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사단 카투사 장병들의 휴식처 아줌마 텐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줌마 텐트는 흔히 미군과 카투사들이 이야기하는 필드 ( Field Training = 훈련지)
에 용달차를 끌고와서 라면,야끼만두,제육덮밥 불고기 덮밥 등등의 식사와
콜라 사이다 같은 음료수 스낵거리를 파는 텐트차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로 아줌
마들(70 년대 아줌마 였던 분들이 이젠 할머니가 되었다...--;)이 운영한다 그래서
미군들이 아줌마 텐트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예전 이곳 에어리어 1 (경기북부)
지역에는 현재의 미 2사단 뿐만 아니라 미7사단과 미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훈련장에는 1년 내내 미군들로 바글바글 거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당시
아줌마 텐트 했다 하면 때돈을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시에는 아줌마들이
중대장과 일등상사(First Sergeant)뿐만 아니라 여단장 사단장까지 아줌마들이
찾아가 로비를 벌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미7사단 미해병대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2사단만 남은 지금 경기가 그때만 못하답니다. 게다가 그 70 80년대 보다도 원화
의 환율가치가 많이 올라서 수입이 많이 줄었지요. 그래서 요즘은 그 때 처럼
아줌마 텐트 허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답니다. 하지만 훈련지 안으로
들어오려면 중대장과 일등상사의 허가가 필요한 만큼 훈련 전에 아줌마가 직접
캠프로 찾아오지요. 그러면 아줌마는 중대장과 일등상사에게 수입의 몇 퍼센트를
중대 복지를 위해 돌려 주겠다고 조정과 계약을 하지요. 그 돈은 그럼 어디에
쓰이느냐? 예를 들어 제가 근무하는 C 중대 막사에는 Sapper lounge라는 Day
room( 안에는 보통 포켓 당구대와 TV프로젝터 DVD 오디오 비디오 다트 음료수
과자 자판기가 기본으로 있답니다. )의 유지비용에 대부분이 쓰이구요 그 외에
막사 밖에 꽃을 심는다던지 중대가 파티를 할 때 그 돈이 쓰인답니다.
제가 겪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죠
여느 날처럼 열심히 타이프치고 복사하고 있는데, 어떤 한국 아줌마 한 분이
왔다고 당직자(CQ -Charge of Quarters)가 통역좀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떤일로 오셨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대뜸
"나는 후루싸잔 먼저 만나야 돼" 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후루싸잔이 뭐에요 아줌마?" --;
"후루싸잔도 몰라 잘 들어 후 루 싸 잔 에궁 이 카츄샤 양반 짝대기 두개는
헛 달았어 --;"
"무슨말씀 하시는지... --; (눈치도 열라 없다) "
"거 그 잘생긴 후루싸잔 있자너! 아님 거 중대장 어디 있어?"
당시 중대장은 딴 곳에 가 있었고 전혀 이해가 안돼는 리군 양놈 하나를 잡고
물어 본다.
"I don't understand what she said in Korean. --; "
"What did she say? You Korean I don't get you why you..."
" Hu Ru Sa Zan What's this?"
"What the fuck! You freak me? That's a First Seargeant"
"Holy shit! T_T I gotta learn Korean prior to English.."
후루싸잔이란 일등상사를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참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일본넘들이 우리나라에 끼친 악영향이 정말 크다는
것을 통감한 날이었습니다.
암튼 얼마 전에 제가 훈련을 나갔을때는
우리가 흔히 먹는 MRE (Meal Ready to Eat : 미군 전투 식량)
가 물릴대로 물린데다가 Hot Chow(훈련을 위해 식당에서 만들어 가지고
오는 음식; 역시 맛 없다 특히 느끼하다 --;) 마저 메뉴도 거의 환상적이어서
저희 중대로 파견나온 의무병들과
같이 가위 바위보를 해서 음식값 물리기를 했는데요
거의 얻어 먹다가 한번에 곱배기로 내야 하는 대박엘 걸리고 말았는데..
음식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라면밥 - 2000원 (이게 젤 만만 하다 이것도 선임병장이 사정해서 깎은거다)
제육덮밥 - 5000원 (양 진짜 조금이다)
야끼만두 - 2000원 (한 8개 되나? )
그리고 500원 700원 짜리 과자는 거의 무조건 1000원 음료수 1.5리터는 2000원...
이것도 카투사한테 많이 깎아 주는거고 양놈들은 1000원이 무조건 1달러로
계산됩니다. 그리고 양놈을 위한 메뉴로 토스트랑 커피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Take out 하는 커피잔에 그냥 맥심 몇 스푼에 설탕 프림 넣은것이 1000원
입니다 토스트는 진짜 길거리에서 파는 것만 못한데 그게 또 2달러구요
정말 우리나라가 외화를 이렇게 효율적으로 벌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훈련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미군들이 나가면 이 분들은 더 이상 먹고 살게 없다며
2사단이 평택으로 내려가면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라며 뉴스를 들으시던
아줌마를 보면서 미군문제를 너무 자존심 문제로만 치부하여 즉각 철수를 주장
하는 친구들이 생각나더군요..... 참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딜레마 이지요...
얼마전에 카투사 동기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에어리어 3(경기 남부 및
원주 횡성)에 있는 친구가 훈련을 나갔다 왔다더군요 1년에 1번에서 2번정도
하기도하고 안하기도 한다더군요... 그래서 거기 아줌마 텐트 시세는 어떻냐니까
아줌마 텐트가 뭐냐고 오히려 저에게 되묻더군여 그래서 금 니네 밥 물릴땐
어케 하냐고 물으니... 훈련도 캠프 안에서 하던지 아니면 캠프 옆에서 하기
때문에 밥도 식당에 가서 먹던지 아니면 나가서 짜장면 사 먹는다더군요
참 같은 카투사라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절실히 느꼈답니다.
같은 한국사람인데도 이렇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하며 분노에 치를 떨고
있었는데 마지막날 아주머니가 카투사들을 다 부르시더니 김치찌게랑
고기를 볶아서 밥을 해주시더군요... 아줌마가 그래도 카츄샤들 이렇게
마지막날엔 항상 이렇게 밥해먹였다고 이러지 않으면
고생하는 카츄샤들한테 장사하는게 죄짓는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화가 눈녹듯이 사르르 녹아버리더군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좋은일에 왜 그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던
지... 평소 영어 발음이랑 억척스런 아줌마의 모습에 나 자신이 같은 한국사람이라
는게 너무도 챙피했었습니다.그 아주머니가 양놈들한테 무시받으며 가난하고 힘들게 살
아왔던 그 시절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전 정말 나쁜놈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줌마가 가기전에 사진 하나를 보여주셨답니다.
그 70년대의 흑백사진 속에는 아줌마의 젊었을때의 모습과 갓 입대한 어린나이
의 미군 한 마리 그리고 그 옆엔 땟국물에 얼굴이 얼룩진 카투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진 본 후 아줌마 said
그때 17살이던 미군이 지금은 일등상사가 되어 대구에서 근무하는데 얼마전에
찾아왔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러시면서 옆에 카츄사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궁금
하다고 하시며 죽기전엔 꼭 한 번 보고 싶으시다고 아쉬워하시더라구요
그 때 생각했슴다 다음엔 꼭 사진기 가져와서 사진찍고 내가 애 아빠가 되었을때
쯤엔 다시 한 번 찾겠노라고.
그러곤 카투사 한 마리는 캠프로 가는 장갑차에 몸을 싣고 눈을 붙였답니다.
오늘 이야기 끝~~~! ^^/
첫댓글 너 이라크 안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