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잉어 (외 2편)
김 륭
비단잉어에게 비단을 빌려
당신에게 간다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바람은 글을 쓸 수 없어서 못다 한
인생에 피와 살을 더할 수 없고
당신은 누워 있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만 있다
떠날 수 있게 하려면 물에 젖지 않는
종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죽어서도 뛰게 할 당신의 심장을
고민하고 있고, 당신은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반짝인다 비단잉어에게 빌린
비단을 들고 서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허공에 고양이 수염을 붙여 주러 온
미친 비행기인 양,
내가 낳았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걱정 마, 엄마는
지금 엄마 뱃속에
있으니까
나는 이 이야기를 나의 머랭 선생님에게 해 주었다
좀 많이 늦었지만
결혼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
여자를 만났다
기뻤다 운명 같아서, 이 운명이
지옥과 천국을 자주 오가다 길을 잃어버릴 때까지만
살자, 한 번 더 기뻤다
내 꿈은 머랭, 닭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아서
머쓱하게 웃었다 여자가 따라 웃었다
설탕과 달걀흰자는 많이 친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좀 민망했다
그녀는 웃음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 같고
나는 웃는 얼굴을 만져 본 적이 없다
손만 잡고라도 잤으면 한다
잠깐 실례할게요
나는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을 잘라
호주머니에 넣는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닭이 된 나는 그녀의 웃음을 빈 호리병처럼 기울여서
나의 친애하는 머랭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기
참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식물 합시다
복권 긁을 힘만 있으면 그럽시다
아무도 우리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치약을 꾸~욱 눌러 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 지그시 눈 다시 감고
사람이 사람을 견디지 못해 벌이는 제례, 침대 밑으로 떨어진 베개는
사람에게 목이 베인 사랑의 화병쯤으로
하얀 변기 위에 올려놓고
엄마, 이제 그만 가요 집에 가요
양치를 하다가 하필이면 양치를 하는데
마침내 어머니의 치매가 시작되었다고 요양병원 주치의가 말했고
베란다에 놓인 화분 속 다육이가 조금 흔들렸고 나는
가만히 입을 헹구고
고사리 대사리 껑자 나무대사리 껑자*
매일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하는 일이란 앞을 지우고
뒤를 잊는 일
식물 하자ㅡ 엄마, 겨울엔 죽었다가 봄 오면 다시 피자
엄마 허리를 꾸~욱 눌러 짠다
식물들은 기억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신발 사러 가는데 꽃이 자꾸 따라온다
엄마, 놀랬잖아
우리는 손을 잡고 서로를 떠나기 시작했다
닭이라도 몇 마리 키우면서
식물 합니다. 그냥 식물
합시다.
*강강술래(고사리 꺾기) 중에서, ‘껑자’는 꺾자의 사투리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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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진주에서 태어나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 되었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동시집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앵무새 시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