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수강신청 해야 되는데, 어떤 과목 신청하면 좋을까요?”
각 대학 학적과 전화통을 울리는 부모님들의 문의 전화. 이젠 낯선 풍경도 아니다. 대학입시부터 수강신청, 전공결정, 이젠 취업까지 부모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 부모님뿐만이 아니다. 이성친구나 선배 등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학생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 ㄱ씨(연세대·경영05)는 얼마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수업 중인 강의실에 들어와 놓고 간 물건을 찾던 학생이 교수님의 꾸중을 듣자, 남자친구를 데려와 따지는 모습을 목격한 것. 연세대 원주캠퍼스 학생서비스센터 홍혜련 과장도 이와 비슷한 학생들을 자주 접한다. “한 아버님이 학생과 같이 오셔서 서류 떼는 법을 물어보시길래 ‘학생이 1학년인가보죠?’라고 되물었더니, ‘아뇨 4학년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와 당황했었다”며 “요즘엔 아버님들도 자식들을 대신해 문의하거나 일을 처리하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부모님이나 이성친구, 선배 등의 도움이 없으면 무엇도 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무슨 일이든 혼자면 불안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틀릴 것 같고, 무언가 빠진 게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그저 두려운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예전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기숙사 룸메이트 신청때 우리 아이와 한번 더 룸메이트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어머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하기도 하고, 시험을 앞두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매달려 특강을 받는 대학생도 있다. 학교 관계자들은 자녀와 함께 상담하러 와서 학생은 가만히 있고 부모님만 한참동안 이야기하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입을 모은다. 성균관대 입학처 홍정환 직원은 “예전같으면 부모님께 아무리 설명을 해드려도 이해를 못하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워낙 학사제도에 관해 꿰뚫고 계셔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도 다 알아들으신다”고 말했다.
엄마들, 이제 학교를 넘었다.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서도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롯데제과 인사교육과 관계자는 얼마전 실시한 공개채용 면접에서 면접장까지 부모님과 함께 온 지원자를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모 식품회사 관계자도 “입사시험에 지원한 아들의 토익점수가 900점이 넘는데 왜 서류전형조차도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는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점점 늘어나는 의존적인 성향의 대학생들. 왜 이런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주로 이러한 현상이 저출산 현상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은 하나, 둘뿐인 자식에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투자를 하게 되고, 당사자인 학생도 주로 가족과의 단절된 경험없이 살아오면서 부모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반대 의사를 밝힐 만한 토대가 부족했던 것이 그 원인인 것이다. 변화한 대학문화도 원인 중 하나다. 전남대 사회학과 박해광 교수는 “선·후배 및 동료관계를 통해 세대의 문화가 재생산되는데, 대학문화의 중심점이 소멸하면서 대학생들이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의존적으로 변모 했다”고 말한다.
어느 대학교 강의실 책상에 써있던 낙서. ‘과외가 필요해. 엄마가 필요해’. 60, 70년대만 해도 ‘인텔리겐차’라고 하며 존경심의 대상이었던 대학생과 새삼 대비된다. ‘머스트 해브’를 부르짖는 자본주의 시대에 엄마나 선배의 관심도 옵션이 아닌 대학생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학생운동으로 우울하던 예전의 대학가 풍경 못지않게 21세기 대학가 풍경도 우울하기 짝이없다.
정소진/<연세춘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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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 85%가 대학교를 다닌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나이대(10대말~20대?)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고등학교화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20대에 들어서도 아직 "나"는 없고, 부모의 "애들"만 학교에 다니는 것이죠.
저는 그 큰 이유가 부모들의 과잉보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불안정해져서 IMF 이전처럼 직장 하나 잡고 있으면 평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인 안전망이 갖춰진 것도 아니죠. 그러니 부모들은 기를 쓰고 애들의 앞길을 열어 주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닐까 해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막말로 부모 자신이 죽으면서 자식도 같이 데려갈 것도 아닌데,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막막하죠.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하자면, 부모와 자식은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자식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회와 부딪치고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죠. 부모가 대신 해 주고, 그것만 따르도록 교육받았으니까요. "나"가 아니라 "자식"으로서만 일생의 반 이상을 보낸다니 어처구니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회는 황우석 같은 맹목적인 추종 대상을 필요로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대학뿐 아니라 취업도 결혼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몸만 어른을 만들어 놓은 부모의 책임이 정말 크건만 실상 그 분들은 그걸 모른다는거..정말 우울한 일입니다. 좋은기사 잘 읽었어요.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독창성이 없다.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먼저 행동하고 말은 다음에 하라-논어중 문제를 모르는게 문제이기보다 바꾸려고 움직이지 않는게 문제일듯하고 자신이 해야 남이 한다란 생각이 필요할뿐이라 생각돼내요
신문기사는 아마 일부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사속의 일이 점점 더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전에는 일부 있는 집에서만 부모의 힘(빽이라고 불리우는)을 발휘했지만, 그렇지 못한(중산층부터) 계층부터는 직접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항이라는 것이 같는 의미가 나빠보이지만 이전세대(부모님도 포함되겠죠)에 대한 반항을 통해 자신이 더 성숙해지고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토요일 오후입니다.(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세대간 가치관에 대한 차이를 반항이라고 표현해봤습니다.)