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팀들이 리그컵에 2군이나 후보를 내보내는 등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는 와중 리그컵 우승에 대한 열망을 보인 부산과 울산이 결승에 올랐습니다. 작년 준우승팀 부산이 이번에 난적 부산을 꺾고 한을 풀 수 있을지.. 일단 부산은 정규리그에서 임상협,양동현의 골로 울산에 2-0으로 완승을 거두며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울산도 최근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설기현이 부활의 기미를 보인다는 게 반갑습니다.
초반 부산이 한상운,임상협의 빠른 돌파로 분위기를 잡아갔지만 아깝게 두 번의 찬스를 놓치고, 바로 이어진 울산의 프리킥 상황에서 설기현에게 헤딩 선제골을 허용할 뻔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아쉬운 게 스리백의 한 축이었던 젊은 수비수 박종우의 실수였는데요,
프리킥을 차기 직전 설기현이 오프사이드라인을 넘어서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리킥을 차는 순간 박종우가 오프사이드라인을 일찍 무너뜨리면서 들어왔고, 결과적으로 설기현의 헤딩은 온사이드가 돼버렸는데 아슬아슬하게 골문을 빗나갔습니다, 부산 수비진이 최근 이안이 살아나고 있다지만 홍성요 이정호 등의 베테랑 수비수들이 승부조작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고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종우도 킥이 좋고 부지런해보입니다만, 역시 베테랑 수비수 하나쯤 더 있는게 어떨지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여의치 않을 경우 김한윤을 쓸 수도 있지만 체력이 좀 걸리고 말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도 부산 수비진은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울산의 세트플레이에서는 노골적으로 곽태휘의 머리를 노리는 경우가 많고, 울산의 공격진은 곽태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서포트하는데, 지금 이 장면에서도 부산 수비진은 곽태휘가 추성호를 순간적으로 따돌리고 니어포스트쪽으로 뛰어들어가는데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곽태휘가 혼자 붕 떠서 자유롭게 슛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슛이 빗나가서 다행이었습니다만, 이 사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박종우와 유호준이 울산 선수들을 마크하지 않고 멀거니 코너킥이 올라오고 있는 것만 쳐다보고 있다가 등뒤로 침투하는 곽태휘를 보지 못했고, 설기현을 마크하던 김창수는 곽태휘에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겨 설기현을 놓쳐버렸습니다. 완전히 울산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세트플레이였습니다. 부산이 공격자원이 뛰어난데 수비진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 장면도 동료들간의 호흡이 부족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설기현 옆에 서있던 수비수가 고창현을 마크하기 위해 나왔는데, 설기현에게 너무 큰 공간을 내주면서 나왔습니다. 발이 빠른 김창수에게 고창현을 맡겨두고 수비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너무 부산 수비진 까는 것 같아서 캡처는 이쯤 하겠습니다 -_-
중원의 지배자인 부산의 김한윤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한지호와 교체되면서 에스티벤과 고창현이 중원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울산의 수비진은 견고한 포백라인을 유지하면서 에스티벤이 전진 압박부터 측면 커버까지 종횡무진하는 맹활약으로(새삼 느끼지만 대단한 활동량..) 부산이 슛찬스를 잡기 어려웠고, 거의 중거리슛에 의존했습니다. 그래도 한상운의 중거리슛은 하나하나 위협적이더라고요.
임상협이 힘을 내서 측면 돌파를 해봤지만, 부산의 왼쪽 공격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는 모조리 차단해내던 곽태휘에 의해 막혀버렸고 곧바로 이어진 공격에서 고창현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습니다. 고창현의 오른발 중거리슛도 예술이었지만, 고슬기가 떨군 볼을 원터치로(그것도 발리로) 절묘하게 흘려준 설기현의 섬세한 테크닉이 가장 빛난 장면이었습니다.
설기현의 컨디션이 좋았다는 건 45분에 터진 추가골에서도 드러났는데, 최재수의 낮고 강한 크로스에 전속력으로 달려들면서 바운드되는 순간 왼발로 살짝 돌려 성공시킨 장면은 대단한 기술이었습니다. 설기현이 살아남에 따라 울산은 후반기 전망이 밝아졌다고 볼 수 있고, 울산 팬들은 적어도 설기현 연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프타임에 박희도가 양동현과 교체되어 나갔습니다. 부산의 원조 에이스인 박희도가 예년만큼 활발하게 움직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수 밖에 없겠죠. 반면에 양동현은 올해 데뷔 이래 최고의 활약을 해주고 있으니 부산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적절한 카드를 꺼내든 것 같습니다.
