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5만원이던 중졸 노숙자, 100억대 자산가 된 비결
흙수저 끝판왕 강호동 라라브레드 대표
왕따에 어머니·선생님도 외면
자살할 생각만 하며 유년기 보내
고2 때 단 돈 5만원 들고 상경
구두닦이 등 궂은일 하며 자수성가
호프집, 마케팅 회사 이어
라라브레드 등 연쇄 창업
"자영업자들, 부자 만들어주고파"
라라브레드 강호동 대표
"아무도 가난이 죄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한때 노숙자 생활도 했을 만큼 극빈층으로 살면서 깨달았죠. 가난이 죄라는 것을."
베이커리형 카페이자 브런치 카페인 '라라브레드'를 창업한 강호동 라라브레드 대표(43)는 외식 업계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일 만큼 최악의 상황에서 100억원대 자산가로 성장하면서 청년 사업가, 자영업자들이 닮고 싶어 하는 롤모델이 됐다.
강 대표는 다섯 살 때 완치 불가능한 출혈성 질환인 '혈우병', 즉 작은 상처에도 쉽게 피가 나고, 피가 나면 잘 멎지 않는 난치병을 진단받으면서 고난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어머니가 하루 16시간씩 일해도 월 수입이 100만원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달 약값과 병원비로만 100만~200만원이 필요했다. 살림이 급격히 악화돼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다. 쓰레기장 같은 월세 7만원짜리 쪽방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강 대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재혼했다. 또 다른 불행의 서막이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강 대표에게 이복형 두 명이 생겼는데, 그 형들이 매일 강 대표를 때렸다. 형들에게 맞아서 코피가 난 적이 있는데 코피가 3개월 동안 멈추지 않아서 죽을 뻔했다. 잠자는 동안 출혈이 일어나 방바닥 전체가 피범벅이 된 적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을 고비만 20번은 넘겼다.
"학생 때 늘 왕따였어요. 친구들도 선생님도 저를 피했죠. 어떤 꿈·희망·목표도 없었어요. 세상을 원망했고 매일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중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고난을 극복했어요. 사업도 잘돼서 경제적 자유를 얻었고 지금은 자산가가 됐지요. 지금도 2~3일마다 혈우병 주사를 맞습니다."
강 대표를 만나 성공 비결, 창업 과정, 사업 현황, 앞으로의 목표 등에 관해 들어봤다.
라라브레드는 베이커리형 카페이자 식사도 가능한 브런치 카페로 매장은 송파, 공릉, 길동, 송정 등 7군데에 있다. 지난해 기준 라라브레드 매출은 70억원에 달한다.
-어린 시절 얘기 먼저 들려 달라.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 한마디 안 할 때가 많을 정도로 늘 혼자였다.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게 습관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학교에 가다가 '졸업장을 받으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까. 인생이 달라질까'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유했지만, 대학을 나와도 정상적으로 살 수 없고 가난한 삶이 지속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대신 헌책방에 갔다. 책 살 돈도 없어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 책방 주인에게 부탁해서 책을 한 권 읽었는데, 그 책이 헬렌 켈러 위인전이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헬렌 켈러가 "어서와~ 힘들었지"라며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헬렌 켈러가 내게 "너 몸 아프다며? 네가 얼마나 힘들지 잘 알아. 근데 나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잘 못했어.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더니 교육자가 됐어.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보다 불쌍한 사람 없죠?'라고 물어보는데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 많아. 눈은 잘 보이는데 목표 없이 사는 사람들이 나보다 불쌍해"라고 말해줬다.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날부터 수시로 책방을 드나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 태어났다. 서울로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어머니께 받은 돈 5만원을 들고 고향인 전라도 광주를 떠나 무작정 서울로 갔다. 당시 18살이었다.
-18세 때 서울에 와서 어떻게 살았나.
▷미성년자여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노숙 생활을 했다. 이렇게 계속 살면 눈앞에 보이는 노숙자들처럼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구둣방부터 레스토랑, 고깃집, 나이트클럽 등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일했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혈우병 주사를 맞을 돈이 없어서 제때 주사를 못 맞다가 무릎 관절에서 출혈이 자주 일어나서 다리를 절었다. 호프집 사장님이 "병신을 데리고 오면 어떡해"라며 지배인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고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어떻게 사업가가 됐나.
