 알았다” 유족들은 이렇게 울먹였습니다. 양심상 이를 사회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병원 내부 인사의 고발로 사건 전모가 밝혀진 것입니다. 한국에 비해 일본 언론 매체에 의료사고 관련 보도가 잦은 편인데 이는 사정을 정확히 아는 내부인의 고발에 따라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쉽기 때문이란 점도 특기할 만한 합니다.
▽전문가의 함정
흔히 한 분야의 대가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고 나면 독단과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처음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굳센 맹세와 의지, 초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명예와 돈에 대한 욕심, 오만과 방자함이 똬리를 틀게 됩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굳이 알지 알아도 좋을 것을 알아버린 것 가운데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대가로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정말 인격적으로 못된, 그래서 생각하면 밥 맛조차 없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기술 못지 않게 그 기술이 등장한 근본 이유랄까, 기술을 구현해내는 마음가짐에 대한 부단한 자기 수련과 연마가 없으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사람 누구나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요.
젊은 일본 의사 3명이 생체실험에 가까운 수술을 하다 사고를 낸 것은 작년 11월. 뇌사에 빠졌던 환자가 숨진 것은 12월. 이들은 얼마 전 체포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병원에서 여전히 수술을 해왔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자세를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요. 의료기술만 가르치고 윤리 교육을 등한시해온 의료 교육, 돈 잘 버는 의사를 최고로 대우해주는 병원이나 손님 들끓어 수입 많이 올리는 의사를 명의로 쳐주는 일반의 그릇된 인식에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정치인 중에서도 이런 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