후반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울산의 필살기가 작렬했는데, 오른쪽 프리킥 상황에서 강민수의 헤딩슛이 아깝게 실패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곽태휘는 전반과 같이 추성호를 따돌리고 니어포스트 쪽으로 돌아들어가며 동료 공격수들이 벌려놓은 공간에서 노마크 헤딩을 노렸네요. 울산을 상대하는 팀은 이 위협적인 곽태휘 시프트 전술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거의 알고도 당하는 수준이네요.
부산의 수비가 울산에게 계속 당하는 분위기였습니다만 역시 부산의 장점인 공격력으로 만회할 수 밖에 없죠. 교체 멤버인 한지호가 공격을 이끌면서 부산이 몇 분간 몰아쳤습니다만, 임상협과 추성호의 슛이 아깝게 빗나갔습니다. 이 분위기를 타면서 만회골을 넣었다면 좋았겠지만 소득이 없었고, 흐름이 바뀌는 것을 감지한 울산의 김호곤 감독이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전반 미들에서 활발하게 움직인 고창현을 빼고 현재 우위인 높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컵대회 끝판왕(...)인 김신욱을 투입, 그러자 부산의 안익수 감독도 중원을 커버하기 위해 투입한 한지호를 다시 빼고 공격수 윤동민을 넣었습니다. 한지호가 그리 나쁘진 않아보였는데 전술적인 승부수라고 봐야겠네요.
두 감독의 승부수 싸움은 어이없는 결과로 결판이 났는데, 김신욱이 투입되자마자 부산의 세트플레이에서 흘러나온 볼을 잡아 맞이한 속공 찬스에서, 부산의 박태민이 김신욱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무리한 태클을 시도, 결과적으로 이안 파이프 혼자 울산 공격수 다섯 명을 맞이하는 불쌍한 장면이 연출되면서 강진욱의 3번째 골로 울산이 쐐기를 박습니다. 컵대회 끝판왕 김신욱이 투입되자마자 도움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해냈습니다.
이안 파이프에게 위로금을 전달합시다부산의 수비 전환이 느린 것으로 보아 체력 소모가 심하고, 따라잡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부산은 전반과 같이 한상운 등의 중거리슛으로 일관하고, 울산이 김신욱의 높이를 이용해 쉽게쉽게 찬스를 만드는 것으로 보아 이미 끝난 시합이었는데, 부산의 저력은 여기서부터였습니다. 후반 25분 한상운의 패스를 절묘하게 접어 곽태휘를 따돌린(사실은 접었다기보다 왼발슛이 빗나간) 양동현이 오른발 슛으로 한 골을 만회했고, 울산이 이용을 빼고 이재성을 넣어 수비적으로 물러선 틈을 타 부산은 공격 숫자를 늘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산의 공격 찬스가 많아졌고, 후반 35분 얻어낸 코너킥에서 한상운이 올린 것을 또다시 양동현이 성공시켰습니다.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절묘한 백 헤딩이었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코너킥의 지배자인 곽태휘가 마크하던 양동현을 놓친 결과 한 점 차이로 쫓기게 되었네요. 한상운이 2도움, 양동현이 2득점. 과연 부산의 공격을 이끄는 주축들답습니다.
한 점 차이로 쫓아가자 부산 선수들이 없는 체력을 짜내서 활발하게 공격을 펼쳤지만, 후반 추가시간 전상욱 골키퍼까지 공격을 나온 프리킥 상황에서 가장 극적이고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양동현의 헤딩슛이 김영광의 발에 걸려 흘러나온 노마크 찬스를 김창수가 5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허공으로 날려버렸죠..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윤동민, 머리를 쥐어뜯는 유호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김창수.. 골대 뒤에서 열광하는 수백 명의 울산 서포터즈... 그리고 4개월을 기다려온 러시앤캐시컵은 이렇게 울산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비록 종이컵이라고 무시당하는 리그컵 대회지만, 울산으로선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소득을 챙긴 한 판입니다.
첫댓글 와~ 후기가 거의 전문가 수준이시네요
잘봤어요^^
잘 봤습니다!! 두 골 만회해서 3-2 됐을 때 긴장하면서 봤어요. 경기 재밌더라고요 ㅎㅎ
222 전반보고 울산이겼네 했는데 ㅋㅋㅋ
요즘 울산경기 중 가장 재미있었던... 기대않고 봤는데 결승전다운 게임보여준 선수들에게 감사합니다
아까 영표형슛님 블로그에서 잘 읽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