▷8년 동안 악착같이 일해서 1억1000만원을 모았다. 그 돈을 갖고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2006년 호프집을 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장사가 매우 잘됐다. 하지만 인력·매장·지출 관리 등에 실패해 폐업했다. 호프집이 잘되는 것을 봤던 외식업체 사장님들이 자신들의 가게를 맡아서 운영해 달라고 의뢰했다. 고깃집을 맡아 운영해줬고 여러 외식업체의 홍보와 마케팅도 도와줬다. 그러다가 2011년 온라인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고 마케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두 번째 창업이었다. 지금도 마케팅 회사를 갖고 있다.
-어떻게 라라브레드를 시작했나.
▷2017년 6월 '라라브레드' 1호점을 서울 송파동 골목상권에 냈다. 라라브레드는 식빵 전문점으로 출발했다. 식빵은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빵이고 밥 대신 빵을 먹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식빵 전문 매장을 열어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특히 당시 식빵 전문점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라라브레드 1호점을 냈던 당시 월 임대료 500만원, 인건비 1200만원, 원자재비 800만원, 고정비 400만원이었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월 매출이 5000만원은 돼야 했다. 하지만 첫달 매출은 2000만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을 바꿔야 했다.
처음에는 밤식빵, 생크림식빵, 호밀식빵, 통밀식빵, 데니시식빵 등 식빵 위주로 판매했다. 가게에 종종 오던 중년 여성 손님이 "식빵만 잔뜩 판매하니까 먹을 것이 없다. 빵 종류를 늘려보라"고 조언해줬다.
문제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시장 조사도 다시 했다. 매장이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있기 때문에 고객이 일부러 매장을 찾아오게 해야 했다. 하지만 굳이 식빵을 사러 골목 후미진 곳까지 직접 오려는 고객이 별로 없는 게 문제였다. 식빵 전문 매장에서 오픈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는 브런치 카페로 재빠르게 전략을 바꿨다. 피자처럼 빵을 맨 아래에 깔고 그 위에 과일, 채소, 햄 등을 올려 먹음직스러운 오픈 샌드위치를 선보였다. 이후 다른 브런치 메뉴도 지속적으로 개발·출시하면서 영업이 잘됐다. 1호점을 내고 1년 후 월 매출 1억8000만원을 달성했다. 지금은 빵 종류도 다양하다.
-또 한 번 라라브레드 전략을 바꿨다고.
▷2017년 광주 광산구에 라라브레드 2호점을 출점할 때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전에는 외식 브랜드 등 외식업을 할 때 임차해서 운영했다.
2호점인 송정점을 낼 때는 직접 건물을 매입해 매장을 꾸몄다.
송정역 근처 낡은 단독주택 2채를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2호점을 냈다. 단독주택 매입 비용 등을 포함해 총 10억5000만원이 들어갔는데, 대출을 받아서 실제로 들어간 순수 자금은 1억3000만원이었다. 30개월 후 2호점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했다. 세금 등을 제외하고 6억3000만원이 남았다. 2호점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건물주에게서 임차해서 쓰고 있다.
제가 당시 외식업을 하면서 순이익 6억3000만원을 내려면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8~9년 동안 열심히 일만 해야 했다. 라라브레드 2호점 이후부터는 추가 매장을 낼 때 건물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건물을 여러 채 갖고 있다고.
▷최근 5년 동안 건물 8개를 매입했고 그중 5개를 팔아 지금 3채를 갖고 있다. 건물 시세를 대략 계산해봤는데 100억원이 넘는다. 창업자도 창업 자금이 부족하면 동업하는 것처럼 건물을 매입할 때 여러 명이 자금을 모아서 사는 방법이 있다. 자영업자들이 부동산과 금융 등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임차인이 되는데, 직접 매입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건물에서 가게 운영 등을 하면 임차료를 낮출 수 있고 이는 다시 원가 절감으로 연결돼 가격 경쟁력이 생겨 장사가 더 잘될 수 있다.
-열심히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렸을 때 열등감, 자격지심이 너무 심했다. 세상을 원망했고 항상 죽고 싶었다.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해준 원동력은 결핍이었던 것 같다. 가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았다.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포기하면 나는 쓰레기다"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 등 수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또 하고 싶은 게 있는지.
▷저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잘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생하는 자영업자가 많은데, 자영업자들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노하우를 전해주고 도와주려고 한다. 실제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끝으로 청년들을 위한 조언은.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 작심삼일로 끝나도 좋다. 3일 동안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린 후 포기했다면 이후에 다시 3일 동안 달리고 또 포기하고 또 달리고 또 포기하면 된다. 작심삼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포기만 안 하면 된다.
※ 인터뷰 동영상을 매일경제신문 유튜브 '매경5F'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