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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호설암의 철학’
이틀간의 비커 코랄 합창단 모임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의 모임이라 만남이 반가웠고 임원들의 일사불란한 팀웍과 준비가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코로나를 의식해 조찬기도회와 빙고 게임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충분히 만족했고 즐거웠습니다.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했는데 뷔페로 충분히 즐겼습니다. 식사 후 점심 식사비를 지불해주고 헤어짐은 각자의 재량에 맡겼는데 몇 가정이 원래 예정대로 고모리라는 저수지로 갔습니다. 한 바퀴 도는데 빠른 걸음은 40분. 보통은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중간에 약간의 산자락도 있어서 등산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은 가는 곳마다 신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둘레 길을 만들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이런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요? 그 아기자기함이 세계 최곱니다.
대한민국 만세!!! 식사는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모님이 ‘어부촌’이라는 생선구이 집을 소개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입니다. 난 원래 찌개나 조림은 갈치조림을 최고 좋아하는데 무를 커다랗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얼마나 맛있게 조렸는지 기가 막힙니다.
근처에 갈일 있으면 꼭 한번 가보세요. 강추합니다. (어부촌. 박덕준 010-9000-9574
031-543-5366) 둘이 먹다 한사람 행방불명돼도 책임 못 집니다. 하. 식사 후에 동두천 연탄은행 가서 6가정이 탁월한 오성환 목사님 인도로 빙고 게임을 했습니다.
일행 중 박균태 목사님이 빙고게임을 한 번도 안 해봤다 해서 이뤄졌는데 신기한건 그 목사님이 우리 중 가장 먼저 ‘빙고!’를 외쳤다는 겁니다. 두 번 째는 그 사모님이었고... 다시 말해 이 게임은 누구든 초보자도 즐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앞으로 교회마다 신학생들이 잘 배워 모든 친교에 활용하면 너무 좋을 듯... 오성환 목사님을 강사로 적극 추천합니다. (010-8778-2113) 야외 예배나 여행, 친교모임에 강추. 아울러 그 자녀들도 결혼대상자로 적극 추천합니다. 행복한 시간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2021. 10. 12. 사진과 영상 ♡
합창단 MT 둘째날 포천 베어스 타운 조식, ...
https://band.us/band/68483586/post/14446
오늘은 청나라 시대 최고 갑부였던 거상 호설암에 대한 글을 실어봅니다. 그의 탁월한 사업수완도 배울 만 하지만 장사에 대한 그의 철학이 너무 귀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늘의 세대에 너무도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도 분명한 철학과 자기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정치 철학. 목회 철학, 사업관, 직업관, 가정관을 갖고 살아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모든 분야에 이런 귀한 인물들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철학 [哲學]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학문. 자기 자신의 경험 등에서 얻어진 세계관이나 인생관.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호설암에 대한 기사들입니다. 오늘도 내용이 길어 다른 글들은 조금만 싣습니다. 그 아래 우리나라 거상 임상옥에 대한 돈의 철학도 꼭 잘 음미해 보십시오.)
호설암(胡雪岩1823~1885)은 청나라 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기에,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아버지로부터 배운 글을 읽고 쓰는 것만을 밑천삼아, 대도시 항저우에 일자리를 구해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자신이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체질이고 또 이재에도 밝은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고, 당시 중국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근대적 은행의 전신인 전장에서 견습사환으로 우선 취직하였고,
남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청소, 허드렛 일 등 하찮은 일을 매우 성심성의껏 처리하면서 사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금융업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설암은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음 과 같은 네 가지 핵심 요소를 마음에 새기라고 충고하였다.
1) 큰 사업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인 '입지(立志)'
2) 사물의 큰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인 '안목(眼目)'
3) 사업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수활(手滑)'
4) 사업의 뜻을 세우는 것은 나(我)지만 성공시키는 것은 남(他)이라는 '용인(用人)'
거상 '호설암'의 질문 세 가지
서양에는 유대인 상인이 있다면 동양에는 중국 상인이 있다. 뛰어난 상술과 협상술, 독특한 상거래 가치관으로 무장한 중국 상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상계를 장악하며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다. 이런 중국 상인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상계의 영웅이 있다.
19세기 말 청나라 최고의 거상이자 천하제일의 갑부인 '호설암'이 바로 그다. 최근 해냄출판사가 펴낸 '장사의 신 호설암'을 통해 '엽전 구멍 안에서 재주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렸던 큰 상인 호설암이 장사의 법과 도를 알아본다.
죽은 지 13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호설암은 여전히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상인 중 한 사람이다. 그를 많은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단지 천하제일의 거부로 정1품 홍정상인이라는 명예까지 거머쥔 사람이기 때문도, 맨주먹으로 최고의 부자가 된 성공 신화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를 최고로 꼽는 이유는 성공 그 자체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 그가 실천했던 지혜로운 방법들이 남달랐기 때문이며 보통 상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통 큰 상도(商道)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의 성공비결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호설암은 기이한 사람이었다. 청나라 말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는 '기이한' 시대에 태어난 그는 '기묘한' 대응방식과 상술로 10년 만에 전장(요즈음 은행) 직원에서 천하제일의 부를 거머쥔 거상으로 성공했다.
호설암의 질문 세 가지
1. 장사에 있어 꿈과 원칙이 있는가?
호설암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사설 금융기관인 '전장'에 들어가 똥오줌 통을 지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점포를 가지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총명했던 그는 전장의 사환이 되자 파면 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선비 왕유령에게 관직을 사도록 수금한 돈 은자 500량을 빌려줬다. 그는 기회가 생기자 흔들림 없이 꿈을 위해 행동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 현재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는 미래의 꿈을 위해 투자한 것이다. 이 일이 발각되어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호설암은 후에 관직을 얻은 왕유령에게 수차례 도움을 받아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호설암은 장사의 기본 원칙인 신용과 성실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의 눈을 속이는 장사는 처음에는 다소의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명성에 악영향을 미쳐 손해를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업 전장 운영, 약재 거래, 생사 유통, 군수품 조달 등 수많은 장사에 나섰지만 그는 이 기본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갔다. 군인이던 나상덕에게 지켰던 신용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나상덕은 전쟁 중 호설암이 운영하는 전장에 돈을 맡기고 전쟁터에서 죽었다.
군 동료였던 고향사람 두 사람이 찾아와 증서도 없이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증서가 없다는 이유로 돈을 떼먹을 만도 하지만 호설암은 신용을 지켜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돈을 돌려주었다.
호설암의 전장이 신용이 높다는 사실이 군영에 알려지자 호설암의 전자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몰려와 예금을 맡겼다. 신용이라는 원칙을 지킨 상인은 언제가는 성공한다는 일례를 보여준 셈이다.
호설암은 '호경여당'이라는 당대 최고의 약국도 경영했다. 호설암의 약국이 장사가 잘 되자 주변의 약국들이 담합해 가격을 인하해 손님을 끌어갔다. 약국간의 가격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호설암은 약값을 인하하는 대신 오히려 '절대 에누리 안 됨'이라는 큰 게시문을 내다 붙인다.
약값을 싸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좋지 않은 약재를 쓰는 임시방편의 편법 대신 '정가'의 원칙과 '좋은 약재'의 신용이라는 장기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호설암의 전략은 승리를 가져왔다.
2. 커다란 간판과 상도가 있는가?
어떤 상품 그 자체의 효용 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나 효용 때문에 물건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이미 마케팅의 기본이 됐다. 호설암은 이미 100년 전에 그것을 깨달았고 실천했다. 호설암은 장사를 하는 평생 동안 이름과 명성을 매우 중하게 생각했다.
그는 약국을 경영하면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구급약을 나눠줬고 군영에는 기부형태로 원가에 약을 제공했다. 호설암이 오직 따뜻한 심성만을 지닌 선한 상인이었기에 이런 선행을 베풀었을까. 물론 아니다. 그는 장사꾼이었고 이익을 위해서는 '칼에 뭍은 피도 핥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거금을 들여 광고 벽보를 붙이는 대신 전국에서 모인 걸인들과 군인들에게 자신의 약국을 홍보하고 명성을 얻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이것이 호설암이 내세운 커다란 간판 즉 브랜드 이미지다.
호설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만든 약이 좋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할 수 있다면, 내게는 그 다음에 할 일이 있다. 바로 돈을 버는 것이다." 장사에 있어 명성은 곧 이윤이 되는 것을 호설암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호설암이 명성에 도움이 된다면 과감하게 투자하는 상인이기도 했지만 상인의 기본적인 도리 즉 상도(商道)는 지킬 줄 아는 큰 상인이었다. 한번은 호설암은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감사의 뜻에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팔찌를 준 적이 있다.
그는 나중에 돈을 갚았지만 '정은 아직 갚지 못했다'며 굳이 팔찌를 되돌려 받지 않았다. 그 친구가 사기를 당해 어려움에 처하자 호설암은 그를 구해주고 그제서야 팔찌를 받았다. 이는 그가 상술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술에 능한 사람은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거상'은 될 수 없다.
호설암은 장사를 하면서 다음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 첫째, 어떤 돈이라도 벌 수 있지만 결코 조정이 정한 길이 아닌 '검은 돈'을 벌지 않았다. 둘째, 다른 사람의 덕택으로 돈을 벌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불리하게 하거나 이익을 탐하지는 않았다. 즉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깨는 일은 하지 않았다.
셋째, 친구의 힘을 빌어 돈을 벌수는 있지만, 친구에게 미안해 할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넷째, 기회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신의를 저버리고 양심을 속이는 돈은 벌지 않았다. 다섯째, 돈을 버는 행위가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이지만, 재물을 베풀어 선을 행하며, 결코 인색한 수전노가 되지 않았다.
3. 세력과 인재를 얻을 수 있는가?
호설암의 장사는 기본적으로 세(勢)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장사에서 힘과 세를 먼저 얻은 후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그는 그것을 나름대로의 장사철학으로 설명했다.
그는 "권리라 하는 것은 권세와 이득을 둘로 나눌 수 없음을 말한다. 세(勢)가 있으면 곧 이(利)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를 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세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권세의 힘, 상계의 힘, 강호의 힘이 있는데, 나는 이 모두를 원한다.
그런데 이 셋을 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서양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양인들과의 왕성한 교역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호설암 다운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권세를 얻기 위해 왕유령에게는 전장에서 수금한 돈을 빌려줬고 서역정벌에 나선 좌종당에게는 군자금을 대줬다.
또 상계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적이라고 여겼던 상인들에까지 손을 뻗혀 결탁했고 강호의 힘 즉 수송능력을 장악하려고 하천 수송을 주로 하던 민간조직인 조방의 행수 '조운원'와 손을 잡았다. 나중에는 서양세력의 힘을 얻고 이들을 이용하고자 잦은 접촉과 교류를 이어 나갔다.
호설암은 늘 '장사란 혼자 먹는 밥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장사를 할 때 자신만이 독식하지 말라는 경구일 수도 있고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아야 장사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호설암은 장사를 할 때 자신을 도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주었다.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 역시 '시장의 안정'이 장기적인 이익이 됨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호설암은 장사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을 쓰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반드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 일을 처리했다.
호설암은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긴 이상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배려함으로써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설암은 인재를 얻는 일에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인재를 붙잡는 것을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붙잡을 가치가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큰돈을 들여서라도 붙잡아야한다는 것이다.
호설암은 자신의 수익을 기준으로 보수를 결정한 적이 없었다. 적자를 보았을 때에도 지불해야 하는 보수는 정확히 지불했다. 그 결과 호설암은 자신과 함께 일을 한 사람들로부터 일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고 누구나 그를 도와 일하거나 협력하기를 원했다.
‘거상 호설암의 철학’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청나라 최고의 거상이 된 호설암(胡雪岩)은 평소에 인품도 훌륭했지만,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훈계하기로도 유명했습니다. "다음 투자 시에는 반드시 시장을 잘 분석해 자금을 경솔하게 투입하지 마십시오."
어느 날, 한 상인이 호설암 집에 방문했는데 상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상인은 최근 사업이 기울어 목돈이 급히 필요했기에 가지고 있는 자산을 아주 낮은 가격으로 호설암에게 넘기려 했던 것입니다.
호설암은 상인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호설암은 상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상인의 재산을 헐값이 아닌 시장 가격으로 매입하겠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휘둥그레진 상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설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잠시 당신 자산을 보관할 뿐이오. 당신이 이번 난관을 잘 넘겨서 나중에 다시 매입하시오. 다만 원가만 받기는 좀 뭣하니 아주 약간의 이자만 받도록 하겠소." 상인은 호설암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났고 호설암의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아 물었습니다.
"스승님, 다른 사람들에겐 호되게 훈계하시면서 정작 자신의 수익은 왜 신경 쓰지 않으신지요. 입에 들어온 고기도 삼키지 않으시다니요." 그러자 호설암이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이번 일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한 집안을 구하는 일이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으며,
상인으로서 양심에 부끄럼 없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을 수 있는데 위급할 때 타인을 도와준 사람은 나중에 똑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호설암은 상인이라면 이득을 위해서는 칼날에 묻은 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법의 범위를 벗어난 검은돈을 경계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탈취하지 않으려 했으며 신의와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호설암의 성공 철학의 중심은 돈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이익은 재물을 베풀어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혜택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는 늘 구두쇠로 살 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